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참여적 사회민주경제 체제로 "
    2006년 06월 29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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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주최의 ‘6월민주항쟁과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 학술토론회에서 1부 두번째 발제를 맡은 김상곤 교수(한신대, 교수노조 위원장)는 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투쟁을 묶어 ’87항쟁’으로 규정하고 80년대 사회운동의 전개과정을 살펴본 후, 87항쟁에 대해 "80년 5월 광주항쟁의 민주화 담론을 국민화해 군부독재의 종식을 마련한 ‘국민항쟁’"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완의 87년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후 체제에 대한 구상과 추진력 재생산을 마련해야 한다"며 ‘사회적 공공성’과 ‘공공참여적 사회경제민주주의 체제’를 제시하고 이를 추동해낼 개혁진보세력과 정당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민주화운동의  계승과  발전 –  87항쟁  이후  사회운동의  평가와  전망
김상곤 교수(한신대, 교수노조 위원장)

한국의 현대사는 4월혁명, 5월항쟁, 그리고 87항쟁으로 이어지는 국민적 저항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그것은 한편으로 현대 한국 사회운동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의 압축성과 역동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다시피 한 ’80년대’는 단순히 연대기적 10년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질적 전환으로서의 사회발전양태 혹은 사회운동양태를 지칭하는 정치경제적 질적 개념, 나아가 사회문화적 질적 개념이 되어 왔다.

“80년대”가 시작된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급진적이고 대중적인 저항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광주학살의 배후에 미국의 역할이 있었음을 대중적으로 확인하면서 80년대 한국사회에 미국 지배체제의 반민중성을 폭로하고 한반도에서 민족문제가 민중 생존권문제와 만나는 접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5월항쟁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생존권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기층 민중을 중심으로 양심적 시민세력이 연대해 전개한 급진적·대중적 민중항쟁이었다. 이후 한국의 사회운동은 한국사회 안팎의 근본적인 모순구조를 깊이 인식하게 됐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등 기층 민중운동의 중심적 지위가 분명하게 됐다. 이러한 기층 민중운동의 대중화가 87항쟁의 동력으로 작용했다.

민주주의 담론 대중화한 87항쟁

87항쟁은 5월항쟁의 급진적 변혁 전망에 의해 저변의 동력을 견인 받으면서 이를 최대민주화연합으로 확장시켜 나간 통합적 국민항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87항쟁은 좁게는 6월부터 9월까지의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의미하지만 사실은 1987년까지의 변혁운동의 성과를 밑거름으로 1987년 초부터 조성된 정세를 돌파해 나가는 일련의 항쟁 과정을 총괄한다. 그 결과 직선제 개헌의 6.29 선언을 받아내고 시민사회와 민주노조의 정치사회적 공간을 확보했다.

둘째, 87항쟁은 4월혁명과 5월민중항쟁의 국민적 저항과 변혁적 전망을 다같이 어어 받고 있으며 이후 사회운동의 중간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87항쟁은 5월민중항쟁이 계기를 마련한 급진적 사회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담론을 ‘국민화’했다. 4월혁명이 학생운동 중심이었고, 5월민중항쟁을 지역 민중이 주도했다면, 87항쟁은 시민, 학생, 사무직 노동자, 현장노동자, 지식인, 재야운동세력 등의 참여 하에 전개됐다.

넷째, 87항쟁은 이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동원(同原)으로서 두 운동의 분화·발전의 공간을 제공했다. 87항쟁을 계기로 시민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민주적인 사회개혁을 담당할 새로운 시민운동체들이 조직되고 민중적인 가치를 담지할 진보적인 민중운동체들이 광범위하게 확장돼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을 한 단계 진전시켰다.

개혁정치, 보스·인맥정치 폐해 극복 못해

87항쟁 이후 한국 사회운동의 이념적 분화가 진행됐다. 이른바 ‘재야운동’과 사회운동은 반합법전선체 중심론, 야당 강화론 또는 범민주연합당론(민주대연합론), 독자창당론 등의 경향들이 경합하는 가운데 정치세력화를 위한 모색을 전개해왔다.

87항쟁 이후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은 대체로 개혁정치(개혁적 보수정치)의 흐름, 진보정치의 흐름, 그리고 최근 대두되고 있는 시민운동세력의 정치세력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88년 재야파의 평민당 입당으로부터 16대 대선 전후의 개혁당 창당과 열린우리당 통합에 이르기까지 보수정치의 개혁을 주장하며 참여한 정치세력화 집단은 부분적인 정치개혁·정당개혁을 추진하기는 했지만 기존의 보스정치와 인맥정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했다.

87년 백기완 후보 추대위원회로부터 구체화된 진보적인 정치세력화는 민중의당과 진보정당결성을위한정치연합(진정연) 등으로 이어졌다. 1997년 국민승리21에 이은 민주노동당의 출범과 17대 총선에서의 일정한 약진은 진보 대 보수의 축을 형성하는 전기가 됐다.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는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를 만들어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했고 17대 총선에서는 물갈이연대를 통한 당선운동을 전개해 포지티브 정치참여도 구사했다. 한국 정치질서의 전근대성으로 인해 시민운동의 정치 개입은 근대적 정당의 부재를 보완하는 준정당적인 종합적 정치 감시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은 향후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로를 모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보수정당의 개혁 차원이 아닌 진보적인 정치조직화의 큰 틀 속에서 논의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87년 체제 이후에 대한 구상―공공참여적 사회경제민주주의 체제

형식적 민주주의와 그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개혁을 특성으로 하고 있는 미완의 87년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후 체제에 대한 구상과 추진력 재생산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발전 전망에 대한 거시담론이 부활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더욱 의미를 가지려면 그러한 거시담론이 구체적 현안에 대한 정책제시능력을 통해 실질화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실질화에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사회적 공공성이다.

현 단계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역할에 주목, 민주적·참여적으로 규제되는 “공공참여적 사회민주경제체제”의 틀을 지향하고, 이를 위해 교육, 의료, 문화, 에너지 등 사회적 보편서비스의 영역을 증대시키고 이에 대한 공공성 원리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87년 체제의 발전적인 극복을 위해서 사회운동 진영은 미약하지만 이미 형성된 보수 대 진보의 정치사회적인 구도를 더욱 강화해 이제까지 이룩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중심가치로 실질적 민주주의, 공공참여적 사회경제민주주의로 추동해낼 사회경제적 실천의 주체를 세워내야 한다.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이행을 이룩해 나갈 수 있는 ‘이후 체제’를 담당할 개혁진보세력과 정당을 육성할 수 있는 폭넓은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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