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대북선제 공격론 말로 한 '선전포고'
        2006년 07월 12일 0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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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로 촉발된 동북아 위기가 일본 정부의 대북 선제공격론 이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일본이 군사대국화 의도를 노골화하는 가운데 북한 미사일 실험 발사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로 급부상하면서 ‘북한-미국’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기존의 대립선이 ‘북한-미국’, ‘북한-일본’, ‘한국-일본’ 등으로 중층적으로 형성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노회찬, "대북 선제공격론은 말로 한 선전포고"

    일본 정부의 대북 선제공격론은 단순한 엄포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잇단 강경 발언을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른 제스처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군사대국화의 흐름 속에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일본 해상 자위대 이지스함 ‘기리시마’에 깃발 흔드는 지지자들 (AP=연합뉴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을 ‘말로 한 선전포고’로 규정했다. 노 의원은 일본의 잇단 강경 발언이 내부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은 국내용일 뿐만 아니라 국외용이기도 하다"면서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를 계기로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도 "일본의 선제공격론은 영토문제,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 일련의 군국주의 흐름과 같은 맥락에 있다"면서 "일본 정부가 북 미사일 문제를 이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택상 진보정치연구소 상임 연구위원도 "대북 선제공격론은 군사대국화와 보통국가화의 흐름 속에서 봐야 한다"며 "심각하고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강경 대응은 일단 적절

    일본의 대북 선제공격론이 나온 이후 우리 정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강도높게 반응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저녁 당청 긴급 회동에서 "일본의 태도는 독도의 교과서 등재, 신사참배, 해저지명 등재 문제에서 드러나듯 동북아 평화에 심상치 않은 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 뒤 "물러설래야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의 이 같은 대응에 대해서는 일단 적절했다는 평가가 많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난 94년, 98년, 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폭론이 제기될 때마다 한국 정부는 일관되게 반대 메시지를 던졌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했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반도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의 선제공격론에 대해 정부가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적절하고 필요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백학순 실장도 "대북 선제공격론은 일본이 한반도 주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기 필요에 따라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라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은 적절했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현재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제적 흐름을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견제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택상 상임연구위원은 우리 정부의 강경한 입장 천명이 북한, 일본, 미국 각각을 겨냥한 메시지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현재 장관급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대일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이 공동의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 제재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도 이 같은 의도의 일환으로 읽힌다고 했다.

    일본 군사대국화 막으려면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막아야

    물론 이번과 같은 일회성 고강도 처방만으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일본 군사대국화의 전제가 되고 있는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을 문제삼지 않고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 핵심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MD 체제의 구축이다.

    노회찬 의원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MD 체제 등과 같은 흐름에 있다. 미국의 용인과 후원 하에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우리정부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MD체제 등을 문제삼지 않으면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자체가 일본 재무장의 전제"라고 지적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이렇게 진전된 데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한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비판했다. 노 의원은 "군사대국화를 문제삼으려면 미군의 재배치 등을 전반적으로 문제삼아야 하고, 그래야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할 수 있다"며 "한국정부가 일회적으로 대응하고 말 사안이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또 "독도 문제, 교과서 문제, 신사참배, 군사대국화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큰 틀의 프로그램"이라며 "개별 사안에 대해 강경 대응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택상 상임연구위원도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동북아 질서의 재편을 의미한다"면서 "이를 따르면서 일본을 견제하겠다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이해관계를 공유하면서도 표피적인 대립만을 일삼던 박통, 전통 때의 한일관계로 돌아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부 6자 회담 적극적 역할하려면 남북 대화 채널 확보해야 

    일본 변수의 등장이 장차 6자 회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백학순 실장은 "핵과 미사일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며 "일본이 6자 회담의 핵심 당사국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 실장은 "북핵과 미사일 문제 모두 북미 양자 대화를 통해 풀 수밖에 없고, 미국도 이를 알고 있다"며 "’악의 축’과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이유 때문에 대화를 꺼리고 있는데, 대선을 앞두고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정택상 상임연구위원은 "북미 사이에 일본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생긴 셈"이라며, 특히 "한-일 관계의 부상은 북한의 미사일 문제를 푸는 데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어느 경우건 우리 정부가 6자 회담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려면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은 공통적으로 나온다.

    백학순 실장은 "6자회담에서의 영향력은 북한과의 채널이 있느냐에 달렸다. 중국의 역할이 큰 이유도 이 때문이다"면서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려면 북한과의 채널을 확보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고 주장했다. 정택상 상임연구위원도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남북간 핫라인 등 서로의 입장을 수시로 교환할 수 있는 안정적 대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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