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군신화의 신단수는
    박달나무 아닌 자작나무?!
    [비판] 우리 식물명을 진정으로 왜곡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①
        2019년 04월 17일 11: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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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레디앙 칼럼 글을 통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식물명의 일제 잔재 청산 등등을 운운하며 오히려 식물명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가로막는 주장과 글들에 대해 비판을 해왔다. 이번 글도 그 맥락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반론 혹은 이견이 있다면 토론을 위해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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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모든 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밖에 보지 않는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갈리아전쟁기> 중에서

    [1] 글을 시작하며

    몇 해 전부터 광풍처럼 불어 닥친 식물명의 ‘일제 잔재 청산’이나 ‘창씨개명 된 풀꽃이름 되찾기’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진행된 일련의 주장과 행동들이, 실제로 일본명의 영향을 받은 식물명을 사실에 맞추어 찾아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한 근거도 없이 멀쩡한 우리 이름을 일본의 것으로 바꾸는 일에 열중하고 있음은 수차례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마치 그러한 주장의 끝판처럼,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근거로 신화를 사실로 해석한 후 신화를 근거로 과학을 재단하고 그에 반하는 것은 친일이라는 주장까지 펼쳐지고 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가 자작나무를 가리키는 것인데도 일제의 부역자가 이것을 박달나무로 바꾸어 우리의 건국신화를 왜곡했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이다.

    식물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고 식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는 꽤 유명한 분이 “건국신화마저 왜곡한 식물명”이라는 제목 하에 여러 소셜네트워크에서 글로 주장한 견해이다. ​그의 주장을 살펴보자.

    – ​예로부터 우리는 배달민족이라 불러왔습니다. 배달민족이란 말은 밝은민족이라는 의미입니다…(중략)… 박달나무는 밝은나무를 의미합니다.

    ​- 고조선의 건국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술되어 있습니다…(중략)…여기에 등장하는 신단수는 신령한 나무입니다…(중략)…우리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수피가 검은 나무가 아니라 수피가 흰 자작나무를 의미합니다.

    – 지금 우리가 박달나무라 부르는 나무는 수피가 검고 크게 자라지도 않고 군락도 만들지 않는 종류입니다. 이 이름은 왜곡되었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합니다.

    – ​박달나무는 자작나무의 이명으로 쓰고 현재의 박달나무는 중국명을 참조해서 검은 자작나무로 불러야 할 것입니다.

    – ​일제하에 정리되어 고착화된 우리 식물명은 일제와 그 부역자들이 우리의 건국신화를 왜곡한 것입니다.

    몇 가지 역사적 사실 그리고 자작나무와 박달나무에 관한 몇 지식만 알면, 이러한 얼기설기 엮은 주장이 얼마나 황당하고 근거 없는 것인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내용을 따지지 않고 마치 그러한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친일 잔재의 청산을 외치며 열광한다. 일찍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이는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박달나무를 박달나무라 하고, 자작나무를 자작나무로 하면 졸지에 일제의 부역자로 몰린 판이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사람들을 설득할 특별한 재주가 없으니, 무엇이 사실이 아니며 무엇이 논리적으로 오류인지를 성실하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을 듯하다.

    강원도 함백산에서 자라는 박달나무 모습: 박달나무는 높이 30m, 직경 1m까지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이다. (사진 촬영자 : Sokey님)

    강원도 지역에 식재된 자작나무 모습: 높이 10~25m, 지름 20~40cm 정도 자라는 낙엽 활엽 교목이다. (사진 촬영자 : Sokey님)

    [2] 신화 속의 식물명에 대한 종의 특정이 가능한가?

    신화(神話)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정의가 있지만, 대체로 원시·고대인들이 자신들의 논리 구조에 따라 어떤 사실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방식을 일컫고 있다.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이해되고 있는 고조선의 건국에 관한 것으로 신화의 한 형태에 속한다.

