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운동과
진보좌파정당의 ‘모멘텀’
[모멘텀]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
    2019년 05월 20일 12: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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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의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청년들의 시각에서 진보정치와 청년, 노동, 페미니즘 등 다양한 주제와 이슈들에 대한 고민과 생각들을 정리해 기고 글로 보내주기로 했다.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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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Many, Not the Few”

위의 문구는 영국 노동당의 변화·변혁을 지향하며, 같은 길을 추진하는 제레미 코빈 대표의 유임(당 우파들은 코빈 대표를 낙마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을 지켜낸 영국 노동당의 당원모임 《모멘텀》의 표어 중 하나이다. 러프하게 번역하면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하여’라는 다소 모호하게 들리는 단어지만. 관용구로 본다면 ‘The Many’, ‘The Few’가 함축하고 있는 뜻은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 등 민주주의 시위 등에서 나왔던 ‘1%에 대한 99%의 반격’이 의미하는 99% 절대 다수의 민중과 1% 소수 기득권 세력을 뜻하는 표현이다.

2015년, 영국 노동당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복지담론은 이제 노동당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블레어와 그의 지지자들, 소위 ‘신노동당’ 세력이 이끈 당의 우경화 경향은 노동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지역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은 대부분 대처주의 반대 투쟁에서 성장한 40~50대로, 당의 노령화가 뚜렷하게 나타났으며, 청년 학생들은 노동당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당 선거를 외면하였다. 소위 ‘제3의 길’ 신봉자들은 ‘노동·여성·학생 등 다양한 대중투쟁과의 결합’, 코빈의 강경좌파 노선은 좌파들의 선명성 경쟁이라고 치부하며 공공연하게 무시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영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당사자 운동은 노동당 지지를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언론들은 노동당이 다음 선거에서 수십 석 이상을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노동당 내부 또한 패배주의, 보신주의가 만연한 상황이었다.

활동가들은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해 5월, 다섯 명의 노동당원, 지역활동가들은 대안적 정당운동의 활로를 찾아 모였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 Syriza),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등 여러 성공적인 정당 모델을 접한 그들은 3개월간의 치열한 논의와 활동 끝에 그해 8월. 당원모임 《모멘텀》을 건설했다.

모멘텀을 당내 우파를 찍어누르는 훌리건으로 희화화한 영국의 만평

모멘텀의 시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모멘텀의 첫 주창자들은 거의 다 50대 노조 활동가들에 가까웠고, 대학조직이라고 해 봤자 옥스포드 인근의 자유주의적 성향의 단체들뿐이었다. 당내의 여론 또한 최악이었다. 노동당의 중진들은 개인주의, 파편화된 영국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좌파적 경향을 내세우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모멘텀과 이를 대표하는 제레미 코빈의 활동을 급진좌파, (우리나라에서 흔히 운동권이라고 회자되는) 정치꾼들, 페미니스트들, 의회 바깥의 대중투쟁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이들이 노동당 당권을 장악하려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당 바깥의 좌파들은 반대로 모멘텀의 출범이 보수적 노동당에 기대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반대파들의 비판과 비난은 현실에서 무력화되었다. 당내의 풀뿌리 위원회, 민주적 대표성을 강조하고 재확립하자는 모멘텀의 주장은 줄곧 제기되어 왔던 영국 노동당의 경직되고 의원 중심의 의사결정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설득력을 얻었고, 자유주의적인 청년들의 당사자 운동부터, 노동자, 소외되는 학생, 이민자, 여성들과 연대하는 행보는 곧 당 내외의 좌파그룹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도 울림을 주었다. 의회 내부의 정치 이외에는 사실상 의미 있는 정치활동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지지자들의 참여와 결집을 이루지 못하던 노동당은, 모멘텀을 통해 각 지역에서 살아 숨 쉬는 정당이 되었으며, 파편화되어 당내외의 시민사회단체로 흩어졌던 청년역량은 노동당으로 다시 결집하기 시작했다.

코빈과 모멘텀은 흩어졌던 개개인의 다수들을 모아 ‘The Many’로, ‘99%’로 재조직했다. 2017년. 모멘텀과 그 제휴 관계의 사회단체들이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을 결의하자 이미 노동당원이었던 다수의 모멘텀 회원들을 제외하고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신입당원으로 입당했다. 5명으로 시작한 모멘텀은 2년 만에 4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거대한 정치사회단체가 되었다. 결국 이들은 노동당의 참패가 예상되던 총선에서 보수당의 단독 과반을 저지하며 전략적 승리를 거두고, 이름 그대로 당의 재성장과 좌파적 전환을 위한 ‘모멘텀’을 이끌어낸 것이다.

코빈의 여성주의, 이주민 정책을 두고 ‘내부의 독’이라고 평가한 선전물

얼핏 보기에는 영국 노동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 저변에 뿌리내린 ‘정치적 올바름’과 노동정치세력에 대한 혐오 정서에 진보정당이 장단을 맞추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플랫폼에 구애하는 것은 일종의 ‘대중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영국 노동당의 보수적 지도부가 저지른 실책처럼,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폭을 줄이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파편화와 혐오적 논리를 진보세력에게 이식하는 기형적 행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형적 방향성은 한국의 진보정당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비활동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소위 ‘대중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휘두르며 당론 등을 오른쪽으로 후퇴시키고, 데이트폭력처벌법 발의 철회, ‘민주당 왼쪽과의 연대를 공고히 하자’ 등을 자신들의 성과로 삼는 사람들이 대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정당은 ‘대중정당’이면서 ‘이념정당’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노회찬의 정신을 이들에게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학, 지역, 당사자 운동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진보정당은 사회의 좌파적 견인차로서의 책무도, 대중에게 지지를 호소할 가능성도 상실해갈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모멘텀의 약진은 진보정당의 풀뿌리 조직들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진보정당의 각 위원회들이 자신의 부문과 지역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할 뿐 아니라, 당면한 자유주의 정당, 보수당과의 싸움, 전국적 캠페인 내에서 연대하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써 움직일 오프라인 네트워크도 건설해야 한다. 그 네트워크의 담론은 당연하게도 노동운동, 소수자 운동, 당사자성과 결합한 연대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

각각의 활동가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 옆에 실체로서,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재하는 진보정당이 되어 좌파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 그 싸움이 진보의 원칙에만 합치한다면, 꼭 하방이나 노동자 조직화라는 무거운 책무일 필요는 없다. 소소하고 일상적이지만 중단 없는 투쟁. 이것이 바로 진보정당의 새 ‘모멘텀’에 대한 제언이다. 소수의 기득권과의 싸움이 꼭 거대할 필요는 없다. 시시한 약자들의 시시한 주장이 송곳처럼 세상을 뚫고 나오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전)정의당 한양대학교 학생위원장. (현)정의당 청년당원모임 모멘텀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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