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관사, 우남사 그리고 우남역
    [역사의 한 페이지㉓]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19년 04월 16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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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한 페이지㉒] 최고 존엄? 생일이 뭣이 그리 중헌디!

    일본인들이 20만 원을 들여 도쿄에 이토 히로부미 공작의 동상을 세울 예정이다. 조선인들은 세계 지도에서 자기 나라를 지워버린 장본인을 기리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액수의 기부금을 희사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조선인들은 계층을 불문하고 지난봄에 완공된 이토 씨 추모 사찰을 짓는 데 3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희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쿄에 이토 씨의 동상을 세우는 데 기꺼이 성금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 윤치호, 1933년 11월 22일자 일기 중에서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은 ‘세계 지도에서 자기 나라를 지워버린’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인 박문사(博文寺)가 세워질 때, 많은 ‘의연금’을 내야만 했다. 이 절은 만주사변이 발발한1931년부터 건립이 추진, 이토 히로부미의 24회 기일(忌日)인 1932년 10월 26일 낙성식이 거행되고, 그 다음 해 봄에 완공되었다. 위치는 서울 장충단(奬忠壇) 공원의 동쪽이었다.

    본래 장충단은 을미사변 때 피살된 시위연대장 홍계훈과 궁내부 대신 이경직 등을 기리기 위해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명으로 만들어진 제단이었다. 장충단이 일본에 대한 항일 감정을 상징하는 공간이었으므로 일제는 이를 좋게 볼 리 없었고, 1919년에 이곳 일대를 장충단 공원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1931년부터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한다는 취지로 공원 동쪽에 박문사 건립을 추진한 것이었다. 항일을 친일로 덮겠다는 발상이었다. 이 절은 해방 후 철거되어 지금은 볼 수 없고, 현재 그 자리에는 신라호텔 영빈관이 들어서 있다.

    [사진] 일제 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절로 만들어진 박문사 전경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박문사의 종루인데, 대한제국의 성립을 상징하는 환구단의 석고각 건물을 옮겨 온 것이다. 이 건물뿐 아니라 박문사의 정문인 경춘문도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뜯어와 세운 것이었다. (연합뉴스 사진)

    이렇게 역사적 인물을 기리고 추모하는 종교 시설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통일 신라의 감은사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삼국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아들이었던 신문왕이 세운 절이 감은사(感恩寺)였다. 밀양에 있는 표충사(表忠寺)도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에 앞장 선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기리는 사찰이다.

    그런데 이미 죽은 자가 아닌 현재 살아있는 지도자를 ‘숭모(崇慕)’하기 위한 시설을 짓고자 하는 드문 일도 있었다.

    2017년 1월 흥미로운 문서 하나를 수집하였다. ‘우남사 창건 추진 위원회’에서 만든 [취지서]로 A5보다 조금 작은 크기에 총 4페이지 분량, 만들어진 시기는 1956년 1월이었다. 내용을 보니 진관사 터에 우남사를 짓자는 내용이었다.

    우남이라……

    우남은 이승만의 호 아니었던가?

    뭔가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인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겨 수집하였다. 오늘 글은 이 자료와 관련된 글로 이승만과 진관사, 그리고 우남사에 대한 것이다. 지난 회 글(‘최고 존엄? 생일이 뭣이 그리 중헌디!’)에서 이승만 우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이전 글과 연관된 주제니 이 글은 지난 글의 속편이라고 봐 주셔도 무방하겠다.

    진관사가 우남사가 될 뻔한 사연

    먼저 우남사를 창건하고자 했던 장소인 진관사(津寬寺)부터 알아보자. 지금 이 절은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하고 있다. 절의 유래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명을 요약하면 대략 이러하다.

    [사진] 진관사 일주문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사진을 찍었다. ‘삼각산 진관사’라고 쓰인 현판이 보인다. 이 절이 터를 잡은 곳이 삼각산임을 알 수 있다. 삼각산은 북한산의 다른 이름으로 이전부터 북한산의 세 정상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사진은 1960년대 후반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건호 수집 사진)

    고려 경종이 죽자 젊은 왕비는 왕태후가 되어 파계승 김치양(金致陽)과 정을 나누다가 사생아를 낳았다. 그 때 목종에게 아들이 없어 태조의 아들이던 왕욱(王郁)의 직손이며 법통을 이어받을 대량원군(大良院君)이 왕위 계승자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왕태후는 자신의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하여 목종에게 대량원군을 참소하여, 그를 숭경사(崇慶寺)에 가두고 죽일 틈을 엿보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도록 하였다.

