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와 재벌경영
    대우조선: '재벌경영'인가, 진정한 ‘공기업화'인가②
        2019년 04월 12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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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1. 들어가며
    2.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산업―조선해양산업
    3.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의 원인
    4. 재벌경영이 해답인가?
    5. ‘진정한 공기업화’ 만이 해결책이다
    6. 노동자들의 대응

    앞 회의 글 “조선해양산업, 포기할 수 없는 미래 산업”

    3.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의 원인

    지난호에선 세계 조선산업의 개략적 현황과 한국 조선업계가 나아가야 할 전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를 통해 조선산업은 결코 사양산업이 아니라 중요한 미래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번호에선 작금의 대우조선해양의 부실화가 왜 비롯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우리가 대우조선해양의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기초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09년 드윈드 사를 인수하여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던 풍력사업에 진출하는 한편, 이후 2010년 천안함 인양 작업에도 참여하였으며, 국내 방산업계 최초로 인도네시아로 잠수함을 수출하는 등 국내 독보적인 방위산업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또한 2014년에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6척을 비롯하여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C 선박만 해도 37척을 수주하며 미래 해양산업에도 활발히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대우조선해양이 갑작스레 이상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2015년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7월, 대우조선해양은 3조 1천억 원의 영업손실을 반영할 것이라는 발표를 하였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는 이틀 만에 주당 12,500원대에서 8,180원으로 폭락하였다. 2015년 8월 17일에 나온 상반기 회계감사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자산상태가 유동부채 14조 6675억 원, 유동자산 11조 4282억 원으로, 부채가 자산 대비 3조2천억 원 초과한 상태로 이미 자본잠식 상태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리하여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에 채권단으로부터 4.2조원을 긴급 지원받은데 이어, 2016년에 다시 3.5조원의 추가 자금을 지원받았다.

    한동안 잘나가던 대우조선해양이 이처럼 재차 경영난에 빠지면서 부실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주객관적 요인을 포함하여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수요 측면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세계 조선업계의 불황이 본격화하였다. 물론 2010년부터 이미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경제의 전반적 하강과 그동안 조선업의 장기 호황을 뒷받침하였던 중국경제의 성장둔화로 말미암아 불경기에 진입하였었다. 그 여파로 먼저 중소형 조선사들을 중심으로 경영위기와 도산이 잇달았다.

    우리가 잘 아는 ‘소금꽃’ 김진숙의 309일 고공농성을 낳게 한 ‘한진중공업’ 문제, 성동조선, STX 등의 부도 등이 모두 이 무렵에 발생하였다. 하지만 대형3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는 마침 세계적인 ‘고유가’로 인한 해양플랜트 수출의 호황으로 인해 잠시 불황 진입이 연기되었으며, 얼마간 ‘깜짝 특수’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2015년부터 고유가가 저유가로 돌아서자 위기가 본격화하였다. 석유수입이 줄게 된 산유국 발주처의 재정 악화로 프로젝트에 계약해지가 발생하면서 손실이 커졌다. 일부 발주처의 경제성 확보 정책으로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한 추가공사 발생 및 인도지연 요청이 발생하면서 공사예정원가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지면서 한국 대형3사의 경영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2015년 이후 한국 대형3사 경영이 악화된 데에는 이렇듯 객관적인 세계 조선경기의 하강 작용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해양플랜트의 일시적 호황을 낙관하여 이 분야에 대한 과잉투자를 감행하고, 또 국내 대형3사 간의 해외수주를 둘러싼 과당경쟁으로 인한 ‘저가수주’ 문제는 이후 이들의 발목을 잡으면서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여기에 더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에는 심각한 ‘경영비리’ 문제가 존재한다. 이 점은 조선업계의 불경기와 과당경쟁이라는 요인들이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다른 경쟁사에도 공히 적용됨에도 불구하고, 왜 유독 대우조선해양만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데 있어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은 당시 분식회계, 경영진 비리 등 많은 난맥상을 드러냈다.

