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동 수리조선소
노동자에게 보내는 안부
[사진]『잘지내나요』(정남준/빨간집)
    2019년 06월 08일 12: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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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서럽지만은 않은 것은 비록 몸은 만질 수 없지만 사진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고 전화로나마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운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의 첫 마디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엄마, 저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라. 동봉하는 사진 한 장에 가족들은 눈물을 훔칠 것이다. 사진가 정남준이 『잘 지내나요』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도 이런 메시지의 전달이었다. 그가 30년 전 쓰던 카메라를 다시 꺼낸 8년 전부터 놓지 않고 끝까지 잡고 있는 끈이 인간, 특히 작은 이들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소위 ‘현장 사진가’라는 묘한 조어(造語)로 불린 정남준은 2017년 부산을 상징하는 노동 현장을 대평동 선박 수리하는 곳에서 찾았다. 바다가 있고 배가 있는 부산의 이면에는 거친 노동과 그 안에 배인 투박한 싸나이와 아지매의 정(情)이 있다. 나고 듦이 무시로 일어나면서 이리 섞이고 저리 섞이는 곳이 부산이다. 그래서 그 안에는 일본도 있고 전라도도 있고 이젠 스리랑카까지 있다. 인간과 노동 그리고 사회변화를 기록하고자 하는 사진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록 가치가 있는 곳이 이곳 대평동이다. 이 혼종의 노동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가 정남준은 2년 넘게 주말 새벽이면 이곳을 찾았다.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었더라도 그것을 핑계로 촬영을 빼먹는 일은 없었다.

사진집 『잘 지내나요』는 노동에 대한 기록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노동 안에 깃든 인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노동 현장은 주로 먼 풍경으로 두고 인물을 중심으로 잡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학적 기록에서 벗어나 감성을 얹는 문학으로서의 기록으로 색깔이 바뀌어 감을 읽을 수 있다. 사진으로 쓰는 르포 문학이라고나 할까?

사진에 얹은 인물은 스리랑카 노동자와 한국인 노동자로 함께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주로 포트레이트(Portrait, 초상화) 방식을 취함으로써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자신의 늠름하고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양새다. 뒤에 이어지는 깡깡이 아지매들을 비롯, 한국인 노동자의 모습이 하나같이 정겨운 것은 사진가의 렌즈가 ‘안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사이 등장하는 작업장 풍경은 웅장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자본에 착취당하는 노동이 아니고, 생산 주체로서의 노동을 보여준다.

사진가는 보고 싶은 것을 볼 뿐, 사진가가 본 것이 모든 것은 아니라는 말은 이 대목에서도 유효하다. 그리고 사진을 보는 사람 또한 이미지에 드러난 것만 볼 뿐, 은닉되거나 배제되어 버린 존재들까지 읽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똑같이 유효하다. ‘안부’의 메시지를 사진으로 전하는 힘은 바로 사진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성격에 있다.

사진이란 결국은 말하기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그 무엇은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도 있고, 전혀 드러나지 않은 것도 있다. 사진가가 일부러 감추어 보이지 않으려는 장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진가가 드러내지 않고자 할 뿐이다.

그렇지만 예리한 눈을 가진, 아니 자식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눈은 은닉된, 그래서 보이지 않는 그 장면을 달리 읽어낼 것이다. 저렇게 엄청나게 큰 배에 한 줄기 로프에 매달려 저 녹을 다 떼 내는 일이 얼마나 고달플꼬? 정남준은 노동 안에 배어 있는 ‘인간’을 말하고자 하지만, 그 어머니는 그 ‘인간’ 뒤에 도사린 ‘자본’을 읽을 것이다. 자본이 꺾으려는 인간, 그러나 자본에 꺾이지 않는 인간. 사진가 정남준은 거기까지 봤다. 인간을 중시하는 현장 사진가 정남준의 힘이다.

(발문 : 이광수 / 부산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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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 작가노트

봄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춥고 텁텁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만신창이가 된 채 돌아온 철갑선 한 척, 그 배를 씻고 달래어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면 발밑에는 수북하게 쌓인 쇳가루와 바닷물에 밀려온 뼈가 훤히 드러난 생선 대가리들뿐이었다. 이렇듯 봄은 작업화 아래 숨어서 간신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 수리조선소에서 돈내기 노동으로 평균 8만 원의 일당을 받는 하청 일용직 노동자들. 퉁퉁 부은 몸에 붙이는 파스 8장 값이면 또 어떠하겠는가.

부산 영도구 대평동 수리조선소 노동자들에게 안부를 묻는다면 장문의 상서보다 길고, 밤새워 마신 술상보다 더 많은 사연이 오갈 것이다. 조선소 쇳가루도 깨어나는 새벽녘, 그들은 그저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으로 밤새 안부를 말할 뿐이다.

이곳 대평동은 십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00여 개에 달하는 선박 관련 공업사와 선박 부품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어로활동의 근거지로 계획되어 국내 조선업의 발상지로도 불렸다. 남항동, 대평동, 봉래동, 청학동 등 해안선을 따라 신조와 수리조선소 부지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리조선소가 밀집한 곳이 대평동이다.

수리조선소에서 하는 작업은 상가, 고압 왁싱, 깡깡이 작업, 부품 정비, 도색, 하가 순으로 마무리된다. 그중 아직도 육체노동의 진가가 발휘되는 과정이 바로 깡깡이 작업이다. 깡깡이 작업은 왁싱 작업에도 선박 외판에서 떨어지지 않은 갑각류나 녹슨 철판을 망치나 그라인더로 긁어내어 도장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노동이다. 대부분 여성 고령 노동자들이고, 저임금 중노동 작업이란 점과 물량 부족 등으로 자국 노동자를 찾기 힘들어 점점 이주노동자들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봄 나는 부산을 상징하는 노동이 뭘까, 그중에서도 고된 노동이 뭘까 생각하면서 이곳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자잘한 안부를 묻고 싶었다. 큰 철갑선 외판의 거미줄처럼 얽힌 밧줄에 몸을 맡긴 채 간당간당한 모습을 담은 故 최민식 사진가의 깡깡이 노동 사진 한 장은 지금 현실과도 동떨어질 수 없는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파르르 떨리듯 들리는 노동자들의 망치 소리, 그것은 가슴 속 묻어둔 떨리는 목소리였고, 환한 희망을 노래하는 소리로 들렸다. 언젠가 그 망치 소리가 새벽 술상에 놓이는 아픈 사연을 넘어서 신나는 북소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걷고 싶은 사진의 숙명은 그들이 그곳에서 환한 웃음으로 남항 바다를 맞이할 때까지 쉬지 않고 안부를 묻는 일이다. (정남준)

정남준 (다큐멘터리 사진가)

– 사회다큐사진집단 <비주류사진관> 상임대표(2014~현)

– 사진전

2018 기획 초대전<부산사견록>(서울)
2014 ~ 2018 현장그룹사진전 19회(전국 8개 도시의 투쟁 현장)
2014 개인전 <남문구는 그리움이다>(. 부산)

– 공동저서

2017 <이송도마을에서 흰여울마을로> (빨간집)
2016 <므시 그리 중요하노?>(굿플러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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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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