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산별시대 활짝…20년 질곡 벗어나
        2006년 06월 30일 07: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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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기업별노조의 굴레를 벗고 전체 노동자들이 이해를 대변하는 산별노조시대가 마침내 열렸다.

    조합원 43,758명의 한국 최대 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노조는 30일 조합원 71.5%의 찬성으로 산별노조로 전환을 확정했다. 기아자동차노조(27,489명), GM대우차노조(9,149명), 로템노조(2,098명) 등 산별노조 전환투표를 실시한 대부분의 노조가 70%를 상회하는 높은 찬성률로 산별노조 전환에 성공했다.

       
     
    ▲ 6월 30일 오후 5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 앞에서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위원장이 산별노조 전환 동시총회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 금속산업연맹)
     

    지난 26~30일까지 찬반투표를 벌인 20개 노조 10만 5천명 중에서 8만 7천명 산별노조로 전환함으로써 기존의 금속노조(4만1천명)와 합쳐 조합원 13만명의 금속노조가 탄생하게 됐다. 특히 제조업 노동운동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노조가 산별전환에 성공함으로써 사실상의 금속산별 시대가 열린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오는 7~9월 중에 대우조선 등 이번에 부결된 노조와 쌍용자동차 등 투표에 참여하지 못한 노조를 대상으로 다시 치러지는 찬반투표에서는 전체 노조가 산별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럴 경우 금속노조는 16만 조합원을 포괄하는 최대 규모의 막강한 산별노조가 되는 것이다.

    금속산별 전환, 민주노총-한국노총 산별전환에 큰 영향

    이번 현대차노조, 기아차노조 등 대공장노조의 산별노조 전환 성공은 한국 노동운동의 지형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노조 박유기 위원장은 “87년 이후 기업별 노조와 기업별 교섭은 대공장과 중소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적 대우를 더욱 키웠다”며 “이제 산별노조로 차별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조직체계와 교섭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운동을 이끌어왔던 금속노동자들이 산업별노조로 전환하면서 화학섬유연맹(3만명), 공공연맹(10만명), 사무금융연맹(7만명) 등 민주노총 내의 다른 연맹에서도 산별전환 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노총의 산별노조 전환 움직임도 재촉할 전망이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은 “금속의 다수 사업장이 산별노조로 전환함으로써 전체 노동운동의 산별전환에 상당한 탄력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제2의 노동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정희엽 화학섬유노조 위원장은 “화학섬유연맹에도 자동차부품사가 많은데 금속노동자들의 산별전환으로 새로운 역사의 물결을 탔다고 볼 수 있다”며 “최대사업장인 금호타이어를 포함해 올 연말까지 화학섬유노동자들도 속속 산별로 결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13만 금속노조 노동운동의 영향력 확대

       
     
    ▲ 30일 오후 5시 20분 현대자동차노조 간부들이 산별노조 전환이 72.54%로 가결되자 기쁨의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 금속산업연맹)
     

    13만 산별노조의 탄생으로 막강한 힘을 얻은 노동운동은 사회적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교섭권과 파업권이 금속노조로 단일화되고 재정과 인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면서 금속노조의 힘은 더욱 커지고 영향력도 더욱 강화될 조건이 마련됐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는 조합원들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제도나 정부정책에 완강하게 저항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확산시키려는 비정규직 법안과 민주노조의 뿌리를 흔드는 노사관계로드맵, 그릭고 한미FTA,까지 산별노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강력한 투쟁력으로 조합원들의 권리를 지켜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쪽이 끝까지 산별노조 전환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것은 누구보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이동응 전무는 30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산별 노조로 전환하면 일반적으로 투쟁이 강화되는 것 아니냐”며 “그 경우 이중, 삼중의 교섭과 비생산적인 파업 반복, 사업장 밖 투쟁 동원 등으로 산업현장의 피해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산별노조의 이같은 힘을 잘 알고 있기 떄문에 나온 우려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번 산별전환 가결을 통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기업단위 복수노조 시대와 전임자 임금 미지급 같은 노동운동의 앞길에 놓여있는 어려운 고비를 극복할 수 있는 ‘조직적 무기’를 마련했다는 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적 민주주의 확대의 계기 마련

    산별노조 시대의 개막은 노동운동 울타리를 넘어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산별노조는 동일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대변해 경제적 민주주의를 확산해낼 수 있다. 기업별노조가 기업 내 종업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산별노조는 산업 내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에 훨씬 용이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업단위를 넘어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그 자체가 사회적 의제로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산별노조의 힘으로 비정규직 문제, 제조업 공동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설 경우 이와 같은 사회적 의제는 과거와 다른 힘을 받으면서 해결 방안을 찾아가게 될 수밖에 없다.

    단병호 의원은 산별노조 전환의 의미와 관련 “첫째 노동자들의 기업별 종업원 의식을 극복해나갈 수 있고, 둘째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의 토대가 공고화되며 셋째, 노동자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계층화를 축소시켜 나가 평등성을 지향하는 노동운동 본래의 의미를 도모해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상대 이종래 교수는 “이전까지 기업별 노조라는 게 노동시장에 대해 아무런 방어를 할 수 없는 수세적인 조직인데 산별노조 전환으로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현재 비정규직 문제가 생기더라도 노동조합이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비정규직 문제, 주변노동자들 문제까지 노동자 대표성을 가진 산별노조가 등장하면서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역사적인 분기점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1년 2월 출범한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창한, 조합원 41,000명)은 현재 100여개 회사를 대표하는 사용자단체와 산별중앙교섭을 벌여 금속산업 최저임금 등을 공장 내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까지 적용시키고 있다. 영향력과 파괴력이 막강해진 13만 금속산별노조는 최저임금은 물론 비정규직문제 나아가 산업정책의 문제까지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 것이다.

    금속산별, 연대강화-산별교섭으로 산업정책 개입

       
     
    ▲ 30일 오후 4시 현대차노조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산별노조 전환 찬반투표 결과를 안현호 수석부위원장이 공식 발표하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가톨릭대 조돈문 교수는 “기업별노조는 대공장과 중소사업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격을 더욱 커지게 할 수 있다”며 “이제 이 틀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계급 내의 연대가 잘 될 수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과 노동조건 격차가 줄어 동질성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또 “현대자동차노조의 산별노조 전환으로 산별교섭이 더욱 확대되고 산별교섭을 통해 산업의 전망과 발전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1990년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사업장들이 노동조합 내의 계급적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현자노조의 산별전환으로 금속노조가 전체 금속노동자들의 지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987년 공돌이 공순이를 벗어던지고 당당한 노동자로 일어섰던 전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사회의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에 한 축으로 기여했다면, 20년 후인 2006년 6월 금속노동자들의 산별노조 선택은 실질적, 경제적 민주주의 달성이라는 우리사회의 주요 과제를 해결해나가는 핵심 주체를 세워낸 것으로, 한국사회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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