    예컨대, 감사원 고발에 따른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2006년부터 10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가 무려 5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또 대우조선해양 전 CEO 남상태 사장은 부산국제물류라는 다 망해가는 회사에 자신이 투자한 뒤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로 삼고, 그 회사에 일감을 밀어줘서 성장시킨 후 배당을 수령하는 수법으로 20억 원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 밖에도 대우조선해양 임직원들은 2016년 워크아웃 상태에서도 초호화 전세비행기를 이용해 유럽에 출장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산업은행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산하 공기업에 대한 관리체계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살펴본다면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제기한 논리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즉, 그가 현대중공업에로 대우조선해양을 합병시키는 주요한 근거로써 국내 대형3사 간의 ‘과당경쟁 해소’와 ‘주인 찾기’를 들었던 점을 필자가 지난호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진정한 주인이기 보다는 ‘채권자’로서 잠시 관리하고 있을 뿐, 진짜 임자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위 두 가지가 대우조선해양이 재차 부실화한 원인의 전부일까? 필자가 보기엔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거나 혹은 고의로 은폐하고 있다고 보인진다. 그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는 현 인력공급 방식의 한계이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작금의 조선업계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한국 조선산업의 장기 전망에 관한 논의에 있어 중대한 결함이 생긴다. 그것은 왜인가?

    앞서 대형3사의 경영위기와 관련한 주체요인으로서 과당경쟁과 저가수주를 들었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한국 조선업계가 그간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의존해온 성장방식의 한계가 가로놓여 있다. 우선 기술적 측면에 있어서 그러하다. 즉 심해 원유 채취나 가공과 같이 고난도 작업에 사용되는 원자재의 제작과 운반·설치 등을 처리해야 하는 해양플랜트 사업은 고부가가치 사업인 동시에 본래 고난도의 기술이 요한다. 그러나 이런 분야에 진출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 한국 조선업계로서는 그 기술력과 지명도에 있어 기존 업체들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이 같은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저가수주’를 무기로 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앞서 ‘저가수주’ 문제 역시도 본질상으로는 해양플랜트라는 고기술분야에 있어서의 한국 조선업체들의 기술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 노동의 측면에서 볼 때 역시 그러한데, 이 같은 고난도의 기술적 작업을 할 수 있는 노동은 당연히 ‘숙련노동’이라야 한다. 그러나 당시 한국 조선업계는 이러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숙련노동’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같은 조건에서 이미 확보한 주문 작업을 완수하고 ‘저가수주’를 맞추기 위해 기존의 값싼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을 대거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014년 해양부문의 기능직 중에서 사내하청 비중이 무려 93%를 차지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런데 고난도의 해양플랜트 사업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비숙련노동의 투입은 이후 설계상의 요구와 실제 제작 사이의 차이, 납기연장, 기술적 하자에 따른 추가보수와 같은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을 발생하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손실규모도 상당해서, 현대중공업의 한 사내 홍보물에 따르면 2015년 영업적자 1조5천억 원 중 40%에 해당하는 6000억 원 정도가 이 같은 ‘품질 실패 비용’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한다. (박종식, 2016.11) 이는 고부가·고기술 및 숙련노동이 필요한 해양플랜트사업의 객관적 요구와, 이에 어긋나는 저급기술과 값싼 비숙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력 간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정은 대형3사에 공히 해당되며 한국 조선업계가 부딪치고 있는 공통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문제는 금번 대우조선해양 부실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반드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대우조선해양의 재차 부실화와 관련한 주체적 요인은 다음 세 가지로 재정리할 수 있다. 즉, 당시 고유가가 가져온 일시적인 해양플랜트 호황을 지나치게 낙관한 나머지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을 벌인 경영전략 상의 오류와 함께, 내부 ‘경영비리’와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의존한 기존 성장방식의 한계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향후 한국 조선업의 구조조정 및 대우조선해양의 진로와 관련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필히 고려되어야만 할 사항들이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달리 보면 이 문제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조선업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이 이미 등장한 상태이기에 그러하다. 이 때문에 한국 조선업계의 지금까지의 중위수준 기술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을 결합한 발전모델은 조만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운명이다.

