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 인수 사태와 고용문제
    [기고] 조선산업 고용·실업대책의 공백과 무기력함
        2019년 04월 30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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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원고는 ‘연대와 소통’(노동사회교육원, 창원)에 실린 글(2019, 봄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관련한 필자의 최근 글로는 ‘조선대기업의 경영전략과 노사관계: 현대중공업을 중심으로’(2018), ‘연공급 임금체계의 문제점과 정책과제’(2017),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고용대책’(2016) 등이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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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1. 이번 인수사태의 배경
    2. 대우조선 부실경영과 지역 노동시장
    3. 현대중공업의 손익과 약간의 전망
    4. 고용문제와 금속노조

    지난 3월 현대중공업이 산업은행과 대우조선 인수 관련 본계약을 체결하였다. 현대중공업은 후속 조치인 기업결합 심사에 필요한 문서를 다음 달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한다. 대우조선노조의 사활을 건 반대투쟁이 예고된 가운데 두 달 뒤에는 해외 심사에 돌입할 것이며 향후 이 절차는 대략 올해 연말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하에서는 대우조선 인수사태의 배경과 영향, 현대중공업의 손익과 전망을 살펴본 뒤 고용대책이 지닌 현실적 문제점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모습

    1. 이번 인수사태의 배경

    첫째, 세계 조선시장의 장기적 구조불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산업은 변동성이 크고, 긴 제품주기가 특징이다. 이런 요인으로 인해 조선시장은 예측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경기변동의 흐름도 급격한 호황과 장기 침체 형태로 나타난다. 이번 불황은 1970년대 조선불황에 버금가는 (경기적 불황이 아닌)구조적 불황의 성격을 띤다. 구조적 불황이 닥치면 주요 조선소들은 불가피하게 대규모 설비 축소를 겪게 된다. 1970년대 조선 불황기 이후 유럽은 건조설비의 50%를, 일본은 건조설비의 40%를 감축하였다. 그림에서도 보이듯이 2012-2018년 동안 전세계 조선시장의 건조능력은 37%를 축소하였다. 국내 조선산업의 건조능력도 무려 33%를 줄였다. 그나마 이 수치는 (조선3사를 제외한) 중대형 조선소 설비 축소의 결과이다(놀랍게도 조선3사의 건조설비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림 1. 세계 조선산업의 수주 및 건조 추이(1968-2017)

    둘째, 정부의 조선3사 구조조정 실패에 기인한 바 크다. 2015년경 주요 대형 조선소에서 천문학적인 적자가 가시화되자 정부는 조선 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 2016년 6월 정부는 ‘자구안’ 형태의 조선3사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게 된다. 하지만 구조조정 3년째인 2019년 2월 현재 조선3사의 현황을 보면 인력만 크게 줄었을 뿐(1) 핵심 설비인 도크 시설은 거의 그대로다(<표 1> 참조). 구조 불황에 직면했음에도 과잉설비의 감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원인을 명확히 처방하지 못한 점, 금융적 차원의 접근, 조선경기 회복에 대한 지나친 낙관론에 기댄 탓이 컸다. 구조적 불황기에 과잉설비의 유지는 저가수주와 낮은 이윤율로 이어져서 조선산업의 회복 시기를 더디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 후 설비축소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공산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2)

    표 1. 조선 3사의 종업원 수 추이(2014.12 -2018.9)
    * 조선 부문 인원(비조선 제외) ** 자료: 각 사, 사업보고서

    셋째, 산업은행의 매각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은 2000년 이후 지금까지 19년간 대우조선을 관리해 왔으며 대우조선 지분의 55.7%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 주주이다. 이처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실질적인 주인인 셈이지만 그 동안 대우조선에 대한 관리부실을 심심찮게 지적받아왔다. 이는 그 동안 대우조선 경영의 문제점으로 제기되어 온 방만한 사업구조(계열사, 인력구조 등) 및 분식회계 사태 등에서도 넉넉하게 확인된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산업은행은 지난 20여 년간 대우조선 매각을 향한 굳센 의지를 끝없이 불태웠다. 2008년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불발 건도 있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거액의 자금을 밀어 넣다보니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골치 덩어리로 여겼을 터이다. 결국 산업은행은 이번 현대중공업의 인수를 통해 손절매에 나선 것은 물론 빅3에서 사실상 빅2로의 전환을 통한 과잉설비의 해소 효과까지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 2. 2009년 이후 세계 및 한국 조선산업의 건조능력 추이
    자료: OECD WP/6 및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2. 대우조선 부실경영과 지역 노동시장

