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와 병아리가 사는 법
    [그림책]「화장실 좀 써도 돼?」(세르지오 루치에르/ 미디어창비)
        2019년 06월 15일 11:0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제가 일하는 곳은 카페와 서점과 출판사가 함께 있는 곳입니다. 저는 지각대장이라 아침마다 조금 늦게 출근합니다. 카페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며 외칩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카페 매니저님이 저보다 훨씬 더 높은 톤으로 맞아줍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왠지 아침에 축복을 받는 느낌이랄까요?

    그 다음엔 출판사 문을 열고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침에 출판사는 바쁘고 조용합니다. 대표님, 에디터님, 마케터님, 디자이너님, 세일즈 매니저님이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인사합니다. 왠지 심심합니다. 이럴 때 제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여러분! 제가 많이 보고 싶으셨죠?”

    고맙게도 다들 피식 웃어주면서도 정적이 감돕니다. 이 분위기를 어쩔 거냐고요? 곧 에디터님이 이렇게 마무리해 줍니다.

    “편집장님, 교정지 나왔습니다.”

    저는 이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사는 친구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구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까?

    여우와 병아리

    병아리가 여우네 집에 찾아옵니다. 병아리는 여우네 집 문을 두드립니다. 여우가 문을 열자 병아리가 말합니다.

    “나야, 병아리!”

    “알아, 병아리야! 바로 내 코앞에 있잖아.”

    “뭐하고 있어?”

    “책 읽고 있어.”

    “지금 나한테 말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동시에 책을 읽어?”

    “그치, 네가 오기 전에 책을 읽고 있었지. 그리고 지금 들어가서 다시 읽을 거야.”

    쾅! 여우는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눈치 채셨나요? 「화장실 좀 써도 돼?」는 병아리와 여우, 두 친구 사이에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유머 그림책입니다. 위에 나온 짧은 대화처럼 병아리와 여우는 제법 웃길 줄 아는 친구들입니다. 그런데 병아리는 오늘 왜 여우네 집에 찾아왔을까요? 설마 제목처럼 진짜 화장실이 급해서 왔을까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얼마 전 카페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그림책 워크숍을 함께 한 젊은 작가님이 갑자기 심정지가 와서 입원 중이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함께 작업한 작가님들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그 작가님이 얼른 의식을 회복하고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일주일 뒤 작가님은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남은 날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백 년의 시간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입니다.

    여우와 병아리가 사는 법

    병아리는 여우네 집에 찾아갑니다. 여우랑 놀기 위해서입니다. 병아리는 여우에게 말장난을 칩니다. 여우를 웃기기 위해서입니다. 여우는 병아리에게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함께 맛있게 먹기 위해서입니다. 병아리와 여우는 날마다 만나서 먹고 놀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병아리와 여우가 행복하게 사는 법입니다.

    병아리와 여우가 사는 모습처럼, 우리는 날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먹고 놀고 일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잊어버리는 순간, 삶은 끔찍한 지옥으로 변하고 맙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비용을 절감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해고하기도 하고, 사람을 해고하기 위해 자동화 시스템을 갖추기도 합니다. 심지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친구를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바로 이 소소한 일상의 가치를 잊어버린 사람들 때문에 지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입니다. 부디 현재를 행복으로 채우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삶은 친구와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했습니까? 누구와 함께 어떤 음식을 먹었습니까? 누구를 찾아가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여러분은 오늘 하루 행복했습니까?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