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못자리 만들기
[낭만파 농부] 이제는 모내기 준비
    2019년 05월 20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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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꽃 잔치가 벌어지는가 싶더니 떨어지는 꽃잎 따라 봄도 고개를 떨군다. 봄인가 싶더니 여름이라. 때 이른 더위로 숨이 가쁘다. 게다가 가뭄까지 겹쳐 온 들녘은 타는 목마름에 흙먼지만 풀풀 날린다.

큰일이다. 요 며칠 살펴본 못자리는 영 상태가 좋지 않다. 이빨 빠진 옥수수마냥 듬성듬성 싹이 올라오지 않은 모판이 꽤 된다. 고랑으로 물을 대주고는 있지만 두둑이 불쑥 솟은 곳의 모판은 수분을 빨아들이지 못한 탓에 볍씨가 곯아버린 것이다. 그새 비라도 한두 번 내려줬다면 그나마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입이 써온다.

사실 ‘모농사 3부작’이라 할 볍씨 담그기-볍씨 넣기-못자리 만들기 작업을 할 때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여느 해와 견줘 일손이 두 배나 몰려드는 바람에 작업은 순풍에 돛을 달았더랬다. 볍씨를 넣던 날에는 점심밥 먹고 깜짝 노래공연, 못자리 작업 때는 한판 풍물굿을 펼치는 여유까지 부렸다.

볍씨를 넣는 작업은 사실 파종기가 주인이다. 작업자들이 포트모판을 대주고, 볍씨를 대주고, 상토를 대주면 기계는 스스로 컨베이어 라인을 따라 포트에 볍씨를 서너 알 씩 넣고 상토를 뿌려 덮는다. 작업자는 그렇게 흘러나온 모판에 물을 흠씬 골고루 뿌려서 가지런히 쌓는 것이다. 파종기는 속도를 조절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어 작업속도는 결국 기계의 처리속도에 달렸다. 사람이 많다고 빨리 끝나는 게 아니란 얘기다. 그래도 일손은 다다익선, 열다섯을 넘나드는 일꾼이 북적거리니 품은 덜 들고, 흥이 절로 나게 마련이다.

못자리 작업에서는 일손이 스물을 헤아렸다. 요즘은 비닐하우스에 스프링클러를 써서 모를 기르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우리는 전통방식인 ‘물못자리’를 만든다. 로터리 쳐놓은 논배미에 하루 남짓 물을 가둬두면 적당한 진흙탕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고랑을 파고 두둑을 판판하게 다듬은 뒤 멍석망을 깔고 그 위에 모판을 가지런히 앉힌다. 트럭 짐칸에 층층이 쌓인 모판을 두둑까지 옮겨야 하는데 일손이 넉넉하면 줄을 지어 릴레이로 쉽게 나를 수 있다.

따라서 못자리 만드는 작업에서는 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일손이 스물이나 되니 작업속도가 무척 빨랐다. 지난해에는 저녁 7시 가까워서야 끝났는데 올해는 5시도 못 돼 마무리됐다. 그것도 점심 때 신나는 풍물 한판을 치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그래, 일이 어째 잘 풀린다 싶더니 그예 가뭄이란 놈이 애를 먹이고 있는 거다. 노동이 놀이와 분간이 안 될 만큼 즐겁고, 흥에 겨워 방심을 했는지도 모르지. 그나마 모내기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같은 포트모시스템에 물못자리를 한 성호 씨가 엊그제 전화를 걸어왔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보다 사정이 더 나쁜 모양이다. 어쨌거나 상태가 좋지 않은 모판은 손모내기 체험행사로 돌리거나 뜬모 할 때 쓰면 얼추 계산이 맞지 싶다.

5년 전엔가, 일 좀 쉽게 하겠다고 검증되지 않은 ‘마른 못자리’ 방식을 썼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모판에 물이 닿지 않는 바람에 열흘이 지나도록 싹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던 것. 결국은 판을 갈아엎고 다시 물못자리를 조성했다. 그 참변을 겪은 뒤로는 못자리만큼은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듯 마음을 쓰고 있다. 이번 일로 교훈이 하나 더 늘어난 것인가.

모내기까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어 또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는 한다. 그래도 모농사는 초반 국면을 잘 넘기면 별 탈이 없는 법이니 한 고비는 넘겼다고 해야겠지. 게다가 모농사에만 매달려 있을 때도 아니다. 이제 못자리는 못자리대로 살피면서 모내기 준비를 할 시간이다. 논을 갈고, 논둑에 우거진 풀을 치고, 논두렁을 정비하고… 모판을 떼어 써레질 끝난 논배미로 나르면 모내기 준비는 끝이다.

그 때까지 갈 길이 아직 멀고, 할 일도 쌓여 있다. 엊그제는 곡간에 쌀이 떨어져 다시 방아를 찧었다. 쌀을 실어오자마자 밀봉포장을 했다. 20키로 한 포대를 10키로 씩 진공포장비닐에 나눠 밀봉하는 작업이다. 때 이른 더위로 신선도가 빠르게 떨어지거나 쌀벌레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다. 쌀을 덜어 저울에 달고 밀봉기로 누르는 네 시간 가까운 단순반복노동도 버거운 일이지만 사람 좀 편하자고 생태에 부담을 안겨주는 비닐봉지가 목구멍의 생선가시마냥 자꾸만 걸려온다. 지금으로선 다른 수가 없음을 알면서도.

그런 가운데서도 소소한 일상은 지속된다. 텃밭에 옮겨 심었던 모종은 스무 날 만에 쌈 채소로 자랐다. 오늘 점심은 상추-케일-겨자체-치커리-적근대로 풍성한 현미쌈밥. 이제 저녁 차려 먹고 독서토론 모임에 나갈 시간이다. 기온은 아직도 섭씨 30도에 가깝다. 더운 봄날이 흐르고 있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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