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폭력의 마지막 희생자이기를···"
    [책소개] 『더 라스트 걸』(나디아 무라드/ 북트리거)
        2019년 05월 04일 11: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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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99번째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나디아 무라드는 2014년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이은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이기도 하다. 전 세계 38개국에 번역된 『THE LAST GIRL』에는 IS 성 노예에서 탈출해,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여성을 위한 인권 대변인으로 거듭난 나디아 무라드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이야기는 나디아 무라드가 살았던 이라크 야지디 마을 코초에서 출발한다. 코초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누렸으며 늘 함께였다. 그러던 2014년 8월, 수니파 무장 단체 IS가 마을을 포위하면서, 이들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IS는 광기와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IS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은 집단 학살되거나 강간당했다. 나디아 무라드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디아의 오빠 여섯 명과 어머니는 죽임을 당했고, 나디아는 IS 대원의 성 노예가 되었다. 나디아는 IS가 시장 혹은 페이스북을 통해 팔아넘긴 수천 명의 야지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IS 대원에서 또다시 IS 대원에게 넘겨지며 반복된 폭력을 겪었다.

    책에는 나디아 무라드가 맞닥뜨린 끔찍한 사건과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이 담겨 있다. PART 1에서는 평화로왔던 코초에서의 일상이 IS의 등장과 함께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밝히고, PART 2에서는 나디아가 성 노예로 팔려 나가며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PART 3에서는 한 수니파 아랍 가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하게 된 과정과 탈출 이후의 삶이 담겨 있다.

    담담한 서술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나디아가 겪은 고통이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의 목소리는 인권을 유린당한 모든 여성의 목소리이며, 모든 난민의 목소리이다. 나디아는 ‘성폭행 피해자’, ‘노예’, ‘난민’이라는 꼬리표를 거부하고, 이제 ‘생존자’, ‘여성 인권의 대변인’, ‘노벨 평화상 수상자’라는 새로운 꼬리표를 만들어 냈다. 평화를 향한 나디아 무라드의 목소리는 이 세상에 더욱더 크게 울려 퍼질 것이다.

    왜 그곳의 폭력에는 눈을 감는가?
    우리가 외면한 전쟁과 폭력을 증언하다!

    2015년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일어난 테러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IS에 의해 자행된 자살 폭탄 및 대량 총격 사건으로, 최소 13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 일어난 테러에 모두 경악했으며, 피해자들을 향한 애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이라크 소수 부족 야지디 중 수천 명이 집단 학살되고 성 노예로 팔렸다는 사실은 그대로 묻혀 버렸다. 이라크 내 테러는 그저 그곳의 일상으로 치부되는 듯했다. 2018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나디아 무라드는 책을 통해 야지디족이 겪은 집단 학살과 IS의 만행을 낱낱이 고발하고 생생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IS 혹은 ISIS라고 불리는 급진 수니파 무장 단체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급성장했다. 외부에서 보면 IS는 갑자기 세력을 키운 괴물 같지만, 속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나디아 무라드는 이 책을 통해 IS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이라크가 중동의 화약고가 되었는지 짚는다. 책은 우리가 잘 몰랐거나, 알면서도 외면해 왔던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 바로 21세기에 수천 명이 집단 학살되고 성 노예로 팔려 나가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IS 성 노예였다.”

    책은 야지디 공동체를 파멸로 몰았던 IS의 잔학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성인 남자와 나이 든 여성은 집단 학살되었고, 남자아이는 IS에게 세뇌당했으며, 나디아와 같은 소녀들은 성 노예로 팔려 나갔다. 나디아 무라드도 성 노예(사비야)가 되어, 강간과 폭행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 책에는 나디아에게 가해진 강간과 폭행, 그리고 목숨을 건 두 번의 탈출 과정이 담겨 있다. 모술에 끌려가서 IS 고위 인사의 사비야가 된 나디아는 탈출 시도에 실패해, 경비병 여러 명에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윤간을 당하기도 한다. 나디아는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경험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지금껏 외면해 왔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디아 무라드는 IS가 어떻게 야지디를 무력화시키고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이면에는 어떤 외부적 요인이 있었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했고, 시아파 득세와 쿠르드족의 세력 확장 등 이라크의 권력 지형도에 변화가 생겼다. 나디아는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족 사이에서 왜 소수 부족 야지디가 희생양이 되었는지 국내외 정세 변화와 함께 짚어 본다. 나디아는 개인이 겪은 비극을 이라크 역사 및 세계정세와 관련된 더욱 커다란 흐름 안에 놓았다.

    이 세상 고통받는 모든 여성을 위한 이야기,
    그리고 ‘방관자’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

    나디아 무라드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을 낱낱이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집단 학살과 강간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까지, 전쟁으로 인한 모든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겪은 이가 그 혼자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나디아는 자신이 “르완다 여성들과 공통점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이어서 “전쟁 범죄의 희생자라는 최악의 일면에서 그들과 공통점을 갖는다”고 서술한다. 집단 학살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는 비단 야지디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1990년대 르완다 내전에서의 성폭력, 최근 미얀마 소수 민족 로힝야족 여성에 대한 강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광범위하게 발생해 왔다. 세계 곳곳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가 반복되고 전시 성폭력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나디아의 외침은 더욱 절실하다. 그의 말처럼 책을 통해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하는 사연’은 ‘테러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가 되었다.

    나디아 무라드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은 방관하는 자들에 대한 절실한 외침이다. “인간이라면 어떻게 수천 명의 야지디가 성 노예로 팔리고 몸이 부서지도록 강간당하는 것을 방관하며 지켜볼 수 있을까?” 나디아는 이렇게 묻는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는 것은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처럼 힘겹고 답답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나디아가 모술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나디아의 고통을 이해한 수니파 아랍인 덕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부터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나디아 무라드는 책에서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세상 모든 폭력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출발점은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이다.

    정의와 가해자 처벌만이
    존엄성을 되살리는 유일한 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나디아 무라드, 2018 노벨 평화상 시상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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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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