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11년간 인피니티 사가의 마무리
[영화 이야기] 궁극의 팬서비스
    2019년 05월 17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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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저는 지난번 인피니티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충격과 절망의 체험, 트럼프 시대 ‘히어로 무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라는 22편에 달하는 거대한 세계관에 대해 ‘현대의 고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었습니다. 약간의 팬심이 들어간 과대평가라고 저 스스로도 생각하면서 쓴 평가였죠.

하지만 ‘어벤져스 : 엔드게임’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면서 이 생각이 조금 더 구체화됐습니다. 마블의 세계관은 최소한 지금 이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신실한 교인들의 경전과 같은 지위입니다. 스스로 명명한 ‘인피니티 사가’(saga:북유럽 쪽의 서사시, 전설이나 무용담, 아이슬란드어로는 역사를 뜻함)라는 자기 정의처럼 이 이야기는 현대의 신화, 전설, 또는 성경이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언맨은 죽음을 통해 슈퍼히어로들의 태생적인 불경함을 대속(redemption)하고 캡틴은 자신의 고결함을 증명한 후 지워진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마침내 열반(nirvana)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요. ‘마블빠’들에겐 아이언맨이 예수고 캡틴이 부처인 것이죠. 우습지만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닐 겁니다.

인피니티 사가의 최종장인 ‘엔드게임’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세계관 속에서 즐거워 한 마블 팬들에게 주는 디즈니의 궁극적인 선물입니다. 이 영화에는 영화적 야심 같은 것이 1%도 없습니다. 있다 해도 그 부분은 조금 더 멋진 선물을 팬들에게 주기 위함이지 먼진 영화를 만들기 위함 그 자체는 아닙니다.

영화 역사에서 이렇게 온전하게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보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기형적인 영화죠. 엔드게임의 모든 감정선은 아이언맨이 타노스의 ‘나는 필연적 존재’라는 대사를 패러디해 ‘나는 아이언맨이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쌓아올린 도미노입니다. 또한 엔드게임의 모든 액션은 캡틴이 ‘어벤져스 집합!’(Avengers assemble!)이라는 코믹스의 저 유명한 대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스컬레이터입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주위 사람들만 없다면 대성통곡을 하거나 손뼉 치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 넘긴 팬들의 감동인 것이죠.

이 이야기의 허점에 대해 구구절절 반박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양자 세계를 통한 시간 강탈의 느슨한 자기논리나 몇몇 캐릭터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성격변화 같은 것들요. 이 이야기 구조의 구멍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눙치기엔 너무 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화 보는 내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약물을 먹고 초인이 된 어느 군인의 이야기나 물리법칙을 간단히 무시하는 얇은 금속 수트를 입고 날아다니는 CEO의 이야기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은 탓도 있지만 엔드게임은 그 와중에서도 자기 논리를 스스로 상당 부분 무너뜨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개연성 따위 무슨 소용이랍니까. 온전히 나를 위해 만들어 준 3시간의 이야기는 그냥 그 자체로 행복한 경험일 뿐이니까요.

우리가 성경의 어떤 에피소드를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거나 비과학적이라고 나무라지 못하는 것처럼 엔드게임은 이 거대한 세계관과 그보다 더 거대한 팬덤 속에서 이해될 뿐 단독의 해석은 불필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엔드게임도 ‘영화’라는 예술 장르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심각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20여 편의 전작들을 보지 않은 관객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지금의 영화라는 장르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넘어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을 포함하게 돼버렸고 엔드게임이 그것을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죠. 이번 세기에 이런 흐름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닙니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에서 이미 그러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죠. 우리가 해리 포터의 이야기를 즐기고 기다렸던 건 마법 세계 이야기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헤르미온느와 해리를 마치 내가 키운 것 같은 부모의 감정이 포함된 애정도 한몫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엔드게임을 통한 인피니티 사가의 마무리에 열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그 스토리 때문이 아닙니다.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성장했거나 최소한 함께 변해왔던 토니 스타크라는 사람의 죽음과, 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힘겹게 이어가는 우리 자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스티브 로저스라는 사람의 은퇴를 충분히 감동적이고 예의 바르게 마무리해줬다는 점에 팬들이 감격하는 것이죠.

뜬금없지만 이 글을 쓰면서 ‘토이’의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났습니다. 연인을 떠나보낸 철이 덜든 남자아이들의 자기 연민이 듬뿍 담긴 이 노래의 가사처럼 엔드게임은 11년간 사랑했던 나의 영웅들을 뜨겁게 보내는 과정인 겁니다. 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낏 보거나 10년 정도 지나서 곰곰이 돌아보면 아주아주 유치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테지만 지금은 이 이별을 즐길 타이밍인 것이죠. 잘 가, 캡틴. 잘 가, 아이언맨. 그동안 즐거웠어.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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