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실패를 개헌으로 풀려고해선 안된다
        2006년 06월 30일 01: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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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19돌을 맞은 87년 6월항쟁. 20여년 동안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6월항쟁의 과제를 성취했는가. 민주화가 됐다면 얼마나 됐는가. 안 됐다면 무엇이 안 됐고, 여전히 남아있는 민주주의의 과제는 무엇인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가 개최한 29일 프레스센터에서 총 3부에 걸쳐 주최한 학술토론회 ‘6월항쟁과 한국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이런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는 토론회였다.

    이날 토론회의 대미를 장식한 3부 종합토론에서 발제자로 나온 최장집 교수는 정당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운동의 정치’ 시대에서 ‘제도의 정치’ 시대로 이행해야 하는 현 단계에서는 시민, 민중의 요구를 정당과 정당체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또 최근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개헌논의와 관련 "정치의 실패에서 발생한 문제를 정치 밖의 다른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민주정치 발전에 역효과를 갖기 쉽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민주주의 핵심은 좋은 정당체제의 발전”

    최 교수는 먼저 자신이 얘기하는 ‘제도적 실천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도개혁”으로 이해되는 것을 경계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제도적 실천이며 이는 잘 제도화된 정당정치와 사회발전에 대한 합리적 비전과 정책대안으로 경쟁하는 좋은 정당체제의 발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최장집 고려대 교수
     

    그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운동에 의한 민주화”로 특징지었던 최 교수는 한국 민주화운동이 “운동의 탈동원화 혹을 그러한 과정으로의 전환”이라는 일반적인 패턴을 피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최 교수는 “그러나 이 탈동원화가 의미 있는 결실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여부는 이후 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을 실현할 수 있는 이면과 비전, 정책을 제도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도화란 운동으로서의 민주화에서 민주주의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정치의 제도화를 의미하고 그 중심에는 정당정치의 문제가 놓여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을 추동했던 사람들(민주파)은 좋은 민주적 정당을 건설하는데 실패했다고 최 교수는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최장집 교수는 최근의 제도개혁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개헌 논의, 정치 실패 정당화하려는 시도"

    제도적 실천이란 정치를 수단으로 하여 민중적 권력, 새로운 사회경제적 요구들이 정치체제내로 투입된 새로운 경쟁의 틀을 형성하고 그 틀 안에서 일상적인 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해, 기존의 제도개혁 내지 헌정개혁의 접근은 차이를 갖지 않는 정당들이 그들 정치의 실패를 정당화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그 방법이나 출로를 정치 밖의 제도 변화에서 찾으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이는 이날 토론회 2부에서 박명림 교수(연세대)가 “헌법개혁은 사회개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자 통로”라며 구체적으로 △대통령 4년 중임제 △대선과 지역대표 국회의원 선거 일치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지역대표의 2분의 1수준으로 대폭 증가시켜 ‘중간평가’로 대통령 임기 중반에 실시 등을 제시한 것과 대비되는 주장이다.

    이러한 개헌 논의에 대해 최 교수는 “5년 단임제라는 짧은 임기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을 갖지 못했다는 것은 가상의 현실을 상정하는 것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동안 민주정부들이 대북정책을 제외하고 거시경제 정책 사회경제 정책, 노동, 복지, 교육, 농민, 대외 정책 등 모든 주요 정책영역 분야에 있어 “구체제와 고도의 정책적 연속성”을 보여왔는데 “정책적 단절성을 걱정하는 것은 허구이거나 민주파들의 자기 변명적 우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민주정부, 대북정책 말고 구체제와 달라진 정책 없어"

    선거주기 조정에 대해서는 중간평가를 효과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거주기의 일치라는 제도적 조정이 아니라 정당체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투입 기능을 갖지 못하거나 약하고, 또한 정당의 제도화 수준이 약한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평가라는 의미를 강하게 띠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정당에 의해 수립되기보다는 대통령 후보 내지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립되는 조건에서는 선거를 통해 정부 정책과 업적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렵기 때문에 선거주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민주화’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의 정치’에 대해 사회적 기반을 갖는 정당체제의 발전, 정치의 하부기반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의 최정점에서 대통령 개인을 둘러싼 정치가 전개되고 거기에서 갈등과 경쟁이 발생하는 “거꾸로 선 정치”라고 규정했다.