    역사학에서 신화 속에는 원형 자체와 그것의 변형 그리고 부가된 요소들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해 내는 일이 쉽지 않고 원형을 찾아내었다고 하더라도 신화가 발생할 당시 아득한 과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사료를 조작해서라도 그것을 현실로 만들려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경향을 사이비역사학(또는 유사역사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신화에서 역사의 구체적 사실을 그대로 찾으려 하기보다는 그것에 반영된 상징적 시대상을 추출하는 것이 과학으로서 역사학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내용이다.

    게다가 식물의 종(species)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은 역사학과 더불어 자연과학의 일종인 식물학(식물분류학)의 영역이다. 식물분류학에서 특정한 식물이 어떤 종에 해당하는지는 어떻게 식별하는가? 린네(Carl von Linne, 1707~1778) 이래 식물분류학에서 이미 발견되어 특정된 종은 학명을 정하여야 하고 그 학명은 다른 종의 식물과 구별되는 특징을 기재하여 유효한 출판물로 발표되어야 한다. 그 발표문에는 종을 특정하게 된 기준표본(type specimen)이 지정되어야 하고, 그 기준표본은 식물표본관이나 연구기관 등에 영구히 보관되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발표된 학명 중 최초로 발표된 것에 대하여 선취권(priority)을 인정하여 정명(correct name)으로 보고, 그 정명이 기록된 원래의 발표문을 기재원문(Original descriptions)이라고 한다. 이런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물이 어떤 종에 해당하는 지는 식별하는 것-흔히 이름 작업을 ‘동정’이라 한다-은 일반적으로 (i) 식별하고자 하는 대상 식물 개체의 특정 → (ii) 추정되는 학명의 선정과 해당 학명의 기재원문의 확인 → (iii) 해당학명의 기재원문에 기록된 형태적 특징에 대한 비교 → (iv) 기재원문의 기준표본 확인 및 기준표본과 대상 식물의 비교(형태적 비교 및 필요한 경우 유전자 조사)등의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신화 속에 기재된 식물은 명칭만 있을 뿐 대상 식물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학명을 찾거나 학명에 따른 기재원문 등과 비교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화 속의 식물명이 정확히 어떤 종의 식물을 동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군신화에 따른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2333년이고 – 이조차도 한참이 지난 사후의 문헌을 참조하여 추산한 것에 불과하고 정확한 연대가 아니기도 하다 – 삼국유사에 단군신화가 기록된 것은 고려후기인 1281년의 일이었다. 무려 3614년이 경과된 이후에 식물명이 기록된 것이다. 그 동안 구전 과정에서의 변형되었거나 기록과정에서 오류 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이 정확히 기록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해당 식물의 개체가 현존하는 것도 아니어서 종의 동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추정 가능하다면 그 이후의 시대의 문헌에서 나타나는 해당 이름을 어떤 식물로 등장하는지를 살펴, 그 식물에 대한 어림짐작을 해 보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이는 정확히는 후대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고 삼국유사를 저술할 당시의 부르던 명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고조선을 건국한 시점에서의 정확히 어떤 식물을 지칭한 것인지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 기록된 신단수라는 식물이 어떤 식물 종이라는 것을 확정하고 나아가 그 확정된 종의 식물명을 후대에서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족집게 점쟁이나 하는 일이지 과학적 방법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는 단군신화의 신단수에 대한 명칭의 왜곡이 있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정당하기 위하여 어떠한 사실과 논리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3] 주장의 오류와 왜곡들

    1. 박달나무는 크게 자라지 않는 나무인가?

    [주장1] “우리 민족은 바이칼 호수 열탕 주위에서…(중략)…남쪽으로 이동했는데 그 경로에는 수피가 희고 밝게 빛나는 자작나무가 주로 자랍니다…(중략)…지금 우리가 박달나무라 부르는 나무는 수피가 검고 크게 자라지도 않고 군락도 만들지 않는 종류입니다.”