    신혈사는 진관(津寬)이 혼자서 수도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살해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이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 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량원군을 숨겼으므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3년 뒤 목종이 죽자 대량원군은 개경으로 돌아가 현종이 되었고, 1011년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그 뒤 진관사는 임금을 보살핀 은혜로운 곳이어서 여러 임금의 각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고려 현종이 왕이 되기 전에 ‘진관’이라는 스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졌기에, 진관대사를 위하여 기존의 신혈사가 진관사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내력을 가졌던 이 절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나름 큰 위세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6.25전쟁 때 일부 건물을 남기고 대부분 소실되고 말았다.

    그런데 6.25전쟁이 끝난 직후 이 절터에 우상화의 망령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이 절터에 우남사를 새로 창건하자는 움직임이었다. 당시는 이승만 정부 때였고, 자유당 정권하에서 이승만은 국부(國父)였으며, 그를 찬양하는 우상화 놀음은 점점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오늘날 북한의 김일성 가계 우상화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 회의 글에서 충분히 다루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다른 사례를 다루고자 한다.

    1950년대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의 호인 ‘우남(雩南)’을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이 각인시키고자 공공장소 곳곳에 그 이름을 붙여 나갔다.

    서울 남산공원과 부산 용두산 공원의 이름이 어느 날 우남공원(雩南公園)으로 바뀌더니, 이승만 대통령의 거대한 동상이 있던 서울 남산 정상에는 1959년 1월 우남정(雩南亭)이 건립되었다. 이 우남정은 4.19 혁명 후 철폐되었다가 지금은 그 자리에 팔각정이 새로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 팔각정 건물에는 아예 현판이 달려 있지 않다. 이름 없이 그냥 보통 명사인 팔각정으로 불리고 있다. 역사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사진] 왼쪽은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어떤 신사가 포즈를 취한 사진이다. 단기로 쓴 시간 정보 ‘4290.8’로 보아 서기 1957년 8월 촬영한 것이다. 신사 뒤로 용두산 공원에서 새로 바뀐 이름 ‘우남공원’ 표지석이 보인다. 오른쪽은 이승만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1959년 11월 세워진 우남정을 시찰하는 장면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고작 5개월 전이다. (왼쪽은 박건호 수집 사진, 오른쪽은 국가기록원 소장)

    대전에서는 이승만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도서관이 세워졌는데, 이름이 ‘우남도서관’이었다. 이것 역시 지금은 볼 수 없다. 현재 세종로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자리에는 서울시민회관이 있었는데, 1972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그런데 이 서울시민회관도 원래 이름은 ‘우남회관’이었다.

    여기도 우남! 저기도 우남!

    전국 방방곡곡이 ‘우남’ 천지였다.

    이런 ‘우남’ 이름 붙이기의 끝판왕은 수도 ‘서울시’의 이름을 ‘우남시’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였다. 먼저 이승만 대통령이 1955년 9월의 담화에서 외국인이 서울을 발음하기 어려워 이를 대신할 새 이름을 찾자고 제안하면서 일이 시작된다.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담화가 나오자, 서울시는 ‘수도명칭조사연구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서울의 새 이름 찾기에 돌입하였다. 새로운 이름 후보로 한양, 한경, 한성, 우남 등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런 이름들이 서울보다 더 쉬운 발음인지는 잘 모르겠다.

    당시 충성 경쟁을 벌이던 관료들은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시’를 밀었다. 그 때 분위기로는 그게 맞는 것이었다. 민주주의 전도사 미국도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수도를 ‘워싱턴’이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우남시’라고 한들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울시 개명 논란은 결국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1956년 서울시의회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무산되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유당의 어떤 의원의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주장 때문에 집권 세력이 스스로 접었다는 설명도 있다.

    “시골 사람들이 서울 사람 욕할 때 ‘서울놈, 서울놈’하는데 서울이 우남특별시가 되면 혹 서울 사람 욕하게 되면 ‘우남놈. 우남놈’하지 않겠나?”

