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파 폭우에 패하다, '을씨년스런' FTA 지지 집회
        2006년 07월 12일 07: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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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갈까 싶었다. “모이자! 한미 FTA 추진 지지 국민대회로!”라는 큼지막한 일간지 광고를 보고 찾아간 집회장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노인네들 뿐이었다. 비가 와서 집회가 될지 모르겠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있자니 괜스레 심란해진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제 목소리는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비 온다고 데모 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지!

       
      ▲ 서경석 목사

    역시 왕년의 운동권 서경석 목사의 힘찬 목소리가 좌중을 모은다. “좌파들은 10만 명이 모였답니다. 저희는 비록 1천 명 뿐이지만, 끝까지 투쟁합시다!” 운동권을 떠났으되, 운동권식 과장법은 여전하다. 종로 5가 좁은 인도에 우산 하나씩 받쳐 들고 모인 사람들을 아무리 세어 봐도 1천 명은커녕 그 절반도 안 돼 보인다.

    참가자 평균 연령이 FTA 반대 집회보다 두 세 배쯤은 되겠으니, 대강 그 정도로 계산해주자. 환갑 정도는 애 취급받을 집회장 분위기를 보고 있자니, 역시 FTA보다는 노인복지 문제가 더 절박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또 다른 연사가 외친다. “김정일이 반대하기 때문에 저는 찬성합니다.” 김정일이 반대한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지만, 이거 해도 해도 너무 치졸한 거 아닌가. 어느새 우리 나라 우익이 이처럼 퇴락했던가? 박세일 교수(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 등이 공동상임위원장으로 있는 ‘선진화국민회의’에서 뿌린 유인물에는 “우리의 자동차 휴대폰 반도체 선박 섬유 완구 가죽제품 등이 미국 시장에서 세금 없이 팔리게 되어 한국 제품들이 미국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라는 나름의 경제적 논리가 적혀 있었지만, 정작 집회장에서는 “한미 FTA는 제2의 한미동맹”, “사이비 좌파, 한미 FTA 정치적 이용 규탄한다” 같은 정치성 구호만이 난무한다.

       
     

    30분 만에 허겁지겁 집회를 마치고, 미국 대표단이 묵고 있는 신라호텔을 향해 행진을 시작할 즈음 연단에 섰던 사람들 사이에 고성이 오간다. “쓸 데 없는 소리 하고 있어. 그딴 소릴 하면 어떡해!” 뭔가 안 맞는 게 있는 모양인데, ‘대한민국 국민, 서울시민’ 앞에서 안쓰럽기 그지 없다.

    사무실로 돌아 오는 길, 종로 청계천 을지로 명동 서울역에는 “한미 FTA 반대. 위 집회로 인하여 교통을 통제합니다”라는 경찰 안내판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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