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40년만의 산재보험제 손질 문제점과 대안
    By tathata
        2006년 07월 05일 07: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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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가 다치지 않고 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노동으로 ‘불가피하게’ 산업재해를 입었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고 다시 원직에 복직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ILO가 지난 2004년 각 국의 산재발생 수, 노동안전보건 관련 예산, 법제도 등을 종합평가한 ‘노동안전보건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동유럽, 중앙아시아보다 못한 47위에 머물렀다. 노동부가 지난 4월에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있으며, 1백여명의 노동자가 신체 장애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여전히 산업재해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이 1964년에 제정된 이후 산재보험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현재 노사정위원회의 ‘산재보험발전위원회’는 지난 40여년간 유지돼 오던 산재보험 제도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방안은 산재보험 보상기간의 수급기간과 수급률을 낮추는 방안으로 민주노총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건강단체들은 산재보험제도의 개편이 △선 치료, 후 정산 △심사평가원독립 △재활 치료를 통한 원직 복직 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업장의 안전관리 의무와 교육을 강화하여 산업재해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줄이고, 산재가 발생하더라도 재활치료를 강화하여 장기요양급여를 줄이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노동건강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가천의대 교수)에게 현 산재보험제도 개선논의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정부, 산재보험에 민간보험 성격 도입하나?"

    정부가 산재보험제도를 개정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임준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가천의대 교수)
     

    노동부 안팎의 요구가 있었다. 후진적인 요양급여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장해 판정 후 장해연금 지급 방식 등 보험 지급을 둘러싸고 다툼이 많았다. 근로복지공단이 장기요양 환자가 늘어나는 것에 따른 급여 지출이 증대되고, 요양급여와 휴업급여가 줄어들지 않는 등 재정악화의 문제도 지적됐다.

    이 가운데 재정문제는 산재보험을 연금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제기됐다. 산업재해 노동자들은 장해보상 일시금을 받기 보다는 장해연금을 통해 장기적으로 보상을 받기를 원한다.

    노동자들은 장해를 입으면 재취업이 어렵게 되는데 일시불로 받게 되면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기 어렵다. 따라서 장해연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타당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해연금이 늘어나면서 재정수급이 어려워졌다. 산재보험의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와 함께 평균임금의 상승으로 휴업급여, 장해급여의 수준도 높아졌다.

    한편으로는 노동부가 기업에게 산재보험료를 인상하지 않고, 오히려 인하한 점도 재정악화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노동부가 기업주의 부담을 완화하고 규제를 개혁한다는 목적으로 보험료율을 인하했는데, 보험료율을 올려야 할 시점에 반대로 내린 격이 된 것이다.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은 불안정 체계가 당연"

    재정안정화는 산재보험 제도 개편의 주된 이유가 되고 있다.

    경총은 산재보험요율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 외국과 단순비교를 하고 있다. 선진국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과 통합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적용범위 속에 산재로 구분되지 않는 것이 많다. 정부 또한 재정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급여를 줄이겠다는데, 이런 방향은 앞으로 산재보험에 민간부문의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현재의 산재보험인 사회보험이 민간보험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민간보험은 돈이 나가는 만큼 들어와야 이익이 된다. 하지만 사회보험은 ‘불안정 체계’다. 현재의 보험 부담을 일정하게 미래세대에 부담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보험 체계 아래서는 장해가 ‘발생할’ 부담금을 10년, 20년씩 다 계산해서 거둬들일 필요가 없다. 미래에 발생할 돈까지 미리 계산해서 보험료를 거둬들이는 것은 민간보험의 성격을 도입하겠다는 것인데, 이같은 견해는 노동부에서 공식채택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래 산재보험에 민간보험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점차적으로 ‘재정안정화’를 꾀해야 하는데, 현 상태를 유지하는 이상 이는 어렵게 된다. 민간보험을 도입하려면 미래의 보험금이 적립돼 있어야 하는데, 당장은 기업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렵다.

