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FTA로 양극화 해소? 웃기는 얘기"
        2006년 07월 14일 05: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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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흔히들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부르는 이 조항을 혹자는 ‘김종인 조항’이라고 부른다.

    헌법 119조 2항은 ‘김종인 조항’

    85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경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종인(현 민주당 의원) 당시 민정당 의원이 이 조항의 제정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조항은 국가의 시장 개입과 공적 기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헌법적 근거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룰의 범위 내에서 시장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김 의원의 경제적 소신은 정경유착의 시기에 그를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로 만들었다.

    5, 6공 시절 여권의 핵심부에 몸 담고 있으면서도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야당보다 더욱 야성을 띠었던 그의 독특한 입지는 정권의 부침과는 관계없이 그의 발언이 묵직한 권위를 갖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는 지난 정부와 현 정부에서 경제수장의 교체가 있을 때마다 단골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김 의원은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의원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한미FTA를 추진한다’는 정부의 주장을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은 "어느 날 갑자기 협상을 하겠다고 한다. 협상 시한까지 미리 정해놨다"며 "이건 잘못됐다"고 졸속 협상을 비판했다.

    경기 침체의 원인은 소득 양극화로 인한 내수 기반 붕괴

       
     ▲ 민주당 김종인 의원 ⓒ뷰스앤뉴스
     

    김 의원은 현 정부의 경기부양론에 대해서도 맹공했다. 김 의원은 "경제문제를 볼 때는 경기 흐름상의 문제인지 구조적인 문제인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하고, "지금 우리 경제는 재정을 투입한다고 잘 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소득 양극화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현 경제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면서,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이미 전례가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구조조정 하겠다고 하다가 효과가 안나니까 9.11 사태를 핑계로 경기부양정책으로 돌아서 버렸다. 건설경기를 활성화 하겠다는 구실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고, 성장율 높이겠다고 카드 발급 남발하다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며 "현 정부가 그 멍에를 지금껏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여당 주류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금 기업 규제 수준은 과거에 비해 훨씬 완화된 것이다. 기업 규제가 심했던 과거에도 돈 벌이만 되면 알아서들 투자 다 했다"며 기업 규제 완화와 기업 투자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기업들 규제 심해도 돈벌이만 되면 알아서 투자 다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기업은 항상 출총제를 폐지하라고 하게 되어 있다"며 "정부가 출총제를 도입했을 때는 목표가 있었을 거다. 지금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보면 폐지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 끌고가는 거다. 왈가왈부 할 게 없다"고 출총제와 기업 투자는 별개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김 의원은 양극화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 "노동유연성도 좋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좋은데 사회적 조화를 파괴하지 않을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사회적 조화가 파괴되면 아무리 임금이 싸도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다. 그런 문제를 제대로 조정하는 게 정부 역할이다"면서 "정부가 제도적으로 비정규직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김 의원은 "세금을 가지고는 일시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인위적인 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정부가 경기부양 한답시고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부동산 투기가 지금처럼 심각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경제 문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

    – 경제문제에 대해 주로 질문을 드리겠다. 이전에도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얘기는 많이들 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제 문제가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 지금까지 경제문제가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된 적은 없었다. 85년 2.12 총선에서 외채망국론이 쟁점으로 떠오른 적은 있지만 역시 중심은 ‘민주화’와 같은 정치 이슈였다.

    그러나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전되고, 민주화의 양대 세력이던 김영삼, 김대중이 순차적으로 집권하면서 ‘민주화’라는 구호는 선거의 쟁점에서 밀려났다. 대신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경제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런 경향이 일부 나타났다. 물론 당시에도 호남과 영남은 지역주의의 영향이 강했고, 충청권도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미끼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 지역의 유권자들이 경제적 이해에 따라 냉정하게 투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중부권은 좀 달랐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이 중부권에서 상대 후보보다 표를 더 얻었던 건 저소득층의 지지 덕분이다. 서민들의 눈에는 노대통령이 새로운 인물처럼 보였고, 또 과거의 행적을 보더라도 자신들의 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노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 집권 후 3년 반이 지나도록 경제사정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양극화가 문제라고 말은 하면서도 대책을 내놓은 게 아무 것도 없다. 서민들이 ‘이 정부도 별 볼일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정책을 누가 최종적으로 판단하나. 유권자다. 역대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서울, 경기지역에서 이렇게 참패한 적이 없다. 경제의 실패를 국민이 확인시켜 준 것이다.

