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샘노동 임금체불 등
    방송작가 노동착취 ‘관행’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 도입에도 위장 프리랜서 관행 등 여전
        2019년 04월 30일 05: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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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방송작가 집필 표준계약서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구두계약을 맺고 이른바 ‘위장 프리랜서’로 일하는 방송작가가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전히 방송계에선 임금체불, 장시간 밤샘노동 등 ‘노동착취’가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가 방송작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2019년 방송작가 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지난 4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간 방송작가노조가 조합원과 비조합원, 신입·서브·막내(신입) 등 전국의 방송작가 580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해 나온 결과다.

    고용형태만 프리랜서, 실제론 상근직
    가짜 프리랜서로 노동권 박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방송작가 93.4%(542명)가 프리랜서로 고용돼있었지만 72.4%(420명)가 방송사나 외주제작사로 출퇴근하는 상근 형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프리랜서라고 하면 출퇴근이 자유롭고 재택근무를 하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메인 작가를 제외한 방송작가들의 실제 업무 형태는 이와 정반대로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상근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조가 지난 3월 1일부터 4월 27일까지 약 두 달간 KBS 구성작가협의회 구인구직 게시판에 올라온 총 317건의 구인 글을 전수 조사해본 결과, 비상근 즉 재택근무는 단 20건에 불과했고, 막내작가와 서브작가를 구하는 대다수의 구인 공고가 ‘상근’을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상근 작가 중 근로계약을 체결, 4대보험 가입 응답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강요하면서도 고용형태만 프리랜서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상근으로 근무하는 작가 중 연월차 휴가나 교통비, 시간 외 수당, 퇴직금을 받는 비율은 모두 한 자리 수에 그쳤다. 48% 정도만 식대를 지급 받았는데 나머지 절반은 이 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42%는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방송작가 대나무숲에서 접수된 사례에 따르면, 병가를 쓸 수 없어서 참으면서 일하는 사례 외에도 119를 부르고 올 때까지 업무를 하거나 응급실에서 자막을 쓰고 상 중에도 장례식장에서 대본을 집필한 사례까지 보고됐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들이 대다수의 방송작가를 업무 실질은 상근이면서도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위장 프리랜서’ 고용형태를 지속하는 이유다.

    법적의무 없는 계약서, 작가 다수 ‘구두계약’
    무임금 노동, 임금체불에도 구제 못 받아

    구두계약 관행으로 임금을 떼이는 등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방송작가 노동문제가 제기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 12월 28일 ‘방송작가 집필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계약서 작성에 법적 의무가 없어 여전히 대부분 방송작가들이 구두계약을 통해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 74.8%(434명)가 ‘구두계약’이라고 답했다. 집필표준계약서, 업무위탁계약서, 근로계약서 등 서면계약서는 4명 중 1명만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에 따르면, 계약서 미작성으로 인해 본인이 어떤 임금조건으로 근무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하는 경우, 구두계약이란 점을 악용해 약속된 금액과 다른 임금을 지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임금체불도 빈번했다. 방송작가 2명 중 1명이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시즌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경우 기획 기간에는 무임금으로 일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돈을 받지 못한 이유로는 ‘구두 계약 관행으로 인한 계약서 미작성’(33.7%)이 가장 많았고, ‘불이익이 우려돼 문제 삼지 않음’(27.6%) 답변이 뒤를 이었다.

    집필 계약서가 나온 지 1년 4개월이 넘었지만 강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구두계약 관행이 유지되면서 임금체불 문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임금체불 경험자 중 76%는 ’대응하지 않았다’는 답변을 내놨다.

    노조는 “프리랜서 사회에 만연한 구두 계약 관행 때문에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작가 사회에 팽배한 결과”라며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은 프리랜서 임금 체불 문제를 지금껏 방치해왔고 제작사는 이런 문제점을 악용해온 것”이라고 짚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면 임금을 떼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구제를 받기 어렵다.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임금체불에 대응을 했던 이들 가운데 10명 중 7명은 대응 이후에도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금체불을 해결하지 못한 경우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나온 답변을 보면 방송계에서 임금 미지급이 공공연한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고용노동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계약서가 없는) 프리랜서라 해당사항이 없다”, “(작가 자리를) 소개해준 선배가 ‘그 돈 몇푼 때문에 네 평판 다 버릴거냐며 돈 받지 말라’고 함”, “불방일 경우 페이 지급을 못 받는 건 당연하단 관례”, “방송이 안 나갔으므로” 등의 답변이 기타의견으로 나왔다.

    방송국은 어쩔 수 없이 밤샘노동?

    주 52시간 상한제가 도입되는 등 정부에서 근로시간 단축에 나섰지만 방송계에는 먼 얘기였다.

    월 평균 ‘밤샘’ 횟수를 묻는 질문에 10명 중 7명이 월 1회 이상이라고 답했다. 월 평균 4회 이상의 밤샘노동을 한다는 답변은 20%로 가장 많았고, 월 평균 5회 이상도 15%에 달했다.

    노조는 “시범적으로 52시간제 근무를 도입한 방송사가 있고, 오는 7월부터는 방송사 역시 52시간 근무가 도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정규직 근로자의 업무들이 프리랜서 방송작가들에게 넘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라며 “방송작가 대나무숲에서는 52시간제 도입으로 이후 방송작가들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더 늘어났다고 토로하는 사례도 상당수 접수됐다”고 밝혔다.

    장시간 노동, 밤샘 등이 개선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관행’이었다. 무려 77%가 장시간, 밤샘 노동을 당연시하는 업계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방송작가들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60.5%를 차지했다. 특히 작가들이 밤샘 업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는 점도 밤샘노동을 강요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노조는 지적했다.

    이미지 방송작가지부장은 “허울 좋은 프리랜서로 위장돼온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업무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방송사들이 더 이상 방송작가를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말아야한다”며 “이제는 노조 차원이 아닌 고용노동부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방치돼온 방송작가들의 노동 실태 조사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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