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보도에 질려버렸습니다. 한국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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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04일 06: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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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집장님

    도쿄는 장마의 한가운데에서 비가 쏟아지다, 그치다를 반복하며 매일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은 조금 서늘한지요.

    월드컵은  준결승, 결승전만을 남겨놓고,드디어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지만, 일본의 월드컵은 일찌기 끝나버렸습니다. 매스컴에서는 대회 직전에 "1차 리그 돌파는 충분히 가능"이라고 소란을 피웠지만,  시작해 보니 결국, 1승도 못하고, 초초와 허무함만이 남은 월드컵이었습니다. 저도 세 경기 모두 텔레비젼으로 보았습니다. 선수들은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세계와의 실력의 차이는 여전히 크더군요.

    다만 월드컵을 보도한 매스컴에는 정말로 질려버렸습니다. 이렇게 엉터리였던 것은 없을 겁니다.대회 전에는 "신(神様)! 지코님!" (지코는 유명한 브라질 대표선수 출신의 일본 대표팀 감독) 등으로 치켜 올리더니,패하자마자, "무능한 신,지코의 대죄,돈, 편견, 젊은선수 육성 불능"이라며 재빨리 돌아서더군요. ‘손바닥을 뒤집는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잡지들의 제목을 뽑아 보니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월드컵 보도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전쟁에 관한 용어가 무척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전범(戦犯)은 어떤 놈인가?"라고 큰 글자의 제목을 표지에 인쇄한 유명 주간지는, "지코 재팬•뉘른베르크의 재판 / A급 전범 사고정지(思考停止)의 가와부치 지코" (가와부치는 일본 축구협회 회장)라고 표제를 붙였습니다. ‘패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라고 매스컴은 일제히 ‘전범’찾기를 시작합니다. 감독, 축구협회의 회장이 우선 희생의 제물에 올려지고,그 후,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한 선수에게 공격 방향을 트는 것이지요.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사진=펠리체 베아토)
     

    또한 전쟁 용어는 아니지만, 자주 눈에 뜨인 말은 "사무라이(무사)"였습니다. 어떤 잡지는 "자만심이야말로 적! 월드컵 일본 대표선수에게 사무라이정신 주입을!"이라고 썼고, 아사히신문 등도 대표로 뽑힌 선수들을 "23명의 사무라이"라고 말했고, 패했을때는 "사무라이 떨어진다"라는 표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야구보다 국제적인 축구에서 군대용어나 "사무라이"등 시대착오적인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왜일까요? 일본인들이 ‘사무라이’를 좋아하지만, ‘사무라이 정신’은 무엇일까요.

    지금 NHK에서는 약 4백년 전 전국(戦国)시대의 무장들을 주인공으로 한 대형 드라마를 방송하고 있습니다. 저도 매주 빠짐없이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습니다만, 드라마에는 한반도(朝鮮半島)를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등, 일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무장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지금의 일본인들에게도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모습은 매우 보기 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솔직히 말해서, 이들 무장들은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사람의 목숨은 벌거지와 같이 밟아 뭉개 버리는 극악한 사람일 뿐입니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역사소설가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는 무사의 기원을 ‘무장 농민이다’라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원래 출신의 경위는 시골의 야쿠자 폭력집단과 같은 것입니다. ‘사무라이’라고 하는 것이, 일본인의 정신 문화의 중심으로 되어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어떻든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함으로써, 투쟁심을 고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잘못입니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으로 꽉 차여있는 한, 이길 능력은 없습니다. 일본사람은 ‘사무라이 정신’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일본 사람에게만 뛰어난 정신이 갖추어져 있다고 믿는 것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입니다. 세계에는 ‘잉글랜드 혼’도 있고 ‘오스트레일리아 혼’ ‘브라질 혼’ ‘한국 혼’도 있습니다.

    올림픽도, 월드컵도, 정신력으로만 힘차게 달려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낳지 못합니다. 그것은 예전의 전쟁으로 질릴만큼 실감했을 것입니다. ‘일본인에게는 대일본정신이 있다’라는 식으로 일본인을 특별히 우수한 민족이라고 깊게 믿으면서, ‘일본은 신의 나라이기 때문에 전쟁에 패배할 리가 없다’라는 근거도 없는 믿음만으로 싸운 침략전쟁에서 일본은 온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두드려 맞고 쓰러지면서 결정적인 패배를 경험한 것입니다.

    전쟁과 월드컵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만, 일본인의 멘탈리티는 전전(戦前)도 지금도 그다지 변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잡지 중에는 "근거 없는 낙관, 무위무책한 끝에 패퇴(敗退), 과거의 전쟁과 같은 길"이라고 저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기사들도 있어, 저는 엉겁결에 "그렇지"라고 수긍했습니다.

    자기들의 힘을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사무라이 정신만 있으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정신주의가 아직 만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반성이 없는 민족이구나라고 한숨이 나옵니다.

    한국쪽은 어떻습니까? 한국에는 일본에서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같은 말이 있습니까?

    월드컵에서 일본이 빨리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해서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하는 불쾌한 말을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신문을 펼치면 매일 같이 ‘애국심’이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말이 눈에 뜨입니다. 최근 ‘사무라이 정신’을 귀중히 여기는 내셔널리즘은 강해질 뿐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징후입니다.

    일본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는 내셔널리즘에 더욱 주의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십시오.

    장마 하늘의 도쿄에서 노나카 아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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