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자 노동기본권 흥정?
    재벌 사유재산권도 흥정할 건가?
    자유당은 더 개악 원해···ILO 협약 핑계 문재인 정부 '개악의 문' 열어
        2019년 04월 16일 03: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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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논의해온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사용자 단체가 요구한 ‘사용자 공격권’을 일부 수용하는 공익위원안(공익안)을 국회에 넘겼다. 자유한국당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공익안은 국회에서 더 개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소한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정부가 흥정의 대상으로 여기며 노사 협상의 의제로 넘겨버린 결과다.(관련 기사)

    “노동자 노동기본권 흥정하자?
    재벌총수 사유재산권 흥정할 수 있나”

    경사노위 의제별위원회인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노사관계위) 공익위원들이 15일 발표한 공익안은 사용자단체가 요구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파업 시 직장점거 금지’를 포함하고 있다.

    앞서 사용자 단체는 ▲대체근로 전면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 강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등 ILO 핵심협약 비준을 빌미로 ‘사용자 공격권’을 요구해왔다.

    공익위원들은 사용자단체의 5개 요구 중 2개를 수용하며 “균형 있고 합리적인 내용”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이 지난 20년 동안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비준을 촉구해온 최소한의 국제노동기준이다. 마땅히 보장해야 할 노동기본권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면서, 사용자단체한테 반드시 ‘선물’을 줘야 한다는 정부의 프레임 자체가 ILO 정신에 위배된다고 노동계는 비판한다.

    기자간담회 모습(사진=유하라)

    ILO 핵심협약 비준 이행의무를 촉구하는 16일 민주노총 기자간담회에서도 이런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법률원장인 신인수 변호사는 이날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노사 흥정하자는 것은 재벌총수의 ‘사유재산권’을 놓고 노사가 흥정하자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짚었다. 사용자의 사유재산권만큼이나,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은 보호돼야 할 중요한 ‘권리’라는 뜻이다.

    신 변호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유재산권을 가지고 흥정하고 거래하자고 하면 (사용자 단체와 정부는) 받아들일 수 있나. 못 받아들일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사용자의 재산권에 대해선 거래, 흥정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은 흥정의 대상이 되고 거래해야 한다고 하느냐”며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흥정의 대상이 되려면 재벌총수의 재산권도 거래하고 흥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기본권 보장을 노사 주고받기 식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발상”이라며 “그런 발상 자체가 ILO 핵심협약 비준 정신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협 유효기간 연장·직장점거 금지…“ILO 원칙 위배”
    문재인 정부의 원칙 저버린 ILO 핵심협약 비준

    ILO 핵심협약을 빌미로 정부가 손 댄 ‘노동개악’은 역설적으로 ILO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한다고 하면서 정작 ILO 기본협약 비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용자의 민원사항인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직장점거 규제를 끼워 넣는 것은 ILO 헌장과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ILO는 단체협약 유효기간에 관한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332차 보고서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에 대해 3년 간의 법령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 변호사는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이 현행 노조법의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절차와 결합될 경우, 교섭대표 노조가 되지 못한 소수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결정된 날로부터 최소 5년 이상을 단체교섭 요구조차 할 수 없게 된다”며 “이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박탈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파업 시 직장점거를 제한하는 것 또한 ILO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ILO는 직장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노조 파업에 대한 사용자 공격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행 노조법은 이미 생산 기타 주요 업무에 관련된 시설을 점거하는 쟁의행위를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조의 파업에 대항해 사용자가 직장폐쇄를 통해 파업 참가 조합원을 사업장에서 전면 축출하는 것까지 허용하고 있다.

    신 변호사는 “공익위원안대로 사업장 내 직장점거를 입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파업권에 대한 과잉침해”라며 “실질적으로는 피케팅, 대체인력 투입 저지 등 현행법이 인정하는 쟁의수단 행사마저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가 열어 버린 ‘개악의 문’
    노동기본권 논의가 사용자 공격권 논의로 변질

    정부가 선제적으로 사용자단체에 선물을 줘버리면서 개악의 범위는 그만큼 더 넓어졌다. 향후 국회에서는 경사노위에 이은 2단계 개악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익안이 국회로 넘어오자마자 자유한국당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형사처벌 폐지’ 관철을 벼르고 있다.

    대체근로 허용은, 노조가 파업을 해도 단기노동자를 구해 파업 공백을 채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노조의 파업권을 완전히 무력화하겠다는 뜻이다.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는, 노동자의 노동3권을 방해해도 사용자에 대한 어떤 처벌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익안에 대해 “노동계 이익만을 대변하고, 기업의 방어권은 외면한 중재안”이라고 평했다. 당초 ILO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경사노위 논의 자체가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논의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단체가 요구한 ‘사용자 공격권’을 다 수용해주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는 셈이다.

    나 원내대표는 “경영계 핵심 요구사항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사업주 형사처벌 폐지’는 결국 반영되지 못했다”면서 “기업의 경영 방어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투자와 고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사노위 이번 중재안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다. 노동계 목소리만 대변하는 경사노위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적 대화기구로써의 경사노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동기본권 보장 논의는 어느덧 ‘사용자 공격권’을 몇 개나 더 관철시키느냐의 쟁점으로 비화됐다. 논쟁적 사안을 의지와 철학으로 돌파하지 못하고 경사노위 뒤로 숨어버린 정부의 무책임이 만든 결과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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