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최대 성산운전학원 노사 갈등,
    그 진실은?···노조 혐오와 불신이 원인
    임금체불 문제 제기 후 직원 사찰에 블랙리스트 등
        2019년 05월 13일 09: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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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성산자동차운전전문학원(성산운전학원)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강생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다. 얼마 전 이 회사는 폐업을 선언했다. 노사 교섭 중 벌어진 일이다. 회사의 말 한 마디에 학원 강사들은 해고를 걱정하는 처지다. 안팎으론 ‘노사 갈등’이 그 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전국 1위 운전학원’으로 꼽히는 성산운전학원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성산운전학원의 노사문제는 <조선일보> 지난 4월 13일자 ‘기습집회… 약점 고발… 민노총의 전국 1위 운전학원 접수 작전?’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 소개됐다. <조선>은 “노조는 설립과 함께 사측에 임금 인상 등 50여 개의 요구 사항을 쏟아냈다”면서 이를 관철하기 위해 “학원 내에서 미신고 집회를 하고 투쟁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근무”하는 등 “각종 압박 전술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의 지시를 받아 전형적인 압박 전술까지 쓰는 것 아니냐”는 회사 측의 주장을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 관련 뉴스 캡처

    성산운전학원엔 무기계약직 기능강사 40여명을 중심으로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생겼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국자동차운전학원지부 성산자동차운전전문학원지회(성산운전학원지회)다. 임금체불 문제 제기 후 시작된 회사의 보복과 직원 사찰, 블랙리스트 작성 등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일부 강사들이 합심해 만들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강사들은 5년 상한선을 둔 호봉(1만원), 노부모 수당(1만원), 자격수당(5만원), 명절 상여금 정도가 임금과 연관된 요구안일 뿐 애초에 기본급 인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노조에 따르면, 성산운전학원엔 성수기인 6개월은 2천여 명, 나머지 비수기 때에도 1천 명 정도가 등록한다. 어림잡아 연평균 1만 5천명이 이 학원을 거쳐 운전면허를 취득한다는 것. 수강생이 운전면허를 손에 쥐기까지 1인당 100만 원이 든다고 가정하면 ‘1백억 8천만 원’ 정도가 이 학원의 총매출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조선>은 성산운전학원을 “연평균 2만~3만여 명이 여기서 면허를 취득한다”며 “전국 1위 운전학원”이라고 소개했다. 노조가 낸 연평균 수강생 추정치보다도 많다. 그런데도 <조선>은 “노조 요구를 수용하면 문 닫는 수밖에 없다”는 회사의 앓는 소리를 그대로 인용 보도했다. 기사는 ‘노조가 생기니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걸까.

    체불임금 지급 요구하니 직원 사찰에 블랙리스트까지?

    김인욱 성산운전학원지회장은 이 학원에서만 13년간 근무한 베테랑 강사다. 그런 그가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한 계기는 임금체불 문제를 제기한 이후 회사의 대응 때문이다. 김 지회장은 회사가 최저시급을 주면서도 50분 근무 후 10분 교육 준비 시간에 대한 임금을 미지급하고 있다며 성산학원의 실소유주이자 대표인 최수군 씨(이하 최수군 회장)를 고소해 승소했다.

    이후 2018년 1월 말, 성산운전학원 회사 측은 김 지회장을 대기발령 시켰다. 해고나 다름없었다. 그는 즉각 고용노동부에 알렸고 5월 말 복직할 수 있었다.

    회사는 김 지회장 동향 파악,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김 지회장과 함께하는 강사 12명에게 배차 등 근무에 불이익을 줬고, 모 관리자는 강사들을 모아놓고 김 지회장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 지회장과 뜻을 함께 하는 강사들을 색출하고, 그 ‘리스트’를 만들었다. 김 지회장의 동향보고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김 지회장에게 와서 “회사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 “미안하다”며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김 지회장은 자신의 동향을 파악하고 소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관리자 1명을, 성산운전학원의 자매회사인 노원운전학원으로 발령내달라고 요구했다. 도저히 상사로 대우하며 함께 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는 그 관리자를 선임차장에서 대리로 발령내며 제 발로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다. <조선>이 기사를 통해 노조가 “특정 직원을 해고하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밝힌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회사는 그해 10월, 전 직원에게 1인당 200여만 원의 체불임금을 지급했다. 김 지회장은 “회사에서 미지급한 임금을 줬고 이 때까지만 해도 다 잘 될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미지급한 임금을 준 후로, 매년 관행적으로 50~70만원 씩 주던 명절 상여금과 무상으로 지급하던 강사 유니폼도 주지 않았다. 우수사원 표창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김 지회장은 “알아봤는데 회사가 직원들한테 돈(체불임금) 다 주고 나서 (회사 간부들이) 최수군 회장한테 혼났다더라. ‘지는 싸움을 해서 망신을 당하냐’면서. 그래서 아무것도 지급을 안 한 거다. 안되겠다 싶어서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교섭으로 타협점 찾자던 회사, 7차까지 교섭안도 안 내
    노조 요구도 대부분 거부…형식적 교섭으로 노사갈등 원인 제공

    2018년 12월 10월, 회사에 노조 설립을 통보했다. 바로 다음 날, 김문철 성산운전학원 사장은 중식 시간에 전 직원을 소집해 철도시설공단과의 임대차 종료를 이유로 3개월 후 폐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성산운전학원의 부지는 철도시설공단 소유로 매년 수의계약을 맺고 있다.

