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자동차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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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7월 03일 06: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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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6월 말에 집중 실시된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의 산별노조 전환 투표에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등 13개 노조 8만 7천여 명의 조합원들이 산별노조 전환을 결의한 것이다.

    이로써 매년 임단협 시기마다 보수언론의 도마에 오르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조합원 13만의 금속노동조합 시대가 열렸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환영의 박수 소리가 뜨겁고, 투표 직전 뒤늦게 산별노조 ‘반대’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경영계에서는 새 판짜기에 절치부심하는 모습이다.

    아직은, 산별의 ‘탄생’이 아니라 기업별의 ‘정지’

    그러나 이번 투표 결과는 산별노조 전환의 대원칙에 동의한 것이지 새로 등장할 산별노조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결정한 것은 아니다. 수만 명의 완성차업체 조합원들을 품게 된 금속노동조합의 새로운 조직 구조는 9월이 되어서야 분명해진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번 투표의 역사적 의미는 낡은 기업별 노동조합의 활동 ‘정지’에 있는 것이지, 산별노조의 ‘탄생’이 이것으로 결판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험은 오히려 이제부터다.

    사실 산별노조라는 단어 자체는 우리에게도 이미 낯설지 않다. 거대 산별노조로서 이미 한국노총 금융노조가 있고, 그 외에도 꽤 많은 소산별 노동조합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업별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기업지부’로 이름만 바꾸고 상급 연맹이 ‘노동조합’으로 간판만 고친 격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래서 ‘무늬만 산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왜 그런 비판이 나오는가? 이번 투표를 놓고 부랴부랴 특집 기사를 내놓은 주류 언론에 따르면, 산별노조의 핵심은 노사교섭이 기업 단위가 아니라 산업별로 이뤄지는 데 있다고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이 기준에 관한 한, 지금 존재하는 산별노조들도 결코 ‘무늬만’ 산별은 아니다. 초기업 단위 교섭이 어떻게든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무늬만 산별’과 같은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의 신생 산별노조들이 산별노조의 또 다른 중요한 기준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한 최대의 노동력 판매자들을 조직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대충 비슷한 산업(여기서 핵심은 ‘비슷한’이 아니라 오히려 ‘대충’에 있다)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개인 가입으로 쉽게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것. 사실은 이게 세계 노동운동사에서 직업별 노동조합을 제치고 산업별 노동조합이 등장해 중심으로 부상한 이유이기도 하다. 산별교섭의 제도화는 이러한 조직화 운동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지 그 역의 순서는 아니었다.

    만약 기존의 산별 전환 과정이 ‘무늬만 산별’이 아니었다면 한국어의 중요한 표현 하나가 이미 바뀌었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표현이다. 반면 외국에서 더 익숙한 것은 “노동조합에 가입한다”는 어법이다.

    한국에서는 불과 십 수 인이 일하는 사업장에서조차, 노동조합은 “만드는” 것이지 “가입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업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은, 그걸 “만들” 수 있을 만큼 ‘힘 센’ 노동자들, 즉 대사업장의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노동조합은 “가입”하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 노동자의 단결은 노동자에게 값비싼 무엇이 아니라 가장 쉽고 또 당연한 것이라는 사실이 상식이 되어야 한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거는 기대는 바로 이런 것이다. 약자들의 최대 연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래서 노동조합의 조직형식 문제를 놓고 ‘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또 다른 전환점’이라느니 ‘실질적 민주주의의 전진’이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다.

    이미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산별 전환이 갖는 가능성에 대해 풍부한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 윤진호 교수(인하대, 경제학)의 조사에 따르면, 초기업 단위 노동조합 중심 체제로 전환할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은 현재의 10%에서 30% 대로 급증할 수 있다. 또한 올해 5월 삼성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세대, 일 그리고 신뢰: 국제비교’)에서도 20~30대에서 산별노조에 대한 지지도가 기업별 노조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기대는 단지 ‘기대’일 뿐이다. 몇몇 산업부문에서 기존 노조의 산별 전환이 이뤄졌지만 조직률이 획기적으로 늘지는 않았다. 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대사업장과 중소영세사업장 사이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나타나는 조직화의 장벽이 의연히 버티고 있다.

    노동조합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상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번 투표 결과가 상당히 뜻 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흥분할 때는 아니라고 냉정하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험은 이제 시작이다

    본격적인 시험은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수많은 노동자들, 시민들이 이 시험의 경과에 눈과 귀를 모을 것이다. 특히 산별노조운동이 다음의 물음들에 어떻게 답하는지 관심의 촉각을 기울일 것이다.

    첫째, 한국의 기존 산별노조의 골간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금속노조에서도 과도기 조직으로 인정되고 있는 기업별 지부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지역 지부 일괄 체제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새로운 거대 금속노조는 과연 그 첫 번째 임단협에서부터 금속 노동자 내부의 임금-고용-복지 격차를 줄이는 방향의 교섭안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인가?

    셋째, 산별노조의 대의구조 안에 현재의 조합원만이 아니라 미래의 ‘다수 조합원’, 즉 비정규직-중소영세사업장-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넷째, 대사업장 기업별 노조의 풍부한 재정이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기금, 지역 노동자들의 공동 복지 기금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인가?

    다섯째, 산별노조의 지역조직들이 지역의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전반을 바꾸는 주역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이 물음들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이제까지 노동조합운동의 바깥에 머물던 수많은 노동자-시민들이 연대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비로소 그 새로운 한 걸음을 성큼 떼어놓을 수 있다. 그 광경을 만들어내는 게 바로 지금 노동운동의 과제고, 민주노동당의 과제며, 전체 진보운동의 과제다.

    * 이 글은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www.ppi.re.kr)의 ‘Radical View’에 동시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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