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진보정당에게 외교상대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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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28일 11:2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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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면 현재 해당 지역 전문가로 활동 중인 박정훈씨는 조승수씨가 북을 왕조집단으로 부르는 것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잘못된 발언이었다고 말합니다.(왕조집단-북핵 자위권 발언 왜 문제인가. <레디앙> 1월 26일) 물론 듣는 북한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겁니다. 조승수씨는 이제 북한 방문하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겁니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해악

    그러나 박정훈씨는 남한에서의 자민통 활동가들과 노동계나 농민 운동가들에게 북한식 사회주의의 해악이 얼마나 큰지 헤아려 보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와 북한식 사회주의를 뛰어넘지 않고는 남한에서 진보정당은 서구 공산당이 몰락한 것과 똑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 북한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만도 수백 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구는 학자들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운동가라면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에 대한 견해는 그의 노선을 결정하게 됩니다.

    저는 유럽에서 살면서 가끔 동구권이 무너지기 전 공산당 활동을 했던 사람을 만나거나 언론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소련이 무너지기 전에는 노동자들의 삶이 지금보다 나았다고 얘기하면서 스탈린이 실수한 건 있지만 소련을 단시일 내에 미국과 맞서는 강대국으로 만든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북한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북한이 60~70년대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경제 수준이 앞선 나라였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경제수준이 앞선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경제수준, 맑스의 개념을 빌리자면 생산력이 앞선 것이 과연 보다 나은 체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국민들에게 무한한 희생을 강요하며 경제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국민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결국은 정체하게 됩니다. 그것은 소련과 동구권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 당국을 신뢰할 수 있나

    북한은 동구권의 붕괴 후에 ‘우리식 사회주의’는 건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고 아직도 그 위기에서 회복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저는 북한 사회주의에 대해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아니지만, 1945년 2차대전이 끝난 후 북한의 사회주의 국가 수립과정을 보면서 북 역시 소련을 모델로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사회주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입니다. 북한 역시 소련처럼 농업을 집단화했고, 공업생산량을 당 중앙에서 지령으로 내렸습니다. 소위 국가 사회주의의 모델을 따른 것입니다.

    스탈린 시대에 많은 서구의 지식인들이 소련을 방문하여 그들이 이뤄놓은 경제시설을 참관하고 그들의 성과를 치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이 볼세비키 당의 주요 인사들을 숙청하고, 우크라이나의 식량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농민들을 아사상태로 몰아넣어 수백만 명을 죽게 한 것은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서구의 공산당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소련이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였습니다. 모두 제국주의 언론의 거짓선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진 후 그런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남한에서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을 비판하면 조갑제랑 똑같은 얘기를 한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90년대 중반의 식량난으로 2~3백만 명은 죽었을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터무니 없는 거짓선전이라고 하고 조선일보는 탈북자들이 보고 들은 거라고 말합니다. 진실은 두 주장의 중간쯤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당원들이 북한 당국의 말을 신뢰한다면 냉전시대의 공산당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동구의 붕괴와 함께 서구 공산당은 소멸했습니다.

    스탈린주의에 세습까지

    문제는 경제만이 아닙니다. 소련과 북한의 공통점은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에서도 똑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트로츠키와 지노비에프, 부하린 등 자신의 경쟁자들을 차례로 숙청하고 스탈린은 소련 공산당의 유일한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1930~40년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스탈린은 인민의 아버지가 됩니다. 우리가 북한 방송에서 본 것처럼 예쁜 어린 소녀가 어버이 수령님의 은혜를 노래하듯, 소련의 예쁜 소녀는 사회주의 조국의 어버이 수령 스탈린을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였습니다. 사람만 달랐지 내용은 똑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남파 간첩을 보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치다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국민하교 도덕시간에 배웠고, 선생님은 우리 어린이들도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고 삐라를 보면 학교로 가져와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소련에도 있습니다. 30년대 스탈린 정권은 농업집산화를 실시하였습니다만, 농민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 당시 파브릭이라는 한 소년이 농업집산화에 반대한 자기 아버지를 고발합니다.

    이 소년에게는 사회주의 조국의 안녕이 자기 아버지보다 중요했던 것이죠. 아버지는 처형 당하고, 그 후 소년 파브릭은 숲속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소년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후에 그의 가족의 말에 의하면 그 삼촌이 소년 파브릭을 죽였다고 합니다. 이념을 위해 아버지를 고발한 소년의 이야기는 스탈린 정권에 의해 공산주의의 영웅의 이야기로 선전됩니다. 소련 각지에서 이 소년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수학여행을 왔다고 합니다. 별로 생소한 이야기가 아니지요.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30년대 스탈린은 당의 불순분자들을 제거하고 당을 바로 세운다는 명목으로 수십만 명의 볼세비키 당원들을 숙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납니다.

    북한 사회주의 입장 없으면 남한 진보정당 살아남기 힘들어

    그럼 왜 스탈린의 거대한 테러가 가능했을까요? 한 소련 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볼세비키들은 혁명을 파괴하려는 반혁명분자들과 맞서기 위해서 테러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그래서 수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그들은 당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나 가장 믿던 동지가 숙청당해도 그들은 그걸 실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원래 볼세비키 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볼세비키들에게 당을 진리요 정의였다. 그러기에 당을 의심하는 것은 당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당은 무오류의 신화를 가진다. 당의 결정은 무조건 옳다. 부하린은 스탈린이 30년대 고참 볼세비키 70만 당원을 숙청하는 것에 찬성하였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숙청된 것은 단순한 실수일 뿐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학생운동권은 1990년만 해도 볼세비키 당을 남한의 변혁을 지도할 모델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 당은 바로 무오류의 당이고 당원은 혁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도 희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90년 사노맹은 바로 볼세비키 당을 본받으려고 했던 대표적인 조직이었지요. 90년대 초반 우리는 동구권의 몰락을 보면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동구권의 몰락을 보고 빗장을 잠갔고, 고난의 행군으로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내부의 정보를 철저히 감추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는 정보는 적고, 이에 대해서도 민주노동당 내의 자주파 동지들은 CIA나 국정원의 조작이라고 단칼에 부정해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정확한 얘기도 못하고 토론도 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얘기할 때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북한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나름의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면 남한의 진보정당은 살아 남기 힘듭니다.

    스탈린의 소련이 북한과 달랐던 한 가지는 후계자 문제입니다. 저는 북한의 후계체제는 남한 재벌의 후계체제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 인민들이 개인주의화 된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김일성 가계 중심의 역사 서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핏줄을 이어받은 김정일 장군에 대를 이어 충성하는 것은 봉건적인 정서에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자주적 진보정당’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북한을 왕조집단이라고 부를 만한 것입니다. 남한에서 자기 아들벌 되는 재벌 2세에게 깎듯이 충성하는 임원들이 이상해 보이지 않듯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혁명 1세대들 역시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남한의 정치에서는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출세한 2세 정치인은 드뭅니다. 재계는 한국정치가 문제라고 하지만, 2세의 세습만 놓고 볼 때 정치권이 오히려 앞서가는 면이 있습니다. 남한의 젊은 세대 역시 김일성 가계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를 보고는 코웃음을 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남한 사회는 유교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개인의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서구 근대주의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북을 왕조집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북에 대한 멸시보다는 정확한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식 사회주의는 진보정치세력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이제 이른바 ‘북조선의 혁명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당을 만들어 남한의 자주적인 진보정당 시대를 열어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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