    중국은 기술력에 있어서 최근 한국의 주력분야인 LNG선과 대형컨테이너선 수주에 성공한 것을 보더라도 이미 상당정도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그간 2만TEU급 이상 컨테이너선을 제작해본 경험이 없는 중국에 대해 3~5년가량 앞선다고 낙관해 왔었는데, 2017년 중국 조선사가 메가컨테이너선을 수주해가면서 한때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이 계약은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건조에 관한 것이었으며, 이 때문에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신기록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쫒아오는 중국……커지는 위기감”, 헤널드경제, 2017년 9월 29일자 참조)

    아직은 얼마간 격차가 있을지라도, 이 같은 해외수주 경험이 축적되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자체 국내수요에 기반해 중국 조선업계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필요한 경험과 기술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뿐만 아니라 한국 조선업계가 부러워해 마지않는 ‘호화 크루즈선’ 영역에도 이미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자동차·군사 등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조선산업에 있어서도 저급·중급·고급 기술의 동시적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술수준에 있어 아직도 기껏해야 중위 상단에 위치한 한국 조선업계로서는 결코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다.

    원가를 낮추는 데 있어서도 한국은 도저히 중국의 경쟁상대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주로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같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의 이 분야의 노동력은 비록 노동생산성 측면에서는 아직 얼마간 뒤떨어지긴 하지만 (대략 한국 노동자의 1/2 수준), 그 대신 인건비가 한국의 1/3~1/4 정도나 싸다. 뿐만 아니라 발주사들에 대한 금융혜택은 조선사 간 원가경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데, 중국은 국유은행을 통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정책자금 융자를 실시함으로써 해외 발주사들이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중국업체에 주문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성비를 중시하는 고객들일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보다는 중국 쪽에 쏠려질 수밖에 없다. 이동통신과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성비 문제’가 조선산업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조선산업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법칙이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주도 국가에 있어서의 주기적인 교체가 일어난다는 것인데, 예컨대 지난 한 세기만 보더라도 세계 조선산업은 크게 처음에는 영국에서 일본으로, 그 다음에는 한국으로 그 주도권이 이전되어 왔다.

    영국은 1860년대부터 세계 조선산업을 지배하였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영국은 세계 조선 생산량의 60%, 세계 조선 수출시장의 80%라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조선산업의 주도권은 점차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 왔다. 영국을 뒤이어 새로운 조선업계 강자로 등장한 나라는 일본인데, 일본은 1956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유럽 중심의 세계 조선업 구도의 재편을 가져왔다. 1970년대 일본의 건조량은 유럽 주요 국가의 건조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도 많은 수준이었다. 이후 1990년대를 과도기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세계 조선산업의 주도권은 다시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다. 2007년 현재 각국별 조선 건조능력을 보면, 한국은 8,199,000CGT인 반면 과거 조선왕국이었던 영국은 겨우 141,000CGT로 한국의 1/60에 불과하다.(전국금속노동조합,2008) 이것만 보더라도 조선업계의 그간의 역사적 변천을 실감할 수 있다.

    이렇듯 세계 조선업계의 주도권 변천을 가져오는 것은 경쟁력 변화 때문이다. 조선업의 경쟁력 요인으로는 통상 ‘가격경쟁력’과 ‘기술경쟁력’ 두 가지가 지적된다. 이중 가격경쟁력으로는 임금, 생산성, 환율, 규모의 경제, 자재/설비(전체 건조비용의 약 65%), 금융조달 능력이 있다. 기술경쟁력은 제품기술, 설계기술, 생산기술(건조기술), 관리기술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요인은 각국에 있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며, 통상적으로 보면 조선산업은 주로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하는 후발 국가들이 주도권을 차지한 다음, 기술경쟁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p20) 일본이 영국과 유럽으로부터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을 탈취할 때가 그러하였으며, 한국이 이러한 일본으로부터 2000년대 초에 주도권을 넘겨받을 때도 그러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다시 한국은 비슷한 방식으로 중국이라는 새로운 강자를 만나게 된 셈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앞서 지적한 중위수준 기술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을 결합한 현재의 한국 조선업 발전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위의 기존 모델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 경쟁력은 더욱 뒤처지게 되면서 과거 영국처럼 완전한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따라서 앞서 주체적 요인과 관련하여 지적된 나머지 두 가지 문제 (과당경쟁, 부실한 관리체계) 역시도 반드시 이 세 번째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해결 방안이 모색되어져야만 한다. 즉 경쟁적인 시장구조의 구축이나 책임성 있는 경영관리체계의 수립이 이 같은 한국 조선업 발전모델의 전환에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평가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세계 조선업계의 역사적 전환기에 이 점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4. 재벌경영이 해답인가?