    대우조선 부실과 구조조정

    연간 매출액이 15조 원, 종업원수 1만 3600명에 달하는 거대 조선기업 대우조선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은 2015년부터다. 그 해 여름 2분기에 3조 4백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직접적인 요인은 해양플랜트 부문의 가공할 만한 적자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가 연이어 드러났다. “대우조선은 제조원가를 낮춰 이익을 부풀렸다. 주문이 계속 들어올 때는 분식을 가릴 수 있었지만 갑자기 수주절벽이 닥쳐 부실이 드러났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최중경 회장의 말이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손실이 발생하면서 대우조선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자본잠식은 자본금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일컫는 말로, 회사의 곳간이 텅 비었다는 뜻이다. 2015년 대우조선의 부채는 18.6조 원(자기자본 0.4조원, 연결기준)으로 부채비율이 무려 4,260%였다. 재계 9위의 거대 기업집단이 졸지에 ‘한계기업’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정부의 개입은 2015년 10월에 시작되었다. 대우조선에 4.2조 원(산업은행 2.6조 원 + 수출입은행 1.6조 원)의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동시에 대우조선으로 하여금 1.85조 원 규모의 자체 구조조정 안을 요구하기로 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조선시장의 리스크가 크지 않다고 보아 정부는 채권은행을 중심으로 한 기존 재무구조 개선방식에 의존하였다. 하지만 조선시장의 수주량이 급락하는 등 침체 국면이 지속되자 자산과 생산설비, 인력 등 조선산업 전반에 걸쳐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하게 된다. 이후 논란 끝에 조선 3사는 자구안을 중심으로 한 2단계 조선 구조조정(총 3.45조 원 규모)이 추진된다. 이때가 2016년 6월경이다. 이 과정에서 약 1조 5천억 원 규모의 강력한 자구책을 요구받은 대우조선은 플로팅 도크 2기 매각, 대규모 인력 감원 등 다운사이징downsizing을 약속했다. 그 해 연말 대우조선은 두 국책은행으로부터 자본 확충을 추가로 지원받았는데, 금액으로 치면 2.8조 원(산업은 행 출자전환금 1.8조 원 + 수출입은행의 영구채 1조 원 매입분)에 이른다. 이때 자본 확충을 추가 지원한 것은 수주에 장애가 되는 자본잠식의 해소 및 선주사와의 신용 문제가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표 2. 시중은행의 대우조선 위험 노출액 현황(2016년 말 기준)
    * 자료: 대신증권, 더 벨, 2017년 3월 17일자 인용

    2017년 2월 대우조선은 유동성 문제로 다시 한 번 요동치기 시작했다. 수주 부진에 이은 완공된 해양설비의 인도 지연 등 돈줄이 마른 상태에서 4천 억 원이 넘는 회사채 만기가 눈앞에 도래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우조선에 또다시 대규모 자금이 추가 지원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결국 2.9조원에 달하는 2차 자금 지원은 2017년 3월경 이루어졌다.

    이 무렵 대우조선의 유동성 부족은 조선불황에서 야기된 것으로 다분히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첫째, 신규 선박수주가 크게 줄어 수주잔액이 급감하였다. 지난 2년간 대우조선의 수주잔액 감소분은 무려 18조 원에 이른다. 2014년만 해도 대우조선의 수주잔액은 40조 원에 달했으나 2016년의 수주잔액은 22조 원으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둘째, 상시 자금인 운전자금의 부족이다. 통상 조선업체는 선박 수주 시 제공되는 선수금으로 운전자금을 마련한다. 하지만 최근 신규 수주가 급감하면서 선수금 유입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선수금 지표인 초과청구공사액이 지난 3년간(2014~2016년) 1조 1200억 원 이상 크게 감소하였다. 셋째, 단기 차입금 부담이 급증하였다. 2015년 대우조선의 단기차입금은 3조 7100억 원이었으나 2016년에는 단기차입금이 2조 8610억 원이었다(그나마 이 금액도 정부의 자본 확충으로 상당액이 줄어든 것이다). 2차 자금 지원의 경우 결국 합의는 되었지만 시중은행이 자금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논란을 겪게 된다. 하나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대우조선에 제공된 금액이 총 1조 9470억 원이나 되어 채권자인 은행들로서는 진퇴양난이었다. 일단 회생에 대한 판단이 불확실했다. 섣불리 추가 지원에 나섰다가 실패할 경우 선주사에 9340억 원이라는 보증금(RG, 즉 선수금환급보증금)을 물어야 할 판국이었다(<표 2> 참조). 은행들로서는 재무 건전성 악화가 불 보듯 뻔했던 것이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의 여파는 현장 노동자의 대량 감원으로 나타났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마저 대거 조선소를 떠났다. 정규직만 보더라도 2015년 1만 3290명이던 종업원 수가 2017년 1만 144명으로 줄어, 지난 2년간 정규직 노동자만 3146명이 감원되었다. 이 기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는 3만 4107명에서 1만 7548명으로 줄어 1만 6559명이 감원되었다.(3)

