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By tathata
        2006년 07월 15일 10:00 오전

    Print Friendly

    장편독립영화, 완성 후 길을 잃다.

    최근 몇 년간 독립영화의 화두 중 하나는 “제작한 영화를 어떻게 상영할 것인가”였다. 어렵사리 영화를 제작해도 영화제 상영 등을 제외하고는 상영될 기회가 없는 것이다. 극장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 장편독립영화의 경우에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어렵게 영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영화 제작의 의미까지 퇴색되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개봉 후 발생하는 수익을 전제로 제작비를 대출받아 영화를 만든 경우에는 영화의 의미의 퇴색을 고민하기 이전에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이라는 예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만 좋으면 개봉되어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에 의해 의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순진한 사람에게까지 기회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전국에 스크린이 1,600개가 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상영할 하나의 스크린을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우리나라 영화 상영 시장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거쳐 과점 형태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메이저 배급사는 멀티플렉스 체인과 수직계열화 되어 있으며, 이 결과 상영 시장은 몇 편의 영화가 전체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과점화된 몇 편의 영화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뿐, 다양한 상영의 기회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힘없는 자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시장에서 소외될 뿐이다. 장편독립영화는 극장 상영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홍보/마케팅, 또 하나의 시장 진입 장벽

    어렵사리 상영할 스크린을 확보한다고 해서 상영을 위한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극장 상영을 위해서는 영화 상영 일정과 상영 극장을 관객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흔히 홍보/마케팅이라고 부르는 단계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홍보/마케팅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개봉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고, 그럴 경우 관객들은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을 찾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극장 측에서도 적극적인 홍보를 요구한다. 홍보/마케팅비용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기 위한 필수 조건 것이다. (영화 산업에서 영화의 제작비를 실제 영화의 제작에 들어가는 순수 제작비만으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홍보/마케팅 비용을 포함해서 계산하여 총제작비라는 형태로 계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필수 조건은 독립영화 극장 상영을 제약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된다. 제작비조차 어렵게 조달하는 현재 독립영화 현실에서 홍보/마케팅을 위한 별도의 비용을 추가로 조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 홍보/마케팅은 익숙한 것이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은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랬다가 막상 극장 상영을 하려고 할 때 해결하지 못하는 장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누군가 극장 상영을 위해 이 비용을 대신 지불해 준다면 해결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경우는 이 비용을 조달하지 못해 극장에서의 상영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도 상영해야 한다면 순제작비를 낮추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과연 장편독립영화의 제작 현실에서 더 줄일 제작비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제작비를 낮추더라도 홍보/마케팅비용이 추가한다면 영화의 총제작비는 줄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매우 신선한 방법을 찾는 적극적 방식의 해결책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홈페이지를 만드는 대신 무료로 제공되는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고, 광고를 하는 대신 열심히 매체에 보도 자료를 보내 언론 보도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영화를 알리기보다는 상영하려는 영화에 가장 적합한 대상 관객들을 설정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홍보하는 그런 방법 말이다. 과연 지금 시장에서 이런 방식이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성공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영화에 따라서 많은 언론들이 영화를 지지해 줄 수도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작품을 홍보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영화에게 이런 혜택이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방식이 쉽지 않은 보다 큰 이유는 우리나라의 상영 시장에서 홍보/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점이다. 영화 산업에서 홍보/마케팅의 강화를 통한 판매촉진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다. 더 많은 입장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객이 필요하고 더 많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이고 거대한 마케팅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케팅이 경쟁하면서 2005년 우리나라 영화의 홍보마케팅 비용은 평균 30억 2천만원인 순제작비의 절반이 넘는 평균 15억 7천만원이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총제작비 45억 9천만원 중 1/3이 홍보/마케팅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잉 홍보/마케팅의 상황 속에서 작고 효율적인 홍보/마케팅이나 입소문에 의한 홍보/마케팅의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아무리 열심히 홍보해도 상영하는 영화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편독립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험이 되더라도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홍보/마케팅을 하거나, 아니면 극장 상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상영의 기회를 만들어내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상영을 깨끗하게 포기하거는 것이다.

