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기관 안전관리 대책,
    노조 "현장인력 충원, 예산 증액해야"
    발전회사, 안전 사고 등 하청노동자 책임 전가 규정 추진
        2019년 04월 23일 07: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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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공공기관 안전관리 종합대책이 노동 현장엔 실제로 그 효과가 닿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 김용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발전회사에선 안전사고를 하청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규정을 신설하려는 움직임까지 확인됐다.

    공공운수노조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라도 안전지침을 세워 수익과 효율성보다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중심에 두고 공공기관을 재편하는 방향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안전지침이 제정된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공공기관 현장에서 여러 우려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짚었다.

    노조는 ▲안전관리 인력 외에 현장 인력을 즉각 충원 ▲외주‧용역‧무기계약직 인력 충원 및 예산 증액 편성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 현실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 ▲안전지침에 제외된 지방공기업, 현업공무원에게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 확대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곽노충

    앞서 정부는 KTX 강릉선 탈선,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 태안화력 석탄운송설비 점검 사고 등 공공기관에서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 3월 28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공공기관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발표,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을 제정했다.

    문제는 이러한 안전관리 종합대책이 현장에선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종합대책에서 공공기관 안전인력 1400명을 충원했다고 밝혔으나, 이는 모두 안전관리 인력이다. 외주·하청 노동자들은 애초에 인력충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구의역 김 군과 발전사 김용균 씨의 사망 모두 당초 충분한 인력이 보장돼 2인 1조 원칙만 지켜졌어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던 점을 감안하면, 정책이 현장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공운수노조는 “현장인력 충원 없이 안전관리 인력만 늘어난다면 각종 점검, 조사 등으로 인해 현장의 노동자들은 업무 과부하에 시달릴 것”이라며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외주·하청 노동자들은 이마저도 제외되어 반쪽짜리 대책이 됐다”고 짚었다.

    노조는 “뿐만 아니라 위험업무에 대해 2인 1조 근무를 약속했지만 인원 충원이 되지 않고 있다. 특히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업장인 태안화력 발전소조차도 위험업무 2인 1조가 온전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이런 인력부족 문제는 예산부족 문제도 있지만 업무의 위험도에 비해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해 입사 지원을 하는 이들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외주화 중단과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 및 비정규직 직접고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전사고 책임을 하청노동자에 묻도록 계약 규정 변경 지시

    인력충원 문제 외에도 한국서부·남부발전은 공공기관 안전 지침 제정 이후 하청노동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계약 규정 보완하라는 지침을 전사에 하달했다. 안전사고 예방이나 시스템 보완이 아닌 하청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이다.

    하청에 책임전가 관련 내용 캡처

    서부발전은 ‘안전사고 원인 유발자에 대한 책임 강화 방안 마련’에서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강화된 만큼,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협력업체 근로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계약규정 등) 마련 필요”하다고 지시하고 있다.

    남부발전도 ‘안전사고 패널티 및 인센티브 용역 추진’안에서 “안전관리처에서는 안전 인센티브 관련 용역을 조속히 추진해주기 바란다”면서 “금번 용역 추진 시에는 벌과금과 인센티브의 수준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발전사의 이러한 계약규정은 산업재해의 책임을 모두 하청업체에 전가하던 구시대적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원청의 사고 책임 회피는 산재를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하청업체는 산재가 벌어져도 은폐에 급급해 제대로 된 예방 대책조차 수립하지 못하는데다,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원청은 원청대로 안전조치를 위한 투자도 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권혁상 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 조직실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원청이 사고의 책임져야 하자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남부발전에서 ‘안전사고 시 작업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계약조건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다가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로 주춤하고 있다”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업체 계약관계에서 안전사고 책임을 물을 시 이는 필히 산업재해를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이 같은 상황을 기획재정부에 전달했지만 ‘검토 후 추후협의’ 답변을 받았다. 노조는 “공공기관의 안전은 시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당장 제도 보완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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