    <조선>은 노조가 “50여개의 요구를 쏟아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노조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그 흔한 임금인상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첫 교섭에서 노조는 우선 다른 운전학원 중 노조가 있는 곳의 단체협약 내용을 정리해 회사에 보여줬다. 성산운전학원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회사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노사가 함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보자는 말도 했다. <조선>이 말한 ‘노조의 50여개 요구안’이 바로 이 내용이다.

    노조 요구안은 이렇다. 1년에 3차례 주면 주는 대로 받았던 명절 등의 ‘떡값’ 금액을 정해 100만원씩 지급, 자격수당 5만원, 노부모 가족수당 1인 1만원, 호봉 1년에 1만원, 교통비 등 5만원이다. 특히 1년차 강사와 10년차 강사 임금의 차이를 두기 위한 호봉, 또 자격수당은 기존에 있다가 폐지된 제도였다. 더군다나 노조가 제안한 호봉은 상한선을 둬 최대 5년차까지만 적용해 10년차여도, 20년차여도 호봉 5만원에서 막히는 내용이었다. 연 평균 1만 5천명의 수강생을 받고 100억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기에, 노조는 이러한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는 노부모 수당 1만원 지급을 빼곤 모두 거부했다. 지금까지 7차례 교섭을 했지만 회사는 변변한 회사의 교섭안 하나 내놓지 않았다. 교섭대표인 이정원 자동차운전학원지부장은 “성산운전학원은 노조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까지 형식적 교섭으로 시간 끌기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사갈등의 시작이었다.

    성산운전학원의 ‘뒤통수 치기’
    회사, 교섭 중 노측 교섭대표 고소하면서
    노사 진흙탕 싸움으로…노사 불신의 시작

    교섭 중 노사 이견과 갈등은 흔한 풍경이다. 노사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완전히 다른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사 한 쪽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깨뜨릴 만한 어떠한 행위를 할 때 발생한다. 성산운전학원 노사 갈등은 회사가 제기한 고소·고발이 불씨가 됐다.

    김문철 원장 등이 사측 교섭위원으로 나오지만, 학원 운영에 실권은 최수군 회장에게 있다. 교섭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조는 성실교섭 등을 촉구하며 3차 교섭을 앞둔 1월 29일, 중식시간에 15분간 약식 집회를 했다. 학원 셔틀버스가 수강생을 데리러 간 시간에 비어있는 주차장 자리에서 이뤄졌다. 학원 수업도 모두 끝난 시간이라 학원엔 상담 등으로 방문한 사람 10여명 정도만 오갔다.

    <조선>은 노조의 집회 등이 학원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성산학원 노조 역시 2~3월에 투쟁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근무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이 학원 수강생은 2035명이었으나 2월에는 1125명으로 반 토막 났다”고 밝혔다. 1월은 겨울방학, 졸업 등으로 운전학원 최대 성수기인 반면, 2월은 설 연휴 등 인해 매해 수강생이 현격하게 주는 시기다.

    심지어 집회는 김문철 사장의 방해로 제대로 진행도 못했다. 김문철 사장은 이날 집회가 시작하자마 현장에 등장했다. 집회 영상을 보면, 김문철 사장은 집회 사회자인 이정원 지부장 앞을 막아서고 신고를 하지 않은 “불법집회”, “업무방해” 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집회는 시작 3분도 안 돼서 중단과 진행을 반복했다. 노조에 따르면, 회사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중식집회의 경우 노조법상 신고 없이 진행돼도 불법이 아니라며 돌아갔다. 그러자 김문철 원장은 집회에 항의하는 중에 이정원 지부장과 김인욱 지회장 등 3명이 자신을 폭행했다며 고소했다.

    회사의 뒤통수치기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노조는 3, 4차 교섭까지도 김문철 사장이 조합원 등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소장을 보고 이를 알게 된 노조가 항의하자, 회사는 김문철 사장 개인이 한 고소라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며칠 후 회사는 회사 명의로 불법집회 등으로 노동부에 노조를 고소했고, 최수군 회장은 이후 교섭대표인 이정원 지부장에 대해 성산운전학원 내 출입금지가처분을 신청을 냈다. 심지어 계약직 신분의 조합원을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노조에 대한 회사의 전쟁선포였다. 노조는 5차 교섭에서 계약직 조합원의 해고 철회를 요구했다. 회사는 거부했고 노조는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회사의 교섭안 미제시, 교섭 해태, 집회하자 폭행으로 고소, 교섭대표에 대한 학원 출입금지 처분.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맞설 방법이 없었다. 이에 노조도 강사들을 상대로 벌인 강제사역을 한 것에 대해 노동부에 회사를 고발했다.

