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들이 본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정치
[기고] 정의당 내 자발적 청년 부대표 공개경선 네 명 후보들의 감상평
    2019년 05월 16일 09: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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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에 눈에 띨 만한 다큐멘터리 작품이 등장했다. 바로 레이첼 리어스 감독의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원제: Knock down the House)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최근 미국의 주류 정치를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를 비롯한 평범한 여성 정치인들의 정치인 데뷔기를 다룬다. 이들은 2018년 봄, 미국의 풀뿌리 선거운동에서 시작해 공화당-민주당 양당제 하에서 기득권 중심으로 작동되었던 선거 매커니즘을 뒤흔들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정의당 내 청년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해 진행 중인 청년부대표 출마자 선출 공개경선 행사에서는 4명의 후보들에게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주문했다. 후보들은 바쁜 일정 속에서 시간을 쪼개 영화에 대한 각자의 감상을 보내주었다. 이를 하나로 모아 게시하고자 한다. 한 편의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후보들이 가진 생각 역시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누가 한국 진보정당의 청년정치를 책임지고 리드할 ‘미래의 AOC’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역시 행복한 상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아래 글의 순서는 글 작성순으로 배치한 것임)

왼쪽부터 왕복근, 박예휘, 백상진, 이효성 후보

이효성이 본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AOC)는 자신의 정체성을 탁월하게 정치화한다. 여성 청년이고 이 지역 출신(뉴욕 브롱크스)이며 노동자임을 꾸준히 이야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누구를 만나든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자신과 같은 보통의 브롱크스 서민들에게 자부심을 준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와 경험이 왜 브롱크스에, 왜 미국 정치권에 필요한지를 구체적이고도 탁월하게 설득해낸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풀뿌리 지역조직과 지역활동이다. AOC는 “정의 민주당원(Justice Democrats)과 새로운 국회”라는 풀뿌리 조직과 함께했다. 조 앤 플로이드를 비롯한 여러 풀뿌리 지역 활동가와 함께 선거를 치렀다. 그 자신도 오래 전부터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한 사람이다.

풀뿌리 지역조직화는 한국의 진보정당에게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보수양당은 집권의 힘을 이용해서 오래전부터 관변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지역 카르텔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지역조직화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협, 마을도서관, 민중의 집, 마을미디어 등 보수세력과는 다른 진보정당의 지역조직화 활동을 진행 중이다. 풀뿌리지역조직을 기반으로 한 AOC의 약진과 같은 사례가 한국의 진보정치사에도 나오길 기대해 본다.”

왕복근이 본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우리는 정치를 ‘뭔가 거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정치는 눈앞에 놓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권력은 더 낮은 곳을 향해야 하고, 권력을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는가가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이 기성의 남성정치인과 싸움을 시작한 4명의 여성정치인을 보여주면서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지역에서 자신이 서있는 자리에서 어떤 정치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지역의 사람들마저 정치는 서열이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정치는 거리에서 자신이 들었고, 자신이 서있던 바로 그 공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여성으로서 자신을 드러내며 그들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영화는 담담히 드러냈다.

2020년 어느새 새로운 총선이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는 또 다시 ‘청년정치’란 말을 듣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청년정치가 단순히 ‘청년’이 하는 정치가 아니길 바란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삶을 이야기하는 정치가 ‘청년정치’여야 한다. 평균 200만원이 안 되는 임금에 항의하고, 월 47만원 정도의 월세를 낮춰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여성청년을 위해 노동현장에서 임금과 조건의 차별을 시정하라고 말하며, 거리에서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성소수자청년에게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청년에게 도시에서 이동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그런 정치여야 한다.

아마도 그들 중 누군가는 승리할 것이고, 누군가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 싸움의 기록이 남겨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영화는 4명의 여성정치인을 통해 말한다. 그런 식으로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간다.”

박예휘가 본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영화 속에는 네 명의 후보가 등장한다. 그 중 코르테스의 선거 결과는 너무도 유명해 익히 알고 있었다. 자연히 선거 승리의 울컥함을 안겨주는 다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들이 보여준 새로움만큼이나, 다큐는 예상 밖의 장면에서 내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먹먹함과 환희라고 할까 이 여성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깨달음을 주었다. 절망 속에서도 계속 용기를 말하는 이들의 표정을 보며 몸의 깊은 곳에서부터 힘이 차올랐다.

적당한 전투, 예상 가능한 어려움이려니 했다. 당차고 새로운 주장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차근차근 표를 얻어나갔을 줄 알았다. 내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상황은 한국에서 느끼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사람들은 낡은 정치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어디선가 나타난 이 여성들에게 쉽게 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현역 의원의 지능적인 공격과 자신들을 둘러싼 숱한 오해가 있었다. 그들은 때론 눈물을 흘렸고 때로 낙담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분명하고도 꾸준했으며 진솔하고 당당했다. 그렇게 당차게 선거운동을 해놓고도 투표 결과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오카시오를 보며 우습게도 ‘다 똑같구나.’ 싶었다. 승리를 확인하는 그를 보며 나도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알고 있어도 그렇게 전율이 일더라.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다큐 제목처럼 이들 모두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이다. 사람들을 위해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점 국회에 늘어나길 바란다. 오카시오를 비롯한 여성 후보들이 보여준 분명함과 꾸준함. 진솔함과 당당함. 나는 여기에 우리의 해법이 있다고 믿는다.”

백상진이 본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한 건 아니지만, 공직선거 출마로 ‘정치인으로서의 삶이 확정된’ 순간부터는 어떤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계속 고민하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말로부터 저는 몇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좋은 정치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간략하지만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 싶다.

첫 번째, 정치인에게는 자신이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필요하고, 그것을 명분이라고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치 판도를 재정의하려고 출마하는 것이다.” 정말 멋있다. 어쨌든 진보정치라는 것은 세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고, 그것이 그들의 정치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두 번째, ‘권력에 대한 의지’다. “주장만 하려고 출마하는 게 아닙니다. 이기려고 출마하는 것입니다.” 맞다. 세상에 아름다운 패배라는 것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는 승리하지 않으면 영향력을 획득할 수 없는 게임이다. 권력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좋은 명분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

세 번째, ‘낙관’이다. “제가 보통의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아주 오래 전에 이 선거를 포기했을 거에요.” 남들이 보기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치인은 가능성을 재는 데 그치지 않고,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어려운 일이라도 돌파할 수 있다는 낙관이 없다면 스스로부터가 정치활동을 이어 나가기 힘들 것이다.

네 번째, 기반이다.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과 항상 대화하는 거예요. 우리 지역구의 주민들과요. 이게 바로 풀뿌리 선거운동의 핵심이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서 있는 곳,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명확하지 않다면 정치인의 활동은 중심을 잃게 된다. 어느 순간에는 개인적 결단이 필요하기도 하겠지만, 좋은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신이 선 곳에서 자신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실현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좋은 정치인이 되려면 이보다 많은 요소들이 필요할 것이다. 네 여성들의 좋은 정치인을 향한 여정을 지켜보면서, 거리를 헤매며 자신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우리의 정치활동이 떠올랐다. 또한 ‘나의’ 정치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정치활동이라 말할 수 있어 다행이다. 앞으로도 땅에 발 딛고, 일행과 굳게 손잡고, 우리가 꿈꾸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권력의 중심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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