    박달나무와 자작나무는 모두 자작나무과(Betulaceae)의 자작나무속(Betula)에 속하고 잎이 넓은 활엽수이며 낙엽이 지고 크게 자라는 교목성 목본식물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자작나무속 식물들은 아래와 같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Chang, C.S., H. Kim, & K.S. Chang. 2014. Provisional Checklist of Vascular Plants For The Korea Peninsula Flora (KPF)] pp294 이하 참조].

    – 개박달나무(Betula chinensis Maxim.)
    – 거제수나무(Betula costata Trautv.)
    – 물박달나무(Betula davurica Pall.)
    ​-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
    – 사스래나무(Betula ermanii Cham.)
    – 좀자작나무(Betula fruticosa Pall.)
    –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

    자작나무속 식물 중 본 글에서 주로 논의가 되는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와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의 차이를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태영·김진석, 『한국의 나무』, 돌베개(2018) 197쪽 및 203쪽; 박상진, 『우리나무의 세계2』, 김영사, 415쪽 이하 참조].

    박달나무와 자작나무의 비교

    자작나무속 식물 중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는 수피가 상대적으로 검은색을 띤다는 것과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는 수피가 흰색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서 중국 동북부를 거쳐 러시아 등에 분포하고 상대적으로 군락을 잘 형성한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맞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먼저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는 크게 자라는 나무가 아니라는 그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박달나무는 평균 높이 30m, 지름이 1m까지 자라는 큰 교목성 목본식물이며 크게 자라면 두 아름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가 높이 10~25m, 지름 20~40cm 정도 자라는 것에 비해서도 훨씬 크게 자란다. 왜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의 수형을 크게 자라지 않는다고 축소할까? 의도적 왜곡이거나 실제 관찰의 부족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바이칼 호수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가 한반도 북쪽에서 중국 서남부와 동북부, 시베리아에 걸쳐 분포하는 것은 맞지만,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도 한반도의 백두대간과 더불어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에 걸쳐 분포한다. 왜 바이칼 호수에 남하할 때 그 경로에는 자작나무가 주로 자라고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는 주로 자라지 않게 되는 것인가? 의도적 왜곡이거나 실제 관찰의 부족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견해의 주장자가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자작나무과 자작나무속(Betula)의 식물 중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는 대개는 산지의 저지대 또는 계곡가 등에 주로 자란다는 점이다. 삼국유사는 신단수가 태백산의 정상에 있다고 하였다.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 기록과 맞지 않는 생태적 특징이 있다. 왜 이런 점을 무시할까? 의도적 왜곡이거나 실제 관찰의 부족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식물의 생태를 살피고 그 종을 구분하는 것은 자연과학의 한 영역이다. 자연과학을 이념과 주의로 재단하는 유형이 흔히 범하는 오류 또는 왜곡 중의 하나는 실제 사실을 이념과 주의에 맞는 것만을 골라 임의적으로 취사선택하여 기술한다는 점이다. 위 주장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2. 바이칼호가 민족의 기원지?

    [주장2] “우리 민족은 바이칼 호수 열탕 주위에서 빙하기를 넘기고 기후가 온난해진 간빙기에 들어서면서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우리 민족의 기원지가 어디인지는 여러 학설과 견해가 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기원이 바이칼 호수에서 비롯되어 남하하였다는 주장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냥 민족의 기원에 한정하여 가설적 이론이나 추정적 견해를 수립하는 차원이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화 속에 존재하는 식물명을 마치 현재의 과학적 분류 방법에 따라 특정되는 종으로 확정짓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견해에 대해서 친일 부역자로 단정하는 근거로 민족의 기원지를 찾고 있기에 문제가 발생한다. 어떤 식물명을 특정한 종으로 확정짓는 것은 과학에 근거한 것이므로 그 근거도 과학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단군신화가 고조선의 건국과 관련된 건국신화임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민족의 기원이 등장하는 것이다. 민족 단위로 국가를 형성한다는 소위 민족국가(nation state)의 관념이 보편화된 것은 근대 이후의 시기이다. 고조선이 우리 민족의 시원이 되는 최초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고조선은 민족국가로 형성된 것이 아니며 다양한 부족과 문화에 기원한 것이라는 점은 단군신화의 여러 요소나 그 이후에 등장하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서도 명확하다. 고대 원시국가인 고조선이 현재와 같은 부족, 문화, 민족 등이 하나로 단일한 틀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미신적인 것이다.