    비극장 상영, 장편독립영화의 다른 상영 방식

    비용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하며 모험을 하지 않고도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바로 비극장(Non-Theatrical) 상영 방식인데, 상업적인 영화관이 아닌 비상업적인 공간들, 예를 들어 박물관, 도서관, 대학 등 교육기관, 아트센터, 지역 공동체, 공공기관 등에서 상영하는 것이다. 이 비극장 상영을 단순히 극장이 아닌 곳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이와 달리 극장 상영과 다른 의미를 가진 상영 방식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극장 상영이 구민회관에서 이미 개봉한 영화를 재상영하는 것이나 이런 유사한 형태의 상영 외에는 적극적으로 시도되지 않았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비극장 상영이 영화의 상영/배급을 위한 주요한 방식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200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송환>의 경우 비극장 상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극장에서의 관객인 2만5천여명에 육박하는 2만여명의 관객을 비극장 상영 방식으로 모아내었다. 이 사례는 상업적 상영 시장을 통하지 않고도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되었으며, 2005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 역시 극장 개봉 이후 비극장 상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1만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물론 모든 장편독립영화에게 비극장 상영 방식이 적절한 상영방식이 될 수는 없다. <송환>의 경우 독립영화계의 대표적 감독인 김동원 감독의 작품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개봉 당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의 영화가 전체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 많은 언론들의 지원을 받았기에 영화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던 요인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례가 완전히 예외적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작품에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는 적절한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의미 있는 실험

    모두 16명의 독립영화감독과 미디어활동가가 함께 만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제작에서부터 어떻게 관객들을 만나갈 것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밑그림 속에 진행된 기획이였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 대한 독립영화인들의 발언이 필요하다는 한 독립영화 감독(<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프로듀서인 이마리오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기획의 목표는 당연히 영화가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제작 완료 시점에 맞춰 작품을 소개하는 예고편을 온라인에 띄우면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전국적인 순회 상영을 제안하고 비극장 상영을 진행했다. 5월 15일경부터 시작된 전국 집중 순회 상영은 6월 말까지 서울독립영화제 순회 상영을 통한 상영을 포함하여 35여개의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한 달 정도의 기간 내에 35여개 지역의 상영이 진행된 것은 거의 1일 1회 꼴로 상영이 진행된 것인데,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가 이렇게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제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배급과 상영에 대한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세 가지의 상영 원칙과 두 가지의 상영지원 원칙, 그리고 한 가지의 상영회 기획 제안을 정리하여 상영을 원하는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상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상영 형태 및 상영 지원 내용, 그리고 상영회 기획 제안 내용

