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태극전사에게 박수를 치라고?
        2006년 07월 10일 07: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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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2차 본협상의 첫 날인 10일, 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은 청와대 브리핑에 글을 하나 올렸다. ‘한미FTA 태극전사들을 성원합시다’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글은 13년 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한 얘기로 시작된다.

    UR 협상을 물고 들어가며 이 수석이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것이다. 13년 전 UR 협상을 앞두고도 매국협상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UR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UR을 거부했다면 한국이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겠느냐,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역사에서 가정법만큼 허망한 것도 없다. 그러나 이왕 가정법을 적용하려거든 좀 더 그럴듯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봐도 한미FTA와 유사한 역사적 전례는 YS의 OECD 가입이지 UR이 아니다. 이 수석 말대로 "UR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면 OECD 가입은 ‘자의 그 이상’이었다. 이 수석도 "한미FTA는 완전히 자의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공세적인 세계화 논리도 닮았고, 대통령의 일방적 드라이브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점도 판박이다.

       
     ▲ 10일 청와대 브리핑에 올라온 이백만 홍보수석의 글
     

    많은 학자들은 OECD 가입의 대가로 금융시장을 대폭 열어준 것이 외환위기의 빌미가 됐다고 보고 있다. 이 수석의 얘기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 OECD 가입을 앞두고도 졸속추진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부가 신중론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금융시장 개방을 좀 더 완만하게 했더라면 한국이 IMF라는 초유의 국가위기를 맞았겠는가"

    이 수석은 이 글에서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낡은 종속이론은 개혁과 개방의 적"이라며 "한미FTA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선량한 국민들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개방 반대론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먼저, 경제학을 전공한 200여명의 교수와 4대 종단과 문화계와 청년계, 노동계, 농민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반대론을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낡은 종속이론’으로 단칼에 규정하는 대담함이 놀랍다.

    한미FTA에 대한 반대 여론(10일 MBC, 45.4%)을 마치 "무책임한 개방반대론자의 선동’에 따른 것인 양 슬쩍 암시하고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국민을 여론조작의 대상으로 보는 노무현 정부의 대국민관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청와대가 모든 문제를 조중동 탓으로 돌리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한미FTA에 관한 한 조중동은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후원자이고, 조중동을 등에 업고도 이 정도 여론이면 뭔가 문제가 있어도 단단히 있다는 생각을 해볼만도 한데, 청와대는 ‘개방반대론자의 선동’에 책임을 전가하고 속 편히 넘어가고 만다. 

    이 수석은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성사시키더라도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발효된다"며 "국민의 대표가 반대하는 FTA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수석의 이 말을 듣고 기자는 "나는 FTA를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그 내용이 뭔지 알려준 게 없어 지지발언을 해줄 수가 없다"는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의 ‘명언’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 수석은 또 "국민은 대통령에게 국정운영을 위임했고, 대통령은 협상단에게 FTA협상을 위임했다"는 지극히 위험한 논법을 펼쳤다. 그러면서 "한미FTA 협상에도 태극전사가 있다"며 "국민여러분, 한미FTA협상의 태극전사들을 성원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졸렬한 어법이지만 웃음이 나기보다는 섬뜩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그야말로 파시즘의 논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 같은 논리가 우연의 산물이 아닌 것 같아 걱정이다. 이 수석의 글에서 묘사되는 국민의 이미지는 여론 조작의 대상이거나 일체의 권리를 5년 간 유보한 채 정부가 무엇을 하건 "짝짝 짝짝짝" 박수를 쳐주는 응원단의 모습을 일관되게 띠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한다. 흔히들 노무현 정부의 ‘독선’과 ‘오기’를 말하지만, 거기에 ‘민주주의’와 관련된 좀 더 개념적인 호칭을 붙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독재건 파시즘이건, 적당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암튼 지금의 일방통행을 더 이상 노대통령 개인의 스타일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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