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는 재미로 하는 것?
    [경제산책] 학부모 친구들과의 대화
        2019년 06월 25일 09: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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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보다 많이 젊었던 시절, 수업을 땡땡이 치다가 선생님 눈 밖에 난 일이 있었다. 10여 명이 듣는 조그만 수업이었는데, 당시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던 탓에 종종 수업을 땡땡이 쳐야 했다. 나름 신념을 가지고 하는 봉사활동이었지만, 봉사활동을 한다고 결석을 하거나 수업 준비를 제대로 못하면 혼날 것 같아, 이런 저런 핑계를 만들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는 공부에 대한 집중력도 중요하지만 절대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런 저런 핑계로 전념하지 않으면 어떻게 제대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느냐며 나무라셨다. 선생님은 나와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지닌 분이었는데, 나보다 압도적인 시간을 투여하여 공부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내가 땡땡이 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중에 알고 이해는 하셨지만,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셨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육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중등교육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고, 다들 학부모들이었기 때문에 한마디씩 하게 되었다. 나는 수업을 재미있게 하고, 참여를 통해 학업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업의 절대량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재미 위주로 흐르게 되면 대중 교육은 가능할지라도 학습의 절대량이 부족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학습에 대한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이것이 결국 아이와 나라의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부모가 할 일은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경우 하도록 만드는 규율을 만드는 것이라고 친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말을 꺼냈다.

    중등교육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의 견해가 시대에 뒤떨어진 매우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집중력이 커지기 때문에 더 나은 성취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를 이끌어내는 교육을 하면 교과서에 제시된 양을 모두 학습할 수 없지만, 진도보다 흥미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질 경우 창의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면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딴지를 걸었다. 학습과정에 참여를 하게 만들어 잠을 자는 아이들이 줄었다는 것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열심히 노동한다는 것인데, 열심히 노동하는 것은 흥미와 무관하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정리하며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먼저 배운 내용에 대한 암기가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며, 이해를 하기 위해 앞서 배운 지식의 연관성과 차이에 대해 자기만의 논리를 만드는 일을 의식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발생하지 않을뿐더러, 단박에 일어나지도 않는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고통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큰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이를 꾸준히 하여 기존에 만들어진 성과를 자기 것으로 만들 때, 비로소 기존 지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인 생각이 탄생한다. 공부의 절대량이 매우 중요한 것은 이처럼 기존에 이룩된 성과를 학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지속되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몸이 규율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나는 과거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았던 것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규율을 중등교육과정에서 체화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판단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육모델로 흔히 언급되는 대부분 유럽 나라들의 학업 성취도가 낮은 것은 이런 규율을 체화한 사람들이 작기 때문일 것으로 추론한다. 한국 사람들의 상식과 달리 유럽의 전문가들은 한국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길래 학업성취도가 높은가에 대해 비법을 알려달라고 종종 묻는다고 한다. 학습량이 작아도 성취도가 클 수 있다면 공부에 왕도가 있다는 말인데,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낮은 학업성취도 때문에 고민하고 있겠는가? 지금보다 많이 젊었던 시절 나 역시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땡땡이를 많이 쳤다. 결과적으로 젊은 시절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이런 측면에서 공부에 흥미가 없더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동기로 작용하여 열심히 하게 만드는 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모임을 통해 많은 친구들과 선배들의 아이들을 보아 왔지만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하는 아이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나와 처음 만나 서먹한 사이임에도 쉬지 않고 독학한 책의 내용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정확히 대답하기 위해 구글 검색을 열심히 해서 답변해 주었다. 대왕고래가 바다의 제왕이라고 하길래 몸집은 대왕고래가 가장 크지만 이빨고래에 속하는 범고래가 최고 포식자라고 알려주었다. ‘친구는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어서 안 사실이지만 그 아이는 유전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나지 않는다. 몇 년 전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유명한 대학에 간 선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배는 자기 아이는 공부하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왜 공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으로 자기 아이 자랑을 했다. 그런데 옆에 같이 있던 아이는 전혀 다르게 말했다. “나도 좋아서 한 게 아니에요. 해야 하니까 싫더라도 한 거에요. 공부가 좋아서 하는 아이가 어딨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아이의 대답이 대다수 사람들의 상황일거라고 판단한다. 사람은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유리하게 된 것은 인간 역사에서 매우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인간은 공부를 좋아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부가 고통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으로 추론된다.