    단군신화에 등장하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식물이 어떤 식물인지 윤곽이라도 잡으려면 고조선이 국가로서 위치한 곳에서 무엇과 어떤 것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지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지, 민족의 기원을 찾을 문제는 전혀 아닌 것이다. 물론 고조선이 어디에 위치하였는지는, 현재 남아 있는 유물과 같은 구체적 사실이 부족하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조차 다양한 이견이 있고, 누군가가 어느 지역을 특정한다고 확고부동한 진리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3. 배달민족이 옛부터 사용되어 온 이름?

    [주장3] “예로부터 우리는 배달민족이라 불러왔습니다. 배달민족이란 말은 밝은민족이라는 의미입니다.”

    배달민족이라는 말이 우리 민족을 뜻하는 말은 맞으며 옛부터 불렸다는 것은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옛날이 단군신화가 만들어진 고조선의 건국 시기 또는 이를 기록한 삼국유사의 저술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전혀 사실이 아니다.

    ** 참고(배달이라는 말의 연혁. 관련 링크)

    배달이 문헌상의 기록이 발견되는 것은 한자어 ‘倍達'(배달)로 하여 20세기의 초엽의 일이고, 한글로 ‘배달’이라는 이름이 보이는 것도 일제강점기인 1915년의 ‘新字典'(신자전)이다. 배달이라는 말이 한민족을 나타내는 말로 일제강점기에 저항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도 있으나, 강제합병의 공로로 중추원 부참의를 역임하고 기념장까지 받은 대표적 친일 부역자 어윤적(1868~1935)이 그의 저술 동사년표(1915)에서 이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기도 하는 등 그 개념 자체가 특별한 민족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말이 탄생된 것은 근세의 일이어서 단군신화가 등장한 시대상이나 그때의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 줄 수 없다.

    굳이 배달이라는 말을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이미 역사학계에서 사후에 위조된 것으로 판명이 난 환단고기(桓檀古記)의 ‘倍達國'(배달국)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들의 견해에 따르면 환단고기 중 삼성기(三聖記)는 신라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삼국유사에 비해 먼저 단군신화를 기록한 것이 된다. 위 견해를 주장하는 이는 단군신화의 출처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언급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에 비추어 환단고기를 실제의 것으로 믿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므로 이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기로 하자.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것과 그 뿌리가 일제의 식민이론 및 친일파의 친일행적과 연관이 있다는 것에 대한 분석으로는 이문영,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2018)을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우리를 배달민족으로 불렀다는 것과 배달민족이 밝은 민족이라는 의미라는 주장은 신단수가 어떤 식물을 지칭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서술에 불과하다.

    4. 삼국유사의 신단수는 어떤 식물인가?

    [주장4] “고조선의 건국신화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면 하늘나라의 환인이 서자인 환웅으로 하여금 3,000명의 백성을 이끌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신단수는 신령한 나무입니다…(중략)…우리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수피가 검은 나무가 아니라 수피가 흰 자작나무를 의미합니다.”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1281년 (규장각본 1521년, 국보 306-2호)

