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 작은 마을 사람들,
    청년기본소득을 실험하다
    [청년기자] 지리산 활력기금과 청년
        2019년 04월 24일 04: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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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청소년 관련(주체 혹은 주제) 기고 등의 기사에 대해서는 <오재영추모사업회>에서 원고료 일부를 지원 받아 지급한다. 고 오재영 동지가 진보정당의 조직사업에 오래 종사했으며, 진보는 청년·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발언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취지이다. 이번 달의 관련 기사들은 정의정책연구소의 청년기자단에서 보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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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몇 년 전부터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가 뜨겁다. 마크 주커버그와 일론 머스크, 핀란드와 스위스 그리고 경기도지사, 서울시장 등 곳곳에서 불을 지펴졌다. 기본소득제란 사회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심해지는 한계에 도달하는 복지 시스템과 인공지능의 발전에 의한 산업 자동화 심화로 줄어드는 일자리를 대비하기 위해 나타났다.

    스위스가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하고 캐나다와 핀란드 등이 실험을 막 나설 때 지리산의 한 작은 마을 사람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지리산 활력 기금이라 불렀고 그것은 올해 4년 차에 들어섰다. 정치권에서도 논의하기 힘든 그것을 남원이라는 작은 도시 안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산내면 사람들이 해온 것이다.

    출처. 사회적 협동조합 지리산 이음 http://jirisaneum.net/eum_news/13631

    시골 작은 마을 사람들이 나섰다

    지리산 활력 기금이란 지리산에 거주하는 선배 세대들이 자립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최소 1년간 월 50만원의 활동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2016년 12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5명의 수혜자가 있으며 그중 1명은 현재 기금을 받고 있다. 다섯 번째 수혜자의 기금 수령이 종료되면 이 활동은 마무리될 예정이다. 지역 시민사회 단체들은 지속하길 희망하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

    청년 세대의 어려움에 대한 선배 세대들의 공감이 실험을 만들었다. 기금의 제안자는 “부모 세대는 경제적 자립이 가능했지만, 청년 세대는 불가능하다.”며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소득 원천의 봉쇄와 일자리 봉쇄라고 말한다. 청년 세대의 어려운 삶이 개인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산내면 하황마을 선배 세대(40~50대)들의 공감대가 되었고 지리산 활력 기금이라는 형태로 출연되었다. 기금은 자립하고자 하며 마을의 활력을 높이려는 청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여럿이 힘을 모아 기금을 모았다. 다섯 가구에서 가구당 10만원씩 출연해 1년간 한 청년의 기본소득(월 50만원)을 책임진다. 그들은 이를 “오가작통”이라 부른다. 옛 자치조직에서 이름을 따오고 “통”자에 “통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제안자의 말에 따르면 여러 정당이 30~40만원의 기본소득을 이야기하였지만, 그것은 적다는 생각에 월 50만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수혜자의 선정은 출연하는 가구들이 임의로 정해진다.

    제안자는 왜 그랬을까?

    제안자(박찬은 씨)는 자신을 무지렁이 농사꾼이라 밝혔다. 그는 15년 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공동체적 삶을 찾아 남원의 산내면에 귀농하여 정착했다. 그가 오기 전 산내면에서는 여러 공동체가 샘솟았다. IMF 다음 해인 1998년, 산내면 실상사에는 귀농학교가 만들어져 귀농 운동의 거점이 되었고 1999년에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2001년에는 최초의 불교계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가 태어났다.

    그는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걸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행복의 조건에서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것을 살면서 느꼈는데, 그의 눈엔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어서 그는 “우리 세대(수혜자의 선배 세대)는 나름대로 자립을 이루고 그런대로 괜찮게 살고 있다. 이것이 한편으로 모두가 공유하여 쓸 자원을 우리 세대가 앞당겨 사용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원을 다음 세대에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하였다.

    청년 소득을 지자체나 국가가 하기엔 요원했다. 제안자는 “많이 번 사람에게 걷어 재분배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지만 현재 안 하고 있다”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보자고 실험을 제안했다. 그가 보기에 마을이라는 곳은 공동체라는 가능성이 있고 연대가 가능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마침내 시골에서 적지 않은 돈이지만, “아이 하나 더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 등으로 뭉칠 수 있었다.

    수혜자들은 어떻게 변했나

    A 씨는 지리산 활력 기금의 수혜 기간을 성장과 쉼의 시간으로 정의했다. 수혜자 A 씨는 남원에서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성폭력 예방 교육 강사과정과 성 상담 전문가 워크숍을 받고 있었다. 교통비로만 매주 10만원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자체도 큰 부담이었다. 지리산 활력 기금은 그가 교육을 위해 지출해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었다. 틈날 때마다 찾아야 했던 알바를 줄였고 교육을 늘렸다. 기금 수여에 따른 성장과 쉼을 통해 그는 상담센터에서의 일을 늘려갈 수 있었다. A씨는 청년들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표했다,

    B 씨는 급하게 알바를 찾지 않아도 되고 삶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며 기금이 없었다면 풀타임 알바를 했을 것이라 말했다. B 씨는 당시 산내면 청춘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 공간 “청춘식당 마지”를 운영 중이었다. 그는 활력 기금을 통해 커뮤니티 공간의 지속에 “인공호흡기”를 달 수 있었고 자신에 대한 어른들의 환대를 느꼈다. 마지를 그만 둔 다음에는 무엇을 할지 준비하는 기간을 가졌다고 말한다. 이어서 활력기금은 필요하나 최소한을 보장하는 것이라 충분한 무언가는 아니라고 말하며 “자원은 고갈/소진되고 대부분의 일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신할 상황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색하는 데에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C 씨는 기금을 자유로움이라 말한다. 조금의 일을 하고도 돈이 있어 일만 하는 삶이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었다며 “하고 싶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거나, 사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다거나, 그림을 그리는 종이도 살 수 있고, 물감도 살 수 있고.”라며 말을 이었다. 또, 남의 노동력으로 생산된 돈이기에 ‘잘 살아야 할 텐데’, ‘잘 써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공부 모임을 빠지지 않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고 말한다.

    D 씨는 실업급여와 온수 매트에 비유했다. D 씨 또한 아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음에도 덕분에 잘 쉴 수 있어서 한번 발 담그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약 같은 온수 매트라는 것이다. 이어 기금은 “완전 필요하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며 운을 떼며 “펀딩을 받는다든가, 시민자금을 받는다든가 하는 것은 한계성이 분명”하다며 지속성을 위해 행정 차원에서의 논의와 지원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타국의 사례들과 같이 수혜자들의 삶의 질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그들은 생각의 전환과 시간을 얻었고 일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몇몇은 마을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의지를 충전했다. 이는 2017년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결과와 상응한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수급자들은 대조군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스트레스는 덜 받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는 질병 치료 관련 복지비 지출 감소로 이어졌다.

    실험을 위한 작은 사람들의 노력

    자신이 아닌 다른 계층의 문제를 위해 희생했다. 사람들은 살아가며 다양한 문제들과 직면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해소하는 것이 벅차 목숨을 끊는 이들도 많다. 지리산 활력 기금의 출연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넘어 청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귀 기울였고 그들을 도왔다.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공공이나 정치권이 하지 못했던 것을 작은 개인들이 이루어 냈다. 그들이 출연을 시작했을 때, 정치권은 제안을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국가가 하기에는 요원했다. 아무도 쉽게 나서지 못하였다. 허나 지리산 자락의 작은 하황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모아 기금을 출연했다. 지역 청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필자소개
    한양대 교육학과 졸업 @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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