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빙점',
    지구는 부패 중···축적· 과대성장의 위기
    [소설로 읽는 한국사회] 박민규 「카스테라」
        2019년 06월 17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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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더위에 에어컨 가동도 빨라졌다. 작년 여름을 겪은 터라 이젠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할 수 없다. 7월도 아닌데 가파르게 오르는 기온이 심상찮다. ‘폭염이 이어지는 인도 북부 지역 최고 기온은 섭씨 50도’ 기사 하단에 쩍쩍 갈라진 땅 한편에서 마른 우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아이 사진이 있다. 뒷면 광고란에 최신 에어컨 출시를 알리는 사진과 지구를 얼려버리겠다는 홍보 문구가 보인다. 불현듯 타는 갈증에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는 인격(人格)이다.
    나는 인간, 결국엔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17쪽)

    박민규 「카스테라」는 좁은 원룸에서 자취 중인 ‘나’가 구매한 중고 냉장고에 관한 이야기다. 중고 냉장고를 구입한 날 냉장고가 내뿜는 소음에 한잠도 못 이뤄 괴로워하다 코드를 뽑아 버리고 환불에 나선다. 중고 가전상을 찾아갔으나 굳게 닫힌 셔터 위에 <내부 수리 중>이란 글자만 보고 온다. 그 뒤 ‘나’는 어쩌면 이 냉장고가 1985년 5월 리버풀과 유벤투스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담장이 무너져 죽은 서른 아홉 명 중 남자 한 명이 환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쾌할 정도로 외로웠던 ‘나’는 소음에 익숙해지고 때 아닌 냉장의 역사에 대해 공부한다. 냉장고를 알면 알수록 ‘이 냉장고는 강한 발언권’을 지니고 할 말이 있어 다시 태어난 사람, 리버풀과 유벤투수의 결승전에서 받아버려! 라고 외치며 난동을 선동한 인물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냉장의 역사는 부패와의 투쟁이었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음식을 차갑게 보관하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기원전 천년 무렵부터 이미 지하실과 얼음을 이용한 원시적 냉장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인류 최초의 냉장고는 땅속 즉 지구였던 셈이다. (20쪽)

    냉장고와 마음 깊이 교감한 ‘나’는 냉장의 세계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본다. “드넓은 세상에서 우리는 늘 인간만이 살고 있다는 생각 (17쪽)”이 얼마나 오만한지 깨닫는다. 전생에 강한 발언권을 갖고 다시 냉장고로 태어난 이 친구에게 화답하기 위해 고민한다. 중고 냉장고에 맥주캔이나 김치통 우유팩 계란 따위를 보관하기 위해 인류가 벌인 일은 어마어마했다.

    강신주는 자본주의의 폐단이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고 했다. 당장 냉동실과 냉장고를 열기만 하면 정체 모를 음식들이 비닐이나 플라스틱에 쌓여 부패를 유예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의 위기는 ‘축적’의 위기이며 ‘과대성장’의 위기이다. 인류는 단 10만년 만에 생태계에 적응할 틈도 없이 빠르게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라갔다. 1만 년 전 일어난 농업부터 고대 도시, 제국 유럽의 확장, 식민지, 산업 문명을 통해 다양한 종들의 진화론적 시간마저 빼앗고 고갈시켰다.

    냉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패 했는가
    그러니까, 이 세상은 각자가 <냉장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22쪽)

    현재 지구는 부패 중이다. 누적된 온실가스의 양은 산업혁명 이후 성공한 선진국들의 몫이었다. 국제사회의 막강한 경제적 영향력을 지닌 국가들은 10년 넘지 못한 시간 범위 내에서 제도를 운운하고 4~5년 짜리 대의제에 갇혀 동어반복식 대책 없는 대책을 늘어놓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온실가스 배출과 무관한 저지대 국가에게 가해진다. 저지대 나라들은 홍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그럼에도 양적 성장에 종속된 선진국들과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국가들은 탄소배출권이라는 금융상품에 동의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냉장고에 채워질 상품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생산의 무한 반복과 권태 속에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이윤배당은 숲, 대지, 초지, 농토를 소유권에 따라 쪼개며 엔클로저에 버금가는 탈취를 행한다. 시장 질서의 유지를 위해 ‘녹색’ 또한 자본의 포장지를 입고 상품화된다. 노골적 축적과 이윤을 위해 생태 또한 마케팅의 대상이다.