    ● <상영형태>는 동시다발적인 지역순회 상영회입니다.
    ● <서울 상영회>(5월 15일, 8시, 미디액트)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대해 가는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 <작품의 상영료>는 지역의 여건과 현실에 맞게 자율적으로 지역에서 결정합니다. 상영료는 대추리 투쟁기금과
    차기 프로젝트의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 <작품상영 포맷>은 지역의 현실에 맞게 지원합니다.
    ● <작품의 포스터>를 지원해드립니다.
    ● 상영회 행사와 연계한 다양한 강연회를 기획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1차로 6월 10일까지 예정된 전국집중순회 상영 이후에는 RTV를 통한 방영과 민중언론 참세상을 통한 온라인 상영을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DVD를 제작하여 배급하는 것이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이후 배급 계획이었다. RTV 방영은 5월 30일, 6월 2일, 6월 3일까지 3회 방영되었고, 온라인 상영은 5월 19일 온라인 상영을 함께 하기로 한 민중언론 참세상에서 상영을 진행하기 위한 별도의 홈페이지를 제작하기로 결정한 후 홈페이지 제작과 함께 준비되었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상영보다 더욱 적극적인 방식으로 영화 다운로드 배급이 제안되었다. 110분에 달하는 영화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상영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다운로드 배급이 제안된 것이다. 다운로드 배급은 웹이 다양한 정보가 소통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기에 이 공간을 단순히 무료 상영의 방식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배급을 하는 미디어로 활용할 필요가 있고, 이런 정보 공유의 방식이야말로 영화가 제안하고 있는 연대 행동을 웹에서 가장 잘 구현하는 배급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게 하는 동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다운로드 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진 않았다. 다운로드 배급은 전국 집중 순회 상영 이후 보다 자율적이고 다양한 방식의 상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제안되었고, 다운로드를 받는 사람들은 혼자만 볼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소규모 상영회를 꾸려 함께 영화를 볼 것을 전제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온라인 상영과 함께 진행되었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다운로드 원칙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참여 제작자들은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민중언론 참세상을 통해 영화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제작의도를 더욱 살리기 위해 결정한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디고 가고 있는지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공유와 활용을 부탁드리며 아울러 아래의 원칙을 지켜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1)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다운로드해서 활용하고자 하는 분들은 개인적인 파일로만 보관하지 마시고 작은 상영회라도 조직해서 함께 관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학교 선생님, 노조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미디어운동 활동가, 독립영화 상영추진 단위 활동가들에게 강추합니다!)
    2) 다운로드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누가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활용하고자 하는지 게시판에 올려주십시오.
    3) 다운로드를 통해 상영회를 추진한 사람들은 그 결과를 게시판에 공유해주십시오.
    4) 사적인 영리를 위한 상영이나 재가공 되어서는 안 되며, 공공적인 이용으로만 상영되어야 합니다.
    5) 작은 상영회라도 작품의 취지나 의도를 제대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6월 11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상영과 다운로드가 시작되었으며, 각종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온라인 상영 소식과 다운로드 서비스 소식이 전해지면서 7월 초까지 900여회나 다운로드 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현재 진행 중인 DVD 제작이 완료되고 DVD 배급 원칙이 확정되고 배급되면 일단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배급 실험은 일단락될 예정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배급 실험의 의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배급은 비극장 상영을 극장 상영에 부가되는 배급 형태가 아니라 배급의 주된 상영 방식으로 인식하고 전국적으로 진행한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적극적으로 상영회 진행을 유도하는 상영 원칙은 입소문을 통한 다발적 상영을 가능하게 했고, 많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독립영화 상영회를 꾸려내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행위가 ‘주어진 극장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된 상황 내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 행위’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영화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상영 기회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행위’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화 관람을 단순한 소비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적 경험으로 전화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적극적 다운로드 배급의 채택을 통해 공유와 공개라는 웹의 기본적 철학을 제대로 반영해 내었고, 기존의 영화 배급이 강요하는 저작권 강화 시도에 최소한의 균열을 내었다는 점 역시 의미있는 성과이다.

    이와 함께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는 많은 과제도 함께 주고 있다. 전국 집중 상영을 통해 새롭게 얻어진 성과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네트워킹 해 낼 것인지와, 웹을 통한 배급의 가능성을 어떻게 확대하고 안정적으로 구현해 낼 것인지는 지속적 토론을 통해 정리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제작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장편독립영화에게 비극장 상영과 웹 배급이 어떻게 의미 있는 배급 방식이 될 수 있을지 역시 과제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아쉬워하실 필요는 아직 없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의 배급은 극장만이 영화 상영의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의미있게 증명했고, 온라인 상영만이 아닌 웹 배급의 가능성을 강하게 실험해 내었기 때문이다. 극장 상영과 비극장 상영, 그리고 웹을 통한 배급과 DVD를 통한 배급 등 접근해야 하고 접근 가능한 많은 방법들이 있다. 독립영화의 보다 분명한 배급은 이 방법들과 가능성들을 어떻게 묶어내느냐에 따라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온라인 관람과 다운로드를 위한 홈페이지
    http://www.newscham.net/Furnaces/intro.html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