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노동자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⑧] 인간은 필요 없다??
    2019년 04월 17일 10: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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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자유주의 대 정보자본주의

3-1-1. 신자유주의 쇠퇴
3-1-2. 정보자본주의 축적체제

3-2. 정보자본주의 현재

3-2-1. 패권 이동 : 플랫폼 기업
3-2-2. 자본구성 변화 : 유형자산 대 무형자산
3-2-3. 플랫폼의 마술 : 네트워크 효과
3-2-4. 플랫폼 기업의 파괴적 혁신

3-3.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3-3-1. 플랫폼 노동
3-3-2. 인간은 필요 없다?
3-3-3. 기술적 실업 : 특이점?

앞 회의 글 [4차 산업혁명과 노동해방⑦] 정보자본주의의 현재

3-3.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노동

3-3-1. 플랫폼 노동

“2020년에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슈는 무엇입니까?”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시민, 공무원, 전문가를 대상으로 미래이슈를 물어보았다. ‘플랫폼 노동 증가로 특수고용 노동자 확산’이 수많은 이슈들 중 1위를 차지하였다.

보통사람들도 전문가들도 모두 느끼고 있듯이, 오늘날 플랫폼의 발전은 노동과정과 노사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노동과정의 변화를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플랫폼이 노동 분업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 레볼루션>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 분야에서 벌어지는 플랫폼 혁명은 조직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분업은 그 단위가 점점 더 작아질 것이다.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는 알고리즘에 의해 복잡한 업무가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작고 단순한 업무로 쪼개진 다음 최종 단계에서 다시 하나로 재조립될 것이다.”(442쪽)

플랫폼 기업은 ‘노동 분해 알고리즘’을 투입하여 한 개의 복합 업무를 여러 개의 부분 업무로 분해한 뒤 그것을 여러 명의 노동자들에게 뿌려준다. 노동자들은 저마다 하나씩 부분 업무를 배정받아 부분 생산물을 생산한다. 여러 개의 부분 생산물을 모아서 한 개의 복합생산물로 재조립하는 일은 다시 알고리즘의 몫이다. 이번에는 ‘노동 조립 알고리즘’이 투입된다.

음식배달 노동을 보자. 과거에는 음식점 주인이 배달노동자를 고용하여 음식을 배달시켰다. 음식점 주인이 배달노동자를 겸할 때도 있었다. 아무튼 과거에 음식점은 다음과 같은 복합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1) 배달 인력을 확보한다.
2) 음식 주문을 받는다.
3) 음식을 만든다.
4) 음식을 배달한다.
5) 음식 값을 받는다.
6) 고객의 불평불만을 처리한다.

음식배달 플랫폼은 지금까지 음식점이 수행해오던 복합 업무를 넘겨받아 분해한다. 배달 인력을 확보하는 업무는 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음식 주문을 받는 업무도 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업무는 음식점에게 맡겨둔다. 음식을 배달하는 업무는 배달노동자에게 넘긴다. 배달노동자들을 관리하는 중간업체가 생겨날 수도 있다. 음식 값을 받는 업무도 앱으로 처리한다. 카드나 현금으로 지불할 때는 배달노동자에게 맡긴다. 고객의 불평불만을 처리하는 업무도 대부분 앱으로 처리할 수 있다. 이것이 ‘배달의 민족’, ‘배달통’, ‘요기요’ 등등의 음식배달 플랫폼이 작동하는 원리이다.

배달앱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음식점은 음식을 만드는 업무만 수행하면 된다. 나머지 업무로부터 해방된다. 배달 인력을 확보할 필요도 없고, 손수 음식 주문을 받을 필요도 없다. 손수 음식을 배달해줄 필요도 없고, 손수 음식 값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음식 값은 플랫폼이 온라인으로 통장에 꼬박꼬박 꽂아준다. 이런 업무들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대가로 음식점은 플랫폼 기업에게 배달 건당 수수료만 지급하면 된다.

