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산박 호걸들의 비참한 죽음과 진보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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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11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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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필자는 삼국지보다 수호지를 더 즐겨 읽는다. 모택동이 항상 휴대하며 읽었다는 중국의 이 엽기(?) 소설은 한국에서는 삼국지보다 인기가 없어 보인다. 한국의 유명작가들이 삼국지의 판본을 계속 늘려가지만 수호지를 다시 쓰는 작가는 거의 없는 듯하다.

    왜 수호지는 삼국지보다 인기가 없을까? 국가의 창건에 관한 영웅들의 이야기인 삼국지는 그래도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살인(?)을 일삼는 호걸들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불온함의 정도로 보면 삼국지를 능가하기 때문이다.

    수호지의 소인배와 한국의 재벌

    무슨 거창한 명분도 없이 도적 떼처럼 양산박에 모여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래도 한왕실의 부흥이라는 기치를 내건 유비 등보다는 훨씬 불온한 것이 아니겠는가.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쳐 죽이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라는 수호지 주인공들의 말은 사실 엄청난(?) 말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108호걸들은 거의 매 페이지마다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쳐 죽이고 있다. 아무리 난세라도 탐관오리의 수는 절대수로 많지 않겠지만 소인배는 편안한 시기에도 정말 많다.

    자신의 부의 85%를 기부한다는 워렌 버펫은 그래도 소인배가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의 부를 독점하면서도 기상천외한 방법을 이용하여 편법 증여를 일삼아 우스운 정도의 세금만 내면서도 비자금 조성, 불법정치자금제공 등을 일삼는 유수의 재벌들은 현대의 소인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그림 이창우
     

    사실 삼국지의 영웅들은 과정으로 보자면 수호지를 거쳐 왔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공명 등은 송강, 노준의, 노지심(이규?), 오용 등의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수호지가 삼국지보다 과장이 심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시대배경은 다르지만 그대로 이어진다.

    수호지의 호걸들은 살인을 밥 먹듯이 하지만, 당시 국가권력은 그야말로 부도덕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형벌은 가혹하고, 부패한 관리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쉽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사실 중국은 중세유럽에 비하면 형벌제도는 그나마 합리적인 편이었으나, 무능한 황제가 지배할 경우 중국에서는 극단적인 상황은 다반사로 발생하였다.

    황제의 눈에 든 건달 때문에 국가에 충성하는 많은 호걸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결국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탐관오리와 소인배를 쳐 죽이며 양산박에 들어간다.

    이완용, 명성황후 그리고 김구

    조금 멀리 본다면 구한말이 이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고종황제는 을사오적의 수괴인 이완용이 칼에 맞자 이를 슬퍼하여 당시로서는 귀한 포도주를 하사품으로 내리면서 쾌유를 빈다. 일본인에 의하여 살해당한 명성황후에 대한 광범위한 동정론도 있지만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이완용보다 일제시대 더 많은 세금을 낸 것은 명성황후의 사촌인 민영휘였고, 그는 일본으로부터 자작의 칭호를 받는다.

    그러나 김구는 을미사변 이후 주막에서 마주친 일본군 장교를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때려죽인다. 김구의 지시를 받은 이봉창은 일본 왕을 척살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는데, 국사책에도 나오는 사진을 보면 웃으면서 폭탄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이봉창 열사는 김구와 만났을 때 근엄한 열사와 지사와 이미지와 맞지 않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이란 것을 대강 맛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위해서 독립 사업에 몸을 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김구의 불온함을 참을 수 없는 보수주의자들

    김구와 이봉창의 풍모에서 1920년대 아시아에서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에 혹해 이광수와 최남선과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까지 모두 친일을 하고 자치론과 같은 위험한 주장이 풍미하는 상황에서 탐관오리(=일제)와 소인배(=친일파, 자치론자)를 쳐 죽이자는 양산박의 108호걸이 생각난다면 지나친 것일까.

    아마도 지만원 같이 과격한 발언을 하는 이가 김구를 오사마빈라덴이라고 지칭한 것 – 사실 김구가 국민적으로 많은 추앙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감히 이런 주장을 못해서 그렇지 한국의 상당수 보수주의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은 김구와 김구 주변의 열사들이 가지는 그 열정과 애국심의 불온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의 보수주의자들과 친일파들이 김구와 같이 하지 못하고 외교 중심의 활동을 펼쳐왔던 이승만과 함께 대한민국을 창건한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끝내 김구를 누군가를 시켜 암살한 것은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일이다. 마치 김구의 죽음- 본인도 예상한 것으로 보이는 -은 수호지에서 송강의 억울한 죽음이 연상된다.

    아니 가장 가까이는 70~80년대 노동자와 농민, 인민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억압되고 소수의 특권재벌과 지배계층이 성장의 과실을 전유할 뿐만 아니라 백주대로에서 시민들을 곤봉과 대검, 총, 화염방사기로 학살하고 민족의 안녕보다는 미국에 이해에 충성하는 자들이 우대받는데도 글깨나 읽은 자들조차 침묵하는 시대가 탐관오리와 소인배가 활개 치는 시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백범과 송강, 억울한 두 죽음

    부산미문화원을 방화하고, 심지어 광주시민을 학살한 1980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미스 유니버스 대회장까지 점거 – 이 부분은 수사기관의 고문 조작에 의하여 ‘폭파’로 둔갑한 것으로 보인다 – 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가 의거로 평가할 것이다.

    수호지가 더욱 피를 끓게 하는 것은 결국 왕조에 이용당해 그 주요 주인공들은 암살당하거나 자결한다는 데에 있다. 역대 중국에서 손에 꼽히는 무능한 황제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오로지 탐관오리 때문에 죽는 것으로 묘사되는 무적의 108호걸의 이야기는 닮아도 누구를 많이 닮아 있다. (아마도 모택동도 이 부분은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기 있는 인사들이 똑같이 거병했지만 유비 등은 그래도 일부나마 대업을 이루었고, 수호지의 호걸들은 이용만 당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사실 많은 시사점을 보여 준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고 문익환 목사께서 나는 죽어도 좋으니 김대중은 살려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하였다는 일화는 다시 재야운동권의 순수한 동기와 열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높은 의기와 명분에도 불구하고, 다시 황제에 충성했던 108호걸들의 결말이 비참한 죽음뿐이었듯이 자신의 계책으로 세상에 서지 않으려고 하고 ‘민주개혁세력’이라는 명분에 몸을 던졌던 많은 의기 있는 인사와 세력들이 1987년 이후 20년간 허망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공기업 이사나 사장자리 하나 꿰 차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들 자신이 이미 탐관오리와 소인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천하삼분지계에서 천하양분지계로

    그렇기 때문에 수호지가 훨씬 더 불온하고, 필자 또한 더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에서 영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된다. 2006년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를 만들어 다시 한 번 열린우리당과 자신들을 등치시키는 것을 보면서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황제에게 이용당하고 비참하게 죽음을 맞은 양산박 108호걸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동당의 진보개혁세력 주자교체론을 보면서 필자는 비분에 사로잡혀 다시 한 번 삼국지를 꺼내어 볼 수밖에 없었다. 천하삼분지계를 천하양분지계로 그것을 한국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은 여전히 황당무계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분투하는 활동가들이 수호지는 보다는 삼국지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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