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시작되는 농사철
    [낭만파 농부] 처음으로 텃밭농사도
        2019년 04월 18일 09: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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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으로 하여 산야는 온통 눈이 부시다. 이젠 흔적조차 희미한 매화를 뒤로 하고, 개나리 노란 꽃 활짝 핀 길섶엔 벚 꽃잎 흩날린다. 그 옆으로는 배꽃과 복사꽃이 들녘을 화사하게 수놓았다. 소담하게 흐드러진 조팝꽃은 또 어떻고…

    찰 볍씨를 싣고 돌아오는 길. 먼발치로 보이는 산자락은 색색의 솜사탕을 뿌려놓은 듯 이름 모를 꽃무리로 울긋불긋하다. 올해는 어쩐 일인지 찰 볍씨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일반 벼 볍씨야 농협에서 대주니 걱정이 없지만 찰벼는 짓는 사람이 거의 없는 탓에 경작자가 알아서 볍씨를 구해야 한다. 그런데 국립종자원은 물론이고 농업기술센터, 농협, 면사무소까지 연결되는 족족 “미안하지만 남은 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생산량이 줄어 공급이 달린다는 거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겨우 한 포대를 구했다. 그것도 물경 30키로나 떨어진 농가에서. 어쨌거나 한 고비 넘겨 다행이다.

    일주일 뒤면 볍씨를 담그고 벼농사에 들어간다. 해마다 때가 되면 하는 일이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긴장이나 준비까지 늦출 순 없는 일. 함께 짓는 농사라 무엇보다 마음준비가 필요하다. 보름 전 열린 고산권 벼농사두레 정기총회는 그런 뜻이 컸다.

    사실 연례행사라는 게 으레 재미없는 요식행위로 받아들여지는 게 보통이다. 더욱이 선거나 특별한 쟁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개회 정족수(과반) 넘기는 건 애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2/3 가까운 인원이 참석해 회의장을 달궜고, 그 열기는 뒤풀이까지 이어진 것이다. 참 별일이다. 올해 새로 벼농사에 도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늘어난 것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지 싶다. 그래, 벼농사 준비는 이만하면 됐고.

    고산권 벼농사두레 총회

    텃밭 모습

    엊그제까지 텃밭에 매달렸다. 씨앗 넣고, 모종 심기 전에 먼저 밭 만드는 일부터. 농한기 강좌 때 배운 대로, 땅을 갈지 않는 퍼머컬처 농법인 ‘시트멀칭’ 기법을 쓰기로 했다.

    먼저 밭에 물을 흠씬 준다. 물을 주기 전에 이미 올라와 있는 잡풀, 그것도 키가 큰 놈들만 베어 넘긴다. 여기에 잘 숙성된 퇴비를 조금 뿌린다. 신문지를 두 세 겹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물을 뿌려준다. 그 위에 볏짚, 나무껍질 같은 유기물을 두텁게 덮어준다.

    처음엔 왕겨를 덮고 모래흙을 끼얹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가 신문지가 벗겨지는 통에 다시 볏짚을 구해다 덮어줘야 했다. 이렇게 하면 지렁이 같은 땅 속 미생물이 토양을 헤집어 푹신하게 만들고 잡풀도 잡아준다는 것인데, 두고 봐야지.

    이어 넝쿨식물이 타고 오를 지주대 세우기. 뒷산 대나무 밭에서 굵기가 적당한 놈들을 베어다가 땅 속에 단단히 박아 넣는다. 손을 뻗은 높이의 대나무 끝부분을 피라미드나 사다리꼴로 모두어 끈으로 묶는다. 작물이 넝쿨손을 벋을 수 있도록 질긴 노끈을 띠거나 가는 막대를 가로지른다.

    이로써 밭 만들기가 끝났으니 이제 작물을 심을 차례. 아뿔싸! 무얼 심어 기를지 아직 정리가 안 돼 있구나. 게다가 이따금씩 서리가 내리는 시기여서 오이, 호박, 토마토 같은 모종을 심기가 아직 이르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완두콩 씨앗을 조금 넣고, 생강 뿌리를 조금 박았다.

    나머지 밭에는 상추, 쑥갓, 청경채 같은 쌈 채소며 파, 부추, 깨, 고추 같은 양념 채소와 가지, 참외, 수박 따위 과채를 심어야겠지. 양배추, 아욱, 열무는 물론이고 고구마, 감자, 토란 같은 뿌리채소도 챙겨야지. 자연(유기) 재배를 좇으니 당연히 ‘섞어짓기’로.

    채소뿐 아니라 꽃나무까지. 며칠 전 근수 형님이 보내준 수수꽃다리와 산수유, 철쭉을 몇 그루 심었다. 이제 채소류와 잘 어우러지게 갖가지 화초도 드문드문. 허브 종류도 빠뜨리지 말고. 아, 밭 가운데 묻어둔 고무통에는 빗물을 받아 연꽃이며 수련, 창포 따위 수생식물을 옮겨 심어야겠네.

    머릿속에 그려지는 세상은 그야말로 찬란하다. 하지만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지은 지 9년째인데 (텃)밭농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 그림이 현실로 이어질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밭농사는 시작됐다.

    이번 주말엔 작업일정을 조정하는 벼농사두레 경작자 회의가 열린다. 볍씨 담그기-볍씨 파종-못자리 만들기로 이어지는 초반작업 날짜를 정하는 자리다. 뭐, 복잡할 거는 없다. 되도록 많은 인력이 모일 수 있는 휴일로 잡게 될 것이다. 날짜는 후딱 정하고, ‘의기투합’하는 프로그램은 길게 이어질 것이다.

    농사철! 이제야 좀 실감이 난다.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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