• 모내기 대장정과 가든파티
    [낭만파 농부] 아직 계속되는 가뭄
        2019년 06월 25일 0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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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흘 만에 건성으로 모 때우기를 끝냈다. 제대로 하자면 한없이 빨려드는 게 땜질이라 ‘웬만하면 그냥 지나친다’는 철칙을 꿋꿋이 지킨 덕분이다. 지난해보다 경작면적이 늘어 처음부터 지레 겁을 집어먹은 점도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올해는 모내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건과 핑계거리가 끊이지 않는 탓이 컸다.

    모내기 작업

    모내기 첫날은 ‘군청소풍’으로 길이 틀어졌다. 이 농번기에 어인 때 아닌 소풍이냐고?

    “완주북부 고산권 주민들이 10일 오전10시, 완주군청으로 ‘소풍’을 간다. 군청 일원에서 ‘보물찾기’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긴 하지만 그냥 소풍은 아니다. 지역현안으로 떠오른 비봉면의 거대규모 돼지농장(이지바이오그룹 부여육종) 재가동을 막아내려는 일종의 실력행사.

    소풍 형식으로 완주군청을 방문해 ‘돈사개축과 농장운영 허가 방침’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한편 주민들의 강력한 재가동 반대여론을 전달한다. 이날 소풍에는 고산권 주민 1백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며, 오전 10시 완주군청 1층 로비에 모여 군수실을 집단 방문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소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20여개 주민단체가 (가칭)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에 반대하는 완주북부 사람들(돼지반사)을 구성해 조직적으로 대응키로 했으며, 참여단체와 개인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현수막 걸기운동과 지역주민 서명운동, 온라인 민원운동 등도 적극 펼쳐나가기로 했다.”(보도자료 중에서)

    그게 하필 모내기 첫날. 아침 일찍 농업기술센터로 가서 포트모이앙기를 임대해 모내기 첫 번째 순번인 창수 씨 논배미에 실어다주고 일을 거들다보니 10시가 훌쩍 넘었다. 부랴부랴 트럭을 몰고 군청으로 향했다. 흙탕물 튀긴 작업복과 고무장화 차림 그대로.

    ‘소풍’이 열린 군청 로비에는 이미 지역주민 50여명이 몰려들어 사전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이 제법 눈에 띄었고,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담은 피켓 따위를 들었다. 사전집회를 마친 소풍 참가자들은 5층 군수실을 향해 계단을 따라 올랐다. 군수는 다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부군수와 주무과장들이 일행을 맞았다.

    “우리 군도 대규모 돼지농장이 들어서는 걸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법적으로는 어려움이 있다. 업체 쪽에서 농장가동을 위한 인허가 신청을 해오면 그 내용을 살펴본 뒤 주민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해 적절히 대응하겠다”는 게 군 쪽의 설명. 속 시원한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은 아직 여지가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2시간 만에 소풍을 마쳤다.

    관련 기사(http://www.jmbc.co.kr/news/view/9957)

    샘골 모내기 완료 자축 파티

    다행히도 우리 논 모내기는 이틀째 샘골부터. 샘골에는 고산권벼농사두레 소농 경작자 6명이 몰려 있는 곳이다. 멋대로 생긴 조각배미가 많아 작업이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날은 이앙기를 모는 작업자에게 사정이 생겨 일이 좀 일찍 끝났다. 때를 놓칠 새라 판을 벌였다. 샘골 모내기 완료 자축파티. 올해 처음 벼농사를 발을 들인 새내기 농사꾼들의 처음 모내기를 해낸 감흥이라니.

    읍내 미소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면서 한 배미 벼농사에 도전한 예원 씨는 모내기 나흘 내내 오전 새참을 내왔다. 새참은 빵 한 쪽과 음료로 대신하는 게 보통인데, 예원 씨는 정성스레 끊인 우리밀 국수를 준비했다.

    사흘-나흘째는 대부분 우리 논이었고, 마지막 날은 이앙기 전조등을 밝히는 야간작업을 끝에 겨우 모내기를 마칠 수 있었다. 이앙기 작업자 종훈 씨와 호흡을 맞춘 지도 어느덧 5~6년을 헤아린다. 보통 경작자는 모판을 대주고 여러 허드렛일을 거들게 된다. 종훈 씨는 워낙 말수가 적고 일처리가 꼼꼼해 답답한 면도 있지만 이제는 몸짓만 봐도 뭘 원하는지 척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흘에 걸친 모내기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으니 그 다음은?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이번에는 ‘모내기 무사완료 자축 가든파~뤼’를 벌이기로 했다. 밥과 국, 김치와 술을 주최자가 준비하고 나머지 먹거리는 저마다 싸오기로 했는데 숯불갈비에, 오리고기에, 오징어순대에, 꼬막에, 감자전에, 샐러드에, 수박에… 가로등이 들어오고, 장작불을 피워 숯불을 바비큐 그릴에 채우고, 고기를 굽고, 조개를 굽고 술잔이 오갔다. 그렇게 고단한 노동에 쌓인 피로를 풀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 농사철 풍경이다.

    가든 파~뤼

    일을 앞두고는 늘 초긴장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막상 일이 시작되면 여유를 되찾는다. 올해는 그 여유가 유난히 작작했던 듯하다. 그 때문에 일이 크게 틀어지지만 않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래, 아직은 순조로운 편이다. 가뭄 탓으로 모가 잘못되는 바람에 모판이 모자랄 것 같았는데 그럭저럭 근근이 맞출 수 있었다.

    아직도 계속되는 그 가뭄이 문제다. 물을 흠씬 대지 못한 샘골은 바닥을 드러낸 논배미가 여럿이다. 이래서는 우렁이가 제구실을 못 한다. 벌써부터 피가 올라오고 있다. 사나흘 안에 물을 대주지 못하면 한바탕 ‘김매기 전쟁’을 피할 수 없다. 하긴 해마다 치러온 전쟁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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