    삼국유사에서 단군신화의 신단수와 관련하여 기록한 원문은 “太伯山頂-即太伯今妙香山-神壇樹”이다. 이를 번역하면 “태백산 정상-즉 태백은 지금의 묘향산-의 신령에게 제사 지내는 제단에 있는 나무”라는 뜻이다. 흔히들 ‘태백산정(太伯山頂)’은 높은 산에 대한 산신 숭배의식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부 견해-1926년에 저술된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이 그러하다-는 태백산의 ‘伯'(백)을 白(백)으로 보아 밝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산의 정상에 관한 논의이다. 신단수(神壇樹)-박달나무를 의미하는 나무 목변의 ‘檀’이 아니다-는 수목 숭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국유사의 어디에도 신단수를 수피가 흰 나무라거나 특정한 종류로 나무로 보고 있지 않다. 단지 신의 제단(祭壇)에 바치거나 그곳에 있는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뿐이다. 식물학자들 역시 이렇게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기도 하다[이러한 취지의 견해로는 신현철,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식물들의 분류학적 실체와 민족식물학』, 순천향자연과학연구 제1권2호(1995) 및 박상진, 『우리나무의 세계2』, 김영사(2011) 427 쪽 참조].

    원시신앙으로서의 수목 숭배에 한정하여 살펴보면, 당산목(신목)은 특정한 한 종류로 환원되지 않으며 흰색의 수피를 가진 나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보다 분명해진다. 어떤 곳의 당산 또는 서낭당의 신목은 수피가 노란색을 띠는 느티나무를, 어떤 지역은 수피가 흑회색을 띠는 팽나무를, 또 어떤 지역에서는 수피가 붉은 소나무나 수피가 검은 곰솔을 숭배하기도 한다. 일제와 그 부역자가 현재의 당산과 서낭당으로 대표되는 수목 숭배의 모습을 바꿔 놓은 것일까? 그러나 당산과 서낭당에 함께 숭배되는 수목들이 최소한 1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수목들이 그 곳에서 자리 잡고 자란 것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이전의 시기이어서 일제가 개입하여 바꾸어 놓았을 여지가 있지도 않다.

    게다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단군신화의 신단수는 원시신앙으로서 수목 숭배와 태백산정(太伯山頂)이라는 높은 산에 대한 산신 숭배가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위 견해의 주장자는 건국신화를 민족의 기원 문제로 구도를 바꾸어 산지의 저지대가 주된 분포지인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로 특정하고 그 과정에서 산신 숭배를 배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건국신화를 왜곡하고 있는 것은 위 견해의 주장자 바로 자신이다.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는 원시신앙으로서 수목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단군신화는 초기 고대 국가의 건국에 관련된 것으로, 당시의 여러 신앙 중 신단수와 관련하여 산신 숭배와 수목 숭배가 결합되어 있고, 신단수를 삼국유사에 근거하여 설명하는 한 자작나무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오해 마시길!

    ​​그러면 단군(檀君)을 소위 ‘박달나무 임금’으로 보는 것은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이승휴가 1287년에 저술한 제왕운기(帝王韻紀)에 삼국유사와 달리 “太白山頂 神檀樹”라고 표현하여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를 의미하는 ‘檀'(단)으로 기록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면 신단수는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를 뜻한다고 볼 수 없는가?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檀’은 중국에서 유래한 한자이고, 중국에서는 대체로 느릅나무과(Ulmaceae)에 속하면서 한반도에 분포하지 않는 Pteroceltis tatarinowii Maximowicz(중국명: 青檀, qing tan)을 지칭하며, 檀(단)을 현재와 같이 박달나무로 해석하는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취지의 견해로 박상진, 『우리나무의 세계2』, 김영사(2011) 427 쪽 참조].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서 발생한 것을 근거로 신단수를 박달나무로 해석하려는 견해가 있기는 하다[이러한 취지의 견해로 박봉우, 『삼국유사에 나오는 나무이야기』, 숲과 문화 제2권(1993) 참조].이러한 견해에 따라 제왕운기의 神檀樹(신단수)가 박달나무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박달나무가 어떤 어원을 가진 것인지를 살펴보자.