    그간 일부에서는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의 전략적 오류와 각종 내부 비리가 진정한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주인이 없었기 때문에 생겨났으며, 이 때문에 유능한 경영주를 찾아주기 위한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존재해 왔다. 이 경우 얼핏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과 합병시키는 방안(실상은 후자에로의 병합)은, 국내 조선업체 간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또 그간 산업은행이 맡아 왔던 전문경영인에 대한 관리감독을 해당분야의 민간 기업에 넘겨 줌으로써 ‘주인 찾기’를 통한 책임경영을 실현하게 하는, 소위 말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책으로 보여 질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앞 절에서 지적한 대로,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소위 ‘주인 찾기’ 논리나 ‘과당경쟁 해소’ 주장은 현 세계 조선업계 추세와 한국 조선업이 처한 상황에 대한 매우 일면적 고찰로부터 나온 결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주인 찾기’에 입각한 사실상 현대중공업이라는 ‘재벌경영’에 위탁하는 방안의 문제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현대중공업의 경우 재벌 총수경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아마도 지금 대우조선해양이 보이고 있는 ‘대리 경영인’의 관리문제는 비켜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큰 고질적 병폐인 ‘총수경영’의 문제를 낳게 된다는 점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한국 재벌의 총수경영은 그간 수많은 문제들을 낳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필자가 현대차 경영위기와 관련하여 지적하였던 ‘총수지분의 구조적인 축소 문제’이다.(“현대차 경영위기와 산업평화의 종식”, 레디앙, 2018년 12월 7일)

    이는 한국 재벌의 공통적인 근본적인 문제인데, 개별기업과 전체 기업집단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반해, 그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총수일가 지분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 10대 그룹 총수지분율은 1999년 1.8%에서 2018년 0.8%로 절반 이상 감소하였다. 현대중공업 재벌의 경우도 2002년에 총수 지분은 7.03%이었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의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총수의 주식 수는 거의 줄지 않았지만, 주식지분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5년에는 그 비중이 0.76%로 축소되었다. (안재원, 2016) 최근 2018년의 기록을 보면, 총수인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준의 그룹 전체에 대한 지분이 0.52%에 불과하며, 그 일가를 모두 합쳐보아야 0.6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 <표2-1>참조)

    한국 재벌에 있어 이 같은 모순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확대재생산을 위한 자본 확충’의 요구이며, 다른 하나는 후계계승에 따른 ‘상속세 납부’ 때문이다. 사실 이 같은 한국 재벌의 딜레마는 자본주의 기본모순인 ‘생산의 사회적 성격의 고도화와 자본주의적 점유 방식’ 간의 모순이 한국적 형식으로 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은 한편에선 2000년대 이후 회사가 급속히 성장하고, 다른 한편에선 창업주인 정주영으로부터 2대 정몽준으로 후계승계가 이루어지면서, 이 두 요인의 동시적 작용으로 인해 위 표에서 보았듯이 총수 지분의 급격한 축소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은 한국 재벌경영의 제반 문제점을 파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시간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자신의 지분과 그것이 수반하는 그룹 지배력에 대한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재벌총수는 관계회사를 따로 세워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형식으로 끊임없이 사내이윤을 외부로 유출시켜 사익을 챙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재벌 역시도 똑같은 문제를 노출하였는데, 총수 정몽준은 현대로보틱스를 지렛대로 삼았다. 이 회사는 원래 현대중공업 내의 한 사업부문으로 있던 것을 2017년 4월 독립하여 분리시키면서 탄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자사업은 가져오고, 그런저런 사업은 원래 회사(현대중공업)에 남기는” 방식으로 급성장하였는데, 분할 독립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5월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다. 그 모태인 현대중공업 주가가 당시 10만 원 대를 오갔음에 비해, 현대로보틱스는 처음부터 40만 원대 고가행진을 계속하였다.

