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서 제 이름 좀 지워주세요"
    By tathata
        2006년 07월 14일 05: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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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기자는 KTX승무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 조합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자신은 지난 6월말에 파업을 중단하고 농성대오를 나와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도 마음은 농성장에 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파업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어요. 언니들이나 후배들에게도 미안하고요. 힘들 때 나오면 안 되는데, 제가 나와서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빠지게 할까봐 걱정돼요. 그것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와요. 가정형편만 좋다면 계속 있고 싶지만… ”

    "기사에서 제 이름을 지워주세요"

       
    ▲ 지난 2005년 4월 울산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대서공영에서 발견된 ‘입사관리대상자’라는 제목의 블랙리스트(사진=사회당)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구직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레디앙> 기사 중에 제 이름이 인용된 부분이 있던데, 그것을 지워주시면 좋겠어요.”

    그는 “이력서를 쓸 때에도 KTX 승무 이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기업에서 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채용을 꺼려할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사에서 제 이름을 지운다면 블로그에 퍼간 기사에서도 제 이름이 지워지나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그건 블로그 주인이 기사를 복사해서 퍼간 것이라 그것까지는 수정하기 힘들어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요즘에는 기업들이 면접을 볼 때 이름을 다 검색해 본다고 해요.” 그의 이름은 비교적 흔한 이름이 아니어서 포털에 이름을 입력하면 그가 인터뷰한 매체들의 기사들이 검색된다. 그에게 “블로그 주인에게 ‘쪽지’를 보내 직접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고 통화는 끊어졌다.

    같은 날 저녁. 이와 비슷한 다른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상근자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 역시 기사에 인용된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기사를 보고 신상을 파악하게 되면 곤란해진다”고 말했고, 그의 이름은 이후에 ‘민주노총 00본부 관계자’로 수정됐다.

    여전히 ‘블랙리스트’는 돌려지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기업들의 채용과정에서 노조활동 이력을 검색하여 취업을 제한하거나 경찰 수사 자료에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의 개인정보 유출이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는 현실에서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신상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기사, 블로그, 미니홈피 등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같은 지역과 업종 내에서 노조활동을 한 조합원의 명단을 작성하여 ‘블랙리스트’를 돌리는 일은 여전히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인터넷 공간이 노동자 감시의 또다른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국의선 화학섬유연맹 조직국장은 “아직도 여전히 기업들 사이에는 노조활동 간부들의 명단이 돌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예로 “동양, 쌍용, 라파즈의 시멘트 공장이 세 개밖에 없는 강원도는 노조 활동 이력이 알려지게 되면 해고가 되더라도 다른 공장에 취직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여전히 기업들은 그들만이 ‘통용하고’ 있는 명단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32% ‘1인 미디어’ 채용자료로 활용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KTX승무원은 “기업의 노무관리자인 지인으로부터 채용하기 전에 기업들이 포털이나 블로그, 미니홈피를 검색해 신상을 파악한다고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한 인터넷 취업포탈 사이트가 243개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2%가 블로그, 미니홈피 등 1인 미디어를 채용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지원자의 인성을 파악하고 직무에 대한 관심도를 보기 위해서 1인 미디어를 참고한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면접자의 인성과 적성, 그리고 업무적성도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이 구직자들에게는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으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노조활동을 한 노동자들의 채용을 기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도 동시에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강문대 변호사는 “현행법은 노동조합행위를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며 노조 활동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기업이 (인터넷에서 공유되고 있는) 공개적인 정보를 수집하여 채용의 판단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 삼기 어렵다”며 “인터넷을 통해 노조활동을 검색하는 행위 자체를 알기 어렵고 기업의 인사 재량권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인터넷 공간에서의 기업의 ‘감시활동’을 규제할 법제도의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여져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자들 인터넷을 ‘꺼려하다’

    조합원들 또한 노동조합 사이트에 자신의 이름이 게재되는 것을 매우 꺼려하며, 연행자나 구속자 명단이 사이트에 공개되는 등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터넷에 이름이 유포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 관계자들의 말이다.

    디지털 시대에도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낙후된’ 사회에서는 인터넷 공간에서마저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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