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과연 재개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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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12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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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표소 마다 한 장씩만 잘못 개표해도 당선자가 뒤바뀐다.’ 농담 같이 들리지만 멕시코의 대선 결과를 생각해보면 사정은 사뭇 달라진다. 7월2일 개최된 멕시코 대선의 투표소는 전국적으로 13만788개에 이르렀는데 1위와 2위 후보의 표차는 24만3천934표(0.58%)에 불과했다. 각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한 장씩만 잘못 개표했어도 승자가 뒤바뀌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무효표만 재검표해도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이 말은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7월5, 6일 선관위 공식 집계 결과 무효표 수는 90만4천604표에 이르고 전체 투표의 2.16%에 해당한다. 무효표 수가 승패를 가른 표차의 약 4배에 달한다. 그래서 선관위의 최종 집계가 확인됐을 때부터 좌파진영에서는 줄기차게 “무효표를 재검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런 의문들은 멕시코가 그간 선거부정으로 악명이 높았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뉴욕타임즈>가 “멕시코가 선거 부정에 관한 한 세계적인 리더였다”고 환기시켰듯 지난 1988년의 대선에선 가짜 투표소에서 개표가 이뤄지는 등 기상천외한 선거부정이 자행됐다. 이같은 오명을 벗어 던지기 위해 1990년대 중반에 연방선거심판소가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과연 재개표가 이뤄질 수 있을까? 지금 멕시코 시민들은 연방선거심판소를 구성하는 7명의 판사를 주시하고 있다.

       
    ▲ 지난 8일 열린 재개표 요구 집회 연단. "한표 한표 투표소마다"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박정훈)
     

    멕시코 선거법에 따르면 선관위의 공식발표 이후 나흘 이내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후보는 연방선거심판소에 증거서류를 제출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면 연방선거심판소는 8월31일까지 관련 서류를 검토한 뒤에 판결을 내린다.

    이때 투표함이 훼손되었거나 개표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증거가 확인되면 재개표를 명령할 수 있다. 또한 선거법 전문가들은 선거과정에 군이 개입하거나 공공자금이 특정 후보를 지원하는 데 유용되는 등 심각한 사유가 있을 때는 전체 선거의 무효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선거결과에 대한 불복소송이 기각될 경우 연방선거심판소는 당선자를 최종 확정하고 9월6일에 공식 발표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법적 절차를 밟은 공식적인 대통령 당선자가 탄생하게 된다.

    연방선거심판소 소속 한 판사는 일간 <라 호르나다>와의 인터뷰에서 “선거는 거부될 수도 있고 무효가 될 수 있다”면서 그것을 심판하는 것도, 당선자를 공식적으로 확정하는 것도 연방선거심판소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정선거로 인해 투표가 무효 처리된 판례가 있다며 예를 들기도 했다.

    실제 2000년 멕시코 동남부의 따바스꼬 주에서 열린 주지사 선거는 주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 불법선거자금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선거부정사례가 입증되어 연방선거심판소가 재개표 명령을 내렸다. 같은 해 열린 대선에서는 선거구 두 곳의 개표결과에 대한 불복 소송이 제기됐고 개표 결과가 무효처리 된 적도 있다.

    그러나 연방선거심판소가 재개표 결정을 내릴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선거법 전문가 로렌소 꼬르도바는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선거심판소는 (재개표나 무효 결정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왔다”고 지적하면서 “2000년의 따바스꼬 선거는 아주 극단적인 경우로 매우 혼탁한 선거였다”고 덧붙였다.

       
    ▲ 선거운동 기간 국민행동당의 깔데론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그동안 멕시코 좌파진영이 선거 전체를 무효화하겠다고 발언한 적은 없다. 멕시코 시티 시장 당선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를 비롯해 여러 좌파 인사들은 선거무효보다는 재개표에 무게를 두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또한 지난 7월8일 멕시코 시티 대광장에 모인 수십만 명의 시민들도 “투표소 마다 한 표 한 표” 재개표하라고 외쳤을 뿐 선거무효를 주장하진 않았다.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 온 유럽연합 선거감시단도 이번 “멕시코 대선에서 부정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에 따라 이뤄지는 일(재개표)이라면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재개표에 가장 반대하는 이는 물론 승자인 국민행동당의 펠리뻬 깔데론 후보이다. 추첨으로 선발된 지역주민들이 직접 개표에 참가했고 이 과정을 각 당의 참관인이 지켜보았다면서 “개표는 이미 끝났다”고 주장해왔다. 10일 오브라도르 진영에서 선거 부정의 사례를 제출한 다음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깔데론 후보는 “선거는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지 시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하면서 “연방선거심판소가 진실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오브라도르 후보 진영에서는 국민행동당 당원이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집어 넣은 장면을 공개하고 “배부른 투표함”(실제로는 투표하지 않은 가짜 투표용지들을 투표함에 채워 넣는 것으로 멕시코 선거에 흔히 알려진 부정수법)이라 주장하면서 이같은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브라도르 후보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비교하거나 오브라도르 후보를 “멕시코에 아주 위험한 존재”라고 묘사한 국민행동당의 텔레비전 정치광고를 중단하도록 명령하지 않았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한 선거관리에도 의문을 표했다.

    이제 공은 연방선거심판소로 넘어갔다. 선거민주주의의 정착을 목표로 탄생한 이 기관이 과연 승자와 패자를 공히 납득시킬 수 있는 결정을 내릴 것인가? 그 결정에 앞으로 6년간 멕시코 사회의 통합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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