    2018년 3월 주총 이후 새로 출범하여 지금 그룹 전체를 총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지주’는 다름 아닌 기존 현대로보틱스가 사명을 개칭한 것이다. 이렇게 지주회사제로의 개편에 성공하여 그 최대주주가 된 정몽준은, 이를 통해 산하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주력 기업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구축한 지주회사체제를 통해서, 한편에선 그룹 전체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배구조를 안정화시킴과 함께, 다른 한편으론 산하 계열사의 이윤을 지주회사로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사익 챙기기가 훨씬 쉬워졌다. 예컨대, 언제든지 자신에게 유리한 고액배당을 실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관계회사로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이윤 유출이 더욱 자유자재로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창출되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12월 28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2900억원 규모의 주주 배당을 결의하였다. 이는 현대중공업지주가 출범한 후 처음 실시되는 배당으로서, 이에 대해 주변에선 조선업계 불황 속의 ‘고액배당’이라는 지적이 높았다. 이 결정에 따라 현대중공업지주 지분 25.8%를 보유하고 있는 정몽준은 748억원을, 지분 5.1%인 그의 아들 정기선은 147억 원을 배당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 재벌경영의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나 고액배당 방식에 의한 ‘이윤의 사외유출’이 왜 지금 시기 중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본래 기술발전과 노동자의 숙련도 제고 및 복지 향상으로 쓰여 져야 할 몫이 총수일가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은 지금처럼 기술혁신이 질풍노도처럼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있어서는, 단순한 총수일가의 탐욕과 관련된 차원만이 아닌 한국 조선업계 전체의 치명적 결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 시기 재벌경영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 조선산업이 ‘미래 전략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해한다.

    첫째,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감소시킨다. 우리는 자칫 조선산업은 거대 장치산업이며 이미 기술이 성숙한 산업이기 때문에, 자동차나 이동통신에 비해 별반 기술개발 투자가 요구되지 않는 분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다.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흔히들 육지를 넘어서서 아직 두 개의 미개척 분야로 남은 우주와 해양을 개발하는데 있다고들 말한다. 이 때문에 각국은 앞 다투어 해양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필자가 지난 호에서 소개하였듯, 중국은 자신의 ‘중국제조 2025’ 계획에서 해양산업을 중요한 8대 전략산업의 하나로 선정하고 이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추진 중에 있다. 일본 역시도 조선해양산업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하고, 일찍이 ‘사양산업’으로 생각하고 포기하려 했던 조선산업을 다시 ‘필요산업’으로 수정하면서 그 재건에 나서고 있다.

    이렇듯 조선과 해양은 제4차 산업혁명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이루는데, 현재 이미 초기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영역만 하더라도 선박평형수(일종의 해양오염 방지사업), 해양심층수, 첨단 양식업, 마리나(레저선박산업), 지능형 해양고속도로 항해장치, 해양바이오산업, 해양에너지산업(파력, 조력, 해상풍력 등) 과 같은 여러 분야가 있다.

    한국의 조선기술과 관련하여 지금 몇 가지 오해가 존재한다. 일각에선 한국이 상당한 기술력이 요하는 LNG선이나 대형VLCC(대형유조선), 대형컨테이너선, 드릴쉽 등의 수주와 건조량에 있어 세계 1위라는 점을 들어 한국의 전체 조선분야 기술이 마치 ‘세계일류’인 양 착각한다. 물론 일부 분야 특히 이들 배들의 ‘제조 단계’에 있어서만 본다면 그 말은 과장만이 아니다. 하지만 과거 ‘조선업’으로 부르던 것을 지금은 ‘조선해양산업’이라고 고쳐 부르듯이, 지금 정작 기술경쟁의 핵심은 후자(해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조선분야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술적 발전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인데,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되어 표준작업 단계에 들어선 기존 조선의 제작기술에 있어선 한국이 일정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러나 ‘해양’ 분야에 들어서면 한국은 여전히 지극히 초보적 수준임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수심 수천 미터 깊은 해저에 대한 탐험과 그 속에서의 작업은, 지금까지 육지나 수심이 낮은 해양에서의 작업과는 달리 상상을 초월하는 해저압과 각종 미지의 도전들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에 난도로 치자면 그것은 진공과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의 작업과 비슷하며, 이에 따라 초정밀 용접 기술, 신소재의 개발, 위성을 통한 정밀한 위치 규정과 원격통신 및 조절기술, 로봇작업 등과 같은 최첨단 기술이 요구된다. 따라서 이 분야에 진출하여 성공하기 위해선 이를 위한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상당기간에 걸쳐 이루어져야만 하는데,

    그러나 한국의 지금과 같은 재벌경영은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주기에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위에서 지적한 총수의 ‘구조적인 낮은 지분’ 문제 때문에 마땅히 본사에 귀속되어야 할 이윤을 ‘일감 몰아주기’ 나 ‘고액배당’ 등의 형식으로 끊임없이 외부로 유출시킨다. 이는 분명 본 기업의 기술개발 여력을 지속적으로 저하시키게 만듦으로써 마침내는 그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다. 실제 한국 대형 조선3사의 최근 연구개발 투자 비중을 보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매출액 대비 0.5~0.7%로 수준으로 1%에 채 미치지 못하며, 삼성중공업은 0.9~1.2%로 다소 높은 편이다.(각사 사업보고서 참조) 전체적으로 한국의 대형 조선3사의 이 분야 투자비중이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1년 미만의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며, 성격상 조선업계 전통기술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미래 해양분야와 관련한 장기적인 프로젝트와 기초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한 눈에 느낄 수 있다.

