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좌파는『삼국지』의 후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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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04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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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는 한국인에게 열렬하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중국의 고전이다. 이 글의 필자는 『삼국지』 주인공인 유비 3형제의 ‘출신 성분’에 주목하면서, 이들 때문에 삼국지의 ‘진보성’이 확보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이 맺은 도원결의는 비록 황당무계하지만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불온성’ 을 품고 있으며, 이 점 때문에 민중들은 이 책에 열광한다고 말한다. <레디앙>은 앞으로 김정진 변호사가 흥미로운 필치로 풀어나갈 ‘삼국지는 살아있다’를 연재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한 진보언론매체에서 삼국지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비판적 견해가 게재된 적이 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고증적으로 고찰한 이 글은 시종일관 날카로운 분석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몇 가지 의구심은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삼국지』에 열광할까

    왜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삼국지』에 대해서 열광하는지에 대해서 이 저자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일단 의문이 들었다. 또 다른 의문 하나는 왜 진보적인 인사들이 일반적으로 『삼국지』와 같은 소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삼국지』에 대한 모든 비판은 맞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를 갈망하는 사람들도 『삼국지』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간판스타인 노회찬 의원이 무명의 원외정당 사무총장 시절 활동가가 반드시 읽어야 할 글로 『삼국지』와 <근로기준법>을 든 것을 보면 정말로 의미심장하다고 생각된다. 과도한 단순화인지 모르지만, 필자 또한 노회찬 의원의 이 지적에 십분 공감하였다.

    노자(勞資) 간의 세계적 또는 일국적 계급관계가 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근로기준법>과 어찌 보면 통념적인 정치공학의 부산물일지도 모르는 『삼국지』가 양립 가능한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진보정치에 투신해 있는 분들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삼국지』 세계에 한 발,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 주인공 때문에 『삼국지』는 진보적일 수 있다

       
     
     

    먼저 『삼국지』의 그 많은 인물들 중에서 필자는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당연한 『삼국지』의 주인공이지만, 다른 인물들과 달리 이들의 행로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삼국지』는 그 지나친 통속성과 영웅담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문열과 같은 보수주의자가 조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삼국지』를 쓴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당대의 문무를 겸비한 모든 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 조조의 세력인데, 이는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보수 세력과 동일해 보인다. 조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없는 유비는 명분만 따지는 실제로 더 음험하고 위험한 인물 아닌가.

    유비에 대한 온갖 미사여구를 빼 본다면 – 황실의 후손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전주 이씨와 밀양 박씨, 김해 김씨는 다 왕실의 후손이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런지 – 유비는 직업이 돗자리 장수다.

    1만명을 대적하는 『삼국지』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관우는 아마도 동네건달이었던 것 같고, 천하의 신력을 자랑하는 장비는 푸줏간 주인이다. (물론, 『삼국지』에서는 모호하게 쓰여 있지만, 김구용이 번역한 본에 의하면 장비는 자신을 “술도 팔고 돼지도 잡으며 오로지 천하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한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관우는 “세도만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었는데, 그 자가 되지도 못한 수작을 일삼다가, 결국 내손에 맞아 죽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도원결의 ‘세명의 사회불만 세력 술한잔 하고 불순 단체 결성한 것’

    사실 한국의 어떤 근대소설도 이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지는 않았다. 풍운아 홍길동도 서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양반이고, 춘향이도 관기의 딸이기는 하지만 신분상승을 하지 않았는가.

    돗자리 장수와 동네건달, 푸줏간 주인이 만나 천하를 도모했다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사실 『삼국지』의 가장 큰 메타포이다. 민중들이 『삼국지』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은 봉건적이고 통속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온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원결의라는 상징적 의식은 어떠한가. 보잘 것 없고 의기밖에 없는 이 세 사람이 맺는 이 우스꽝스러운 의식은 전설적인 것처럼 포장되지만, 심하게 말하면 세 명의 사회 불만세력이 술 한 잔 먹고 불온한 단체를 결성한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라면 범죄단체조직이나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가 되지 않았을까. 한국의 이름 없고 의기 있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하숙방에서, 쪽방에서 의기 있게 결의한 것이 그 폭압적인 전두환 정권(=황건적?)을 몰아내었고 그 결과 지금의 민주노동당(=촉?)도 탄생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황당하기 그지없는 공명의 계책과 진보정당 창당의 유사성

    한 편 제갈량은 어떠한가.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백면서생에 지나지 않는데, 시골에서 무위도식하면서 지내는 자이다. 조조 휘하에 있던 당대의 재사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물 아닌가. 그러나 그는 배짱 좋게 유비를 두 번이나 퇴짜를 놓았으며, 누가 봐도 황당하기 그지없는 천하삼분지계를 내어 놓는다.

    당시 중국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은 하북에 집중되어 있었고, 강남은 이제 개발 단계였고, 제갈량이 지목한 중국의 서부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역을 기초로 조조와 싸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이를 기묘한 계책을 받아들인 유비 또한 황당함에 있어 제갈량에 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것이 아닌가. 3김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과연 진보정당이 가능했겠는가. 손 한 번 흔들면 반경 50km의 표가 결집한다는 3김(특히 YS와 DJ)에 맞서 진보정당을 만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했나. 가공할만한 자본과 정권의 탄압에 맞서 민주노총을 만든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러한 황당무계한 계획이 일부나마 실현된 것은 천하삼분지계에 비견할만한 진보정당 창당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 계획에 많은 이들이 청춘을 바쳤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제갈량이 백면서생이 아니었고, 진짜로 현인이었다면, 그는 왜 유비에게 올인 했을까. 본인도 유비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제갈공명과 레닌 그리고 모택동

    필요성과 기회는 이론을 넘어서는 것, 당연히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레닌과 모택동
     

    왜 레닌은 1917년 2월 혁명 후, 당시 모든 볼세비키들이 반대한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볼세비키에 의한 권력 장악을 주장했을까. 볼세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혁명은 그것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만든 2단계혁명론은 사후적인 것일 뿐이다.

    왜 중국공산당의 비주류이자 호남성 출신의 촌놈에 불과한 모택동은 중국공산당 엘리트 당료인 주은래의 지지 아래 준의(遵義) 회의에서 전권을 장악했는가.

    사실 사회주의와는 별 관계가 없는 농민에 대한 계급적 강조는 중국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고, 그것만이 중국공산당의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모택동과 주은래는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좌파들은, 특히 대중의 마음을 읽어 권력을 장악한 좌파들은 『삼국지』의 후예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하에서 기회를 포착하였으며, 거기에 집중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역사는 조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압도적인 불리한 조건 속에서 명분과 실리, 계략과 우둔함을 오가며 분투한 유비와 그 주변 인사들의 모습은 현대사회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활동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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