    <조선>은 노조가 5차 교섭 결렬 후 “터무니없는 트집이거나 무리한 고발”을 했다는 성산운전학원 측의 주장을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노조가 고발한 건은 강제사역에 관한 부당노동행위 1건이 전부다. 나머지는 마포구청에 회사 식당 위생 문제 등에 대한 민원제기 4건 정도다. 노조의 민원으로 구청에서 학원 식당에 위생점검을 나오자 회사는 식당을 폐쇄하고 식당 직원 2명도 해고해버렸다.

    강사진 등 학원 직원들은 사무실에 모여 컵라면이나 빵 등으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그마저 자리가 없으면 운전학원 차량에 앉아 김밥이나 도시락을 무릎에 올려놓고 끼니를 때우고 있는 형편이다. 식사 제공을 조건으로 입사했던 강사진들은 항의했지만 회사는 식당 문을 다시 열지 않고 있다.

    컵라면, 도시락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강사들 모습(사진=성산운전학원노조)

    회장님은 노조를 싫어해?
    ‘학원 살리자’ 한겨울 시위도 나섰는데…
    비수기 되면 무더기 해고, 노조 생기니 폐업 선언

    회사는 노조가 생긴 후 빈번하게 폐업을 언급하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회사는 “경영상태 악화로 폐업을 할 것”이라며 모두 거부해 결렬됐다. 교섭에서도 “철도청에서 임대 받는 학원이라 어렵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회사는 노조의 요구에도 단 한 번도 정확한 임대료를 알려주지 않았다. 김 지회장은 “13년 간 임대료로 돈이 얼마나 나가는지 본 적이 없다. 노조가 생기고 12월 말에도 재계약을 했는데 교섭에서 ‘임대료가 얼마나 인상됐느냐’고 물어봐도 답해주지 않고 계약서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가 노조를 없애기 위해 폐업으로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정원 지부장은 “학원 사장 말로는 ‘(최수군) 회장이 가족회의를 했는데 노조를 만들면 (학원을) 폐업을 하겠다’고 했다더라”고 전했다.

    노조 만들었다고 폐업한다는 회사가 괘씸한 이유는 또 있다. 2013년, 마포구청과 철도청은 성산운전학원 부지를 비롯해 그 일대에 경의선숲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당장 학원이 사라지면 강사들도 밥줄도 끊기지만 더 아쉬운 쪽은 “연평균 2~3만명의 수강생”을 받으며 엄청난 수익을 냈던 학원 측이었다. 강사들은 학원의 지시에 따라 마포구청과 철도청, 국회, 세종시, 당시 마포 지역구 의원이었던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무실 등에서 집회, 1인 시위, 점거농성 등 온갖 항의행동을 벌였다. 학원은 강사들에게 “쫓겨나지 않으려면 해야 한다”고 했다. 1인 시위 피켓도 모두 회사에서 만들어 줬다.

    김 지회장은 “(학원을 지키려고) 정말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다했다. 해마다 (철도청과 임대) 재계약을 할 때마다 (집회, 1인 시위, 점거 농성까지) 했다”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임대료 적게 내고, 최저임금 받는 직원들이 월급에 불만 못 갖게 하려고 한 것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강사들은 지난해 말에도 ‘마포구청장 물러가라’를 외치며 한 겨울 시위를 했다. 학원은 이번에도 철도청과 부지 임대에 대한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학원을 지키기 위해 2013년부터 맹추위도 마다 않고 시위에 나섰던 강사들은 현재 학원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김 지회장은 “학원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비수기 때 강사들 20명씩은 다 해고해왔다.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 혼자였던 싸움이 12명으로, 노조가 생긴 후엔 27명, 현재는 43명까지 늘었다. 노사갈등은 더 극으로 치닫고 있다. 노조에 원인이 있지 않다. 학원 소유주인 최수군 회장의 뿌리 깊은 노조 혐오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직원들한테 돈(체불임금) 다 주고 나서 (회사 간부들이) 최수군 회장한테 혼났다더라”, “노조를 만들면 (학원을) 폐업을 하겠다고 했다” 등 학원 안팎을 떠도는 최수군 회장의 말이나 식당 폐쇄, 시위 동원, 비수기 무더기 해고 등의 사례는 강사 노동자를 수익창출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 회사의 노조혐오는 대게 사용자의 노동자 천대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다. 다음 편 기사에선 개인 소유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등 강사들을 노예 취급한 최수군 회장의 ‘갑질’ 문제를 다룬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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