    5. 박달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주장5] “박달나무는 밝은나무를 의미합니다. 이는 배달민족 즉 밝은민족과 동의어이고 흰옷을 즐겨 입고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계 부족이 신에게 제를 올리고 삶을 함께 한 나무를 의미합니다…(중략)…우리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신단수는 수피가 검은 나무가 아니라 수피가 흰 자작나무를 의미합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20세기 이르러 외세의 침략 속에서 민족의식이 고양되면서 단군신화의 단군(檀君)ㅡ제왕운기 이래의 신단수(神檀樹)의 ‘檀'(단) 또는 태백산(太伯山 또는 太白山)을 해석하려는 여러 견해(어윤적과 최남선 등)들이 있었다. 20세기에는 이미 현재와 같이 ‘檀'(단)이 박달나무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이 해석은 박달나무의 어원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 이 당시의 논의는 현재의 국어학계의 어원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주어 그것이 어원사전 등에 반영되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자.

    ** 박달 [명] 박달나무 <어원> 박(頂)/ㅂ.ㄺ(明) + 달(高, 山) [김민수, 『우리말 어원사전』, 태학사(1997), 421쪽]

    ** 박달나무 자작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박[頭; 머리)/ㅂ.ㄺ(다)[明(명)] + 달(땅, 산) [백문식, 『우리말 어원사전』, 박이정(2014), 214쪽]

    박달을 ‘박’+’달’의 합성어로 파악한 것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하여 박달의 ‘박’을 頂(정수리) 또는 頭(머리)로 해석하는 것을 제외하여 보자. 그러면 ‘박’은 밝다(ㅂ.ㄺ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달’을 합쳐 보면, 박달(또는 박달나무)는 밝은 땅(또는 산)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의미가 된다. 박달나무의 ‘박’을 밝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어원설의 견해가 맞다면, 이는 박달나무가 자라는 생태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수피의 색깔 때문에 붙여진 박달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이 전혀 아니다. 박달나무를 수피가 밝은 나무로 해석하는 것은 오로지 위 견해 주장자의 독자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흰옷을 즐겨 입고 태양을 숭배한다는 것과 박달나무의 어원이나 수목 숭배의 원시신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울산 방어동 용왕사 앞의 곰솔은 수령이 500년이 추정되고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으며 수피가 검은색인 곰솔을 당산목(신목)으로 숭배하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 내용 하나만 보아도 분명하다. 이처럼 흰옷을 즐겨입는 것과 수목숭배의 신앙에서 수목의 수피 색깔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 참고(울산 방어동 용왕사 앞 곰솔의 당산목에 대한 기사 링크) :

    이처럼 제왕운기에 나타난 神檀樹(신단수)를 ‘檀'(단)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박달나무로 해석한다고 하더라도, 박달나무는 수피가 밝은(흰색)인 나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백두산 부근 만주족 마을에서 황철나무(Populus suaveolens Fisch. ex Loudon)를 신목으로 숭배하는 모습: 버드나무과로 수피가 회색에서 흑갈색으로 변함.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타난 신단수라는 명칭 하나만으로 어떤 종의 식물을 지칭하는지는 확정짓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박달나무와 자작나무의 이름이 왜곡되었다는 취지의 견해를 주장하는 이가 오히려 박달나무(Betula schmidtii Regel)와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의 생태를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취사선택하고 있으며,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중 단군신화에 관한 원문 내용 또는 박달나무라는 한글의 어원을 살펴보아도 신단수를 자작나무(Betula pendula Roth)라는 종으로 특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이후에서는 이를 근거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이후 일제강점기 시기 직전까지 우리의 옛 문헌에서 박달나무와 자작나무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 그리고 일제강점기에서 식물명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2편에서 살펴 볼 내용은 아래와 같다.

    ​​6. 박달나무와 자작나무에 대한 옛 기록들
    7. 민중들의 삶에 반영된 박달나무와 자작나무
    8.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친일 부역자인가?

    9. 박달나무가 자작나무의 이명?

    [4]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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