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의 주거·동성혼·탈핵 문제
    [청년기자들] 한국과 비슷한 문제로 고민
        2019년 05월 17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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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청소년 관련(주체 혹은 주제) 기고 등의 기사에 대해서는 <오재영추모사업회>에서 원고료 일부를 지원 받아 지급한다. 고 오재영 동지가 진보정당의 조직사업에 오래 종사했으며, 진보는 청년·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발언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번 달의 관련 기사들은 정의정책연구소의 청년기자단에서 보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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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과 닮은 귀신이 사는 섬 귀도, 주거문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치 지옥과 같다는 뜻에서 나온 단어, ‘헬조선’. 대만에도 동일한 표현이 있다. 바로 귀신이 사는 섬, ‘귀도’다. 한국과 대만, 각 나라의 국민들이 살아가며 느끼는 어려움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겠지만, 일단 ‘살 곳’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불평등을 가장 심화시키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되어버린 집 문제. 부동산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대만은 홍콩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집값이 비싼 나라다. 대만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디바오 지역은 1평당 약 384만TWD (약 1억 5천만원)에 달한다. 대만 정규직 평균 월급이 100~180만원 (2017년 말 기준)임을 고려한다면, 숨만 쉬고 7년 동안 돈을 모아 1평 정도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대만의 주거 문제를 간략히 나타낸 표. 주거 문제 중 높은 3가지 사항을 3高로, 낮은 3가지 사항을 3低로 정리.(내용출처 : OURs)

    대만의 주거 문제는 주로 ‘3高 3低’로 요약된다. 3高는 소득 대비 높은 부동산 가격, 높은 주택 보급 비율, 그에 비해 높은 공실률(빈집 비율)을 뜻하고, 3低는 턱없이 낮은 부동산 세금, 7000호뿐인 공공임대주택, 그리고 낮은 질의 주택들을 뜻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대만의 부동산 가격은 중위 소득자가 한 푼도 안 쓰고 15.1년을 모아야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턱없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있는 주택이 적어서 가격이 높은 것일까? 아니다. 가구 수 대비 주택 보급률은 85%가 넘는다. 하지만 71만 가구가 여러 채를 가지고 있어서 빈집의 비율은 10.5%에 달한다. 이 빈집들은 도시화로 생긴 시골의 오래된 빈집이거나, 대부분이 투기 상품들이다.

    빈집은 많은데 집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나 많다. 그러나 그동안 대만 정부는 다른 주장을 해왔다. 대만에 공급된 주거 평수를 인구수로 나눴을 때 한 인구 당 14.67평 (48㎡)에 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한 인구당 13.07평에 살아야 한다는 대만의 법 조항에 부합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100평 이상(330㎡) 넘는 많은 수의 집들이 비어있기 때문에 사실상 상향된 평균이며 의미 없는 수치다.

    대만의 부동산 보유세는 0.1% 이하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OECD 평균(1.1%)과 한국 (0.8%)의 보유세를 본다면 대만의 경우가 현저히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더불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주택은 고작 7000호뿐이다. 전체 주거의 0.08%에 불과하다. 게다가 불법 확장, 노후주택 등으로 거주 품질도 매우 낮다.

    높은 가격, 낮은 세금으로 투기는 쉽고, 살기는 어렵게 됐다. 사실상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대만의 시민들은 이러한 주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꽤 오래전부터 싸워왔다. 올해로 30주년이 된, 1989년 민달팽이 운동이 대표적이다. 무주택자 5만명이 모여 주거 불평등에 대해 시위했고, 이 이후로 많은 주거 관련 논의들과 단체들이 생겨났다. 또한 최근 2014년 10월에는 새둥지 운동으로 2만명의 시민들이 정부에 주거 대책을 요구했다. 이러한 주거 문제 담론을 이끌어오고 연구해온 NGO 단체 OURs(도시개혁조직 The Organization of Urban Re-s)과 이야기를 나눴다.

