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굴의 의지로
    약자와 연대하고 싸웠던 뜨거운 양심
    [책소개]『야마센 홀로 지키다』(우지 야마센회. 황자혜(엮은이)/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9년 06월 15일 06: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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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100주년. 일제 시대 조선 독립 운동 대탄압의 구실이 되었던 ‘치안유지법’, 이 법의 개악을 반대했던 유일한 일본 국회의원, ‘야마센’.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 애칭 ‘야마센’, 1889∼1929)는 일본의 생물학자이자 정치인입니다. ‘꽃을 심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어’ 택한 원예 견습, 캐나다에 건너가 접한 민주주의의 숨결, 귀국 후 생물학자로서 교토대학과 도시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여성을 해방을 위한 피임법 계몽 운동을 펼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값싼 노동력과 전쟁에 필요한 병사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에게 ‘낳자, 늘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출산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다자녀, 생활난, 결혼난’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궁핍한 이들을 대변하여 산아제한 운동을 펼쳐 나갑니다. ‘산아제한연구회’를 조직해 입회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상담에 응하고, 성교육과 구체적인 피임 방법,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교육합니다. 정부 시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야마센의 활동은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교토를 중심으로 한 농민 운동을 통해 농민 노동자의 지지에 힘입어 1928년에는 국회의원으로 뽑히기에 이릅니다. 1928년 제국의회에 치안유지법 개정안 상정.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의 원조 격인 치안유지법은 ‘국체(천황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활동을 금지합니다. 일본 국내에서는 반정부, 반천황 운동의 탄압, 식민지 조선에서는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장치였습니다. 개정안은 그 위반자에 대해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대세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갈 무렵에도 야마센만은 홀로 끝까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습니다. “야마센 한 사람만이 고독하게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내 뒤에는 대중의 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1929년 3월 5일, 개정안에 대한 국회 발언을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날 밤 극우 단체가 보낸 자객에게 무참히 살해당합니다.

    우지 야마센회 (宇治 山宣會) (엮은이) : 1983년 야마모토 센지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직. 
    교토 우지에서 추모제, 영화 상영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며 야마센 관련 자료 수집, 보존, 출판 활동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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