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섬으로 간 소년
[그림책 이야기] <어느 멋진 날>(윤정미 글 그림 / 재능교육)
    2019년 04월 11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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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살던 준수가 섬에 옵니다. 며칠이 지나갑니다. 낮에도 밤에도 섬은 조용합니다. 정말 심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준수를 자전거에 태워줍니다. 조용하던 섬마을에 따르릉따르릉 자전거 소리가 울립니다. 할아버지는 오래된 등대 앞에서 자전거를 세웁니다. 그리고 등대 위로 올라가 전등을 닦아줍니다. 이윽고 할아버지와 준수는 배를 타고 바다로 갑니다. 할아버지는 배에 놓아둔 풀을 집어 바다에 뿌리며 외칩니다.

“고수레, 고수레!”

멀리 바다 동굴이 보입니다. 가까이서 보니 준수가 살던 아파트보다도 크고 웅장합니다. 이제 곧 마다 동굴로 들어갑니다. 준수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와! 어마어마하게 큰 돌기둥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에는 신비로운 불빛들이 반짝입니다.

“할아버지, 저 반짝이는 불빛은 뭐예요?”

준수가 할아버지를 돌아봅니다. 앗! 그런데 할아버지가 없습니다. 분명히 함께 배를 타고 동굴로 들어왔는데 할아버지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 배에 혼자 남겨진 준수 앞에는 어떤 모험이 펼쳐질까요? 도대체 할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걸까요?

할아버지는 어디에?

이쯤 되면 걱정 많은 독자들은 근심이 깊어집니다. 혹시 할아버지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혼자 남겨진 준수는 집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을 못 이룰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십시오. 둘째, 준수를 구하러 가십시오. 셋째, 정말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책을 사서 확인하십시오!

아마도 책을 보신 분들은 이미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나친 안심 또한 금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어느 멋진 날>은 제게 아주 중요하지만 늘 잊고 사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바로 언제나 누군가 내 곁을 떠날 수도 있고, 누구나 혼자 남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남겨진 시간들

어린 시절 저는 많은 시간을 혼자 집에서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형들은 모두 학교에 갔기 때문입니다. 처음 몇 시간은 그럭저럭 보낼만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다락방도 있고 우물이 있는 마당도 있고 온갖 풀과 벌레들이 사는 축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다락방도 마당도 축대도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엄마가 점심을 주러 오기 한 시간 전, 오십 분 전, 사십 분 전, 삼십 분 전… 그러다 엄마가 12시가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면 옆방 할머니가 오셔서 정말 여러 가지 한다며 욕을 해주셨지요.

다행이도 시계를 보는 날보다 보지 않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다락방에서 잡동사니를 들춰보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왔습니다. 어떤 날은 우물가에서 장난을 치다 보면 엄마가 왔고 어떤 날은 개미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엄마가 왔습니다. 정말이지 세상은 온갖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비이글호의 박물학자

저를 처음 서점에 데려간 사람은 사촌형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촌형은 동네서점에 저를 데리고 가서 <비이글호의 박물학자>를 사주었습니다. 다윈의 전기를 읽으면서도 저는 진화론에 크게 감명 받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관찰하고 발견하는 모습이 저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과학자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어린 시절 부모님과 형제들이 비워주었던 시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관찰과 발견과 몰입의 시간이었습니다. 다락방의 잡동사니들과 우물이 있는 마당과 온갖 풀과 벌레들이 사는 축대는 저의 친구였고 저만의 작은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호기심과 관찰과 몰입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면 저 역시 다윈처럼 갈라파고스 제도를 찾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자연으로

도시라는 한정된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은 분명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해야할 시점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더라도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을 단 한 순간도 자유롭게 하지 않는 교육제도가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제도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을 이뤄주는 곳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를 행복한 삶으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농촌으로 어촌으로 섬으로 산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자연과 어우러지고 자연과 소통해야 합니다. 도시에서 섬으로 간 소년에게 몰입의 시간과 공존의 지혜를 선물하는 그림책, <어느 멋진 날>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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