    최 교수는 대통령은 국가이익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이익을 대표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와 정부의 수장이 전체이익이 아닌 부분이익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얼핏 수용하기 어렵고 위험스럽게 보일 수도 있으나 국가의 지도자가 부분을 대표한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할 때 민주주의의 가치와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지지자들의 이익과 요구를 대표하는 문제와 전체 사회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 대통령이 리더십이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심적 메커니즘이 정당이라고 최 교수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당정분리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으로 변모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최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공언해온 당정분리는 “현실정치가 그에 부과하는 책임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그 결과는 파당적 이해관계를 대표하고 조정하는 민주정치의 역할을 벗어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으로 변모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최장집 교수의 발제에 이어진 토론에서 첫 토론자로 나온 안병욱 교수(가톨릭대)는 "한국사회의 변화발전에서 동원은 민주화를 이뤄낸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한국의 운동은 필요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손호철 교수(서강대)도 운동의 정치와 일상적 정치, 거리의 정치와 제도정치에 대한 기계적이고 이분법적인 구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김호기 교수(연세대)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 더딘 진행을 하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지체되는 것에는 세계화가 주는 충격도 중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며 “지금은 두개의 시간이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87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97년부터 진행된 세계화의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어느 시점까지는 민주화가 압도했지만 지금은 세계화가 압도하고 있다”며 “민주화가 갖고 있는 과제 이외에 새로운 과제와 금융자본의 영향력, 고용없는 성장, 사회적 양극화 등의 이슈는 세계화로부터 직접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파들이 이른바 민주주의의 완성, 심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면 일반 국민들은 세계화가 가져온 일자리 문제, 양극화, 복지의 확대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는 국민들이 세계화로 인해 주변에 몰려진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민주화가 공고해지기 위해서는 내적인 과제 못지않게 세계화에 대한 인식과 정책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 주장, 배고프면 빵 사먹어라는 식의 동어반복이다"

    김상봉 교수(전남대)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희망을 가진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역사가 퇴보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작년 황우석 교수 일이라든지, 박정희의 딸이 잔다르크처럼 등장해서 구세주처럼 숭배되는 현상이라든지, 월드컵에서 볼 수 있는 과도한 흥분 등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언제라도 야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말로 토론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얻기 위해 토론회에 왔는데 ‘민주주의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것은 ‘배고프면 빵 사먹어라’ 수준의 동어반복에 다름 아니다”라며 최 교수의 주장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제도를 움직이는 주요 행위자가 정당이라는 것은 옳지만 정당을 움직이는 주요 행위자는 시민일 것이며 따라서 문제는 정당정치의 부재가 아니라 정당을 형성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민적 주체를 기르지 못한 것이라고 김 교수는 주장했다.

    현재의 “탈정치적이고 반동적인 노예교육”에서는 자율적인 시민,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따라 표를 행사하고 공공적 가치에 위배되는 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 시민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절망스러운 것은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이 이 문제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것”이라며 “동료 시민과 만남 속에서 새로운 정책과 문화 형성을 고민하는 것이 소외된 정책, 소외된 제도에 대해서만 얘기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정치사상가들은 동시에 교육학자였고 정치학 저서의 마지막 장은 교육학이었다”며 “이는 정치적 프로그램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동시대 민중을 교육, 계몽시키고 현실정치의 장을 열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한국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백년 전 봉건시대 머물러 있어서 정책을 만들면 사회를 바꿀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헌법보다 헌법재판관을 바꿔라"

    손호철 교수는 “대통령의 민주화란 대통령이 정당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통제를 받는 것”이고 “정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통령은 민주화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며 최 교수의 주장에 동의를 표시했다.

