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광저우 그리고 멘체스터
[에정칼럼] ‘내재된 배출’과 ‘탄소인증제도'의 의미
    2019년 04월 29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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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펜실베니아의 피츠버그는 미국의 산업화를 이끈 핵심 도시 중에 하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엘러게니강 수로와 발달된 철도를 통해서 수송된 석탄과 철강석을 이용해서 철강산업을 일으켰다. 한때 피츠버그와 그 주변 지역은 미국 전체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철강을 생산해냈다. 당연히 환경오염이 뒤따랐다. 1950년대의 한 컬럼니스트는 피츠버그를 “현세에 강림한 지옥”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피츠버그의 철강 공장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기 시작하였다.

철강산업에 닥친 불경기는 도시를 새롭게 탄생시킬 기회를 낳았다. 시는 생태지향적 디자인 분야의 혁신 중심지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나갔다. 막대한 오염물질을 뿜고 흘려보내던 철강 공장은 사라지고, 피츠버그는 녹색도시로 거듭났다. 강을 오염시킨 독성 물질은 정화되었으며, 미국에서 가장 친환경 녹색 건물이 많은 도시가 되었다. 자연 채광, 지열, 태양광 패널을 이용하고 대중교통과 도시계획을 개선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사활을 걸었다. 피츠버그에서 탄생한 전미철강노조도 이런 전환에 동참해서, 녹색산업에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는 피치버그의 녹색 전략을 “탈공업화를 위한 혁신적 전략 모델”로 평가하기까지 했다.

피츠버그의 성공 사례는 어쩌면 최근 미국에서 불고 있는 ‘그린 뉴딜’ 바람의 전조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성의 종말: 기후 대재앙 시나리오>의 저자인 마크 샤피로(Mark Schapiro)는 불길한 질문을 덧붙인다. 피츠버그에서 사라진 철강공장은 어디로 갔을까.

피츠버그(왼쪽)와 광저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마크 샤피로는 우리를 중국 광둥성 광저우로 데리고 간다. 중국 남동부 해안에 위치한 인구 100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연간 4000만개의 컨테이너를 처리하는 무역항을 인근에 둔 도시. 중국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상위 열 개 성 가운데 하나인 곳. 광저우에는 1,000개 넘은 철강 제조 회사와 무역 회사가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광둥성 광저우에는 미국의 철강 공장이 옮겨오거나 미국의 철강 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중국 철강 공장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더불어 피츠버그에서 감축된 막대한 온실가스를 중국의 광저우가 대신 배출하고 있다. 피츠버그의 온실가스 감축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쌓여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온실가스 배출도 극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2000년대 중반, 미국을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의 자리에 올랐다. 그 이후 기후변화 국제협상장에서 미국은 중국을 물고 늘어졌다. 중국이 감축 의무를 져야만 자신들도 감축 의무를 지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2015년 파리협정은 선진 산업국들에게만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 의무를 부여했던 교토의정서와 다르게, 중국 등의 개발도상국을 포함하여 모든 당사국에게 감축 의무를 부여하기에 이르렀다. 각자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는 방식으로 지는 의무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과연 중국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에 대한 책임을 중국인들에게만 물을 수 있을까. 세계은행은 광둥성을 포함하여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 전체의 1/4은 미국, 유럽 그리고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 결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제품에 ‘내재된 배출(embeded emmission)’이라고 부르는데, 그 배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게 만든다. 지구탄소프로젝트(Global Carbon Project)의 분석에 의하면, 중국은 2014년 기준으로 자신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의 13.3%는 수출 제품의 생산을 위한 것이었다. 반면 미국은 자신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의 6.7%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제품 수입을 통해서 다른 나라에 전가했다. 달리 말해, 중국은 자신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의 13.3%에 대한 책임을 덜어야 하며, 미국은 자국 배출량에 더해서 6.7%의 배출량에 대해 추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이 그렇듯이 한국도 많은 제품을 수입하여 쓰면서, 그 생산을 위해서 배출한 온실가스를 다른 나라에 남겨두고 온다. 지구탄소프로젝트에 의하면, 한국은 2014년에 국내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량에 더해서 9.0%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량에 대해 추가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이 지금 외면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상당 부분은 중국에 남겨두고 왔을 가능성이 많다. 국내의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한국 사회는 제품을 수입하면서 다른 나라에 떠넘기고 온 온실가스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계속 봐줄 것이라고 기대할 일인지 모르겠다.

우리를 피츠버그와 광저우로 데려갔던 마크 샤피로는 다시 영국의 멘체스터로 눈길을 돌린다. 영국 산업화의 핵심 지역이었던 멘체스터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위대한 산업구조”로서 “전세계를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끔찍한 배수구”였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던 곳이다. 엥겔스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고발하였던 끔찍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의 종말과 함께 멘체스터의 영광도 끝났다. 면직물 공장은 인도와 중국 등으로 옮겨 갔고, 실업률을 폭증했다.

멘체스터 사람들도 피치버그처럼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야 했고, 저탄소 경제라는 비전을 추구하는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멘체스터의 녹색경제 부문에서 3만 7천여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으며, 영국 경제의 성장이 멈췄던 2012년에는 녹색 투자 자본이 유입 덕분에 4%의 성장율을 보여주었다.

피츠버그와 별다를 것 없는 멘체스터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멘체스터는 피츠버그와 다르게 “내재된 배출”을 외면하지 않았다. 멘체스터 시의회가 발표한 장기 온실가스 감축 계획은 도시 거주민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량을 계산하면서 내재된 배출량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내재된 배출량에는 식품을 기르고 운송하는데 들어간 에너지로부터 나온 것에서부터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한 철근을 생산하고 운송하면서 배출된 것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식으로 계산하였을 때, 멘체스터 시민들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은 대략 30% 이상 증가한다. 이런 배출량까지 줄이려면 멘체스터 안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인 제품이나 운송 거리가 적은 가까운 지역의 상품을 구매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전략까지 포함해야 했다.

‘내재된 탄소’ 문제는 세계화론자들에게는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반세계화론자들에게는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정부는 “탄소인증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탄소인증제는 원자재, 물류, 생산, 소비, 폐기 등 제품생산의 전체 주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계량화해 관리하는 제도로 설명된다. ‘내재된 배출’에 정조준을 하고 있기에 가히 ‘기후혁명’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공 입찰에 들어가는 재생에너지 설비에만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설비 특히, 풍력 터빈과 블레이드 등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이 외국산 제품에 경쟁력이 밀리자 이를 만회하려고 이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멀리 외국에서 제품되어 수입되는 재생에너지 설비들은 운송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국산 설비가 경쟁력을 얻게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스마트’한 접근이라 평가될 듯 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증은 남는다. “탄소인증제”가 부메랑이 되어 한국 수출을 어렵게 하지는 않을까. 다른 국가들이 한국 제품의 ‘탄소 발자국’을 보자고 요구하지 말란 법이 없으며, 그렇게 되면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경제에도 빨간 불이 켜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우려를 알고서도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한 것이라면, 산업부와 한국에너지공단을 칭찬해줘야 마땅하다. 어찌 되었건 전세계가 가야 할 길을 한국이 먼저 나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해주고 싶다. 흔들림없이 가야 하고, 그 범위도 좀더 넓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메랑 효과가 나타나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는 제도로만 여긴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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