    둘째, 전체 산업생태계의 측면에서 볼 때, 재벌경영은 상생적인 원-하청 관계의 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미래 해양산업을 위한 새로운 산업생태계의 구축을 어렵게 한다. 인공지능, 3D기술 등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이 수많은 새로운 혁신기업들의 출현과 참여 속에 진행되고 있듯이, 미래 해양산업 역시도 많은 중소형 전문 업체들의 참여와 지원 속에 진행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의 수탈적인 원-하청 관계는 이 같은 혁신기업들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같은 사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국 대형3사가 막 진출한 해양플랜트 분야이다. 이 분야는 지금 선진국들에 의해 시장의 주요 부분이 장악되어 있는 상황인데, 예컨대 해양플랜트 공급사슬에 있어서 국가별 경쟁력은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이 건조와 제작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최상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건조, 제작 부문에 있어선 비록 최상위 경쟁력을 갖고 있으나, 다른 분야에서는 대부분 중간 정도의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예컨대 엔지니어링, 설치와 시운전, 유지관리 등은 ‘미흡’ 하다는 판정을 받으며, 특히 타당성 조사 및 예비탐사는 최하위로 기록된다. (해양과학기술진흥원,2013,「해양수산 신산업 창출 및 활성화 정책지원 방안 수립 기획연구」)

    또한 기존 전통 조선분야와는 달리, 해양플랜트의 장비 국산화율이 20%에 그치고 있는 현실이 말해주듯이 특히 중간 소재 및 부품 영역에 있어서 한국은 매우 취약하다. 한국은 현재 대부분 이들 부품들을 해외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것들을 모두 먼 곳에서 운반해 와야 하는 관계로 운송비를 포함한 조달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또 실제 작업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도 즉각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데 어려움이 배가 된다,

    예컨대 판매회사(Vendor)와 수시로 필요한 의사소통이 시차로 인해 방해받는다든지, 납기관리의 어려움, 각종 감독 및 검사 시에 상대방 참석의 곤란, 시운전가동 중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경우 신속한 문제해결의 어려움 등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칫 ‘공기 지연’과 추가비용 발생을 야기 시키기 때문에 해양플랜트 기자재의 국내 생산 필요성이 절실한 실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단기간에 이들 분야 기업들을 육성하는 일 또한 쉽지가 않다. 한국정부가 나서 각종 특혜를 제공하면서 관련 해외자본의 유치를 시도하고는 있지만 그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각국이 모두 이들 기업들의 유치를 위해 경쟁하고 있고, 또 그들이 보유한 기술들이 대부분 미래 핵심전략기술인 이상 외부 유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현재 해양플랜트 수주에 있어 한국이 싱가포르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 이 같은 사정과 관련이 있다. 싱가포르가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자체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이외에도, 작은 나라이면서 개방적인 국제도시이고, 또 한국의 대형3사처럼 국제 선두업체들을 위협할 경쟁사들이 없는 관계로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데서 얻는 이득이 적지 않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1,000개 이상의 글로벌업체들이 현지에서 기자재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해양과학기술진흥원,2013년 보고서)

    결국 한국은 자력으로 미래 해양산업을 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 그러나 지금의 재벌경영 하에서 형성된 수탈적 ‘원-하청’ 관계는 이 문제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한다. 이 같은 수탈적 ‘원-하청’ 관계는 재벌경영과의 관계에서 보자면 그 결과이자 원인일 수 있다.

