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하기 정말 난감하게 만드는 영화들 소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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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10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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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대해 미리 알고 싶지 않은 관객들도 있고, 자신의 영화를 아무런 정보 없이 보기를 바라는 창작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상영전 작품소개를 하면서 때때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그런 경우를 겪었다. 사실 나 역시 영화를 보기 전 일부러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 알고 보건 그렇지 않건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를 전해준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종종 오류를 범하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영화의 형식으로 차용될 때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가 그렇다. 사실은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것을 완전 진짜인 것처럼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영화.

       
     

    몇 년 전 만들어진 윤준형 감독의 <목두기 비디오>(2003년)는 카메라에 우연히 잡힌 귀신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처음 그 영화를 볼 때 감쪽같이 속았다가 영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페이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를 소개할 때 난감했던 기억이 나는데, “귀신을 쫓는 다큐멘터리입니다”라고 소개하면 감독의 의도에 따라 함께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이건 귀신에 관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니 진짜라고 생각하고 보세요.”라고 하면 영화 보는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굳이 설명을 했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진짜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고, 이야기도 안했는데 처음부터 거짓일거라고 생각하고 보는 관객도 있었다. <목두기 비디오>가 벤치마킹했던 미국의 독립영화 <블레어 위치>(다니엘 마이릭, 에두아르도 산체스, 1999년) 프로젝트는 기념비적인 흥행수익을 이루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마켓팅을 위해 영화의 내용이 진짜인 것처럼 꾸미는 홈페이지까지 만들고, 귀신에 관한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

    <목두기 비디오>도 영화를 공개하기 전에 인터넷에 귀신이 찍힌 영상물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을 내서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암튼 이런 경우는 영화의 형식적 선택을 숨기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고, 영화에 관심을 증폭시키는 마켓팅 전략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예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경우는 스포일러 여부만 배제한다면 비교적 공인된 영화의 형식이며,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몇몇 영화들은 도무지 그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처음 언급한 영화는 최하동하 감독의 <택시 블루스>(2005년)이다. 이 영화는 감독 본인이 1년여 기간동안 택시 운전을 하면서, 택시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택시의 손님들과 서울의 거리를 촬영하고 자신의 모습까지 담아내 완성한 작품이다.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에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한 평도 안 되는 택시 안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전형적인 어떤 모습들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우리의 상상을 더욱 강화시키기도 하고 빗나가기도 한다.

    문제는 택시 안에서 찍은 화면들을 모두 사용할 수 없었다는데서 발생한다. 영화에 꼭 담고 싶었던 어떤 손님은 정작 촬영하지 못했거나, 어떤 손님은 촬영장면의 사용을 허락해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하동하 감독은 몇몇 장면들은 지인들을 동원해 재연을 하기에 이른다.

    실제 장면과 연출 장면을 꼭 구분해야 하나

    그런데 실제 장면과 연출된 재연장면을 도무지 구분할 수 없다. 어느 장면을 재연을 했는지, 얼만큼의 분량을 재연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사실 영화에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형식적인 측면에서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심지어 영화의 첫 장면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의 콘티화면을 보여주면 시작한다.

       
    ▲ 영화 <택시 블루스>의 한 장면 (사진=빨간눈사람 홈페이지)
     

    다큐멘터리에 구성안이 아니라 콘티라?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택시에 탄 손님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일까? 아니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배우로 출연하여 재구성한 다큐적 형식의 극영화일까?

    실제 어느 영화제(CGV)에서 상영할 당시 다른 영화의 표가 매진돼서 <택시 블루스>를 보았던 어떤 관객은 최하동하 감독의 모습을 보고, 너무도 당연히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히 나는 영화를 소개할 때, 이 영화는 독립영화 감독인 최하동하가 영화로 먹고 살기 힘들어 택시 운전을 하던 중, 택시 안에서 영화를 찍게 되었고, 여러 장면 중에는 재연장면도 있으니 그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 생각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최하동하 감독은 그런 사실을 밝히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실제 관객들이 아무 정보 없이 보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다면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나의 물음에 감독은 앞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란 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또 하나의 사례. 200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에 주는 운파상을 받은 이호섭 감독의 <그리고 그 후>. 이 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의 역경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진실만 담고 있는가

    4년간 촬영되어 계절별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감독은 그의 연출의도에 맞는 인터뷰를 위해 인터뷰 장소를 때때로 바꾸었으며, 효율적인 화면 구성을 위해 할머니가 입고 있는 옷을 구입했다가, 특정 장면을 찍거나 어떤 이야기를 인터뷰할 때 그 옷을 입히기도 했다고 한다. 이미 감독은 할머니에 대해 대부분을 알고 있었고, 그의 삶을 보다 그림 되는 장면으로 보여주기 위해 계절과 장소에 따라 알고 있었던 내용을 다시 인터뷰하고 다시 촬영한 것이다.