    이번 산재보험 개정안에 민간보험의 성격이 도입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휴업급여나 장해연금을 줄이는 방안으로 재정안정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재활치료 강화되면 장기요양 늘지 않는다"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적 성격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재원이 부족하다면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정부는 재원 부족 이유 가운데 하나로 산재 노동자의 장기요양 증가를 꼽고, 이런 현상이 도덕적 해이 때문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재활치료가 강화되고, 보장성이 높은 나라에서는 산재노동자의 요양기간이 늘어나지 않는다. 치료를 받고 재활이 제대로 이뤄져 직장과 사회로 복귀를 해야 노동자의 생활이 가능하다.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으면 장기요양을 할 필요가 없다.

    재활이나 직업 복귀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요양기간이 길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은 산재보험의 30% 가까이를 재활급여로 편성하고 있지만, 한국은 1.4%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요양을 장기화하는 구조로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정안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민주노총과 노동건강관련 단체들은 지난 5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산재보험 공공성 강화, 산재법 개악 반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휴업급여 2년 제한 규정은 선후가 뒤바뀐 문제 해결방식이다. 재활체계를 강화해 산재 장애인의 복귀가 가능하다면 장기 요양할 필요가 없어진다. 사회복귀라는 출구를 봉쇄한 상황에서 산재치료를 제한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책임을 고스란히 전가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질환의 특성상 2년 이상 요양이 필요한 데 2년 내에 종결하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장해연금을 55세부터 현재 수준의 50%로 줄이겠다는 것 또한 문제다. 장해연금은 중증 정도에 따라 주는 것이지, 연령에 따른 소득 대비로 주는 것이 아니다. 장해연금을 소득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 장해연금을 줄이는 이유를 국민연금의 수급을 통한 수입으로  말하고 있는데, 현재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높다는 전제가 깔려 있을 때에 가능한 얘기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률적으로 장해급여를 낮추는 것은 노령자에 대한 복지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산재보험도 건강보험처럼‥독립적인 산재심사평가원 설립해야"

    장기적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보는가.

    현재 산재 승인의 절차는 주치의가 소견서를 발급하고, 사업자가 날인하며, 동료 노동자가 진술서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내고 승인을 받으면 인정되는 것이다. 이같은 절차 때문에 ‘외형적인’ 사고는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산재 승인을 받지만, 직업병과 같이 증상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승인 기간이 매우 길어지고, 기준 또한 상당히 자의적이다.

    예컨대, 손목을 많이 쓰는 직업의 노동자가 요통에 걸렸다면, 이것이 산재인지 아닌지를 근로복지공단이 판정하는 데 대단히 자의적이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재정이 많은 달은 산재승인을 많이 해주고, 재정이 적은 달은 적게 승인해주는 일도 빚어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보험자인데, 보험자에게 산재 승인을 맡기는 것은 문제다. 즉, 돈이 나가는 보험자가 승인 업무를 맡는다는 것은 넌센스라는 말이다. ‘선보장, 후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건강보험처럼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수 있듯이, 산재 노동자 또한 의료기관에 산재보험을 청구할 경우 먼저 치료를 받고, 나중에 평가를 받으면 된다.

    의사가 산재보험을 적용할 것인지의 여부를 판명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면, 산재은폐가 없어질 것으로 본다. 산재 청구의 50%가 승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치료 후에 평가는 ‘산재심사평가원’을 근로복지공단과는 별개로 설립해 평가받으면 된다.

    재활문제가 빠진 것도 문제다. 정부는 재활치료 하겠다는 방향만 제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재활분야에 대한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하여, 산재의료관리원에 대폭적인 예산을 지원하든지, 연도별로 재활전문센터를 확장하든지, 원직장 복귀 프로그램 등이 마련돼야 하는데 없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핵심이 빠져있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 주응환 한국재가진폐자협회장 등이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를 면담해 산재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적용대상 또한 확대되어 특수고용직 노동자, 보험모집인, 경기보조원 등 ‘소사장제’로 분류되는 노동자들도 산재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들 또한 적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고,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사회보험 확대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정부는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모자라 휴직급여를 2년으로 제한하는 등 보장성을 축소하고 있다.

    개발실적요율제를 3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것도 문제다. 산재율에 따라 보험료를 더 걷는 차등보험료율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평균보험률, 단일보험률 방식을 택해 격차를 줄여야 한다.

    영세사업장의 보험료를 일정하게 정부가 부담해줘야 한다.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 산재발생률이 적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적게 징수하고,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한다고 해서 더 거두어들이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처럼 임금수준에 따라 보험금을 징수하여 배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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