    인류를 위한다면 세상의 해악(害惡)을 가두는 게 우선 아닐까? 이를테면 미국 같은 것 말이지. (24쪽)

    화자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통해 냉장고 사용하는 법을 깨닫는다. 1.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넣는다. 3. 문을 닫는다를 그대로 실행한다. 마치 달에 첫발을 내딛는 암스트롱처럼 첫 수납으로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넣고 빚쟁이 아버지를 넣고 어머니를 넣는데 성공한다. 학교와 동사무소, 신문사, 대기업, 경찰 간부, 벤처기업, 의사, 사채업자, 실직자, 노숙자, 국회의원, 대통령 등 “세상의 해악(害惡)인 것.”을 넣은 뒤 미국과 중국을 넣는다. 뒤죽박죽 그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오늘 밤만은 이 세계의 부패도 잠깐 그 진행을 멈추겠지.”(32쪽)

    냉장고에 미국과 중국을 넣었다는 설정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법처럼 언어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냉장고와 부패는 결국 냉전시대, 신자유주의, 곧 다가올 빙하라는 인류의 종말을 언표화한다. 인간과 자연의 신진대사를 끊어놓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는 인류를 파국의 영도를 넘어 멀고 고통스러운 빙점으로 이끈다.

    이미지 출처=환경운동연합

    「카스테라」의 상상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시시각각 빙하와 만년설이 녹고 열대의 뜨거워진 물이 생태계를 파괴해 기후 예측이 불가능하다. 종종 재난영화가 공포를 조장하지만 현실의 실천이 무산되고, 얄팍한 논쟁만 반복된다.

    인류 절멸의 묵시론적 메시지는 음모론으로 치부되거나 기술 구원설로 대체된다. 근대에 대한 회의는 단기적 방어론으로 무마되고 기후문제를 탈정치화해 체제문제를 과학과 경제학 논리로 환원한다. 기후 문제에 있어 인류는 연대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별 이해당사자들 간의 비용 편익에 기대 불평등 체계를 지탱한다. 거대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다국적 기업, 시장원리가 만들어낸 정치 경제적 현실을 모른척하고 해결책을 찾겠다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처럼 차라리 미국과 중국을 냉장고에 넣는 일이 빠를지도 모른다. 이처럼 「카스테라」가 내파하는 허무한 응시는 파국을 연기하고 회피하려는 인류에게 보내는 서사적 예언이다.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마도 우주로 올라가겠지. 무엇보다 영혼은,
    성층권이라는 이름의 냉장고에서 신선하게 보존되는 것이니까.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거야.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추웠을 테니까,
    많이 추웠을테니까 말이다.(32쪽)

    빛과 어둠의 스펙트럼을 집어삼킨 냉장고는 마지막 밤, 평소보다 더 큰 소음을 내며 한 세기를 정리한다. 세기의 마지막 밤이 지난 아침 냉장고는 고요해졌다. ‘나’는 벌컥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텅 비어 있는 냉장실 정중앙에 놓여있는 것은 한 조각의 카스테라였다.

    마치 하나의 세계를 다루듯
    나는 조심스레 카스테라를 집어 올렸다.
    놀랍게도 따뜻한,
    반듯하고 보드라운 직육면체가
    손과 눈을 통해 거짓 없이 느껴졌다.
    (중략)
    그것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씹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35쪽)

    종말 이후 냉장의 세계에 재탄생한 카스테라는 급기야 ‘나’를 눈물짓게 한다. 그 ‘온기와 맛’은 지금-여기 결여된 그 무엇이다. 작가의 말이다.

    “오븐은 언제나 예열되어 있다. 세계의 재료도 언제나 당신의 주변에 쌓여 있다. 결국 이 많은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과 물질 들을 당신은 어떻게 리믹스할 것인가,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카스테라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반죽하고 상상의 효모로 부풀리는 작가의 언어이자 지구에 처음부터 생성된 물질과 물질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인간이 생존하려면 자연이라는 물질교환을 원활하고도 적절하게 통제해야 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과 자연 사이의 신진대사를 끊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였다. 전 지구적 공공재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분할 점령되며 다른 종의 멸종을 가속화 했고 그러는 동안 지표면 온도는 빠르게 상승했다.

    그럼에도 파국 이후의 남은 것이 하필 온기를 지닌 카스테라 였을까, 지구라는 오븐에 알맞게 데워진 카스테라는 그 부드러움 덕에 날카로운 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눠 먹기 위해 험한 연장도 필요치 않다. 마치 어느 교회 성찬식에서 예수의 몸이라며 나눠 먹었던 그 빵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찢겨져 공유되어야 했던 본디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성경 말씀처럼

    온기 속에 기초한 태초의 물질, 혼자 먹으려고 냉장고에 저장해둬서는 안 되는 호혜의 징표가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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