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아름다운 고딕교회
[그림 한국교회] 대전제일감리교회
    2019년 04월 12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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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 살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이웃 안에서 산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며 사랑으로 이웃 안에서 산다. 믿음에 의해 그는 자신을 넘어 하나님께로 들려 올려진다. 사랑에 의해 그는 다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으로부터 이웃을 향해 나아간다.”

지난 3월 14일, 동대전교회에서 있었던 대전목회자 기독교 고전읽기에서 강사 최주훈 목사님(중앙루터교회)이 루터선집5에서 인용한 마르틴 루터의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낸 말인 동시에 교회의 본질을 통찰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10여명의 목회자들과 모임하고 같이 점심을 먹은 후, 조용재 목사님의 승용차로 서구 둔산동의 대전제일감리교회로 갔습니다. 교회 앞에서 만난 대전에 사는 외사촌 여동생에게 교회자료를 부탁하고 예배당 전경을 찍는데, 워낙 높아서 렌즈에 담기가 쉽지 않았지만 소나무와 갓 피어난 벚꽃을 배경으로 참 아름다운 고딕교회였습니다.

대전제일감리교회가 보여준 고딕양식은 중세 말 유럽에서 번성한 건축양식의 하나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가장 이상적인 건축양식으로 추종되었습니다. 다시 복고양식으로 태어나 영국에서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를 걸쳐 유럽으로 퍼져 20세기에도 교회와 종합대학 건축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건축가 정시춘 선생의 책과 강연문에서 고딕양식을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정치와 사회는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서, 이 시대 사람들은 성 프란시스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 등 위대한 성직자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초월적인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고 예배의 신비성은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이 고딕양식은 엄청난 인력과 시간, 재정을 필요로 했지만, 교황의 권한이 더욱 확장되어 부와 힘의 중심이 되었고, 그 권위는 절대적이었던 까닭에 교회의 힘으로 가능케 되었습니다. 또 새로운 건축 재료와 기술로서 벽을 해체하여 스테인드글라스로 대체함으로써 예배공간 안에 신비한 빛을 끌어들여 교회와 미사의 신비를 강조했습니다. 더욱이 교회권력과 부가 극도로 확대되면서 고딕양식은 교회 권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탑을 가진 거대하고 웅장하며 화려한 고딕교회는 교황 중심의 위계적 조직, 성직자 중심주의, 성례전 중심의 미사, 그리고 당시 유럽인들의 신비주의적 신앙태도를 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고딕양식은 부정되고 새로운 교회건축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자 중심에서 평신도 참여의 교회로 변혁되었고, 세상 위에 군림하던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교회로 바뀌었으며, 세상과 구별된 성소로서의 교회는 이제 사회를 향해 열린 교회로 변화되었고, 예배는 만인제사직의 회중들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예배가 되었고 기독교의 경우, 성례전 중심의 예배가 말씀 중심의 예배 또는 말씀과 성만찬의 균형잡힌 예배를 추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선교 초기에 명동성당과 정동감리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교회가 고딕양식을 모방하였고, 현대건축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도 종종 고딕식의 예배당이 건축되고 있는데, 대전제일감리교회도 이 모형을 따른 것 같습니다.

그림=이근복

송현강 교수는 책 『대전·충남 지역교회사 연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4, p.277)에서 대전·충남지역이 선교혼재지역이었다고 진단합니다. 침례교, 장로교, 성결교, 성공회 등 다양한 교파의 선교사들이 동시에 사역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기독교 수용 당사자들이 주로 몰락양반-전직 관료층과 소농민층에서 집중적으로 배출되었고, 이들의 신속한 개종 배경에는 신분상승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서려 있었다고 합니다. 근대화 지향세력이고 향촌사회 구성원들의 신망을 받았던 이들의 영향력에 의하여 교회가 설립되는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대전 기독교의 경우는 주로 다른 지방에서 이주한 신자들에 의해 시작된 특징을 갖고 있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전지역의 기독교는 소수세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교회와 교인수가 급증하였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많은 학교(목원대, 침신대, 배재대, 한남대 등)와 사회봉사기관들(기독교연합봉사회 등)은 지역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대전제일감리교회(이성호 담임목사)는 1908년, 차프 선교사(R. A. Charp)가 매입한 임시 건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예배당이 소실되어 1958년에 예배당을 원동에 준공하였고, 둔산동으로 이전하여 2001년에 현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교회사무실에서는 역사자료가 없다고 하고, 한국교회를 기술한 여러 책에도 이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고, 인터넷에도 별 자료가 나타나지 않아서, 아름다운 예배당에 다니는 성도들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살아왔는지 살펴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탑은 고딕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도시 속에서 교회는 도시의 중심광장에 면하여 하늘로 치솟은 첨탑을 가지고 우뚝 서 있음으로써, 세속의 위치적 중심이며 동시에 인간과 하늘을 잇는 도시의 유일한 통로로서의 상징성을 나타내었다.”(정시춘, 『교회건축의 이해』(도서출판 발언, 2004년) P. 118)

천국에 대한 열망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고딕양식으로 표현하고자 했듯이, 대전제일감리교회가 믿음으로 하늘로 한껏 치솟았으니 이 척박한 시대에 큰 사랑으로 가난하고 고달픈 이웃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길 기대합니다. 올해 “하나님 모시기에 좋은 교회”라는 교회표어를 걸고 사회봉사와 사회정의의 활동을 수행하고자 한다고 표방했으니 말입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교회활력화지원네트워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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