    이승만의 호를 따서 서울 이름을 바꾸겠다는 발상도 그렇지만, 그것이 관철되지 못한 이유도 기가 막히지 않은가? 이성계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면서 나라 이름을 정할 때 ‘조선(朝鮮)’과 ‘화령(和寧)’ 두 개의 이름을 후보로 정해 명나라에 하나를 선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조선’은 단군이 세운 ‘조선’에서 유래한 것이고, ‘화령’은 이성계 자신이 태어난 함경도 영흥의 옛 이름이었다. 물론 결과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조선’으로 낙점되었다. 새로운 나라 이름을 건국자의 출생지 이름을 따서 붙이겠다는 거야 그 나라가 왕조였으니 그렇다고 이해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서울은 그 나라의 수도 아닌가? 우상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북한조차도 평양을 ‘일성시(日成市)’라고 고치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정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앞에서 언급한 우남사창건추진위원회의 [취지서]로 돌아가 보자.

    진관사 절터에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절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새로운 절의 이름은 당연히 우남사!

    신문왕이 자신의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감은사, 정조가 수원에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찰로 중창한 용주사 등 역사책에서 선왕의 은혜를 기리거나 선왕의 원찰로 절을 세우는 이야기는 여럿 들어봤지만,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을 숭모하는 절을 세우겠다니 그 발상이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독실한 기독교인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기독교인 대통령을 기리는 불교 사찰을 짓겠다니…….

    무슨 논리였을까?

    당시 공보처장 갈홍기는 이승만을 예수나 부처에 비유하기도 했다는 앞 회의 글을 떠올려 보자. 이승만은 예수나 부처에 다름없기 때문에 그는 종교를 뛰어넘어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고, 그를 위해 교회를 짓든, 절을 짓든 그건 문제가 안 된다는 논리였을까?

    [사진] 우남사창건추진위원회가 펴낸 취지서이다. 왼쪽은 표지이고, 오른쪽은 첫 페이지이다. 가로 17, 세로 23cm의 소책자 형태로 되어있다. (박건호 소장)

    이제 [취지서]의 내용을 살펴보자. 이 취지서가 나온 연도는 1956년 1월로 되어있다. 이 해는 제3대 정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선거 구호로 유명했던 그 선거였다. 그렇게 보면 이 절 건립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선거운동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니 그쪽은 따로 운동할 필요는 딱히 없으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불교계를 공략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취지서]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승만 박사는 반세기에 뻗친 한국독립운동사에 있어서 현존한 최고의 지도자로서 국가의 운명과 민족의 진로에 선봉적 지도자이신 역사적 위인이다. 우리 한국을 탄생시켰고 세계민주우방의 일원을 만들었고 더구나 반공투쟁에 있어서야 말로 UN을 움직여서 16개국을 참전케 하여 혁혁한 전공을 거둔 위업에 대하여는 세계 어떠한 위인일지라도 감히 따르지 못할 것이며 세계적 반공전선의 선구자이시다.

    우남사 창건은 이승만의 80회 생일을 축하하는 취지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1955년 3월 26일 80회 생일을 맞이하여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거행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25미터짜리 초대형 동상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국부’를 추앙하는 성의를 충분히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지서]는 그러한 미안함과 송구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박사의 80회 탄생을 계기로 전국방방곡곡에서 만수무강의 축원을 성의껏 올리었으며 그 외 기념사업도 각지에서 속속 추진은 하고 있으나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게 성의를 드리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박사께서 우리 국가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자유민주 세계 대중을 위하여 헌신하신 업적은 너무나 광대무변하였기 때문이다. 실로 송구지감(悚懼之感)이 없는 자 누구일 것인가 만천하에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 바이다.

    이쯤 되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뛰어넘는 이비어천가(李飛御天歌)였다. 이 [취지서]에서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이 사업의 성격을 자신들 스스로 ‘이승만 신격화’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승만 신격화’에 대해 가리거나 돌려서 말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언급하고 있다. ‘신(神)’을 신처럼 모시고 신앙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가? 이것은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그들의 소신이자 신념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었다. 신앙에 무슨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오로지 맹목적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그 당시 그들은 진지했다. 지금은 틀리지만, 그때는 맞았다. [취지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이러한 견지와 성의에서 우리 겨레의 상징이며 신격화(神格化)되며 천추만대에 그 덕을 칭송할만한 숭덕의 사업을 심사숙고한 결과 과거 역사에도 무수한 원망(願望)도 있었음에 비추어 위대한 이(李) 박사 공훈업적을 추모하여 장래에 국가융성을 기원하는 전당으로서 3백5십만 불교도의 성의와 신앙으로써 삼각산 밑 진관사 옛터에다가 우남사를 창건하여 영구불멸의 정업을 빛나게 하고자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 후 1964년부터 진관사 절터에 비구니 진관 스님이(헉! 하필 이름이 또 진관이라니!!!) 당우를 차례로 재건하여, 현재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명부전·나한전·독성전·칠성각·홍제루·종각·일주문·선원·대방 등을 갖추었으며,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근래 이 진관사가 유명해진 것은 2009년 칠성각을 수리하다가 발견된 일제 강점기 태극기 등 독립 운동 관련 자료들 때문인데, 이 ‘진관사 태극기’에 대해서는 다음의 다른 주제에서 다룰 계획이다.