지금까지 음식점에 직접 고용되어 있던 배달노동자는 일거리가 없어진다. 그는 정리해고 당할 것이고, 어쩌면 플랫폼 배달노동을 시작할 것이다. 플랫폼 배달노동자도 부분 업무만 수행한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넘겨받아 주문한 사람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

한편, 플랫폼은 전통적인 노사관계를 뿌리부터 뒤흔들고 있다. ‘플랫폼 노동’을 ‘긱(gig) 노동’ 또는 ‘온디맨드(on demand) 노동’이라고도 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고용된다는 뜻이다. 1시간만 고용될 수도 있고, 10분만 고용될 수도 있다. 플랫폼은 수많은 임금노동자를 이른바 ‘프리랜서’로 바꿔놓고 있다.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실은 ‘디지털 특수고용 노동자’ 신분으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들은 ‘비정규직보다 못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근로계약서도 없고 4대보험도 없다. 노동3권도 없고, 노동조합도 없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점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일은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스마트폰만 노려보고 있지만 언제 콜이 뜰지 알 수 없다. 콜이 뜨더라도 내가 잡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콜이 뜨기만을 기다리며 우글거리고 있다. 모두 처지는 똑 같다. 콜을 못 잡으면 내일 밥을 굶어야 한다.

플랫폼 노동에서 노동자가 맡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일거리’이다. 플랫폼은 일자리를 쪼가리 일거리로 해체시킨다. 임금노동자를 쪼가리 도급노동자로 바꾸어버린다. 결과는 사용자의 증발이다. 일하는 사람은 있는데, 일 시키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를 보자. 과연 누가 사용자일까? 플랫폼 기업일까? 배달대행업체일까? 음식점 주인일까? 음식을 주문한 소비자일까? 노동하는 사람은 한 사람인데, 시키는 사람은 여럿이다. 그 중 누구도 사용자로 자처하며 나서지 않는다. 20세기 노사관계 질서가 부여하고 있는 ‘사용자 책임’을 떠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플랫폼 시대의 노사관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큰 변화이다. 20세기 노사관계 질서는 ‘노동자-사용자’라는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플랫폼은 바로 이 토대를 안으로부터 허물고 있다.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노사관계의 원형은 공장생산을 토대로 삼아 형성되고 정립되었다. 20세기 후반기에 서비스산업이 크게 늘어났지만, 매장과 사무실의 노사관계도 공장 노사관계의 원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공장은 우선 높은 담장을 쌓아 안과 밖을 선명하게 구분하였다. 육중한 대문과 높은 담장 곳곳에는 위협적인 팻말이 붙어 있었다. ‘외부인 출입금지’, ‘외부인 접근금지’. 공장은 내부인과 외부인을 선명하게 구분하였다.

고용계약의 체결은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는 절차였다. 그것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안정성과 종속성을 서로 교환하는 약속이었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내부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안정적 일자리를 보장하였다. 그 대가로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복종을 서약하였다. 또는 전속성과 계속성을 교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다른 사용자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그 대가로 노동자는 일자리의 계속성을 보장받았다.

공장 안에는 피라미드식 위계질서가 군림하였다. 그 질서에 따라 수많은 내부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꼭지점에는 최고경영자가 있고, 그 아래에는 경영관리자들이 있었다. 가장 아래에는 사무직 및 생산직 노동자들이 자리잡았다.

테일러와 포드는 20세기 자본주의 기업의 피라미드 질서를 완성하였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 원칙과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질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피라미드 질서 속에서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다. 자유도 자율도 허용되지 않았다.