    OURs는 대만의 주거법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정해야 하는 내용으로 3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실거래가 공개다. 부동산을 처음 거래했던 가격과 그동안 거래했던 내용들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비자의 권리다. OURs는 생필품 구매도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구매하는 가장 비싼 물건인 집은 당연히, 혹은 더 강력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입주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임대차보호법 제정이다. 대만 민법상 임차인은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계약서에 쓴 내용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대인 마음대로 임차인을 다룰 수 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부동산세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 많이 낼 수 있게 해야 부동산 투기를 줄이고, 턱없이 높은 부동산 가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OURs는 꼭 필요한 정책으로는 단연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것을 말했다. 주택 안전망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사회경제적 약자를 거대한 시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현재 7000호밖에 공급되지 않았지만, OURs와 같은 주거단체의 노력으로 현 대만 정부에서 최소 5%, 20만개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고, 타이페이 시장 또한 5만개 공급을 약속했다. OURs는 이제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문제에 대해 바라보고 있다. OURs는 공공임대주택은 정부에서 주도해서 건설하고, 집값을 소득에 맞게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공주택에 입주하는 입주자는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의무를 가져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도 했다. 이를 통해 주거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도 함께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OURs는 부동산을 바라보는 대만 시민의 관점에 대해서 소개해줬다. 대만 국민의 10%는 돈이 없어서 살 생각도 못 하고, 20%는 돈을 모으면 살 수 있지만 아직 집이 없다. 60%는 1가구 주택자들이고, 나머지 10%만이 부동산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일명 ‘부동산 신화’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투기를 조장한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와 투기 환경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정치력을 동원하지만, 정치권 사람들과 그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이 다주택자들인 경우가 많다. 최근 중앙일보가 정리한 <공직자 캐슬> 자료에 의하면 국회 33.6%, 정부는 29.5%가 다주택자였다. 최근 부동산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다주택자로 논란이 일었고 자진 사퇴했다.

    사는 게 힘든, 아니 살아갈 곳도 없는 ‘헬조선’과 ‘귀도’의 부동산 개혁은 더디기만 하다. 이럴 때일수록 장기전으로 봐야 한다고 OURs는 말했다. 단기적으로 주택임대료를 지원하고, 중기적으로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위한 임대주택을 지어 주거 안전망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부동산세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아시아 최초 유일 동성결혼이 가능한 국가, 혼인평권

    우리에겐 혼인평권이란 말보다 동성결혼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것이다. 동성혼도 이성혼과 같이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혼인평권이라고 부른다. 현재 대만은 사실상 아시아 최초 유일의 동성혼 가능 국가가 됐다. 그 역사는 꽤 길다.

    대만에서는 1986년 처음으로 치자웨이가 커밍아웃을 하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 이후, 2000년에 첫 번째로 동성혼 합법에 대한 헌법해석을 요구했지만, 사법부는 시간만 끌다가 결국 대법원에서 심리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가 다시 헌법해석 청구를 넣을 수 있도록 도와준 건 바로 대만반려권익추진연맹 줄여서, 반려맹이란 단체였다. 그들은 2014년 혼인평권에 대해 다시 헌법 해석을 청구하며 사법 운동을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2017년 5월 24일 사법부로부터 ‘혼인평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은 위헌’이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대법원은 ‘동성혼도 이성혼과 같은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판결하며, 2년 안에 (2019년 5월 24일까지) 행정원과 입법원이 관련 법규를 수정하거나 새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올해 2월 21일 행정원은 [사법원 석자 제 748호 해석시행법 초안]을 제출했다. ‘같은 성별을 가진 2인이 공동생활 영위를 위해 친밀적이고 배타적인 영원한 결합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여, 혼인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이 초안은 입법절차에 도입했다. 그동안 입법부에서도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수, 진보 정당 가릴 것 없이 2012년 혼인평권에 관한 초안들을 제출하고, 그 다음 해인 2013년 10월 입법 발의를 했지만 보수 개신교인들의 큰 반대집회 때문에 계류되다가 회기가 종료되면서 2016년 자동폐기 됐다. 하지만 지금은 사법부의 판단에 따라 행정원이 초안을 제출하고 입법원에서 입법 절차에 돌입하게 됐다. 사실상 대만은 아시아 최초, 유일의 동성혼 가능국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대만 국민 여론은 혼인평권에 대해 완전 찬성 입장은 아니다. 2018년 11월 열린 대만의 국민투표 중 성소수자 권리나 교육에 관련된 문항이 3개가 있었는데, 대만 국민들은 대체로 반대표를 던지거나 투표수가 부족해서 부결됐다. 반려맹은 대만 역시 여느 나라처럼 동성애에 대한 가짜뉴스에 시달리고 있고 국민들이 그 뉴스들에 너무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인권에 투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3가지의 국민투표 문항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때론 법이 국민의 인식보다 앞서갈 때도 있다. 한국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가 그렇다. 대체복무제에 대한 여론은 높지 않지만, 헌법재판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지금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한국은 2016년 서부지방법원에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관련 기사 링크) 그 이후로 뚜렷한 행보는 보이지 않는다. 대만의 반려맹은 단체 성격상 법조계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주로 입법과 사법 활동에 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두 가지 모두 성과를 내기 직전까지 왔다. 한국의 동성혼을 비롯한 성소수자 문제도 이런 접근이 필요하다.