       
    ▲ 영화 <그리고 그 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그 때문인지 이 영화가 상영되는 장소에선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고, 감독은 그 부분에 대해 자신은 다큐가 반드시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 삶과 세상의 진실을 전달하는데 무게중심을 두었던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들과 그런 방식에 익숙했던 다큐 감독들에게 이 영화의 촬영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방식은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대상에게 실제가 아니라 연기를 시키는 정도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별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전해주기도 했다.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올해 본 최고의 다큐멘터리라고 찬사를 보냈는데, 내가 이 영화는 거의 재연에 가깝다고 말하자,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는 최고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극영화로 찍을 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기 위해서 다큐멘터리의 장르적 특성만 흔하게 빌려온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의 다큐멘터리를 시도한 것일까?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화제 속에 상영되며 ‘독불장군상’을 수상한 김경묵 감독의 <얼굴없는 것들> 역시 이러한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단 세 컷으로 이루어진 한 시간 분량의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어느 고급 여관방이다.

    몰카 형식의 극영화와 실제 셀프 카메라를 합해 만든 ‘물건’

    여관에선 한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곧이어 교복 차림의 청소년이 들어온다. 이 장면은 약 40분 동안 원조교제를 하는 유부남과 청소년의 모습을 몰래 카메라의 시점으로 담고 있다. 그들은 목욕하고 섹스하면서 다소 다투기도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실제로 본 몰래 카메라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장면은 작은 여인숙에서의 실제 셀프 카메라 장면이다. 감독 자신과 누구인지 알 수 없게 얼굴을 가린 남자와의 극단적인 성행위가 펼쳐진다. 감독은 똥을 누고, ‘얼굴없는 존재’는 똥에 성적인 흥분을 느낀다.

       
    ▲ 영화 <얼굴없는 것들>의 한 장면 (사진=서울독립영화제 홈페이지)
     

    이 화면은 영화를 찍기 전에 이미 찍어놓은 장면이라고 한다. 몰래카메라의 재연과 셀프카메라. 그리고 마지막에 화면을 바라보는 감독의 얼굴. 단 세 컷으로 이루어진 <얼굴없는 것들>은 어떤 기록화면을 극적으로 재구성했다는 면에서 극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극영화와 다큐의 장르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을 논의하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최근 독립영화들은 이렇게 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어떤 영화들은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기도 하다.

    영화 같지 않은 영화 <나는 영화다>

    이정수 감독의 <나는 영화다>(2005년)는 스스로 자신이 그리고 자신의 영화가 영화라고 선언을 한다. 일상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거리와 사람과 자신을 촬영한다. 그리고 이것을 얼기설기 이어붙이고 자신의 선문답 같은 주장을 담아서 영화를 만든다. 영 영화 같지 않지만 감독의 입장에선 이게 영화란 주장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영화 속에는 영화를 찍으려는 한 여자(배우)가 등장한다. 영화에 계속 등장하는 감독과 배우처럼 보이는 그녀는 영화를 찍고 있다. 그런데 연출을 하거나 연기는 하지 않고, 서로 질문만 주고받는다. 이게 영화의 기본 골격이다.

    이정수 감독에겐 기존 영화라고 생각하는 관념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나 리허설 혹은 대화 과정 자체를 찍는 것이 영화인 것이다. 일종의 셀프카메라이면서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며 실험영화에 가까운 그의 영화는 딱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형식적 파격이 있다. 그런 파격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윤성호 감독의 단편영화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2005년) 역시 형식적으로 보면 대략 난감하다.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띠고 있으면서도 형식적으로는 기존 드라마의 구성을 벗어난다. 영화 안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극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시키고 있다.

    영화 만드는 과정이 드라마를 만드는 사이에 문득 문득 삽입되어서, 마치 메이킹 필름처럼 한 영화 안에 기본적인 줄거리와 영화 만드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두 개의 영화가 하나로 포개져서 진행되는 것과 같다.

    끊임없는 경계 허물기는 세상에 다가가는 한 방식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사실 영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영화들은 많지 않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 질문하고 비판하는 영화들은 많지만, 영화 자체를 통해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들은 많지도 않고, 관객에게 호응을 얻기가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 이 영화들은 세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들에 대해 질문을 하면서 자문자답하고 있다. 이게 독립영화의 역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근본적으로 되묻기. 그리고 우리가 보아왔던 영화라는 것에 대해 묻고 대답하기.

    물론 이런 시도들은 때론 확연한 실패로 결론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항상 새로운 시도 속에서 잉태된다. 이런 시도들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변하듯이 영화도 변해 갈 것이고 그 영화들은 새로운 세상에 좀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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