부자유는 안정적 소득의 대가였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참아내기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자유가 없이는 안정성마저 지켜내기 어려웠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 했고, 쫓아내면 찍소리 못하고 쫓겨나야 했다. “인간은 빵도 원하지만 장미꽃도 원하는 존재이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시 삼키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공장은 좁은 공간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되풀이 만나는 곳이었다. 밀집성은 혼잣말을 여럿 말로 퍼뜨려주었고, 웅성거림을 집단행동으로 바꿔주었다. 공장이 노동조합의 원천으로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공장생산의 토대 위에서 노동조합은 20세기 노사관계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단체교섭은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중요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파업은 노사 간의 의견 차이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중요한 절차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오늘날 바로 그 토대가 바닥부터 무너지면서 새것으로 교체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은 공장이 아니다. 안과 밖을 구분해주는 높은 담장도 육중한 대문도 없다. 누구나 아무 때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누구나 아무 때나 다시 빠져나올 수 있다. 플랫폼에서 노동자들의 지위는 ‘노동력 공급자’이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도 있고, 자율적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고용계약서도 없다. 안정성과 종속성의 교환도 없고, 전속성과 계속성의 교환도 없다. 일자리는 없고 일거리는 넘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좁은 공간은 없다. 누가 무슨 수로 플랫폼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할 수 있을까? 카톡방이 있지 않느냐고? 맞다, 카톡방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반박하는 것은 실은 20세기 방법으로는 더 이상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고백이 아닐까? 지금까지 공장이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온 밀집성이 오늘날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집을 수 있을까?

그보다 앞서 대답해야 할 문제가 있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을 임금노동자라고 여기고 있을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이런 인식과 각성조차도 실은 밀집성의 산물이 이닐까? 이제 20세기의 노사관계 틀로는 이런 변화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플랫폼은 음식배달 노동만 먹어치운 것이 아니다. 대리운전 노동도 이미 플랫폼이 장악하고 있다. 사무직과 전문직 노동에도 플랫폼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 심지어 농촌의 일손도 탐내고 있다. 오늘날 플랫폼 노동은 과연 얼마나 넓게 퍼져 있을까?

플랫폼 노동에 대한 믿을 만한 통계자료는 아직 별로 없다. 통계당국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출된 보고서들은 거의 설문조사와 추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로서는 그런 것들 중에서 좀 더 믿을 만한 것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유럽 7개국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소득의 50% 이상을 플랫폼 노동으로 벌고 있는 인구가 이미 총 노동인구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보고서를 보면 앞으로 5~6년 뒤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10% 이상이 플랫폼 노동에 종사할 것이라고 한다.

거기서 그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더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자본이 점점 더 플랫폼 기업으로 몰려들수록, 플랫폼 노동의 규모도 점점 더 커져가지 않을까?

<플랫폼 레볼루션>의 저자들은 그럴 것이라고 대답한다. “플랫폼의 발전에 의하여 가장 극적으로 변화한 영역 중 하나가 노동시장이다. 모든 지표가 플랫폼에 의한 노동시장 변화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될 것임을 가리킨다. 앞으로 플랫폼 모델이 사실상 모든 노동 및 전문 서비스 시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프리랜서, 자영업, 계약직, 비전통적인 직업이 늘어나는 추세는 지속적으로 가속화될 것이다.”(441~2쪽 발췌)

그렇다면 플랫폼 노동은 나쁜 점만 가지고 있을까? 좋은 점은 없을까? 20세기 노사관계가 허물어져 흩어진 파편들 속에서 노동해방의 싹을 찾아낼 수는 없을까?

다시 한 번 <플랫폼 레볼루션> 저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플랫폼 노동이 늘어나는 추세는 바람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의 노동시간과 노동조건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유연성과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환경을 즐길 것이다. 그에 반하여 직업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 또는 직장에서 의료보험과 퇴직금과 같은 중요한 복지혜택을 지원받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런 변화가 무척 힘들거나 심지어 고통스러울 것이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들에게 염병과 지랄병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종속성과 불안정성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임금노동의 종속성에서 벗어나자면 생활의 불안정성을 감수해야 한다. 거꾸로, 불안정성을 피하자면 종속성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노동자들이 생활의 불안정성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해결책을 손에 쥔다면 어떻게 될까? 예컨대, 모든 사람이 웬만한 수준의 기본소득을 받게 된다면? 그럴 때 인간의 노동은 어떤 성격,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그래도 우리는 임금노동에 목을 매려고 할까?

3-3-2. 인간은 필요 없다?

