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애꿎은 화(禍)와 선의, 환대의 경계
    [소설과 한국사회] 이기호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2019년 04월 10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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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광화문 세월호 천막이 철거된다. 지난 2014년 7월 천막이 설치된 후 약 4년 8개월 만이다. 세월호 참사 석 달 뒤, 유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에 천막을 세웠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유가족들은 세월호 천막 철거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 입을 모았다.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조문객은 120만 명이었다.

    타인의 슬픔은 내가 어떤 도덕적 만족을 느끼며 공감을 시도할 만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추궁하고 심문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 슬픔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나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25.)

    차마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타인의 슬픔을 ‘불편해하는 일’, 한때 안타까워했지만 끝내 지겨워진,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있다. 이기호의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은 세월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다양한 피해 당사자와 주변인 이야기를 권순찬의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소설의 화자는 G시에 재직 중인 문창과 교수이자 작가이다. “더 적나라하게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대로 소설은 마치 이기호 작가의 실화 같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의 화자는 ‘애꿎은 화’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화난 사람처럼 자꾸 주먹을 움켜쥐었고, 혼자 있을 땐 책상 귀퉁이나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툭툭 내리쳤으며, 그러다 보면 실제로 화가 났다. 나는 내가 왜 화가 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화가 난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자주 숨을 길게 들이마신 후 그대로 멈춰 있는 일을 반복했다. (p.43.)

    화자는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애꿎은 화’만 더해갔다. 그러던 중 한 남자를 알게 된다. 그 남자는 아파트 단지에 천막을 친 후 매일 대자보를 들고 서 있다.

    103동 502호 김석만 씨는 내가 입금한 돈 칠백만 원을 돌려주시오!(p.49.)

    남자의 사정은 이랬다. 인천 세차장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와 사채 빚을 졌다며 도움을 청한다. 남자는 선뜻 돈을 주지 못하고 어머니를 돌려보낸다. 어머니는 방 보증금도 빼고 돈을 융통해 700만 원의 빚을 갚은 뒤 자살한다. 그런데 그 사이 남자도 어머니의 돈을 갚는다. 결과적으로 사채업자에게 돈이 이중으로 지불된 셈이다. 남자는 어머니 장례를 끝내고 바로 G시로 내려온다. 사채업자를 만나기 위해, 하나 502호에는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사채업자의 노모만 살고 있었다. 남자는 아파트 단지에서 대자보 시위를 하며 사채업자 김석만을 기다린다.

    화자는 가급적 남자의 일에 참견하지 않고 글쓰기에 전념하나 실패한다. 매번 글을 못 써 ‘애꿎은 화’를 삭이기 위해 호프집으로 향한다. 오가는 길에 보고 듣는 남자의 사연이 못내 신경 쓰인다. 화자는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남자 생각을 하게 된다. 샤워하면서도 남자의 두꺼운 양복 재킷을 생각하고, 추운 날엔 남자의 허술한 박스를 생각한다. 화자의 일상에 미미한 잡념을 주는 남자의 존재가 점점 불편하다.

    그것이 나와 권순찬의 첫 만남이었다. (p.48.)

    권순찬은 화자가 교수라는 것을 알고 대자보에 옮겨 쓸 글의 맞춤법 교정을 부탁한다. 화자는 문구를 하나하나 고쳐준다. 그때 그의 사연 속 어머니가 새어머니였음을 알게 된다. 늦더위가 지나고 10월에 접어들도록 권순찬의 천막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 게시판에 특별 모금 안내문이 나붙는다. 권순찬을 위해 작은 정성을 모으자는 내용이다. “입주자 대표 명의로 작성된 그 안내문엔, 해마다 연말에 실시했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올해는 이것으로 갈음한다.” (p.60.)고 적혀 있다.

    집집마다 성금을 내고 화자도 십 만원을 낸다. 710만원 조금 넘는 성금이 모여 입주민 대표는 권순찬씨에게 어떻게 돈을 전달할까 의논한다. 누군가 자신이 아는 지방신문 기자를 부를까 운을 떼지만 착한 사람들의 만류에 성금을 정중히 전달하기로 한다. “저 남자하고 정이 참 많이 들었는데” “그나마 첫서리 내리기 전에 일이 이렇게 돼서 얼마나 다행” 라며 착한 사람들은 안도한다. 착한 사람들은 대표가 성금을 전달할 때 모든 장면을 동영상으로 남긴 뒤 천막 철거 작업을 도울 계획이다.

    그러나 권순찬은 돈을 거절한다. “원래 그 할머니한테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며 김석만을 만나 일을 해결하러 온 것이라 말한다. 권순찬과 사람들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고 권순찬은 끝내 돈을 받지 않는다. 착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의를 무시했다 비난하고 화를 낸다. 그 뒤로 “아파트엔 그가 칠백만 원에 대한 이자를 받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p.64.)

    착한 사람들은 교수님이 나서서 권순찬 씨를 설득해 달라 한다. 설득은커녕 화자는 매일 “정문 옆에 한참 동안 주먹을 움켜쥔 채 서 있다”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12월 권순찬의 천막은 착한 사람들의 신고로 철거된다. 세 번째 철거 이후, 권순찬은 천막을 세우지 않고 관처럼 생긴 박스 집을 만들어 노숙한다. 아파트 주민 모두 내색 없이 그 광경을 훔쳐본다. 화자는 여전히 글을 쓰지 못해 ‘애꿎은 화’를 억누르다 술에 취해 권순찬 멱살을 붙든다.

    어머니가 당신 때문에 죽은 거 같아서 그러냐고요?