    대만은 탈원전을 버리지 않았어!, 탈핵

    대만의 탈핵 운동은 인기 있는 시민운동 중 하나다. 2011년 후쿠시마 참사 이전까지의 탈핵 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한 갈래에 불과했다. 당시 민주화 세력을 대표했던 민진당이 탈핵을 주장하고, 정권을 잡고 있던 국민당이 찬핵을 지지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후쿠시마 참사 이후,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포가 일반 대중들 속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대중들은 원전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구도는 정치권에서 시민운동으로 옮겨가게 됐다. 그렇게 대만의 탈핵 운동은 일상생활과 탈핵 운동을 연결시켜 대중을 동원하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에너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See Seng Tan. (2017) Providing for the other: rethinking sovereignty and responsibility in Southeast Asia, Critical Studies on Security 5:3, pages 270-286.(내용출처 : OPIS 국가별 원전운영현황)

    대만은 원전시설을 총 4개, 원전 하나당 발전기 각각 2기씩, 총 8기를 계획했다. 그중 제1원전은 2014년 고장으로 중단됐다가 2018년 10월 사용기한이 만료되어 폐쇄했다. 제4원전은 시민들의 탈핵 운동으로 2014년 4월에 건설이 중단됐다. 잠정적으로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제2원전과 제3원전의 각 1기씩은 고장 혹은 정기 점검으로 가동 중지됐다가 전력 부족을 이유로 재가동 중이다. 따라서 발전기 4기로 원자력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원전을 가진 나라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 있다. 위의 대만 지도를 보면 제 1,2,4원전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리상으로도 지진 발생 위험이 있는 곳이다. 물론 현재 1,4원전은 식물상태가 됐지만,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민운동을 이해하고 있는 현 대만의 총통 차이잉원은 2025년 원전제로를 발표하고 입법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전 총통이었던 마잉주가 현 정부의 탈핵 정책과 개정에 반대하며 탈핵 정책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마잉주의 주장은 이렇다. 원자력은 그린 에너지고, 핵폐기물은 처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탈핵 진영에서는 대만에 영구적인 방사능 폐기 보관 장소가 없고 대부분의 핵폐기물이 방치되고 있다며 반발했다. 결국 작년 11월에 국민투표가 진행됐고, 전기법 95조 1항 “핵발전소 시설은 2025년까지 모두 중단돼야 한다” 삭제에 국민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언론은 대만이 탈원전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국민투표 중에는 석탄화력발전소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대만 국민 모두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고 건설 및 확대 중단에 찬성했다. 즉, 국민 모두 탈석탄을 선택한 것이다. 더불어 대만 정부는 탈석탄의 대안을 원자력에서 찾지 않고 친환경 에너지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고, 건설 중단된 제4원전을 재개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것을 보아, 정부의 원전제로 의지가 꺾이진 않았다. 국민투표도 2025년이 비교적 가까운 미래라는 것과 아직 대체 에너지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한국도 문재인 정권 초기 건설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두고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해 결론을 낸 적이 있었다.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고 건설 재개 의견이 59.5%로 나와 신고리 5,6호기는 다시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도 완전히 탈핵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참여했던 시민 의견단도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에 대한 의견일 뿐, 전반적인 탈핵 정책에 대해 투표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보수 야당이 미세먼지와 산불 등등이 탈원전의 결과라며 정치 정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탈원전 이슈를 정치권의 진영싸움으로 이슈를 넘겨서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대만의 시민운동처럼 정치권이 아닌 대중들의 지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 한국에도 그런 경험이 이미 있다. 부산 시민들이 10년 동안 연대하고 주장해서 고리 1호기를 영구 폐쇄로 이끈 적이 있다. 더 나아가 대만처럼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 사업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필자소개
    동국대 화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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