2018년 12월 27일,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구직자들에게 일자리를 추천해주는 플랫폼을 론칭한다고 발표하였다. 인공지능을 투입하여 구직자와 일자리를 더 효율적으로 매칭시켜주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이 인공지능은 앞으로 몇 명의 공무원들을 대신하게 될까? 지금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일자리 매칭 업무에 종사해오던 공무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플랫폼 노동에 대한 걱정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걱정은 너무 한가하다는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로봇에 대한 이야기이다. 머지않아 인공지능로봇이 대다수 인간을 일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라는 보고서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10~20년 안에 50%가 넘는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보고서도 있다.

20세기 중반기 이후 자동화 기계가 생산과정에 투입되면서부터 기계와 컴퓨터가 인간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커져왔다. 이른바 ‘자동화’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자동화가 일자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업무의 정형성 여부를 가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하나의 일자리에서 노동자가 수행하는 모든 업무를 뭉뚱그려서 ‘직무’라고 한다면, 하나의 직무는 여러 개의 업무로 구성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일부 업무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 또는 ‘규칙을 따르는 업무’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런 정형화된 업무는 컴퓨터를 장착한 기계를 투입하여 대체하기 쉽다. 그에 반하여 다양한 의사결정과 창의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업무, 또는 많은 경험과 숙련이 필요한 업무는 기계로 대체하기 어렵다.

21세기 들어 인공지능 기술이 생산에 투입되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이 인간의 노동에 미칠 영향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2013년에 옥스퍼드 대학 마틴 연구소의 경제학자 프레이(C. Frey)와 인공지능 전문가 오스본(M. Osborne)이 토론의 물꼬를 텄다.

프레이와 오스본은 전통적 방법을 계승하여 먼저 업무를 정형적 업무와 비정형적 업무로 분류하였다. 이어서 비정형적 업무들 중에서 인공지능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들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자동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온 수많은 업무들이 자동화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2030년까지 인공지능로봇에 의하여 대체될 가능성이 70%가 넘는 일자리는 고위험군, 30~70%는 중위험군, 30% 미만은 저위험군에 속한다고 분류했더니, 미국의 전체 일자리 중 47%가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6년, OECD 연구자들은 프레이와 오스본의 보고서를 반박하고 나섰다. 인공지능은 직무를 통째로 대체할 수 없고 일부 업무만 대체할 수 있으며, 그 만큼 일자리에 대한 위협도 낮아진다는 것이었다. OECD 보고서는 미국 노동시장 일자리 중 9%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하였다.

이듬해, 조사연구자문회사 PwC의 연구자들은 OECD의 방법론이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자동화 위험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PwC는 OECD 방법론을 수정하여 다시 미국 노동시장에 적용하였고, 일자리의 38%가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매킨지 연구소는 새로운 방법론을 사용하여 동일한 문제를 다루었다. 업무에 투입되고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자동화 위험을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 노동시장 일자리의 모든 업무수행 시간 중 46%가 자동화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여러 연구는 분석방법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2018년 LG경제연구원은 프레이와 오스본의 분석방법을 한국 노동시장에 적용해보았고, 43%의 일자리가 고위험군에 속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한국의 연구자들 중에는 ‘한술 더 뜨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발 뒤쳐진 것을 한술 더 뜨기로 만회하려 것일까? 아무튼, 프레이와 오스본이 2013년에 2030년 세상을 예측하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자 한 발 뒤쳐진 한국 고용정보원 연구자들은 한술 더 떠서 2017년에 2025년 세상을 예측하고 나섰다.

2017년 1월에 한국고용정보원이 내놓은 보고서는 2025년까지 한국에서 1천8백만 개의 일자리가 기계 때문에 위협받게 될 것이고 예측하였다. 불과 8년 사이에 한국 전체 일자리의 70% 정도가 위태롭게 된다는 말이었다. 일자리를 잃게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직업으로는 콘크리트공을, 가장 낮은 직업으로는 화가 및 조각가를 꼽았다.