    우남, 그 끈질긴 흔적들

    최근 ‘이승만 도시락’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일이 있다. 한 편의점 업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시정부 수립에 주요 역할을 한 47명의 이름과 공적을 적은 스티커를 4월 한 달간 도시락에 부착해 판매하게 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도시락’에 대해 다수의 누리꾼들이 판매 업체를 거세게 비난하였다. 임시 정부의 분열을 초래하고, 탄핵된 인물인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독재자로 쫓겨난 대통령을 도시락에 넣는 것은 국민 정서상 부적절하다는 이유였다. 심지어 “이 도시락이 폐기용이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캠페인이 임정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지 이승만 개인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 이승만 대통령의 과(過)는 과대로 공(功)은 공대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굳이 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도시락 소동은 2019년 현재의 한국인들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왼쪽은 최근 ‘이승만 도시락’ 논란을 다룬 JTBC 2019년 4월 9일자 뉴스의 한 장면, 오른쪽은 2011년 부산 임시수도 기념관 앞에 세워진 이승만 동상이 붉은 페인트로 훼손된 채 서 있는 모습이다. 이승만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와 인식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는 꾸준히 이승만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재조명하자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워 왔다. 주로 보수 우익의 입장을 가진 이들이다. 뉴 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은 이들의 주장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이 과거를 잊었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역사에 대한 아량이 생겨 이전만큼 예민한 반응은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들은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대담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

    2017년에는 보수 우익 중심으로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이 세 명의 동상을 만들어 광화문을 제1후보지로, 서울시청 광장·남대문·서울남산·용산 전쟁기념관·테헤란로·코엑스 등을 제2후보지로 정해 그 곳에 이 3명의 동상을 세울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4.19혁명 직후 모든 동상이 폐기된 후 한동안 대한민국은 ‘이승만 동상 청정지역’이었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이승만 동상이 하나 둘 씩 다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이승만과 인연이 있는 곳들이었다. 그때마다 논란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인하대, 배재고, 배재대, 이화장 등등……그리고 2011년에는 부산 부민동 임시수도 기념관 등에 세워지더니 급기야는 광화문과 서울시청 등에 이승만 동상을 다시 세우겠다는 주장까지 나온 것이다. 광화문에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아두자.

    동상으로부터 시작된 보수 우익들의 이승만 재평가 움직임은 조금씩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에는 남한산성에 세워졌다가 4.19 직후에 철거되어 파묻힌 송수탑을 다시 복원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조갑제닷컴에 실린 어느 기자의 글 일부이다.

    [사진] 1955년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세워졌던 이승만 대통령 송수탑 모습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현재 철거되어 주변에 묻혀있다. (국가기록원 사진)

    경기도 남한산성에 건립됐던 「대통령 리승만 박사 송수탑(頌壽塔)」이라는 명칭의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탑이 현재 남한산성 산 중에 묻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탑은 1956년 6월15일 이(李) 전 대통령의 건강을 기원해 건립된 것으로서 1960년 4·19 이후 장면 정부 명령으로 철거됐다. 철거에 동원됐던 당시 주민들은 4m 가량의 탑과 탑 위에 놓인 봉황 모양의 청동 조각을 분리해 탑 부분만 기단 앞 땅 속에 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탑이 묻힌 곳은 남한산성 정상 근처 평지로서 십여 개의 경계석과 원탁 석(石) 탁자만이 육안으로 확인된다. 봉황 모양 청동 조각은 남한산성 공원 측이 보관해왔으나, 수 십 년 전 유실된 상태이다…..당시 비석 철거에 참여했던 안호일 씨는 “대여섯 명이 기계를 동원해 탑을 무너뜨린 후 땅에 묻었는데, 언젠가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역적(逆賊) 비석도 세월이 지나면 다시 세우는데 나라를 세운 초대대통령 비석이 땅속에 묻혀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며 빠른 시일 내 탑 복원이 이뤄지길 소원했다.

