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가슴은
푸르른 오월을 노래한다
[한시산책] 광주의 오월 생각하며
    2019년 05월 31일 0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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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로는 사랑이었다
내가 노래와 평화에
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
사람들이 세월에 머리를 적시는 거리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처음으로 알아낸 거리
금남로는 연초록 강 언덕이었다
달맞이꽃을 흔들며 나는 물새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입술이 젖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발바닥에 흙이 묻어 있었다
금남로의 사람들은 모두 보리피리를 불고 있었다

– 김준태 「금남로 사랑」 中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합니다. 오월이 되면 진달래 벚꽃 살구꽃과 같은 이른 봄꽃은 지고 아카시와 장미 등 늦은 봄꽃이 피어납니다. 초록 잎새들은 이른 봄꽃이 필 때 함께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늦은 봄꽃이 필 때쯤이면 온 산은 신록으로 가득 찹니다. 오월은 밝고 빠르고 명랑한 계절입니다. 생동하는 싱그러움이 어린이와 닮아서일까요. 어린이의 날 또한 오월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대사의 오월은 무겁기만 합니다. 군사 쿠데타 세력은 광주 5.18항쟁을 총칼과 군홧발 아래 잔혹하게 짓밟았습니다. 분노와 연민과 죄책감으로 달궈진 젊은이들의 항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전두환 군사 폭압정권 속에서도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고, 실제로 무수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마침내 전 국민의 호응 속에 6.27 개헌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해 오월이 지난 지 벌써 39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오월의 진상은커녕 발포명령을 한 자가 누군지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월을 핏빛으로 물들인 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찔레꽃 – 오월이면 망월동 구묘역 가는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찔레꽃이 먼저 생각납니다.

저는 한편으로 오월의 정신이 무엇이었나 근본적으로 자문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잔혹한 폭압에 대한 저항. 그것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봉기와 죽음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보다 근본적인 ‘사랑’, ‘노래와 평화가 깃든 봄날의 언덕’, 그 속에서 함께 어울리는 ‘대동세상’ 그리고 그런 세상 속의 참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열망이 아니었을까요. 고립된 도시에서도 밥이 모자라지 않았고, 피가 모자라지도 않았습니다. 모두 입술이 젖고, 함께 발바닥에 흙을 묻히고, 같은 곡조로 보리피리를 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참모습이었습니다. ‘대동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쿠데타 세력은 그런 세상을 여지없이 짓밟아오고 있었습니다.

자각한 ‘사람’들의 분노. 그것이 광주의 오월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고 죽음을 불사하게 만들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러한 결론을 내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봅니다. 오월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벌하고, 저항한 모든 이들을 기념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에선 오월의 아름다움을 복원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프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계절을 아름답게 노래한 한시(漢詩)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初夏(초하, 초여름)

– 郭預(곽예)

붉은꽃 진 가지마다 초록이 가득하고
손가락만큼 자란 매실 느낌 새로워라
긴긴 낮을 보내기엔 낮잠이 제격인데
노란 꾀꼬리 쉼없이 나를 불러내누나

千枝紅卷綠初均(천지홍권녹초균)
試指靑梅感物新(시지청매감물신)
困睡只應消晝永(곤수지응소주영)
不堪黃鳥喚人頻(불감황조환인빈)

오늘 소개할 시(詩)는 고려 때 선비 郭預(곽예) 「초하(初夏)」입니다. 꽃이 지고, 신록이 짙어지고, 매실이 여물고, 꾀꼬리가 노래하는 아마도 단오 무렵에 지은 시가 아닌가 합니다. 실제로 옛 사람들은 단오(端午)를 여름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단오는 음력으로 5월 5일이니 양력으로 하면 5월 말 또는 6월 초입니다. 이 시절은 저처럼 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환호작약했던 온갖 꽃들이 지고 난 뒤라 허전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대신에 온 숲이 초록으로 덮이고 밤꽃이 마구마구 피어나고, 매실은 통통하게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숲 초입에 둥지를 트는 계절의 진객 노오란 꾀꼬리가 쉴 새 없이 노래를 하며 날아다니는 계절입니다.

노랑꽃창포 – 단오에는 여인들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곽예(郭預, 1232년(고종 19) – 1286년(충렬왕 12))는 고려 무신정권 말에서 원나라 간섭기 초기에 활동한 학자 출신 관료입니다. 곽예는 학문도 뛰어났지만 시(詩)와 문장(文章)에도 특출 나고 글씨도 잘 썼다고 합니다. 1382년(충렬왕 8)에는 과거시험을 관장하는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습니다. 지공거는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맡는 것으로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시험관인 지공거와 과거 합격자는 ‘좌주-문생’ 관계를 맺어 스승과 제자 관계를 평생 유지했다고 합니다. 지공거를 중심으로 학맥이 형성되기도 하고, 정치적 집단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오월을 노래한 한시 하나를 더 볼까요.

豊樂亭游春(풍락정유춘) (其一) 풍락정 봄놀이 1

– 歐陽修(구양수)

녹음 우거지니 산새들 즐거이 울고
맑은 바람 일렁이니 꽃잎 날리누나
새는 노래하고 꽃은 춤추고 태수는 취하고
내일 술 깰 즈음엔 봄 이미 갔겠지

綠樹交加山鳥啼(녹수교가산조제)
晴風蕩漾落花飛(청풍탕양낙화비)
鳥歌花舞太守醉(조가화무태수취)
明日酒醒春已歸(명일주성춘이귀)

구양수(歐陽, 1007년 ~ 1072년)는 당송8대가의 한 사람으로 북송(北宋) 시대의 학자이며 관료이고 대문장가입니다. 이 시는 그가 정치적으로 탄핵을 받아 지방관인 저주 지사로 좌천 되었을 때 지은 것입니다. 이때 그는 스스로 호를 취옹(醉翁)이라 지었습니다. 그도 취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뭔가가 있었을까요? 아니면 이미 무엇인가에 흠뻑 취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을까요?

해당화 – 바닷가 척박한 땅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해당화. 아픈 오월이지만 계절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책무는 여전히 우리 몫입니다

1980년 5월 26일 저녁 계엄군의 진입이 임박하자 전남도청에 있던 시민군 지도부는 ‘나이 어린 학생과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 우리의 진실을 알려달라’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날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한 여대생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부끄러워 부끄러워 태양을 바로 볼 수 없다. 죄스러워 죄스러워 고개를 쳐들고 다닐 수 없다. 차라리 돌아앉지 않은 강산이 눈물겹다.”

눈물겨운 것이 어찌 이것뿐이겠습니까. 그러나 눈물의 근원은, 눈물이 향하는 곳은 오월의 푸르른 하늘과 벌판이 아닐까요. 아픔을 넘어서 오월을 온전히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지요. 모두가 향유하는 아름다운 오월을 꿈꾸면서 오월하면 떠오르는 「어린이날 노래」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치려고 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 윤석중 「어린이날 노래」 1절

필자소개
최경순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과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에서 일했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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