과연 이런 여러 보고서들을 믿을 수 있을까? 이런 보고서들은 기술변화 측면만 고려하고 있을 뿐, 사회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세상에서 일자리 수의 변화는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다. 이런 보고서들은 그 중 한 가지 요인만 살펴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보고서들이 마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너무 겁먹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보고서는 어떨까? 2018년 초에 한국고용정보원이 작성하고 고용노동부가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 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더라도 2030년까지 186만 개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며, 만약 정부가 추가로 적절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거기에 덧붙여서 12만 개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동일한 국가연구원에서 이처럼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두 개의 보고서가 거의 동시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한국의 있는 그대로 현실일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사회경제적 요인과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고 있지만, 기술변화 요인은 외면하고 있다. 겁먹은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적절해 보이지만, 현실의 변화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떨쳐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간이 노동과정에 기계를 투입해온 역사는 200년도 넘었다. 최초로 생산에 투입된 기계는 1712년 뉴커먼이 발명한 증기기관이었다. 이 기계는 광산의 지하갱도에 고이는 물을 지상으로 퍼내는 단순한 작업을 하였다. 그때부터 기계는 인간을 노동의 육체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기계가 긍정적인 역할만 해온 것은 결코 아니다. 수많은 기존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버린 것이다. 방직 기계는 수많은 방직 수공업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버렸고, 택시는 수많은 인력거꾼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기계보다 더 무서운 경쟁자가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해서 지금까지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여겨져 온 여러 가지 일들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 운전기사 일도 할 수 있고, 마트 계산원 일도 할 수 있고, 은행 상담원 일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변호사나 판사 일도 할 수 있다.

조만간 인공지능로봇이 대다수 인간을 일자리에서 내쫓게 되지는 않을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둘러싸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문제를 꼽으라면 단연 이 문제를 꼽아야 할 것이다.

이런 걱정을 이용하여 새로운 돈벌이를 찾아나서는 약삭빠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구사하고 있는 방법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걱정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방법도 20세기 식이고, 걱정을 달래주는 해법도 20세기 식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일자리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런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에게 미리 그런 일자리를 준비시킬 수 있을까?”

하늘이 무너지고 있으니 각자 솟아날 구멍을 찾아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일자리를 찾아라! 과연 이런 해법이 통할 수 있을까? 플랫폼 기업이 빠른 속도로 굴뚝산업 기업들을 먹어치우고 있다. 인공지능이 빠른 속도로 인간의 정신적 노동까지 대신해나가고 있다. 어디에 일자리가 남아날 수 있을까?

3-3-3. 기술적 실업 : 특이점?

기술발전-경제성장-일자리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하여 지금까지 통용되어온 우리의 상식은 대충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허구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고 있는 공식이기도 하다.

“생산기술이 발전하면 국가경제도 성장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실제로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기술발전이 일자리를 늘리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삼아 4차 산업혁명도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을 믿고 안심해도 좋을까? 만약 이번에는 다르다면?

최근 들어 ‘이번에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전면적인 기술적 실업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는 조사연구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몇 가지 보고서들 중에도 이런 경향을 강조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 있다.

‘기술적 실업’이란 기술발전을 통하여 기계가 노동인력을 대체함으로써 발생하는 실업을 가리킨다. 예컨대, 전화 자동교환기가 도입되면서 수많은 전화 교환수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수많은 운전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택시 운전노동자, 화물차 운전노동자, 대리 운전노동자 가릴 것 없이 모두 똑같은 위험에 맞닥뜨릴 것이다. 인공지능 무인매장 기술이 도입되면 수많은 판매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날 것이다. 공산품 판매노동자, 농산품 판매노동자, 수산품 판매노동자 가릴 것 없을 것이다.

한편, 불경기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생산물량이 줄어들어서 발생하는 실업을 ‘경기적 실업’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사례로는 1997년 IMF 사태 때 발생했던 일시적 대량실업을 꼽을 수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정리해고를 당하여 한꺼번에 거리에 나앉았었다.

경기적 실업은 경기가 회복되면 곧 해소될 수 있다. 그에 반하여 기술적 실업은 일시적 실업이 아니라 구조적 실업에 해당된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산업,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지 않으면 해소될 수 없다.