    대우조선 인수 이후의 지역노동시장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은 대우조선이 회생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이다. 10조원이 넘는 산업은행의 지원이 컸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난 3년간 조선 구조조정으로 지역노동시장은 뚜렷이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기간(2015.1-2018.6) 동안 거제시와 통영시의 고용률은 뚜렷이 감소하였고, 실업률은 크게 증가하였다(<표 3> 참조).

    표 3. 거제시와 통영시의 고용률 및 실업률(2015.상반기-2018.상반기)
    * 경남의 시지역 평균고용률 및 평균실업률임. * 자료: 통계청, 지역별 고용조사, 각 년도.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대우조선을 중심으로 설비 감축과 함께 대규모 감원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두 조선소의 주력선종인 초대형 유조선, 컨테이너선, LNG선 등이 거의 동일한 만큼 설비 축소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감원에 있어서도 생산직은 물론, 영업, 인사 등 사무직 나아가 관련 기자재업체까지 광범위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상당수의 하청업체가 심각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대우조선의 주요 선박용 엔진 매출처인 HSD엔진(구 두산엔진)이 대표적이다. HSD엔진은 전체 매출 가운데 31%(2018년 기준)를 대우조선에 의존하고 있다. 향후 대우조선이 매각될 경우 고정매출처 손실로 인한 사업 축소와 감원 문제가 대거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이 거래하는 하청업체 수는 2015년 기준으로 1차 밴더 227개사를 포함하여 3차 밴더까지 총 598개 사에 이른다. 이 중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에 중복 납품하는 공동 하청업체 수는 327개사이며, 대우조선에만 납품하는 전속 하청업체 수는 271개이다. 그 외에도, 대우조선 하청업체의 경영 위기는 또다시 대량감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2015년 기준으로 대우조선의 1,2차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약 1만 7천여 명이며, 전속 하청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 수는 약 1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모두 상시 근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4)

    표 4. 조선 3사의 원하청 거래업체 현황
    자료: KED(주), 2015년도 DB

    3. 현대중공업의 손익과 약간의 전망

    현대중공업의 손익과 문제점

    여기서는 대우조선 인수에 따른 현대중공업의 손익과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독점적 시장 지배력의 강화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국내 조선시장 점유율은 무려 80.1%(2018년 3분기 기준)까지 확장된다. 이렇게 되면 현대중공업은 관련 기자재 공급업체에 대해 교섭력은 보다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한 독점적 수익은 확대될 여지가 높다. 특수선의 경우 좀 더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현재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군함 등 대형 특수선과 잠수함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 주도하는 과점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지만, 인수 이후 곧 독점적 시장구조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현대중공업 지배구조의 안정성과 경영권 확대 의혹이다. 2017년 초 현대오일뱅크의 대규모 배당금을 현대중공업 지주사에 지급함에 따른 대주주의 회사의 기회유용,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자회사 편입 건과 그로 인한 사익 편취 가능성을 야기한 바 있다. 문제는 이렇게 지배구조 변경 과정에서 노출된 경영상의 문제가 이번 인수과정에서 사라질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5) 또 하나는 이번 대우조선 인수는 현대중공업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보다 공고히 하는 한편 재벌 3세의 경영권 승계와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이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중간지주사 설립을 통한 대우조선 인수는 결국 현대중공업 지주사의 수익을 극대화 하는 구조로 연결된다. 이는 현대중공업 지주사의 이익이 최대 주주(정몽준 일가)에게 귀결되며, 나아가 재벌 3세(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앞당기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재벌 특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경과를 보면 합작법인(중간지주사)을 설립하여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주식을 현물출자 받는 대신 합작법인으로부터 7% 지분과 우선주 1조 2500억원을 보유하며, 현대중공업측은 28%의 지분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우선주 중심의 지분 보유는 산업은행이 경영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현대중공업측은 2021년까지 대우조선에 1조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지출되는 자금 부담은 2500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6) 결국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대우조선이라는 대기업을 인수하지만 실제 자금조달에 따른 재무적 부담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할 경우 국내 조선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르고 있어서 현행 공정거래법에 위배된다. 하지만 빅2 체제 개편을 통한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하에 추진되고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 재벌에게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가 완화될 소지가 농후하다. 만약 대우조선 인수 건이 기업결합 심사에서 통과된다면 이는 재벌 특혜나 다름없다.

