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공, 나무공, 고무공
    [행복칼럼] 우리 삶의 '회복탄력성'
        2019년 04월 30일 10: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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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장애인의 날을 즈음하여 방영된 ‘MBC 스페셜’에서는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장애아동요양시설인 ‘승가원’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삶을 소개했다. 두 팔이 없고, 양쪽 다리는 기형인 사지 기형에다가 발가락도 양쪽 발 모두 4개씩, 게다가 입천장이 갈라지는 등 여덟 가지 중증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태호’의 삶을 처음 마주 했다.

    태호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아동복지회를 통해 승가원에 맡겨졌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손이 없는 대신 발로 먹고, 머리 빗고, 칫솔질하고, 혼자 옷 입고 벗고, 글씨 쓰고, 발로 여는 문고리를 이용하여 옷장문도 혼자서 여닫는다. 화장실 외에는 모든 일상생활을 혼자 해내고 있었다. 매 순간이 도전이고 시련일 텐데 사지 기형과 생사의 고비를 밝은 웃음으로 넘어온 열한 살 소년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사람들이 도와줄까 묻는 말에 팔 없는 천사 태호가 밝은 표정으로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라고 말할 때였다. 순간 진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동시에 부끄러웠다.

    자그마치 여덟 가지 중증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며, 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스스로 하려고 하는 태호.

    같은 방 뇌병변 1급인 동생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자신의 외모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으며 거울 보면서 “아이, 예쁘다”라고 감탄하는 태호.

    이런 태호를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회복탄력성(回復彈力性)으로 불리는 레질리언스(resilience)는 물리학 용어로 어떤 물질이 변형되었다가 다시 원래 형태로 되돌아오는 능력을 말한다.

    심리학에서는 실패나 위기를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을 일컫는다.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뜻한다.

    방송과 저서를 통해 회복 탄력성을 친숙하게 느끼게 해준 김주환 교수에 의하면 회복탄력성이 시련을 행운으로 바꿔 준다.

    마음의 근력이라고도 불리는 회복탄력성은 역경과 시련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원래 있던 위치보다 더 높이 튀어 오르게 한다. 실패와 상처가 회복탄력성을 통해 삶의 더 큰 의미와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역경으로 인해 바닥에 내쳐졌다가 다시 되튀어 오르는 것은 마치 멀리뛰기(넓이뛰기) 경기를 할 때 더 멀리 뛰기 위해서 일단 뒤로 한 걸음 가는 것, 야구선수가 (스윙할 때) 백스윙을 했다가 배팅하는 것, 다이빙선수가 스프링보드를 발바닥으로 힘껏 굴러 위로 올라갔다가 그 힘으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생역전을 가져오는 힘인 회복탄력성만 있다면 크고 작은 어려움이 오히려 인생의 성장과 발전으로 바뀔 수 있다니 역경이 급~고맙게 느껴진다!

    물체마다 탄성이 다르듯 사람에 따라 회복탄력성이 다르다. 회복탄력성의 다소에 따라 유리공, 나무공, 고무공으로 비유할 수 있다.

    역경을 맞닥뜨렸을 때 바닥에 떨어진 유리처럼 부서지는 사람이 있다. 나무공이 떨어지면 바닥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처럼 역경 앞에서 멈춰 서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고무공 그것도 찰고무공 마냥 바닥에 부딪히면서 원래 위치보다 훨씬 더 높이 튀어 오르는 사람도 있다. 세게 부딪힐수록 더 높이 튀어 오르는 찰고무공!

    승가원의 ‘태호’.

    팔다리 없이 태어나 우울증에 빠지고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지만, 지금은 세계적 명강사에 만능 스포츠맨,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난 ‘닉 부이치치’.

    태어날 때부터 앓았던 신경섬유종으로 인해 두 다리를 절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운동선수이자 매력적인 모델, 재능 있는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에이미 멀린스’가 바로 찰고무공 과(科)에 속한다.

    회복 탄력성은 갖고 태어난다. 유감스럽게도 통계적으로는 유리공이나 나무공 같은 사람이 고무공 같은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즉 역경 앞에서 무너지기 쉬운 사람이 더 많다는 뜻이다.

    회복탄력성의 반대말은 취약성(vulnerability)이다.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스트레스로 반응하는 민감성을 뜻한다. 회복탄력성보다 취약성이 두드러진 사람이 회복탄력성을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유리공이나 나무공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기 나름에 따라 얼마든지 회복 탄력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니 불끈 희망이 솟는다.

    닉 부이치치와 태호(방송화면)

    독일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작가인 니콜 슈타우딩거는 회복탄력성은 타고난 능력이기도 하지만 ‘성장하고자 하는 각오’라는 면에서 회복탄력성은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연구가나 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즉 회복탄력성은 외부로부터 이식 받아야 할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꾸준히 노력하고 훈련하여 증진시키면 된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려면 우선 역경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처절한 심정으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왜 하필이면 우리 가족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답은 없다. 그저 나쁜 일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뿐이다. 아무도 나쁜 일로부터 면제되는 보장을 받지 못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그룹은 실패를 잘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실패가 성공으로 가는 필수 코스라고 생각한다.

    영락없는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건만 역경을 통해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얻었다며 행운이라고 말한다. 고통과 절망 덕분에 희망과 목적이 생겨서 행복해졌다고 감사해한다. 역경을 긍정적으로 볼 때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을 뿐더러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무릎 아래 뼈가 없어 의족을 해야 하는 역경을 이겨내면서 ‘원더우먼’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는 에이미 멀린스는 역경을 받아들이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경은 우리 삶의 일부와 같은 그림자”라면서 “항상 함께 있지만 잘 보일 때도 있고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역경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단 마음의 문을 열어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에 따른 마음고생이 훨씬 더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운명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어려움 앞에서 주저앉은 다리에 힘을 주기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치유와 위로의 힘이 이미 자신 안에 있다고 믿을 때 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다.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는 없지만 돛의 방향은 내가 바꿀 수 있지 않은가

    회복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역경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위한 의미를 찾으며 교훈을 얻는다.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감정지능 제창자인 대니얼 골먼 교수는 “회복탄력성은 자신과의 대화와 뇌 재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과의 대화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스토리텔링이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높다. 인간은 의미가 있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낸다.

    하와이 군도 중에 하나인 카우아이 섬에서 어린 시절의 어려움과 성인이 되었을 때 문제 가능성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연구가 시행되었다. 심리학자인 에미 워너 교수는 다수의 아이들과 달리 불우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성장한 일부 청년들에게 공통된 속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삶의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원동력인 이 속성을 ‘회복탄력성’이라고 이름 붙였다.

    또한 40년에 걸친 연구 끝에 회복탄력성의 핵심적 요인을 발견했다. 바로 ‘인간관계’였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자질을 발휘하며 성장한 아이들 곁에는 예외 없이 그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 누군가가 주위에 있다면 역경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구색 갖춰 들이닥치더라도 씩씩하게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닉 부이치치의 경우가 그러했다. 닉 부모님은 닉이 남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아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는 부모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배웠고, 그런 신뢰를 기반으로 일반인도 하기 힘든 수많은 도전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 너는 신체의 일부가 없을 뿐이지 너는 정상이다.”

    , 네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는 앞으로 상상 이상의 행복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 닉의 부모님이 닉에게 해준 말 –

    필자소개
    20년 가까이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병동 간호사 및 수간호사로 재직했고 현재는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정신간호학)로 재직. 저서 및 논문으로 심리 에세이 ‘마음 극장’ “여성은 어떻게 이혼을 결정하는가”“ 체험과 성찰을 통한 의사소통 워크북”(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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