실제로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새로운 산업을 창출해내었다. 1~2차 산업혁명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창출해내어 농업과 수공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3차 산업혁명은 서비스업, 금융업, 정보통신산업을 창출해내어 제조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도 새로운 산업을 창출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일자리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그런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예컨대, 조선소나 마트에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정보콘텐츠 산업으로 이동하여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거나 콘텐츠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낙관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1차, 2차, 3차 산업혁명 때도 그러했듯이, 4차 산업혁명도 기존의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 테지만, 정보산업과 기타 미래의 산업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량실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수가 줄어들고, 얼마나 많은 수가 늘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줄어드는 만큼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유형의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대규모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물질적 재화는 한 번 소비하면 없어져버린다. 그러므로 반복적으로 다시 생산해야 한다. 자동차공장, 조선소, 마트, 병원이 많은 수의 노동자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농업과 수공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에 반하여 정보산업은 무형재화를 생산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다. 새로운 정보상품을 개발하는 일은 소수의 전문적인 지식노동자만 있으면 된다. 예컨대,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할 때 투입된 인력은 수십 명을 넘지 않았다. 지원인력을 포함하더라도 수백 명을 넘지 않았다. 장차 수십억 명에게 팔려나갈 상품을 개발하는데 불과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으로 충분했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정보상품은 양산 단계에서도 별로 많은 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냉장고나 자동차 같은 물질재를 양산하자면 많은 인력이 요구된다. 그에 반하여 정보상품을 양산하는 일은 적은 인원으로도 충분하다.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콘텐츠는 일단 시제품이 완성되고 나면 양산단계에서는 생산인력이 없어도 된다. 무한정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보상품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아무리 자주 소비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이 카카오톡 앱을 사용하지만, 앱은 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정보재는 업그레이드 될 수는 있어도, 없어질 수는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보산업은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없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 1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동안 정보산업에서는 기껏해야 1~2개의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8~9명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당분간 오늘날의 플랫폼 노동자들처럼 기계가 아직 메우지 못하고 있는 틈새를 메우는 노동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당분간이다.

지금은 정보산업의 발생단계에 해당된다. 그래서 전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가 대규모로 창출되고 있는 단계이다. 우선 수많은 개발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여기저기서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전문인력을 구하는 광고가 온갖 매체를 채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투리 노동을 수행할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도 필요하다. 2018년 현재 한국에는 배달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하여 쩔쩔매고 있는 플랫폼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기업들은 앞으로는 배달노동자를 모집하는 동시에 뒤로는 인공지능 배달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일단 개발단계가 지나고 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일자리가 계속 창출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자리 파괴가 시작되지 않을까? 플랫폼 노동조차 위협을 받게 되지 않을까? 배달의 민족이 개발하고 있는 배달로봇 딜리는 이미 2018년 5월에 시험운행에 들어갔다. 자율주행 드론도 곧 등장할 것이다.

인공지능 매장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수많은 판매노동자들이 매장을 떠나야 할 것이다. 스마트공장이 상용화 되면 수많은 제조업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로봇이 자동차 조립을 맡게 되면 수많은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이 공구를 놓아야 할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 되면 수많은 운전노동자들이 핸들을 놓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까?

이른바 ‘4차 산업’이라고 불리고 있는 정보산업 이후의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수 있을까? 5차 산업, 6차 산업이 생겨날 수 있을까? 공공부문과 여가산업을 제외한다면 새로 생겨날 수 있는 산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노동은 최고단계 노동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노동과정 알고리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듯이, 정보노동보다 더 높은 단계의 노동의 없다.