    약간의 산업 전망

    지난해 국내 조선산업의 실적 개선은 이미 알려진 바다. 올해 조선시황 또한 어느 정도 개선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아직은 회복기라 보기에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2020년경 환경 규제로 인한 신조선 수요의 증가폭도 그리 크지는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최근 세계경제의 둔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어서 향후 조선경기가 ‘L’자형이 될 지, ‘U’자형이 될 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단기적으로 보면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에 따른 통합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양사 합병으로 수주경쟁 완화와 저가 수주가 줄어들 여지가 크며, 특수선 수주가 주는 기대가치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에는 대우조선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설비감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설비를 줄여야 하는 만큼 전체 수주량 면에서 어느 정도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인수로 현대중공업의 조선 전업도는 매우 높아졌으며, 대우조선의 관리 운영이 갖는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부담을 안게 되었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70년대 이후 유럽 조선은 조선기자재, 크루즈선 등으로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였으며, 일본 조선의 경우 대형조선의 다각화 및 분사화, 중형조선의 표준선화 등으로 진화해왔다는 점과 비교해 보더라도 차이가 있다. 한국 조선이 굳이 유럽과 일본의 경로를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대박과 쪽박이 오가는 조선시장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현대중공업이 안게 될 리스크가 매우 커질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렇게 볼 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 효과는 산업적 측면보다 경영권 승계 등 지배구조적 측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 조선산업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국내 조선산업이 한계산업 혹은 사양산업이라는 지적과는 결이 다른 얘기다. 알다시피 대형조선소를 중심으로 한 비가격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0년 이후 선박 수주량과 수주잔량 추이가 말해주듯 세계 조선시장을 주도해 온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해 수주 면에서 한국 조선이 중국을 제친 것은 하나의 예외적인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향후 어떤 형태로건 한국 조선산업이 가격경쟁력 면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더 이상 세계시장을 주도하기란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선, 지금껏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을 이끈 대규모 투자 – 70,80년대의 정부투자, 90년대 초, 2천년대 초에 이루어진 대규모 인적 물적 투자를 말한다 – 즉, 요소투입형 성장 방식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조선산업 생태계 회복에 관한 논의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이 신규 투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수요 확대를 통한 조선경기 회복 또한 아직은 먼 얘기다. 냉정하게 말해서 조선산업은 5년짜리 정부(청와대)가 선호할만한 혁신 산업이 아니며, 주요 기업들이 선호하는 블루 오션도 아니라는 점이다.

    다음으로 한국 조선산업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범용 선박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수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할 뿐더러 무엇보다 생산성의 정체, 상대적 고임금 등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그 외에도 빅3에서 빅2로의 전환은 대형 조선소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반면 조선기자재 등은 좀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졌는데, 이로 인해 한국 조선산업의 설비가 좀 더 줄어든다는 것은 분명하다. 설비 수축은 곧 조선 노동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4. 고용문제와 금속노조

    2015년경 조선3사에서 시작된 구조조정은 이후 4년에 걸쳐 약 10만 명이라는 엄청난 대량실업을 낳았다. 이 기간 동안 감원된 조선노동자들은 조선3사의 정규직 노동자가 2만 명 이상 감원되었고, 나머지 8만여 명의 실업자는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였다. 대량감원 사태가 이어지자 정부는 2016년 7월부터 거제, 울산, 목포 등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희망센터를 통한 일자리 대책으로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이들 대책의 대부분은 실효성이 떨어지고, 항목만 바꾼 ‘돌려막기’로 형식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정부 보고서조차 고용위기지역 희망센터의 역할은 실업급여 지급에 치중되어 있는 반면 직업훈련 등의 비중은 크게 미미하다고 분석하고 있다.(7) 그간 ‘일자리’ 정부의 실업대책이 면피성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2016년경 특별고용업종 지정 당시 정부의 고용대책 지원금은 약 5천억 원(8)이었지만, 이미 십만여 명으로 불어난 조선 실업자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겠으나 작년 최저임금 인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소상공인을 위한 일자리안정자금(3조원), 대우조선회생을 위한 정부지원금(10조원)(9)에 비추어 볼 때, 왜 조선 실업자의 고용대책지원금이 소상공인 지원금의 1/6 수준이며, 일개 조선기업 지원금의 1/20 수준에 그치고 있는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부 발표(2019년 3월 19일자)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100조원을 공급할 자금은 있어도 고용대책 예산은 쥐꼬리 수준으로 뭉개온 것이 지금의 정부다. 최근 정부의 조선업 회복을 위한 추가대책 발표에서도 산업위기지역을 연장한다는 것 정도이지 새로운 대책이라고는 없었다.

