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를 거부한
어린 학생들의 신앙심
[그림 한국교회]경기 파주 대원교회
    2019년 05월 28일 09:3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얼마 전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에 실린 앳된 두 신학생 사진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진압군에 의해 사망한 호남신대 문용동과 한신대 유동운이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5월 16일 예장(통합)사회봉사부 사회문제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포럼 ‘5·18과 한국교회 그리고 신학도들’에서 위원장 임한섭 목사는 “5·18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통렬히 반성하고, 두 신학도의 행적을 통해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보도했습니다.

고 김남주 시인은 “학살의 원흉이 지금 옥좌에 앉아 있다.”고 절규했는데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공권력의 총칼에 의해 목숨을 잃은 지 40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학살책임자 등 전모가 드러나지 않고, 최근 광주항쟁을 폄하하는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당사자와 목격자들이 박정희 독재권력에 의해 조작되어 신성화된 국가주의의 은밀한 지배논리에 사로잡혀 침묵하는 까닭에, 학살의 진상을 밝히기가 힘든 것입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에서 펴낸 <개념과 소통> 20호(2017년)에서 강정인 교수(서강대)는 “박정희 시대의 국가주의”에서 박정희의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와 강고하게 결합된 국가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유신헌법 제정을 통해 그가 영도자의 지위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제도화되었다고 분석합니다. 거기에 국가 주도적 경제발전을 꾀하는 경제적 국가주의, 반공과 국가안보를 이용하고 자주국방을 강조한 대외적 국가주의를 결합시킴으로, 박정희는 전방위적으로 국가주의를 이용하여 시민사회의 순응성을 확보하며 권력을 공고했다고 주장합니다. 강 교수는 광주항쟁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정권의 출범은 격렬한 민주화투쟁을 촉발시켜 결과적으로 국가주의를 약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각인된 국가주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어 반공적인 민족적 국가주의를 확립하는 시대에 어린 학생들이 이에 맞선 사건이 일어납니다. 1949년 3월, 파주 봉일천초등학교 학생 36명이 태극기에 엎드려 절하는 것을 거부해 퇴학처분을 받습니다. 학생들은 대원교회 주일학교에서 배운 대로 십계명 제2계명(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을 지키려고 한 것입니다. 교회는 감시를 받았고, 최중해 담임목사도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이 사건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자, 부통령 이시형 장로를 주축으로 국무회의를 열어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는 ‘국기에 대한 주목’을 채택하였고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대원교회는 교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십계명 신앙비’를 세웠습니다. 2018년 11월 10일,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가 주관한 경기도 고양·파주지역 기독교유적지 답사 때에 이 신앙비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림=이근복

경기도 파주시 최초의 대원교회는, 1901년 주민 6명이 서울로 오가며 장사하던 중 복음을 접하고 예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04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며 50여명의 신자로 증가하였습니다. 지금도 언더우드가 세운 새문안교회와 서교동교회 등 20여 교회가 형제교회로 교류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원교회를 방문한 날은 하늘과 햇살이 눈부신 늦가을 오후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에 미국 공병대가 건축한 흔적이 남아있는 예배당은 아담하였습니다. 권력이 주도하는 국가주의에 대한 분별력이 약한 오늘의 한국교회는 십계명을 지키느라 퇴학까지 감수했던 초등학생들의 행동하는 신앙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국가주의를 이용한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에 보수교계 지도자들의 권력유착은 심각하였습니다. 1969년 9월 4일 한경직,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목사 등 242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대한기독교연합회”를 조직하고 “3선 개헌 지지와 양심자유선언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 일동”의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하여 “강력한 영도력을 지닌 지도체제를 바란다.’고 천명하였습니다. 민중선교와 민주화운동의 사회선교를 반성경적이고 급진적이라고 성토하며 정교분리를 주장하던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CCC(한국대학생선교회)를 세운 김준곤 목사는 군사독재정권을 비호하는데 앞장서서 그 대가로 정동 러시아대사관 부지의 일부를 하사받았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그는 1968년 5월 1일 대표적인 정교유착의 사례인 ‘대통령조찬기도회’(1976년에 국가조찬기도회로 개명)를 시작하였고 제2회(1969)에서는 5.16을 ‘군사혁명’으로 명명하고, ‘군사혁명’은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고 미화하였고, 제3회 조찬기도회(1970.5.1)에서는 “하나님이 세운 강력한 영도자가 정치력을 가지고 민족의 체질을 혁명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다는 설교했으며, 유신체제 후 처음으로 개최된 제6회 대통령조찬기도회(1973.5.1)에서 10월 유신을 정신혁명으로 찬양하며 ‘신명기 28장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더구나 1980년 8월 6일,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목사 등은 광주항쟁을 짓밟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고, 학살 면죄부를 주고 추앙하였습니다. 제가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총무로 일하던 1992년, 이 조찬기도회에 참석했던 이들에게 이 기도회에 대하여 사과 여부를 서면으로 질의하였을 때, 아현교회 김지길 목사와 성민교회 신현균 목사만이 사과하였습니다.

독재권력과 야합한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성경 구절은 로마서 13장 1절(“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쓴 시대상황이나 바울사도의 의도는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력추종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마태복음 22장 21절(“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도 입맛에 맞는 정교분리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017년 크리스챤아카데미가 주관한 ‘지성적 신앙과 일상의 성화’주제의 평신도포럼에서 좌장이었던 미국 칼빈신학대 강영안 교수님(서강대 명예교수)은 최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을 풀이하여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를 명확하게 밝혔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은 정치와 무관하다거나 이 세상은 예수님의 왕권 밖의 치외법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영역이되, 예수님의 왕권, 예수님의 정치방식은 세상 방식과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라고 하며, 세금 문제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의 통치권을 인정하시만,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강 교수님은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는 승리로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받은 은혜로 세상에 들어가, 각각 처한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이 되어 썩고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기 위해 세상의 삶의 방식을 전복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테두리를 넘어 삶의 환경을 돌아보고 이웃의 억울함과 고통을 돌아보고 헌신하는 사람이 되자고 권면하였습니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에서 강의하는 최종원 교수가 저서 『초대 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 2018)에서 밝힌 입장은 귀담아 들어야 할 글입니다.

“국가주의는 유한하다. 신이 부여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에 맞서 순교를 택한 것이 기독교였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 권력보다 더 지고한 가치였기 때문이다.”(p. 253)

한국교회는 이집트의 국가주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신 하나님의 뜻을 새기고, 시대의 예언자로서 인간을 종속시키는 국가주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원교회에서 순수한 신앙심으로 퇴학을 자초한 선진들의 기개와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군부정권에 맞서 산화한 두 신학도 문용동과 류동운의 저항적 영성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