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갛게, 더 푸르게'는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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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1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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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진보정당이라! 진심으로 축하한다. 성공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출범을 축하하면서 출범식장을 꾸밀 꽃다발을 보내지 못 하였으니 대신에 아무 쓸데도 없는 말 몇 마디를 선물하려 한다.

더 빨갛게 더 푸르게?

먼저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라는 슬로건은 좀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즉 ‘어떤’ 진보신당을 할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하라는 말이다. 과연 ‘보다 적색으로’ 가면서 ‘보다 녹색으로’ 갈 수는 있는가?

지금까지 땅 위에 존재했던 진보정당은 크게 세 종류였다. 먼저 코민테른류의 진보정당이 있다.(제4인터내셔널도 그 아류에 불과하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진보정당이 있다.

세 번째로 유럽에서 80년대 이후 등장한 ‘신좌파’ 진보정당이 있다. 그것이 곧 녹색당이다. 녹색당의 입장에서 보면 (독일)사민당, (영국)노동당, (프랑스)사회당은 죄다 구좌파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구구좌파다.

20년대의 공산당과 50년대의 사민당과 80년대의 녹색당은 사회적 토대가 다르다. 다만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한 자본주의 사회경제와 정치적 후진성으로 인해 세 가지 진보정당의 태동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라도 ‘보다 적색으로!’라는 슬로건 속에서 개량주의, 합법주의, 사민주의가 아닌 이른바 ‘혁명적인’ 진보정당을 지향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보다 녹색으로!’라는 슬로건과 공존, 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관념적인 구호, 현실에선 불가능

‘보다 적색으로!’라는 슬로건 속에서 민주노동당과 비교하여 보다 선명한 계급성과 진보성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도 ‘보다 녹색으로!’와 병립은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머리 속에서는 다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와 같은 슬로건은 쉽게 말해서 ‘사기’다. 적록동맹도 언급되는 모양인데 동맹은 다른 당끼리 하는 것이다.

녹색당의 사회적 토대는 이미 존재한다. 50년, 100년을 내다보고 한다면, 총선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녹색당 할 사람은 하시라! 설사 정치 구도가 미국식 양당 체제로 가더라도 ‘신좌파’ 녹색당은 존재할 수 있다.

‘보다 녹색으로!’ 나아가면 거기에 ‘보다 흑색으로!’가 있다. 푸른 숲은 짙어지면 흑림이 되니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다. 녹색 생태주의는 흑색 무정부주의와 친화성이 있지만 적색 사회주의와는 아니다.

공산당 하고 싶은 사람도 하시라! 설령 이번 총선에 참여하지 못 하더라도 상관없다. 멀리보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기를 내다보고 준비하라. ‘보다 적색으로!’ 과감하게 한 걸음 나아가라.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시라

다만 노동당, 사민당을 하고 싶은 사람은 민주노동당에 남으시라. 아니면 조만간에 민주노동당이 제안할 통합진보신당에 참여하라. 손님이 많다고, 손님들이 술 취해서 ‘오버’ 한다고 주인이 집을 나가는 일은 없다.

혹시 일심회 사건 당시에 가만히 입 다물고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가? 2004년 5월 중앙위원회에서 지구당을 폐지한 신정당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결의한 자신은? 그대들이야 말로 손님에게 술을 권했다.

노동당, 사민당의 운명은 자유/보수 양당 체제의 일각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양당의 하나로 올라서서 진보/보수 양당체제로 바꾸지 못하면 조만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녹색당의 운명은 다르니 여유가 있다.

노동당, 사민당의 운명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한국의 정치 문화와 선거 제도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길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녹색당’을 하시라!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는 관념적인 슬로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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