    무기력한 금속노조, 노동(실업)에 대해 말하지 않기

    고용문제에 관한 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대책으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이번 대우조선 인수 건도 ‘어쩌다’ 취소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또다시 대량실업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어떠한가? 지난 십년간 조선 실업자가 수없이 넘쳐나도 금속노조가 고용기조를 세웠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교육훈련과 전직 프로그램, 공공사업 일으키기 혹은 고용기업을 통한 일자리 유지 등등 지난 몇 년간 이런저런 방안이 많았음에도 금속노조 차원에서 대안을 수립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멀리는 한진중공업 투쟁이 그랬고, 가까이는 조선노연 주도의 구조조정 반대투쟁 때도 그랬다. 지난 4월 초 대우조선 문제로 정부와의 교섭을 요구하는 와중에도 금속노조는 제대로 된 방침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듯 고용문제에 대한 금속노조의 무력감은 우려할 만하다. 아니, 그보다는 금속노조 지도부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방침을 결정하여 욕을 먹기보다는 외면하고 회피하는 쪽을 택한 것이 아닌가 짐작되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지난 4년간 무려 십만 명의 조선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앉았음에도 기본적인 대응 기조 하나 내놓을 수 없다면 이것이 과연 정상적일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금속노조가 고용문제를 책임지라거나 해결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노동조합이 노동(실업)에 대해 말하지 않기, 즉 무대응 기조가 계속되면서 정부의 고용대책도 방치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무엇보다 해고된 실업노동자의 대부분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십년 전 한진중공업 투쟁이 있었고, 작년에는 STX조선노조와 성동조선노조의 투쟁이 있었다. 바로 지금은 대우조선 투쟁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이제라도 금속노조는 고용대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응을 위한 기본 방침 정도는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은 고립 속에서 장기전을 앞 둔 대우조선노조가 최대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 향후 자동차 기계금속 등 제조업 전반에 밀어닥칠 대규모 고용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각주>

    1. 조선3사 중 현대중공업은 경영면에서 상대적으로 우량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감원 정도는 가장 컸다. 이는 현대중공업이 감원에 그만큼 공격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우조선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 현대중공업의 경영 행태가 어떠할 것인지 시사해 준다.

    2. 일각에서는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조선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티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연간 수조원이 이르는 관리비와 그에 따른 대규모 적자의 누적 등을 감안한다면 이는 결코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3. 대우조선의 구조조정 경과에 관해서는 허민영, 2017, ‘조선산업 구조조정과 일자리 해법’, “황해문화”, 가을호 에서 인용.

    4. 허민영, 2019.2.21, ‘대우조선 인수사태와 고용문제’, 조선산업 생태계 무너뜨리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문제점 진단 토론회 자료집.

    5. 송덕용, 2019.2.21, ‘현대중공업 지배구조 변화와 현대중공업 재벌특혜 문제’, 조선산업 생태계 무너뜨리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문제점 진단 토론회 자료집.

    6. 아주경제, 2019년 2월 4일자.

    7. 거제, 울산, 목포 등 위기지역의 실업대책 모니터링 보고서도 ‘개인이 뭘 신청해도 받을만한 제도가 거의 없다’, ‘취업에 효과적이지 않다’, ‘직업훈련, 전직 지원 등 준비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생계비 보완책이 따르지 않고 있다.’며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노동연구원, 2017.12, 조선업 실업대책 모니터링 및 산업구조개편에 따른 고용정책 개선방안 심화연구. 그 외 울산지역인적자원개발위원회, 2018.12, 2018년 울산조선업희망센터HRD지원업무 만족도조사 참조.

    8. 정확하게는 4700억원이다. 이 금액은 2016년 기준으로 당초 조선3사를 제외한 7900개 조선업체, 6만 3천여 조선노동자를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나마 이 예산액 또한 고용보험기금의 예산을 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9. 2017년 3월까지 대우조선에 지원된 자금은 출자전환 등을 빼면 실제로는 총 7조 1천억 원 수준이다.

    필자소개
    경성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조선산업과 노사관계를 전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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