    여당이 경제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 경제문제가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다음 대선에서는 경제 문제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거다.

    "양극화 문제만 지적하고 해답 제시 못해 국민이 더 약오른 거다"
      
    –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면 원인이 뭔가.

    = 경제 정책의 기본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지 못했다. 그저 지난 정부의 정책기조를 이어가는 정도였다. 경제정책이란 건 정책을 다루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과거 경제정책을 주도하던 인물들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상태에서 뭔가 새로운 걸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 일부 논자들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분배에 치우쳤다고 비판한다.

    = 분배는 노사간의 자율에 의해 이뤄지는 거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건 재분배다. 재분배 메커니즘은 뻔하다. 조세와 세출, 사회보장제도 등이다. 현 정부 들어 이런 메커니즘이 새롭게 구성된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재분배에서의 진척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

    – 양극화를 말하는 레토릭은 굉장히 과격하다.

    = 그러니까 더 반감을 사는 거다. 정책이라는 게 현실 문제를 직시했으면 풀어야지, 문제만 지적하고 풀지 않으니까 유권자가 더 약오르는 거 아닌가.

    "소득 양극화 내수침체가 내수용 투자 막아"

    – 여당은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공격적으로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 지금 우리 경제의 문제는 구조적인 문제다. 재정을 투입한다고 잘 될 상황이 아니다. 경제문제를 볼 때는 경기 흐름상의 문제인지 구조적인 문제인지 구분해서 잘 봐야 한다. 현재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율은 대략 5% 수준이다. 5% 수준에서 성장이 이뤄지고 있는 현재는 경기 부양을 말할 때가 아니다.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잠재성장율을 높이려면 신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럼 신규 투자를 어떻게 높일 건가. 여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신규 투자가 왜 이뤄지지 않는지를 봐야 한다. 지금 기업들의 금융 여건은 대단히 좋다. 금리가 지금처럼 낮은 적이 없었다. 통화량도 풍부하다.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도 많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투자를 않고 있다. 왜 그런가.

    국내 시장에서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수출은 정상이다. 수출 경기에 따른 기업 투자는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내수다. 소득 양극화로 내수가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내수용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소득층은 이미 소비를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를 늘리지 않고 있고, 저소득층은 가처분소득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있다. 이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 부양하면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미 전례가 있다. 지난 정부에서 구조조정 하겠다고 하다가 효과 안나니까 9.11 사태를 핑계로 경기부양정책으로 돌아서 버렸다. 건설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실로 부동산 투기를 조장했고, 성장율 높이겠다고 카드 발급 남발하다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다. 어찌보면 현 정부가 그 멍에를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기업 규제 심했던 과거에도 기업들 돈벌이만 되면 투자 다 했다"

    – 최근 여당 사람들은 기업의 투자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지금 기업 규제 수준은 과거에 비해 훨씬 완화된 것이다. 기업 규제 심했던 과거에도 돈 벌이만 될 것 같으면 알아서 투자 다 했다. 지금은 돈을 벌 길이 안보여서 투자를 안 하는 거다. 기업들이 경제상황을 빙자해서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틀을 바꾸려고 하는 건 당연한 거다. 정부가 잘 판단해야 한다.

    –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얘기도 나온다.

    = 내 생각은 그렇다. 기업들은 돈벌이가 될 수 있다고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투자한다. 출총제와 투자 문제는 별개다. 정부가 출총제를 도입했을 때는 목표가 있었을 거다. 지금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보면 폐지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 끌고가는 거다. 왈가왈부 할 게 없다. 기업은 항상 출총제 폐지하라고 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국민경제 전체를 조화롭게 조정하는 입장에서 봐야 한다.

