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든든히 챙겨먹고
자매님들, 또 싸우러 갑시다
[밥하는 노동의 기록] 나, 사람이다
    2019년 05월 14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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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어머니가 내게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같은 학년 선생님 중에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있었는데 꿈에 그 선생님의 반지를 끼어보고는 돌려주지 않았다 했다. 그게 아이 가질 꿈이었을지도 몰라, 어머니가 말했다. 태몽은 누구 것을 빼앗아 오는 꿈이 좋대, 왜냐면 그 선생님은 내내 아이를 못 가졌거든. 내가 물었다. 그 때 하나 낳지 왜 안 낳았어요? 어머니가 답했다. 셋째잖아. 셋째는 의료보험도 안 해 줄 때였다고.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하다가,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다가 둘도 많다며 엄마건강 아이건강 적게 낳아 밝은 생활하자던 것이 고작 삼십 년 전이었는데 이제는 여자들이 제 몸 편하자고 애를 안 낳는다며 난리를 친다. 국가의 정책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그 정책 안에서 여성들은 한결같이 그저 ‘자궁’이었다. 국가는 우리의 장기 중 하나를 국가의 필요에 의해 사용했다.

자궁 말고도 여성들은 오랫동안 부위 별로 나뉘어 팔렸다. ‘미인의 기준’이라 불리는 것들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으나 사라지지 않았다. 세 가지가 희고 고아야 하니 피부, 이, 손이고 세 가지가 흑단 같아야 하니 머리카락, 눈, 눈썹이고 세 가지가 붉어야 하니 입술, 손톱, 뺨이고 세 가지가 아담해야 하니 귀, 이, 턱이고 세 가지가 적당한 간격으로 넓어야 하니 미간, 가슴, 이마이고 세 가지가 가늘어야 하니 허리, 손가락, 발이고 세 가지가 애처로워야 하니 손바닥, 발목, 코이고 세 가지가 도톰해야 하니 입술, 엉덩이, 팔이고 세 가지가 훤칠해야 하니 목, 머리카락, 팔이로다 하던 시절을 지나 유두와 성기의 색깔까지 잣대에 올랐다. 유일하게 팔리지 않는 부위는 뇌였다.

여성들은 인간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다. 김치, 된장, 골뱅이··· 여성들은 그저 ‘따먹히는’ 존재였다. 남성들은 자주 모여 앉아 여성들을 두고 ‘맛’을 논하며 짓까불었다. 인간이 아니라 음식이었을 뿐이니 누군가 대화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 농담에 유난스럽다며 새겨듣지 않았다. 남대생들이 카톡방에서 저지른 성희롱 사건에 대해 쓴 사과문의 조악함을 보면서 말로 하는 성희롱 따위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사과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은 결국 바뀔 것이다. 아들을 못 낳는다고 쫓겨나거나 생판 남인 남성이 나의 호주로 이름을 올리던 때가 지나가 버린 것처럼 여성을 자궁으로만 보거나 품평의 대상으로만 보는 지금의 시절도 지나가버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혐오는 공기와도 같아서 틈만 나면 스며드는 것이니 우리는 이 이후에도 새로운 혐오와 다시금 마주할 것이다. 아직도 여성들은 화장을 해야 일할 수 있고 자신의 계획에도 없는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취업에서 배제된다. 단톡방은 더 은밀해질 것이고 차별은 세심해질 것이며 갈라치기는 교묘해질 것이다. 우리는 싸우지만 어느 한때, 곤하여 지쳐 그냥 아무렇게나 앉아 세상이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고만 싶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모든 자매님들, 속 든든하게 챙겨 먹고 또 싸우러 가십시다. 나도 사람이다.

쑥과 마늘을 넣은 파스타, 일명 사람 되는 파스타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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