    개헌논의와 관련해서도 “한국의 헌법이 나빠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며 “헌법을 고치는 것보다 헌법재판관을 바꾸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무능을 얘기하는데 이는 반쪽 이야기다”라며 “오히려 유능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개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민주개혁이다. 이건 이미 실패했고 다른 하나는 경제개혁, 신자유주의 개혁인데 (정부여당은) 해야 될 민주개혁은 못하고 실패했으면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은 유능해서 매우 잘 추진하고 있다”며 “관료들에게 포섭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신자유주의의 신봉자이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사회적 균열과 정치적 균열을 일치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 “진보정당이 발언권을 갖게 해야 하는데 이에 앞장서야 할 진보적 지식인들이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사로잡혀 해주지를 못했고 그 결과는 지방선거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교수는 정당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진보정당마저도 제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이라는 것이 21세기에 바람직한 구조인지, 희망을 걸어야 하는 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식인들 비판적 지지 망령에 사로잡혀 진보정당 돕지 않았다"

    이병천 교수(강원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강령적 지향과 정책 대안을 가진 정당이 ‘좋은 정당’인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며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는 중도에서 ‘좌’쪽의 정당을 대중 정당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제도적 실천’에서 지난한 과제였으며 지금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참여의 의지와 능력을 갖도록 할 것인가, 공공적 반성적 판단력과 행위 능력을 갖도록 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 사회의 다수 대중이 국가의 신민, 시장의 신민 처지에 있는 상황에서는 좋은 정당 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공공 영역과 지역의 삶의 터전에서 대중들의 국가 권력 및 시장 권력과 쟁투전을 벌이면서 참여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시민적 주체로 성장해 나가는 ‘진지전’적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인 정현백 교수(성균관대, 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지만 동시에 빈곤의 여성화가 진행됐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70% 이상이 노동자이고 빈곤가구 중 여성가장의 비율이 46%에 달하는 등 표면적인 진전의 이면에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이제는 문화혁명이 필요"

    “제도적 실천만으로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정 교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는 서독에서 유학을 했는데 한국 진보세력과 서구 진보세력 사이의 큰 차이는 일상의 영역에서 진보를 실현하는 데 있다. 왜 68운동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68운동은 실패한 운동이 아니다. ‘너 자신을 돌아보라’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를 이제 지식인들이 내놔야 하지 않은가. 이제는 문화혁명이 필요하다.”

    지정토론자들의 토론을 들은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가 다 나왔다”며 먼저 세계화에 대한 지적에 답을 했다. 최 교수는 세계화가 가져오는 문제를 경시하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것은 정치이고 사회 이익과 민중적 이익이 반영될 수 있는 정당체제가 있다면 적어도 한미FTA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똑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도 독일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봐서도 여전히 제도로서의 정치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 정당의 역할과 관련해 최 교수는 “60~70년대와는 달리 정당의 역할이 많이 변질됐고 사회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기능도 축소됐다”며 “많이 고민하는 주제”라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정당이 중요한 행위자”라며 김상봉 교수가 지적한 교육보다 좋은 정당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고 말했다. 사회적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가치판단과 이성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 또한 정당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정당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정당"

    하지만 최 교수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김 교수의 지적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사학법 하나 개정하는 데 온 정당이 달라붙어 있을 만큼 우리 교육제도만큼 정치적인 것이 없다”며 “우리나라 정치가 타락한 결과가 교육으로 집약됐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은 결과물이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며 정치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운동의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했다. 최 교수는 “운동을 통한 동원의 상황을 통해 정치를 만들어 가는 것은 예측하기 어렵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며 운동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문제를 운동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안정적인 민주주의 방법이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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