    – 지금 정부 여당에서 나오는 출총제 폐지 주장이 그런 판단을 거친 것이라고 보나.

    = 그게 분명치 않다. 그러니 애매하게 얘기하지 말고, 이거다 저거다, 분명하게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거다. 

    "내수기반 확대는 하루 아침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 내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 내수기반은 하루 아침에 확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내수기반을 확대하려면 국민 개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가계지출 항목에서 교육비 지출 항목이 가장 크다.

    교육비를 줄여야 다른 부문의 소비를 늘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비를 낮추려면 교육 정상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건 단기적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거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스웨덴을 배우자고 했는데, 스웨덴 국민들은 교육비 부담을 전혀 지지 않는다. 세금은 많이 내지만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많다. 그러니까 경제가 파탄나지 않고 경쟁력을 가지고 갈 수 있는 거다.

    이런 것은 일조일석에 구호를 가지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스웨덴은 1930년대부터 시작해서 70여년의 시간을 들여 이런 기반을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산업화 시작한지 이제 50년에 불과하지 않나.

    "현정부 소득 재분배 수단이 없다"

    – 양극화는 분배의 양극화다. 노무현 정부는 분배의 양극화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재분배를 통해 보완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 재분배 메커니즘이 있어야지 않나. 재분배라는 게 세금을 가지고 하는 건데, 근대 조세이론을 보면 세금의 재분배 기능이 별로 없다. 결국 재정지출을 통해 재분배하는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는 재정지출 구조도 경직돼 있다. 피부에 와닿는 복지부 예산, 고작해야 전체 예산의 10%도 안 된다. 그걸 가지고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분배의 악화는 불가피한 흐름인가.

    = 분배는 노사간에 이뤄지는 거다. 노사의 협상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간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지금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분배의 룰이라는 것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숫자가 많은 나라는 별로 없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조정해서 비정규직 숫자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당장 업계에서는 노동유연성 없어져서 국가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우는 소리를 한다.

    – 어떻게 해야 하나.

    = 노동유연성도 좋고 경쟁력 갖추는 것도 좋은데 사회적 조화를 파괴하지 않을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사회적 조화가 파괴되면 아무리 임금이 싸도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다. 그런 문제를 제대로 조정하는 게 정부 역할이지.

    "왜 갑자기 미국하고 FTA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 현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한미FTA를 한다고 했다.

    = 웃기는 얘기다.

    – 한미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우리 경제에서 무역이 GDP의 70~80%를 차지한다. 한미FTA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는 건 잘못된 태도다. 반대로 한미FTA 하지 않으면 난리가 날 것처럼 구는 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다.

    – 추진 절차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 어느날 갑자기 해야되겠다, 시한을 정해놓고 해야되겠다, 이렇게 추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 FTA의 우선 순위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미국이라는 나라가 중국 다음으로 우리와 교역을 많이 하는 나라인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일본하고 FTA 하겠다고 하다가 왜 갑자기 방향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 김의원께서는 지난 87년 헌법 제정 당시 119조 2항("국가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경제 민주화’ 조항)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이 조항은 국가의 시장 개입과 공적 기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헌법적 근거의 역할을 해왔다. 한미FTA와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건 투자자 권익 보호라는 명분으로 헌법 119조 2항의 정신이 무력화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 그렇지 않다. FTA를 해서 시장이 자유로워진다고 하지만, 시장의 자유란 일정한 룰의 범위 내에서의 자유를 의미한다. 축구경기에서 심판이 반칙을 감독하는 것처럼 정부가 룰을 잘 만들고 관리하면 되는 거다.

    – 외국 기업까지를 주요 행위자로 아우르는 새로운 룰을 짜야된다는 게 문제다.

    = 한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한국이 정해놓은 틀 내에서 해야지. FTA한다고 대한민국 법률까지 바꾸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멕시코 등은 미국과의 FTA 협상안에 맞춰 국내법도 바꿨다고 한다.