    친구들은 바로 그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고 말했다. 공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억지로 하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중등학교까지는 세계 최고이지만 대학교에 가면 미국 학생들에게 뒤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공부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은 공부를 좋아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수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부를 즐기면서 열심히 노력할 때, 성취도가 높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부를 즐기지 않고 억지로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등교육 이후의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견해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고 단언한다. 경험적으로 볼 때, 한국의 고등교육이 이룬 성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학습, 흥미·재미의 측면이 훈련·규율의 문제를 대체할 수 없다

    진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우리 사회가 이룬 성취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자동차·조선·전기·전자·철강·화학 등 소위 우리 사회의 주력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거의 따라잡거나 넘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업화의 경험이 없던 후발 자본주의 국가 중에 이러한 성취를 이룬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사례일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넘어가는데 초·중등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중진국을 넘어서는 데에는 고등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말로 우리 사회의 고등교육 이수자들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교육시스템에 고통만 받았고, 성과가 없었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학생들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한 것은 사실이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이것이 아무런 성과를 낳지 못했다고 간주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룩한 것은 무엇이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고 단언한다.

    이유가 무엇이든 비록 억지로 공부를 하더라도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의지가 동반된 과정이기 때문에 생각의 힘이 키워지고, 학습을 하는 실천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배양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는가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교육시스템은 이런 힘을 키울 수 있는 제도로 기능했다. 만약 그렇게 판단하지 않으면 우리사회의 주력산업이 선진 메이커를 따라잡는 기술습득 과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건 중등교육에 종사하는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 역시 고통을 이겨내는 훈련을 반복하여 꾸준히 학습할 수 있는 규율을 체화한 덕택에 좋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 우리 교육시스템이 문제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리 교육시스템이 최고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 교육 시스템은 소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며, 엉덩이가 무겁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부모의 능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로 인해 교육과정에서 소외되는 학생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위 4차 산업혁명의 도래 때문에 앞으로 사회에 필요한 교육은 창의성을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교육시스템을 비판하는 태도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이 매우 과장되었다고 판단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육의 방향은 대대적인 수학 교육에 대한 강화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빅데이터 등과 같은 핵심기술은 매우 뛰어난 수학 능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4차 산업혁명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지금보다 더 열심히 수학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창의성을 주장하는 분들의 교육개혁 방향은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학의 학습량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학습량을 줄이면서 더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학문에 기반하지 않은 엉뚱한 생각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 지식에 대한 습득을 게을리하면서 어떻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는 말을 믿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력이 수학에만 특화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수학을 매우 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이며,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업군이 우리 사회의 상위 소득집단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예상컨대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명이 단기에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지금까지 그런 혁명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이 모든 학생들의 학습량을 줄여 학습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사회의 주력부문은 선진메이커를 추격하는데 이미 성공했다. 이런 부문들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래야만 한국을 맹렬히 추격하는 중국을 따돌리고,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이런 산업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학습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야지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학습량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설정해선 곤란하다.

    물론 학교는 학생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에 집중하더라도, 학습의 심화는 어차피 학원이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학습역량이 저하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사교육은 공교육을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한데, 친구들은 공교육의 역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았다. 사교육은 철저하게 공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기술변화가 고등교육 이상의 고숙련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온 현실을 감안하면, 중등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함께, 심화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학습의 절대적 양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선도자가 되어야 하는 한국 주력산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고도로 숙련된 지식을 해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개인과 나라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들의 학업부담을 낮추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중등교육에 종사하는 어떤 친구도 설득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 아이 교육에 대한 잡담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글을 적어본다.

    필자소개
    부경대 경제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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