4차 산업의 일자리가 늘어나서 나머지 산업에서 밀려난 실업자들을 흡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자기 잣대에 자기가 속고 있는 사람들이다. 고용규모를 두고 보자면, 이미 정보노동의 규모는 포화상태에 있다. 다만 그런 사실을 측량할 수 있는 잣대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이미 정보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으로 마크 포랫(Marc U. Porat)을 꼽을 수 있다. 그의 기념비적인 박사학위 논문에서 포랫은 고용구조를 1차, 2차, 3차 산업으로 구분하지 않고, 정보노동과 비정보노동으로 구분하였다. 그랬더니 1967년에 이미 미국 노동인구의 거의 절반 정도가 정보노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30년 뒤, 포랫의 방법을 이어받아 미국의 노동인구를 다시 분석해보았다. 그랬더니 그동안 정보노동 부문이 더욱 더욱 늘어나서, 전체 노동인구 중 63%가 정보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잣대를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정보노동 부문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정보노동의 고용규모를 지금보다 줄이면 줄였지 늘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잣대를 바꾸면 질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술이 지금처럼 계속 발전한다면 오늘날 정보노동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장차 어떻게 될까? 마트의 캐셔들은 어떻게 되고, 은행의 출납원들은 어떻게 될까? 변호사들은 어떻게 되고, 약사들은 어떻게 될까?

그런데 조만간 대규모 기술적 실업이 만연하게 된다면 노동자들에게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에게도 심각한,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존립근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기계는 생산을 할 수는 있지만, 소비를 할 수는 없다. 소비를 할 수 있는 주체는 살아 있는 인간들뿐이다. 대량소비를 할 수 있는 주체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대중뿐이다. 인공지능기계가 아무리 많은 음식과 집과 자동차를 생산해본들, 노동자대중이 그것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그것을 소비할 수 있을까? 대규모 고용감소는 대규모 수요감소로, 이어서 대규모 이윤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굴러갈 수 있을까?

일자리를 잃게 된 노동자대중의 주머니를 채워주지 않고는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똑똑한 자본가들은 진지하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두에는 테슬라 자동차회사의 창업자 엘론 머스크,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크버그 등이 있다. 이들은 공학자들이지 경제학자들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직감할 수 있다. 어쩌면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쉽게 직감하는지 모르겠다.

해법은 조금씩 다르다. 엘론 머스크와 마크 저크버그는 적극적으로 기본소득 제 도입을 주창하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소극적으로 찬성하는 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기본소득제 도입이 장차 실현될 것으로 보지만, 먼저 로봇세 등을 도입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정보자본주의 시대의 영웅들이다. 정보자본주의를 개척한 장본인들이다. 인간을 대규모로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새로운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오늘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보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8년 2월, 두바이에서 개최된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 초청받은 엘론 머스크는 아랍에미리트 연방 내각미래부 장관이 진행한 대담에서 기본소득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의 발언 중 몇 대목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구글 번역기에 넣고 돌려보았다. 단 1초도 걸리지 않고 번역문이 나왔다.

“로봇이 인간보다 더 잘할 수 없는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이 십중팔구 일어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만약 나의 판단이 옳다면,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기본소득제 같은 것이 필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량은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자동화는 풍요를 가져올 것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매우 저렴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게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어디서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오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노동이 필요 없게 된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쓸모없다고 느끼게 될까요? 이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것은 나의 번역문이다. 누가 번역을 더 잘 했을까? 내가 더 잘했을까, 아니면 구글 번역기가 더 잘했을까? 구글 번역기는 2006년에 론칭되었는데, 10년 동안 번역 실력이 사람들의 놀림감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기 전이어서 ‘통계적 기계번역’ 기술을 사용했었다. 2016년에 ‘인공신경망 기계번역’ 기술을 도입하면서 구글 번역기의 실력은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알파고에 적용된 바로 그 기술이다.

2019년 현재 구글 번역기는 103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외국어 공부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그와 동시에 수많은 번역가들이 일자리를 뺏기지 않을까?

 

지식정보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조만간 기술적 실업이 확산될 것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2040년경이면 실업률이 50%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기술적 실업이 전면화 되는 시점이 곧 ‘자본주의 경제의 특이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이점’이란 양적인 변화가 누적되어 마침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특이점에 도달하면 그때까지 통용되어오던 기준과 법칙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게 된다. 역사의 특이점은 기존의 제도와 질서로는 더 이상 사회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때를 가리킨다. 혁명적 전복의 시점인 것이다.

필자소개
평등사회노동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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