    남자는 나를 쳐다보던 눈길을 거두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닌데요… 어머니가 왜 나 때문에 죽어….

    남자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빼 그의 멱살을 잡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런 거잖아! 당신이 늦어서 어머니가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멱살을 잡힌 남자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바람에 휴대용 낚시 의자는 뒤로 나뒹굴었다.

    아닌데요…. 돈이 육백만 원밖에 없어서….. 두 달을 더 일해야 돼서… 그렇게 된 건데요….

    남자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p.68.)

    그 뒤 ‘G시 노숙인 쉼터’ 승합차가 와 권순찬을 강제로 끌고 간다. 착한 이웃의 말처럼 그는 힘없이 질질 끌려갔고 그의 물건들만 바닥에 나뒹군다.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p.64.)

    권순찬의 이웃, 착한 사람들은 그렇게 묻는다. 최선이었다. 선의였다. 환대였다. 그럼에도 거절당했다. 착한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권순찬은 누구인가, 아니 누구였는가. 화자의 진술을 되짚어 보자.

    남자를 보며 당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먼지 뭉치’였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방구석에 머리카락과 함께 둥글게 부풀어 오른 ‘먼지 뭉치’. 실이라도 뽑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먼지 뭉치’. (p.47.)

    화자에게 권순찬은 오랫동안 치우지 못한 ‘먼지 뭉치’였다. 평범한 일상에 불쑥 끼어든 사람. 지저분한 천막에 살며 뙤약볕 아래 대자보를 든, 나와 관계없지만 불편하고 부담스러워 자꾸 나에게 애꿎은 화를 불러내는 사람.

    광화문에 세월호 천막이 쳐질 때, 가족들이 단식을 하고, 머리를 깎고, 삼보일배하며 바닥에 엎드려 울 때. 착한 사람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백만 촛불로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탄핵 사유에 세월호는 없었다. 아이의 아빠는 “왜 세월호는 안되는 거냐” 눈물을 쏟았다. 착한 사람들은 곧 해결될 거라 말했다. 무엇이 해결된단 말이었을까. 유가족에게 해결이란 참사 이전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세월호 특조위를 방해하고 사실을 봉인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곧 해결되겠지, 착한 사람들은 리본을 고쳐 달았다. 얼마 안 있어 단원고 교실을 허문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쩔 수 없겠지. 착한 사람들은 바빴다. 바쁜 일상에 노란 리본이 떨어진 줄도 몰랐다. 네 번의 추모제가 열렸고 많은 인파가 참여했다. 유가족 대표는 아직 책임의 전모조차 밝혀지지 않았고 처벌도 안됐다며 네 번의 추모제에 네 번의 같은 연설을 했다. 아니 어쩌면 사천 번 외쳤을 연설이었다. ‘4월의 바다는 이제 내가 아는 바다가 아니다’ 그런 말은 잊힌 어느 시의 한 구절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랑 곳 없이 엄청난 바캉스 인파와 황홀한 바다 풍경, 당일치기 바다여행, 밤바다를 노래하는 유행가와 예능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노란 천막은 나를 향해 끊임없이 물었다. 어떤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 방식 자체가 불편한 것, 성가신 것이라 부정된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 자체가 윤리적인 것이라면 질문 자체에 이미 타자의 이질적 존재방식을 전제하는 셈이다. 나와 타자의 연결과 간극을 동시에 고민하는 일은 ‘환대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계기이자, 한 사회 내에서 타자와 나를 피할 수 없는 쌍방향의 질문 속에 재위치 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같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질문하고, 나 자신도 그들로부터 끊임없는 질문을 받아야 한다. 특히 상실의 슬픔을 앓은 타자에게 자기 식대로의 친숙한 존재방식을 요구하거나 관습적 편의를 내세우는 일이야 말로 권순찬과 세월호를 ‘먼지 뭉치’로 만드는 순간이다.

    글을 쓰지 못해도 꾸역꾸역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화자처럼 권순찬도 천막을 치고 대자보를 써 붙인 뒤 바닥에서 그냥 그렇게 거기 있도록 두었어야하지 않았을까. 착한 사람이라는 수사를 스스로 집어치우고 권순찬의 자기 존재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환대’ 아니었을까.

    광장의 노란 천막은 결코 나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의 환대란 무엇인가.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의」 화자가 권순찬의 부탁에 빨간 플러스 펜을 꺼내 맞춤법을 고쳐준 행위. 이따금 샤워 중에 그곳이 덥진 않을까, 춥진 않을까 염려를 지속시키는 것. 그러다 발길이 닿는 대로 리본도 만들고 단식도 하며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하여 권순찬에게도 마찬가지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상해주자는 착한 사람들 틈에서 권순찬의 아픔은 과연 계산 가능한, 보상 가능한 것일까 한 번쯤 질문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어느 날 무방비하게 찾아온 타자를 특정 테두리 속에 가두지 말고, 그저 그와 나 사이에 사라질 수 없는 숙명적 거리와 정치적 긴장을 의식하는 일. 다시 신형철의 말을 가져와 “슬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하는 일이야 말로 애꿎은 화를 당한 사람에게 적어도 애꿎은 화를 되돌려주지 않는 일, 그러니까 이제 없어질 노란 천막을 내 안에 무기한 세워두는 환대의 한 방식일지 모른다.

    필자소개
    여미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기법을 연구했으며 성균관대 박사과정에서 현대 문학평론을 공부하고 있다. 독서코칭 리더로 청소년들과 붉은 고전읽기를 15년간 진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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