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죽음으로 개정된 산안법,
하위법령 퇴행···‘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
정부 시행령, 국회 통과 산안법 개정안보다도 후퇴
    2019년 05월 21일 05: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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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전부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하위법령 개정안에 대해 “‘위험의 외주화 근절’이라는 법의 정신조차 담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산업재해 피해노동자 유가족들이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라고 정부를 규탄했다.

산재 피해자 유가족,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분향소를 찾아와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던 정부와 정치권의 기만에 분노한다”며 “정부는 말로만 ‘산업재해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산안법 하위법령을 제대로 개정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이같이 밝혔다.

산안법 관련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지난달 22일 고용노동부는 28년 만에 개정된 산안법의 시행령·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을 입법예고했다. 국회에서의 산안법 전면 개정 당시 도급 가능한 업무의 범위와 원청 사업주의 산재 책임 범위 등을 하위법령에서 구체화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산안법 전면 개정안은 국회 통과 당시에도 ‘반쪽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고 김용균 씨 사망을 계기로 개정된 법안이었지만 김용균 씨가 했던 전기사업 설비의 운전과 설비의 점검정비 업무가 도급금지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구의역 참사와 관련한 궤도사업법의 점검 및 설비보수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여당은 “일단 법안을 통과시키고 보완책을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도급승인을 받는 범위를 4개 화학물질의 설비·보수·해체·철거 작업 등으로 제한했다. 도급금지에서도 제외됐던 구의역 사고와 태안화력 김용균 씨의 업무는 도급승인에서조차 빠졌다. 조선업 하청업무도 도급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를 통과한 산안법 개정안보다도 더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미숙 “하위법령 이렇게 쓸모없이 만들어놓고 어떻게 산재 막나”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정부가 발표한 산안법 시행령에 대해 “산업 발전을 위해 국민의 목숨을 밑거름으로 사용해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하다”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며 통과시킨 산안법의 하위법령을 이렇게 쓸모없이 만들어 놓고 어떻게 산재 막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을 세치 혀로 농락하고 기만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최성균 발전노조 한전산업본부장은 “28년 만에 산안법 개정 과정을 겪으며 이제는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원청의 책임자 처벌, 도급금지, 위험의 외주화 근절 등 어떤 것도 시행되지 않았다”며 “문재인 정부는 ‘안전한 사업장 만들겠다’며 말로만 선언하지 말고 하위법령 제대로 개정해서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협소한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조치 적용대상도 그대로다. 정부는 약 50개 직종 중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골프장 경기 보조원, 택배원, 퀵 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27종 건설기계 운전사, 카드 모집인, 대출 모집인 등 9개 직종만 적용대상으로 하는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내용을 유지하기로 했다. 앞서 노동계는 그동안 산재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졌던 화물운송 노동자나 영화방송 드라마 현장 등의 우선 조치를 위해 보호직종 확대를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적용대상 9개 직종 중 4개 직종은 안전교육에서도 제외됐다.

한국노동안전연구소 활동가인 이나래 씨는 “정부가 협소하게 범위를 정해놓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이한빛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죽음의 외주화가 어느 산업현장보다 심각한 곳이 바로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이라며 “16부작 드라마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100여명인데 대부분 용역 계약 노동자다.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인권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죽음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국회를 통과한 산안법 개정안도 부족한데 시행령으로 또 다시 법안을 후퇴시키는 것은 정말로 문재인 정부가 해선 안 되는 일이다. 노동자들을 최악의 죽음의 현장으로 내모는 일”이라며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산안법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청 책임도 대폭 후퇴···건설기계 27종 중 4개 기계에만 원청 책임 적용

원청 책임 강화도 대폭 후퇴했다. 정부는 건설기계 27종 중 타워크레인, 건설용 리프트, 항타기, 항발기 등 4개 기계에만 원청 책임을 적용했다. 사고가 빈번했던 덤프, 굴삭기, 이동식 크레인등 사고다발 기계는 제외됐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2015년) 건설업 산재사망 중 굴삭기, 트럭류, 고소작업대(차), 이동식크레인, 지게차 등 5대 건설기계·장비에 의한 사망자는 693명이다.

중대재해가 벌어진 사업장의 작업중지 명령을 손쉽게 해제할 수 있도록 한 시행규칙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입법 예고안에서 사업주가 작업중지 해제를 요청하면 4일 이내 작업중지 해제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해제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심의위에 노조 추천 전문가 참여도 배제해 졸속 해제 우려가 나온다.

허소연 집배노조 선전국장은 “2018년에 25명, 올해만 벌써 7명의 집배원이 과로사로 사망했지만 우정사업본부에서 작업중지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며 “원법의 취지를 담아 시행령이 좋게 바뀌길 바랐으나 안전한 직장을 위한 작업중지의 내용을 전혀 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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