    여기서 ‘결과’라고 하는 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한국 조선업이 어중간한 중위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재벌기업들이 주도하는 수탈적 ‘원-하청’ 관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같은 위치에서는 상하로부터의 점점 격심한 경쟁에 내몰리기 쉽고, 탐사·시추·개념설계와 같이 해양플랜트 가치사슬의 상류부분이거나 운반·설치·사후서비스와 같은 하류부분처럼 고급기술이 요하거나 부가가치가 많은 영역들은 대부분 선진국 업체들에 의해 장악됨으로써 이윤의 많은 부분들이 그들에 의해 선점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조선사들은 필연적으로 박약한 경영구조 하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인건비와 하청기업들을 쥐어짜내는 것으로 이를 보충하게 된다.

    그 다음에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원청 대기업과 맺는 이 같은 종속적인 수탈 관계로 인해 한국의 하청 부품업체들은 자신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며, 이런 결격사유를 갖는 현재의 산업생태계로 말미암아 한국 조선해양 분야는 계속해서 국제분업 상의 낮은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재벌경영은 결국 이러한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끔 하며, 그것을 구조화하고 영구화시킨다.

    셋째, 재벌경영은 이처럼 기업 이윤의 구조적인 사외유출을 통해 기술투자 여력을 감소시키고 상호 상생적인 산업생태계의 구축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숙련노동과 관련된 ‘인적자본’의 장기적인 보호와 육성 역시 저해한다.

    지금의 대형3사의 ‘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숙련노동은 그간 한국 조선업 40여년의 역사적인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1970년대 초에 한국 기업들이 조선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래로, 박정희와 전두환 등 개발독재 정권하에서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재벌경영체제 하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통해 축적을 거듭한 대외 예속적인 한국 자본주의가 남긴 보기 드문 귀중한 성과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래 해양산업에로의 본격 진출을 위해서도 새롭게 발굴·육성되어 그 대오가 지금보다도 더욱 확대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재벌경영에 의해 한국 조선업계 인력공급 양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제’는 이 같은 방향에 역행하는 것으로써 지극히 퇴행적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사실상 원청 대기업에 의해 지휘 받는 사내하청 젊은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정규직화’의 희망을 간직한 채 회사에 찍히지 않기 위해 일정기간은 갖은 차별대우에도 묵묵히 순종하며 일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지극히 일부만이 원청 정규직으로 채용될 뿐이며, 나머지 대부분은 결국 허송세월만 한 채 정규직화의 꿈을 접어야만 한다. 결국 중소 하청업체에 계속 남을 수밖에 없는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들 하청기업의 임금체계 속에서 직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로써는 이 같은 행동이 나름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하청) 업체를 자주 옮겨 다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처음 사내하청업체에서 일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기술수준이 낮아서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데, 이후 기량이 향상되더라도 하청업체에서는 이에 맞춰서 임금을 인상시켜 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언제든 자신의 기량 수준에 맞춰서 대우를 해 주는 곳으로 스스로 이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박종식,2016,p8)

    이들의 잦은 이동은 해당 중소 하청기업과 노동자 본인에게는 기술을 축적하고 숙련도를 높이는 데 있어 방해 요인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다른 한편, 숙련노동자인 대기업 정규직들은 이미 노령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역시 그간 비정규직제와 타협하면서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기 보다는 ‘편한 일’을 추구하면서 오히려 퇴보하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간접작업’ 선호 경향이 그것이다. 일이 힘든 배관·도장·용접 같은 직접 생산업무보다도, 상대적으로 편한 크레인, 지게차 등의 장비 운전과 신호수, 공구관리 등의 간접업무를 선호하고 이것들이 사내 정규직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처럼 과도하게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은 개별회사의 고유한 설비에 대한 소위 ‘자산특수적인 숙련(asset-specific skill)’을 낮추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박종식, 2016, pp7-8)