    광주문화원 원장을 지낸 지역민 박용재 씨는 “이승만 박사가 독재를 했다는 흠이 있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차원에서 유물 복원이 이뤄져야한다”고 했다. 그는 “원래 자리에 복원할 수도 있지만, 흥선대원군비석 등 남한산성 내 유적들을 모아놓은 장소가 따로 있는 만큼 이대로 방치하는 것보다 그 곳에라도 이전시켜놓은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 조갑제닷컴 2008.2.13. 기사

    이 글에서 기자는 인터뷰이의 말을 빌어 송수탑의 복원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제목부터가 이렇게 되어있다.

    남한산성에 묻혀있는 이승만 송수탑(頌壽塔)

    “역적 비석도 세월이 지나면 다시 세우는데…”

    이제 ‘우남역(雩南驛)’ 이야기를 해보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현재 8호선 복정역과 산성역 사이에 새로운 역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위례신도시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한 것이다. 원래는 2017년 개통 예정이었지만, 토지 보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본격적인 착공도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2019년 내에는 착공되어 2020년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의 이름이 ‘우남역’이다.

    웬 ‘우남역’?

    옆 앞쪽의 큰 길이 원래 ‘우남로(雩南路)’였기 때문이다.

    왜 우남로였을까?

    6.25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9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남한산성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 10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남한산성 수축(修築)을 지시한다. 이런 인연으로 1955년 6월 15일 이승만 대통령 80회 생일을 기념하여 ‘이승만 대통령께서 친히 찾아주신’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송수탑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복정동에서 송수탑이 있는 수어장대 연결도로를 ‘우남로’로 명명하고 표지석을 세웠다. 이렇게 ‘우남로’라는 이름이 붙은 이 도로는 4.19혁명 이후 대곡로, 헌릉로, 약진로를 거쳐 2002년부터 다시 우남로의 이름을 되찾았다가 2009년부터는 헌릉로가 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도로 옆에 신설되는 역이므로 ‘우남역’이라는 이름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우남로’의 우남이 이승만을 지칭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2008년 서울도시철도공사는 8호선 복정역과 산성역 사이에 새 역을 계획하면서 ‘우남역’ 명칭을 처음 사용하게 된다. 반발이 생긴 것은 당연했다. 이후 2016년 민원 발생 우려라는 이유로 성남시는 도시철도공사에 반대 의견을 전달했고, 그것이 반영되어 ‘우남역 ’대신 ‘(가칭) 8호선 추가역’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2016년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그즈음 자신의 트윗에 이렇게 썼다.

    “이승만의 호 우남

    성남을 한번 지나갔다는 이유로 성남에 우남로가 생기더니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네요. 이번 기회에 그 부당한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겠습니다. 우남역이라니….”

    [사진] 지하철 8호선 복정역과 산성역 사이에 새로 신설 예정인 역의 이름이 처음에는 ‘우남역’으로 정해졌다. 지금은 이 이름 대신 ‘(가칭) 8호선 추가역’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변경된 상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우남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이 이름을 쓰면서도 ‘우남’이 ‘이승만’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왼쪽 사진은 ‘우남역’이 여전히 표시되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지도이고, 오른쪽 사진은 우남역 이름을 고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트윗 내용이다. (두 사진 모두 인터넷 사진)

    이런 명칭 변경에 대해서도 보수 우익들은 당연히 불만을 드러내었다. 왜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이름을 지우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어느 보수 우익의 주장이다.

    수원에 ‘박지성길’, 종로에 ‘송해길’, 대구에 ‘김광석길’, 곧 생길 성남 분당의 ‘신해철 거리’ 그리고 ‘충무로’, ‘백범로’ 등. 유명인의 이름을 따서 거리이름을 짓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들의 정신과 공로를 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국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역’과 ‘우남로’를 사용 하는 것이 성남 시장님에게는 “부당한 흔적”인가보다. 명백하게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의 건국이 선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이재명 성남시장이다.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에 있어서 많은 업적을 가지고 있던 분이 이승만이다. 언제까지 ‘건국대통령 폄하하기’에 급급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시작이 얼마나 경이로웠던 것인지에 대한 조금의 이해만 있다면 “부당한 흔적을 완전히 제거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우남역’의 이름을 바꾼다는 명목이 “민원발생 우려”라는 성남시의 업무보고서를 보고 있자니 웃음도 안 나온다.