    = 협약 체결에 앞서 국내 제도적인 문제나, 협약 체결 이후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예측하고 그런 내용을 협약에 반영할 수 있어야지 이런 것 저런 것 모르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저금리 정책 쓰면서 부동산 투기 잡는다고?"

    –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두고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발상’이라고들 한다. 세금으로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있다고 보나.

    = 일시적인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다.

    – 근본적인 해법이 뭔가.

    = 정부가 경기 부양한답시고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지만 않으면 된다. 이런 거다. 지금 시중에 유동자본이 500조원이 풀려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은 수익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다. 현재 금리가 4%대다. 실질금리를 밑도는 수준이다. 은행에서 돈을 빼내 다른 곳에 투자하게 되어 있다.

    금융정책이라는 게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거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소비를 늘리겠다고 카드발급 남발하면서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이나 양산됐다. 금리를 올리면 그 사람들이 더 죽을 것 같고, 그러면 소비가 더 가라앉을 것 같으니까 최저금리를 유지했다.

    지금 우리와 미국의 금리차가 불과 1% 포인트밖에 안 된다. 우리가 미국보다 물가상승률이 더 높은 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이런 정책을 펴면서 부동산 투기를 잡느니 마느니 얘기하는 건 정책 담당자들 스스로 비판해 볼 일이다.

    –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공공부문에서 시행해서 가격 수준이 공개되면 일반 사기업도 그 수준에서 가격 책정을 하지 않겠나(공공부문만 시행하면 된다는 뜻으로 해석됨).

    "공공요금 인상 억제는 공기업 경영 악화 불러올 것"

    –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경제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자유주의가 저투자, 저성장의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벌의 소유권을 보장해주고, 재벌도 사회적 책임투자를 하는 일종의 타협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의 예도 들고, 새로운 케인즈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한다.

    = 그건 정책가가 할 소리가 아니다. 대학교수가 할 소리다. 정책가는 이념의 도그마에 빠지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 케인즈주의, 고전주의 이론이라고 규정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현실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웨덴 모형이건 독일 모형이건 미국 모형이건,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 요즘 여당 사람들은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공공요금 인상은 단기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걸 막기 위해서 하는 건데 장기적으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 어떤 문제인가.

    = 공공요금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공기업들 경영 수지가 악화될 거다.

    "민주노동당, 주요 사안마다 열린우리당에 얹혀가는 것처럼 보인다"

    –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처음 진출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어떻던가.

    = 당의 정체성이 발휘되지 않더라. 숫자가 적어 그렇겠지만 자기 나름의 뚜렷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 정당이라는 게 크건 작건 권력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현실감각을 갖고 자기들 노선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권력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노선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긴가.

    = 이념정당은 큰 당의 논리에 말려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독자적으로 생존해야지 그 정당에 표를 주는 사람들이 계속 남게 된다. 그걸 발판으로 지지자의 숫자를 늘리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 주요 사안마다 열린우리당에 얹혀갔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 바깥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 민주노동당의 경제정책을 평가해 달라.

    = 특별한 경제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 부유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부유세는 낡은 사고방식이다. 부유세 따로 걷을 필요가 뭐 있나. 그냥 고소득자들 세율을 높이면 되는 거지.

    "기업과 국가는 다르다"

    – 김 의원은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현 정권과 삼성과의 유착설이 많이 떠돈다.

    =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니까 정부의 효율은 떨어지고 기업의 효율은 대단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정부가 보기에도 삼성이 잘하는 것 같으니까 ‘삼성의 모형을 따르자’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삼성과 정부가 너무 심하게 유착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인상을 주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어느 정책 담당자가 "우리나라에는 삼정전자같은 금융회사가 왜 없는 거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참 한심하더라. 업종이 다르고 여건이 다른데 어떻게 같을 수 있겠나. 가만 보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뭔가를 제대로 해보려는 기본적인 노력이 부족하다. 남이 좀 잘했다고 하면 그거 베껴서 쉽게 가려고 한다.

    기업 운영의 메커니즘과 국가 운영의 메커니즘은 다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고, 국가는 국민경제 전반의 효율과 안정을 도모하는 곳이다. 같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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