    그밖에도 지나친 외주화와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임시적인 작업체계의 유행은, 하청업체 간의 경쟁을 격화시켜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대폭 높이면서도 임금단가는 낮추게 만든다. 이 때문에 갈수록 노동자들의 조선업으로의 유인력을 떨어뜨려 현재 업계를 하나 둘씩 떠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들 분야는 차츰 외국인 노동자들의 몫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잦은 산재사고와 제품 하자는 그 자연스런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해양산업의 미래산업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의 기술수준이 한 단계 상승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에 걸맞는 충분한 숙련노동의 양성이 필수적인 과제로 떠오른다. 조선산업은 그 특성상 장치산업이자 또한 아무래도 직접적인 인간노동에 의존하는 ‘기술인력 산업’으로서의 특징을 앞으로도 상당 정도 간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경영은 지금까지 이 같은 숙련노동의 보호와 육성에 심각한 한계를 보여 왔다. 기술투자와 마찬가지로, 숙련노동을 양성키 위한 장기간에 걸친 ‘인력자본’ 투자는 맑스가 말하는 바와 같은 ‘특별잉여가치’ 생산에 기초한 ‘초과이윤’ 획득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이러한 초과이윤이나 그에 못 미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윤을 얻을 수 있어야만 숙련노동에 대한 투자나 그들의 보유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경영은 앞서 언급한 대로 현재의 중위수준 업계 위치에 만족하면서 이미 그 같은 ‘꿈’을 접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숙련노동과 재벌경영 이 둘 사이엔 필자가 보기엔 근본적인 마찰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장기적 투자는 결코 총수일가가 전체 재벌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제고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것을 약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선 약간의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재벌경영은 왜 이처럼 ‘인력자본’의 육성과 배치되며 그 때문에 근본적으로 ‘숙련노동’을 자신의 축적기반으로 삼을 수가 없는지와 같은 문제는 비교적 이론영역에 속하는 문제일 수 있다. 필자는 앞서 한국 재벌의 공통적인 문제로써 ‘총수지분의 구조적 축소’에 관해 언급하였다. 끊임없이 축소되는 자신의 적은 지분에 의지해서 나날이 커가는 전체 기업집단(재벌그룹)에 대한 점유(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총수일가는 지속적으로 기업 내부이윤을 자신의 관계사로 유출시킬 수밖에 없다. 또 그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시설이나 기술 투자에 대한 부족분을 보충할 수 있는 다른 수단으로서의 사회적 자본의 동원(자본 사회화) 역시도 재벌경영에 의해 상당정도 제약을 받게 된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지주(과거 현대로봇틱스)를 장악하고 있는 정몽준 일가는(그중 대주주인 정몽준 지분은 21.33%), 현재 이 지주회사 및 우호적 지분을 포함하여 총 35%의 지분을 통해 그 주력기업인 현대중공업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지배를 위협할 만한 규모의 외부자본이 유상증자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히 막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 참여의 최대 허용치는 현재로선 35% 미만이다. 하지만 다음 대에 이르면 그 상황이 변모하게 되는데, 상속세의 영향으로 그의 아들 정기선의 지분은 절반인 17% 이하로 낮아지게 된다. 이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재벌경영 때문에 사회적 자본의 참여 폭은 갈수록 좁아지게 된다.

    재벌경영체제가 아닌 정상적인 시장경제 질서 하에서의 상황과 비교할 경우, 재벌경영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기업 내부의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상대적으로나마 저하시킨다. 여기에는 물론 시설이나 기술과 같은 물질적 자원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인적자원(인력자본)에 대한 투자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이든 인력자본 투자이든, 이로 인한 전체 기업자산의 확대는 그만큼 사회자본으로서의 기업가치를 확대시킴으로써, 그 내부의 총수일가 지분을 상대적으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재벌경영은 어차피 기술력이나 숙련노동에 기초한 ‘특별잉여가치’의 창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업계의 초일류기업 및 혁신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에, 한국의 재벌은 대신 차선을 노리며 그에 만족한다. 그것은 한국 재벌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중간기술’ 즉 얼마간의 투자로도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응용기술과, ‘사내하청 비정규직제’를 이용한 저임금 노동의 결합을 통한 ‘독특한 경쟁력’의 창출을 통해서이다.

    종합하자면, 재벌경영은 결코 미래 산업으로의 대전환과 도약을 준비해야 하는 지금의 한국 조선산업에 있어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대우조선해양의 진로와 관련하여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불분명한 경영주체에 대해 ‘주인 찾기’이거나 업체 간의 과당경쟁의 해소만이 아니다. 그 보다 더욱 근본적으로는 진정하게 한국 조선업의 미래 전망을 내놓으면서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선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하자.

    [참고문헌]

    박종식, (2016.11), 저숙련의 함정-한국 조선산업 위기에 대한 고용차원의 접근과 구조조정의 필요성.

    안재원, (2016.10),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는 구조조정 실상과 노사관계의 문제점.

    전국금속노동조합, (2008.4), 조선산업 글로벌화와 노동조합의 대응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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