    -대한민국사랑회 홈페이지, 2016년 9월 22일

    그러나 공식적인 이름만 ‘(가칭) 8호선 추가역’이라고 바뀌었을 뿐, 각 건설사와 부동산 중개업체 홍보물 등에는 여전히 ‘우남역’으로 쓰고 있다. 2020년 역이 개통 예정이므로, 역명(驛名)도 곧 최종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또 한 번의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 송수탑 복원을 주장하고, 우남역명 변경을 추진한 이재명 시장을 비난하고 우남역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는 보수 우익들의 주장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것은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하면 그것들은 결과적으로 보면 이승만 대통령과 보수 우익들의 이미지에 도움은커녕 마이너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이승만의 기릴만한 좋은 업적에 관련된 기념물이 아니고 오히려 이승만 우상화의 흑역사를 증언하는 것들이지 않은가? 이승만의 흔적을 많이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좋다고 그들은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그게 흑역사일 경우라면 오히려 숨겨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감되어 있는 서울구치소의 앞길을 의왕시에서 ‘박근혜로(路)’라는 도로명을 붙인다면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기념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욕인가? 자랑스럽지 못한 숨겨야 될 개인 우상화의 역사를 오히려 복원해서 당당히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후안무치함인가? 아니면 그들이 숭모하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칭송과 찬양이 아니라 심각한 자책골이 될 수 있음을 모르는 무지함인가? 참으로 미스테리한 일이다.

    필자는 비교적 관대한 성격의 소유자다. 까짓것 ‘우남역’이 하나 쯤 있다고 대수겠는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는 유한(有限)한 지명중 하나쯤은 양보할 여유는 있다. 길 이름에 기업 이름을 따서 LG로(路)도 있고, 효성로도 있고, 심지어 임꺽정로, 콩쥐팥쥐로 등 별의별 도로명이 있는데, 우남로 하나 있는 것이 뭐가 문제겠는가? 단원 김홍도의 호를 따서 단원구, 단원로, 단원고등학교도 있고, 소설가 김유정의 이름을 딴 역도 있는 마당에 우남역이면 어떤가?

    그러나 그것에는 조건이 있는 것이다. ‘우남역’이라는 이름이 붙으려면 이승만이 태어난 곳이라든지, 이승만이 일본인 두어 명을 패대기친 곳이라든가, 아니면 이승만 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든지 그런 인연이 있는 곳이라면 누가 그것을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8호선 남한산성 쪽에 새로 생기는 신설역 이름으로 우남역이 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 곳에 우남역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일반적인 인연은 없고, 단순히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서 친히 지나가주신’ 길, 즉 우남로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므로 그것은 우상화의 흔적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을 규정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개인의 나라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다.

    그런데…..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라리 ‘우남역’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이참에 지금은 헌릉로인 길 이름도 원래의 ‘우남로’로 환원하는 것도 같이 추진하고, 우남로가 끝나는 남한산성 정상 부근에는 땅 밑에 묻혀 있는 이승만 송수탑을 발굴해 원래대로 복원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옆에다가는 ‘대한민국 우상화역사 기념관’도 하나 만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역사는 좋은 것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쁜 기억도 남기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남한산성에 가서 병자호란 치욕의 역사를 되새길 때, 우상화의 흑역사도 곁들여 같이 기억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이승만이 지나간 그 길 우남로는 대략 320년 전쯤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갔던 길과도 상당 부분 겹칠 것이니 둘은 동시에 기념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많은 건강한 시민들이 남한산성을 가면서 조선시대 인조가 명청 교체기 국제 정세를 잘못 읽고 지나친 친명사대외교를 한 결과로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겪었던 일과 함께, 1950년대 대한민국에서 개인 우상화와 독재의 끝이 시민들의 혁명으로 귀결되었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 기록에 있는 역사보다는 기념물로 존재하는 역사가 대중들에게 훨씬 강하게 각인되는 법이다. 사람들이 우남정, 우남회관, 우남도서관, 우남공원 등이 사라져 우상화의 시대를 망각하는 것보다 그런 것들을 몇 개는 살려 놓아서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이승만을 지지하는 이들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는 상황이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아! 그러고 보니 며칠 뒤가 4.19 혁명 기념일이다.

    [사진] 북한 원산농업대학의 한 느티나무 옆에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청년대장 김정은 동지께서 보아주신 느티나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냥 단순히 보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기념의 대상이 되다니!!! 북한의 김일성 가계 우상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슬프게도 저 모습은 1950년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 남북은 서로 경쟁하듯이 지도자를 우상화하였다. 이런 극단적인 우상화가 코미디일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어느 한쪽은 지금도 그렇다. (RENK 사진)

    <참고자료>

    • 김상태편역, [윤치호일기], 역사비평사, 2001
    •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50년대편 2권, 인물과 사상사, 2004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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